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틱 카운슬의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를 통해 본 한-EU 공동성명의 배경
최근 발표된 한-EU 공동성명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낳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협력 확대와 디지털 통상협정 체결이 전면에 배치됐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안보·방위 협력, 해양안보, 사이버·하이브리드 위협 대응, 외국 정보조작 대응, 방산 협력, 기밀정보 교환 문제까지 폭넓게 포함됐다.

실용외교와 균형외교를 말해온 이재명 정부가 어쩌다 유럽연합과의 안보·방위 협력을 이처럼 전면화하게 됐는지는 의아한 대목이다. 이를 접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놀라움과 당혹감이 적지 않다. 한국 외교가 왜,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까지 유럽·나토 안보협력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 흐름은 돌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은 작년 12월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를 통해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확대를 적극 제안했다.
이 보고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한-EU 공동성명에 담긴 안보협력의 방향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떤 전략적 구상과 맞닿아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는 한국을 유럽·나토 안보망과 연결하려는 워싱턴 외교안보 진영의 문제의식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나토와 대서양동맹 강화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표적 국제문제 싱크탱크다. 미국 정부와 동맹국, 방산·에너지 기업 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기관으로, 미국 주도 국제안보 질서의 관점에서 정책 제언을 내놓는 성격이 강하다.

‘경제안보’ 앞세운 안보망 연결
한-EU 공동성명은 디지털 통상,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 경제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의 무게는 경제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히 양측은 기밀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기밀정보 교환은 방산, 군사기술, 사이버안보, 우크라이나 문제, 대북·대러 정보공유로 이어질 수 있는 안보협력의 제도적 기반이다.
공동성명은 러시아와 조선의 군사협력을 강하게 비난하고, 조선의 핵·미사일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도 다시 언급했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자유 문제까지 포함됐다. 유럽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를 하나의 틀로 묶는 흐름이 뚜렷하다.
한편, 이 과정에도 위성락 안보실장이 등장한다. 위 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이던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경제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공동성명은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논의가 결국 안보망 연결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가 말한 것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의 핵심은 한국과 유럽이 안보협력을 더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정보공유 확대다. 보고서는 조선의 대러 군사 지원 의혹을 거론하며, 유럽 정보기관과 한국 정보기관이 군사물자 이전, 확산 네트워크, 기술 공급망을 공동으로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협력 제도화다. 보고서는 한국과 나토의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로 구성된 나토의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이른바 IP4 협력을 높이 평가했다. 더 나아가 미국·한국·나토가 참여하는 탄도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또는 모의훈련도 제안했다.
셋째는 방위산업 협력 확대다. 보고서는 한국의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수출을 사례로 들며 한국 방산이 유럽의 재무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봤다. 탄약과 포병 보급, 공중·미사일 방어, 로봇공학, 인공지능, 반도체와 에너지 공급망까지 협력 범위로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방산 수출 확대론이 아니다. 한국의 군사·기술·산업 역량을 유럽·나토의 안보 수요와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한-EU 공동성명과 보고서의 접점
이번 한-EU 공동성명은 보고서의 제안과 여러 지점에서 맞물린다.
보고서가 정보공유 확대를 제안했다면, 공동성명은 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를 담았다. 보고서가 사이버·하이브리드 위협 대응을 강조했다면, 공동성명도 같은 분야의 협력을 명시했다. 보고서가 방위산업 협력 확대를 주문했다면, 공동성명은 방산 관련 정보교류와 방위 분야 협력 확대를 언급했다.
무엇보다 두 문서는 공통적으로 유럽과 인도·태평양 안보가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우크라이나, 조선, 러시아, 남중국해,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 문제가 하나의 안보 구도 안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위치 변화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한국을 더 이상 “지역 안보 파트너”가 아니라 “글로벌 안보 제공자”로 규정했다. 이번 공동성명 역시 한국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유럽 안보와 나토식 안보 의제에 더 깊숙이 관여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공동성명 뒤에 비친 워싱턴의 구상
한국이 유럽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디지털 통상,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 전환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경제협력의 외피 아래 안보·방위 협력이 제도화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나토는 러시아 견제를 명분으로 군사비 증액과 군수산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의 대러 전선과 인도·태평양의 대중 견제 구도를 동맹망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의 방산 공급망, 반도체 기술, 대북 군사 대응 경험은 중요한 연결고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와 균형외교를 말해왔다. 그렇다면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경제협력과 안보 편입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유럽과 협력하는 것과 유럽·나토 안보망에 묶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EU 공동성명 뒤에는 워싱턴의 구상이 보인다. 한국을 유럽 안보망에 연결하려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길이 한국의 국익과 한반도 평화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검토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보고서 :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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