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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규제완화 뒤 검증 안 된 니코틴 300년치 쌓였다

규제 풀린 미검증 화학물질, 전자담배로 흡입…탈루 세액 12조~27조 추정

윤석열 정부 '킬러 규제' 1호로 화평법·화관법 완화, 검사 기준 100㎏→1톤 후퇴

연초 니코틴을 '합성'·'유사' 니코틴으로 택갈이, 추정 탈루 세액 12조~27조원

규제·과세 시행 앞두고 300년치 사재기, 안호영 화평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2026-06-17 06:17:57
 

전자담배 액상으로 팔리는 니코틴 가운데 상당량은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해성 검사를 거치지 않은 화학물질이 그대로 사람의 폐로 들어간다. 그 길을 연 것이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다. 지금 국내에는 연간 소비량 기준 300년치에 이르는 물량이 쌓여 있다. 정상적으로 과세했다면 거뒀어야 할 세금만 적게는 12조원, 많게는 27조원으로 추정된다.

 

윤석열의 '킬러 규제' 1호가 연 길

 

시작은 지난 2023년이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와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기업 투자를 막는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했다. 환경부는 그 1호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을 꼽았다. 한화진 당시 환경부 장관은 신규 화학물질 등록 기준을 유럽연합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다. 그 결과 검사 기준이 100킬로그램에서 1톤으로 올라갔다. 1톤 미만으로 들여오는 신종 화학물질은 유해성을 따지지 않고 통관할 수 있게 됐다.

 

두 법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뒤에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신규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가 의무화됐고, 시행 5년 만에 화학사고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안전장치를 윤석열 정부가 도로 풀었다. 완화 개정안은 지난 2024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재옥 당시 원내대표와 유의동 당시 정책위의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입법을 뒷받침했다.

 

표결 직전 반대 토론에 나선 사람은 강성희 진보당 의원뿐이었다. 그는 "기업들의 편익을 위해 화학물질 규제를 뒤로 되돌리는 개악"이라고 했다. 본회의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 의원은 거의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그림자, 이번엔 직접 빨아들인다

 

규제가 풀리자 니코틴 수입이 급격히 늘었다. 2024년부터 물량이 가파르게 뛰었고,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 동안에만 1300톤가량이 들어왔다. 지난해 한 해 들어온 양과 맞먹는다. 수입의 98%가 중국산이다.

 

문제는 이 물질의 정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조사한 최예용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흡입 독성을 짚었다. 피부에 닿는 것과 폐로 빨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도 물에 풀어 공기 중에 퍼뜨린 것만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냈다. 전자담배는 그 액체를 입에 물고 곧장 흡입한다. 최 부위원장은 "실용과 안전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검증 없는 유통을 그대로 두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여준성 원주 지역위원장도 같은 지점을 짚었다. 그는 '담배냐 아니냐'를 따지는 사이 정작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봤다. "어떤 기구를 통해서든 흡입하게 하는 화학물질은 무조건 안전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물질을 흡입하도록 방치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여 위원장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는 게 가습기 살균제보다 더한 것"이라고 했다.

 

'줄기'에서 '합성'으로, 이름만 바꿔 빠져나간 세금

 

세금 회피는 더 오래된 이야기다. 담배사업법은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한 것을 담배로 본다. 2014년 정의가 넓어지면서 증기로 흡입하는 전자담배도 담배에 들어왔다. 액상형 전자담배에는 1밀리리터당 1799원의 세금과 부담금이 붙는다.

 

업계는 이 과세를 피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2016년 한 업자가 기획재정부에 연초의 잎이 아니라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담배가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다. 기재부는 줄기와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담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그때부터 '줄기 니코틴'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 결과 줄기와 뿌리만으로 니코틴을 뽑아내는 회사는 국내외 어디에도 없었다. 잎에서 뽑은 니코틴을 서류상으로만 줄기·뿌리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세청과 전자담배산업협회의 유착 의혹도 불거졌다. 단속 권한을 쥔 관세청 직원이 허위 신고로 적발된 업체 대표와 중국으로 함께 출장을 갔고, 현지에서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정황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이런 의혹 속에 세금 추징은 번번이 빗나갔다. 거액의 개별소비세를 통지받은 업체가 위장 폐업으로 빠져나간 사례도 있었다.

 

'줄기'라는 핑계가 막히자 업계는 '합성 니코틴'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식약처가 성분 분석법을 개발해 들여다보니, 합성이라던 제품에서 담배 특이 니트로사민 같은 연초 니코틴 성분이 검출됐다. 한 방송사가 의뢰한 분석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검사한 52개 제품 가운데 50개가 연초 니코틴이었다. 연초 잎에서 뽑은 값싼 니코틴을 비싼 합성 니코틴으로 신고만 한 것이다. 연초 니코틴은 합성 니코틴보다 40배 안팎 싸다.

 

탈루 규모를 두고는 추정이 엇갈린다. 수입한 원액을 기준으로 잡으면 약 12조원, 완제품으로 들여온 양까지 더하면 약 15조원, 수입량 통계 전체로 보면 27조원까지 늘어난다. 광주가 지역구인 정진욱 의원은 "지난 10년간의 통계만 봐도 거의 20조원의 세금이 탈루된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300년치 사재기, 그리고 잠든 법안

 

지난해 12월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정의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4월 24일부터 시행돼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도 과세 대상이 됐다. 문제는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시행 전에 들여온 물량은 세금을 물지 않는다. 업계는 규제와 과세가 닥치기 전에 물량을 몰아 들여왔다. 그렇게 쌓인 재고가 연간 소비량 기준 300년치에 이른다.

 

다음 수도 이미 준비돼 있다. 합성 니코틴에 세금이 붙기 시작하자, 업계는 담배 정의에 들어가지 않는 '유사 니코틴'으로 다시 갈아타고 있다. 메틸니코틴 같은 신종 물질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고, 흡입 독성에 대한 장기 데이터가 전무하다. 국회 토론에서는 이런 물질이 화학적 결합을 거치면 필로폰이나 헤로인 같은 마약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자담배 형태의 마약이 전체 마약 압수품의 9.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함께 나왔다.

 

이를 막을 법안은 국회에 멈춰 있다. 안호영 의원은 인체에 흡입되는 화학물질이라면 어떤 니코틴이든 90일 반복 흡입 독성 시험을 거치도록 하는 화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진욱 의원은 감사원을 중심으로 국세청·관세청·경찰·기재부가 참여하는 정부 합동 조사와 국정조사·특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다른 언론사들도 이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닌데 아무도 보도하려 하지 않더라. 정말 독립운동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안전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유사 니코틴을 시민이 흡입하게 둬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재고품에 유해성 평가를 실시하고 검증을 거쳐야 유통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행정 예고는 검사 '완료'가 아니라 '신청'만 하면 판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결과와 무관하게 의뢰 사실만 있으면 팔 수 있다. 사재기 물량을 팔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었고, 표기상 합성 니코틴 제품에는 세금 감면 혜택까지 주어졌다. 취재진이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직접 만나 자료를 건네며 대응을 물었지만, 연락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식품첨가물 회사'라던 업체의 정체

 

뉴탐사 취재진은 성남시 분당구의 한 업체를 찾아갔다. 시중에 팔리는 전자담배 액상 상당수에 찍힌 상표의 주소지였다. 사무실에 있던 관계자는 "우리는 전자담배를 하지 않는다. 식품첨가물, 향료를 한다"고 했다. 두 달째 일감이 없어 놀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무실 곳곳에는 전자담배 공병과 제품 카탈로그, 니코틴 용액을 담는 통이 놓여 있었다.

 

바로 전날 같은 곳을 찾았을 때는 풍경이 달랐다. 제품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고, 입구 복도에서부터 달짝지근한 향이 진동했다. 액상 한 병의 소매가가 3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그날 쌓여 있던 재고만으로도 적지 않은 금액이 된다. 세금계산서 없이 현금으로 거래되는 정황도 엿보였다. 잎에서 뽑은 니코틴에 향료를 섞어 액상으로 만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성분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기체를 빨아들였을 때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검증되지 않는다. 관계자는 의심스러우면 세무서를 통해 거래 내역을 확인해 보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유해성 검사를 제대로 거쳐 전자담배를 만드는 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곳은 단 한 곳뿐이다. 비싼 원료를 쓰고 반복 흡입 독성 검사까지 마친 그 업체는 시장에서 밀려나 고사 직전이다. 규정을 지킬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굳어진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300년치 물량은 그대로 소비자에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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