지난해 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회원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수 만명의 주민등록번호 제출을 요구했다. 쿠팡은 애초 회원 가입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아, 실효성 없는 다량의 민감 정보를 요구하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박정호)는 지난 12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본 가입자 약 2만1500명이 제기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소송 7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원고들은 쿠팡의 개인정보 안전조치 의무 위반에 따른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1인당 3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이날 심리된 7건은 법무법인 지향이 진행하는 8만여명 규모의 공동소송 중 일부로 지난 3월부터 가장 먼저 법원 심리가 이어진 사건이다. 쿠팡 사태 이후 여러 로펌을 통해 민사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전체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재판에서는 원고들이 실제 쿠팡 회원인지를 특정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쿠팡 쪽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당사자를 특정해야 한다”며 원고들의 주민등록번호 제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쪽이 대리하는 원고 당사자 2만1500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 제출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쿠팡이 회원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수집·이용 요건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민감한 개인정보로, 쿠팡을 비롯해 대부분 쇼핑몰은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하더라도 쿠팡이 보유한 회원 정보와 대조해 확인할 수 없는 셈이다.
원고 쪽은 쿠팡이 이미 보유한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 가입 정보 등만으로 회원 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쿠팡 쪽이 불필요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피해자 확인보다는 소송을 장기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취지다.
쿠팡이 민사재판을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팡은 지난 3월 첫 재판부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한 과징금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사 재판을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해왔다. 쿠팡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62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며,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쿠팡에 가입할 때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도 않아서 제출하더라도 자사 시스템으로 대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법상 취득이 매우 엄격히 제한된 주민등록번호를 재판에서 요구하는 것은 명분 없는 재판 지역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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