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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몰아 조작 기소' 설계한 '한국의 매카시' 오제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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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오제도 편

와세다 전문부 출신에 법원 서기로 출발

열등감 극복하려 반공·기독교 세계관 장착

빨갱이 조작해 열등감 해소, 매카시 닮아

국민보도연맹 결성, 전쟁 중 학살 명부로

국회프락치사건 기획해 평화세력 도려내

김창룡에 간첩 혐의와 비리검사 몰려 파면

박종연 신상규 서성 등 공안검사들의 스승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오제도(吳制道, 1917~2001) 항목 첫 줄이 눈을 잡아끌었다.

"'천하의 오제도'라 불린 사상검사로 남로당 파괴의 주역."

'천하의 오제도'. 이 호칭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그 뒤에 붙은 수식어들이 설명해준다. 국회프락치 사건 조작, 국민보도연맹 조직, 부역자 처형 주도, 조봉암(1898~1959) 사법살인 개입, 3·15마산의거를 공산당 소행으로 몰기.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김창룡(1916~1956)에 의해 자신이 빨갱이로 몰리기까지. 한국공안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구조가 선명하게 보인다. 오제도는 단순히 나쁜 검사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공안 검찰의 원형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후 수십 명의 공안검사들이 오제도의 방법론 위에서 활동했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17년 중국 랴오닝성 안동 출생, 열등감의 씨앗

오제도는 1917년 11월 15일 중국 랴오닝성 안동(安東, 현 단둥)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아버지 오정선이 안동에 정착해 낳은 아들이었다. 평안도 안주 출신의 이 집안은 신의주로 이사했다. 그는 일본인 학교인 안동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여기서 열등감의 씨앗이 심어졌다.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학부 법과(3년제, 본과 4년제보다 낮은 과정)를 졸업했다. 이 '전문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그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지속적인 요인이 됐다. 해방 후 판검사가 된 사람들 중에는 동경제국대학 출신, 경성제대 출신, 정식 고등문관 합격자들이 즐비했다. 그들과 비교할 때 '와세다 전문부 출신, 법원서기 출신'은 분명 하위그룹이었다.

1940년 신의주지방법원 서기가 됐다. 그리고 1946년 9월 판검사특별임용고시에 합격했다고 주장했지만, 법학자 김두식의 연구에 따르면 그가 응시한 고시는 '제1회'가 아니었고, 그가 주장한 서기 5년 경력도 실제로는 자격미달이었다. 오제도는 자신의 출발점을 평생 과장하며 살았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열등감이 낳은 공안의 화신'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의 인물이 떠오른다.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판사가 됐다가 상원의원이 된 그는 엘리트 주류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했고, 그 콤플렉스를 '공산주의자 사냥'으로 해소했다. 증거도 없이 "공산주의자 205명 명단"을 흔들어 수천 명의 삶을 파괴했다. '매카시즘'이라는 단어는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오제도와 매카시의 공통점이 있다. 사회 주류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열등감, 그 열등감을 '빨갱이 잡기'로 해소하는 방식, 그리고 반공을 자신의 정체성 자체로 만든 것이다. 다른 점은 매카시가 결국 공개청문회에서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Have you no sense of decency) 한마디에 몰락한 반면, 오제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2001년 84세로 자연사했다는 것이다.

 

조지프 매카시(위키피디아)

반공이 '의'를 대체하다, 기독교로 포장된 공안 이데올로기

법학자 김두식의 연구는 오제도의 심리구조를 탁월하게 분석한다. 와세다대학 재학 중 공산주의를 접한 오제도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 갈등을 기독교 신앙으로 극복했다. 이 과정에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나누고 자신을 정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는 오제도식 기독교 세계관"이 형성됐다.

이 세계관의 핵심은 이것이다. 반공으로 선의 진영과 악의 진영을 가르고, 선의 진영에는 관대하게, 악의 진영에는 혹독하게 대한다. 1949년 미국인 언더우드 부인 살해사건에서는 피의자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반면 친일경찰 출신이지만 반공주의자인 서영출에게는 최순 살해 교사 혐의로 벌금 2만 원만 구형했다. '반공의 편'이면 살인 교사범도 관대하게, '반공의 적'이면 극형을 달라고 청하는 논리였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국민보도연맹, 학살의 씨앗을 심다

1949년 오제도는 선우종원(1918~2014), 이태희 등과 함께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했다. "좌익 전향자를 계도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좌익혐의자들을 한 데 모아 명단을 관리하는 기구였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조직망이 펼쳐졌다. 그리고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 명단이 학살의 명부가 됐다. 전국에서 수십만 명의 보도연맹원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됐다.

오제도가 씨앗을 심고, 전쟁이 물을 주고, 이승만(1875~1965) 정권이 수확했다. 그 수확의 무게가 얼마나 됐는지는 지금도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

 

이승만(나무위키)

국회프락치 사건, 소장파 의원 13명을 간첩으로 만들다

오제도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1949년 국회프락치 사건이다. 당시 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이 미군과 소련군 동시 철수를 요구하는 의견을 내고 반민특위 활동을 지지하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몰았다.

오제도는 이 사건을 "기획, 수사하면서 이승만 정권에게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장파 의원 13명이 구속됐다. 이는 제헌국회의원 198명 중 6.5%였다. 이 사건으로 국회 내 자주적 평화세력이 제거됐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결정해버렸다"고 평가한다. 오제도가 조작한 사건 하나가 이후 70년 한국정치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2025년 4월 15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국회프락치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진실규명 결정했다. 76년 만이었다.

 

제헌의회 국회부의장 신분으로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김약수(왼쪽)와 1949년 6월 .25알 신문 기사 ⓒ유영호

'천하의 오제도'가 빨갱이로 몰린 날

오제도의 이력에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있다. 1952년, 방첩대 사령관 김창룡(1916~1956)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한 오제도는 간첩 혐의와 비리검사로 몰려 파면됐다. 빨갱이를 잡던 사람이 빨갱이로 몰린 것이다. 1956년 김창룡이 암살당한 뒤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자신을 향했을 때, 오제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공안의 계보, '제2의 오제도'들을 만들다

오제도가 한국 공안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유가 있다. 그가 직접 공안사건을 담당한 것만큼, 그가 만든 구조와 방법론이 이후 수십 명의 공안검사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박종연(1927~ ), 신상규(1949~ ), 서성(1942~ ) 등 나중에 '오제도의 제자'라 불린 공안검사들이 오제도의 길을 따랐다.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에 수록된 49명의 공안검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오제도가 놓은 레일 위에서 활동했다. 오제도는 그 레일의 설계자였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매카시는 1954년 공개청문회에서 몰락했다.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한마디에 방청객들이 박수로 응답했다. 미국사회는 매카시즘의 피해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복권했다.

한국에서 오제도는 2001년 7월 1일 사망 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74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국회프락치 사건의 피해자들이 76년 만에 진실규명을 받는 동안, 조작의 설계자는 훈장을 받고 자연사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오제도를 떠올렸다. 반공을 이름으로 내걸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구조. 그 구조의 원형을 설계한 사람이 오제도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도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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