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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손 뿌리친 학생의 한 마디에 충격... '요즘 학교' 이렇습니다

드라마 <참교육> 스틸컷 ⓒ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장안의 화제다. 아시아를 넘어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봤고, 안 본 사람들도 회자되는 이야기를 통해 대략의 줄거리를 파악할 정도다.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단서를 달아놓아야 할 것이 있다. 학교는 그렇게까지 막장으로 붕괴하지는 않았다는 것. 시적 허용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적 허용이 있으니까 드라마로 봐야지 다큐로 드라마를 이해해선 안 된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인터넷 생방송을 하거나 학생이 조직폭력배처럼 마약을 판매하는 것들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과장이란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드라마는 시대 혹은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혹은 고등학생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꾸준히 제작되었다.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 보자. 20세기에는 1970년대 후반의 <고교 얄개>, 1980년대 초반의 <고교생 일기>, 1980년대 말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대의 <여고괴담>이 있었다. 21세기에 넘어오면 2000년대에 <두사부일체>와 <말죽거리 잔혹사>가 있었고, 2010년대에는 드라마 <공부의 신>이 있었다.

2020년대에는 과연 어떤 드라마 혹은 영화가 사회를 반영하는 대표 학원물이 될 것인가 궁금하던 차에 <참교육>이 떴다. 제목이 얄궂었다. 참교육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이 처음 출범할 때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교육 이념이었다.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었겠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이 내용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전교조가 출범한 그해에 개봉했던 영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이듬해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교조의 출범이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도 흘러나왔다.

이제 참교육이란 단어는 1989년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의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영화처럼 언어도 늘 변하고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 변화된 의미를 캐치하고 그걸 바탕으로 시대상을 반영한 드라마가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반향이 이렇게도 큰 것일 게다.

도대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영화 <고교 얄개> 이후 근 50년 만에 우리 사회는 드라마 <참교육>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진보 교육감의 등장, 강제 야자 금지

2004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야간자율학습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고교 얄개>나 <고교생 일기>가 보여주던 낭만적 환상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실재의 고교생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흐뭇했던 <고교 얄개>의 이승현이나 <고교생 일기>의 손창민이나 강수연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소극적 저항을 하는 이미연으로 바뀐 것이다. 우울한 시대상이었다. 이듬해 1990년에 개봉하여 의외의 흥행을 한 미국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학생이 자살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학생이 자살을 하는 영화가 연달아 흥행을 하던 시대가 1989년과 1990년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1998년 세기말에는 <여고괴담>이 개봉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자살했던 여고생 역할을 맡았던 이미연은 이 영화에서 여고의 교사로 출연한다. 이 영화 이후의 한국 영화는 본격적으로 학교와 교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의 최고봉은 <말죽거리 잔혹사>일 것이다. 유명한 권상우의 대사 "대한민국 학교 X까라 해"가 모든 것을 나타낸다. 1970년대 후반에 나왔던 영화 <고교 얄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정적 고등학교의 모습이 2004년에 개봉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훨씬 리얼하게 묘사되었다. 1970년대의 학교 자체는 다를 리 없건만, 바라보는 시대가 달라지니 영화에서 묘사되는 학교의 모습이 180도 달라졌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내가 교직에 입문한 초기에 개봉한 영화였다. 2002년에 교직에 들어왔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해였고, 노풍이 불면서 그해 12월에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느낌표>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0교시 문제를 다루며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이슈로 떠오른 것도 2002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은 학교에서 체벌을 당했고, 강제로 야자가 실시되고 있었다.

여담으로 2011년에 개봉한 <완득이>라는 영화에서 고등학교 교사 역할을 한 김윤석은 왜 야자 인원이 적냐는 관리자의 물음에 말 그대로 야간자율학습인데 왜 강제로 시키냐는 식의 지극히 껄렁한 대답을 한다. 그런 시대였다. 0교시는 폐지되었지만 1교시가 당겨졌고, 여전히 학교에서는 강제로 야자를 하고 보충수업을 했다. 정규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학교는 환하게 불을 켜 놓고 공부를 시키는 모습을 좋아했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는 진보 교육감의 등장이었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필두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11년에 나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강제 야자를 묵인하던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학교로 특별 조사를 나왔다. 야자 강제 실시 여부에 대해 학생들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얄궂게도 내가 담임이던 반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다행스럽게 내가 야자를 강제로 시켰다고 응답한 학생은 없었다. 고3 담임이었는데, 고1과 고2 담임은 강제로 실시한 것이 드러나 구두 주의를 받았다는 후문이 들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이 났다. 학생들에게 선포했다. 이제부터 야자는 정말로 자율이다. 너희들 마음대로 하거라.

학교장은 3월 초에 강제 야자를 금지하는 교육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방침을 고수했다. 그때 교장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 야자가 자율이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

그랬다. 형식적인 자율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교육감은 장학사를 보내서 형식적인 자율을 실질적인 자율로 바꾸기 위한 조처를 한 것이었다. 야자는 진짜 자율이 되었고, 학교에서 체벌은 사라졌다.

나는 좋았다.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애를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되고, 야자 인원이 몇 명이 남았나 반별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학교장은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은근한 압력을 넣었다.

"왜 그 반만 야자 인원이 이렇게 적습니까?"

"제가 자율로 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얼마 전에 장학사가 내려와서 저희 반에서 설문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공무원인데 교육청 조사까지 받은 마당에 학생들에게 강제로 야자를 남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학교장과 나의 이 대화는 더 이상 과거의 문법이 학교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제도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너지기 시작한 교사의 교육권

2023년 9월 4일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와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에 검은 옷을 입은 교사 1000여 명이 모여 교권 회복을 외치는 모습. ⓒ 조정훈

개인적으로 학교 문화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뭔가 이상한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부터 이상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진보 세력은 유럽의 교육을 추앙하며 대한민국 학교를 깎아내리고, 보수 세력은 미국식 교육을 칭송하며 대한민국의 교사를 비난하는 모습이 역력해졌다. 방과후에도 학생이 집을 못 가게 하던,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교사들이 갑자기 실력 없고 무능한 교사가 되어 갔고, 권력을 넘어 최소한의 권한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조금만 힘든 일도 학생들이 기피하는 문화가 시작되었다. 생리통을 호소하는 여학생들을 강제로 방과후에 남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해서 문화를 바꿨더니 정규수업마저 생리통으로 빼먹기 시작했다. 화장실이나 교사가 쓰는 교무실은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지 말자고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교실 청소마저 시키기 힘든 학교가 되어 갔다.

학부모들로부터 학교 운영에 관한 의견을 잘 청취하는 학교가 되자고 했더니, 온갖 민원으로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려는 풍토가 생겨났다. 학교폭력을 법과 제도로 막자고 했더니, 사소한 말다툼이 학폭으로 비화되고, 중재하는 교사의 역할이 '가해자 옹호'로 낙인찍혔다. 분명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교사는 힘이 없고 변호사의 입김이 세지는 일이 나타났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서 공감하던 나는 뭔가 이상 조짐을 느끼면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권위주의와 부조리를 청산하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교사의 교육권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현장체험학습을 두고 말들이 많다.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현장체험학습에서 학생이 사고로 사망하고 이로 인하여 교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아니었어도 현장체험학습 기피 현상은 시나브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안전과 위험에 대비한 업무를 교사에게 부과하고,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형사처벌까지는 아니어도 행정적 불이익에 대한 엄포가 판을 치는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학교밖으로 나가는 건 조그만 위험은 감수하고 그로 인해 교육의 효과를 얻는 과정이다. 여기서 사고를 제로로 만들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부과하는 한,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거였다.

이상 조짐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현장체험학습으로 등산을 추진하면서였다. 2010년대 후반이었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로 현장체험학습을 갔으면 안 벌어졌을 일들이 내가 있던 학교에서 벌어졌다. 등산을 위하여 등산화를 신으며 신발 끈을 조이는 순간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생리통으로 공결을 쓰겠다는 여학생 학부모들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절반 이상의 여학생이 생리 공결을 쓴 것이다. 머릿속에 처리해야 할 서류더미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남학생들은 생리공결이 없으니 이 학생들이라도 온전히 데리고 올라가야지 했는데, 등산 초입부터 아프다고 못 걷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이미 학교는 각오하고 있었다. 등산 포기자 프로그램을 만들어놨고, 등산로 초입에서 교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머지 애들이라도 데리고 잘 올라갔다가 내려와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

사달은 산 정상에서 일어났다. 높지 않아서 산꼭대기까지 도로가 깔린 산이었다. 기껏 올라온 여학생이 힘들다고 차 타고 내려가겠다면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나 막무가내. 마지막으로 인정에 호소한다고 팔을 잡아 끌면서 "그러지 말고 걸어서 내려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순간에 여학생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어디를 만져요."

깜짝 놀라서 잡았던 팔을 놓으며 "그래 타고 내려가라"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깨달았다. 막무가내인 학생들을 교육시킬 그 어떤 권한도 나에겐 없다는 것을.

달라진 '참교육'의 의미

2017년 5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28주년 기념 교육적폐 청산과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5.27 전국교사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세종대로네거리 부근을 행진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경험을 했던 학교가 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몇 년 지나서는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소소하게, 그리고 또 어떤 학교에서는 매우 전면적으로 나타났다.

1989년 '참교육'이란 단어를 들으며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이소룡이 인기를 끌던 1970년대를 묘사한 <말죽거리 잔혹사>였지만, 성룡을 흉내내던 1980년대 고등학생에게도 공감이 백배였다. 그래서 '참교육'에 희망을 걸었고, 전교조의 출범을 반겼다.

그런 시대정신을 안고 출범하였던 전교조의 위상은 지금 어떨까? 현재 교사를 조합원으로 하는 노조 중에서 제1 노조는 전교조가 아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아래 교사노조)이다. 민주당에서 교사 출신으로 직능대표 몫을 할당받아 국회의원이 된 백승아 의원도 교사노조 출신이다.

교사노조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안은 전교조의 '참교육'과 같은 순수 교육 사안이 아니다. '교사 노조'로서 정체성을 갖고, 교사의 권익 보호를 중점으로 둔다. 제1 노조의 변화는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을 걱정하던 교사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노동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눈을 뜬 것이다. 이제 노조의 외피를 쓴 교육운동이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조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렇게 제1 노조의 변화는 학교와 교사의 변화를 상징하고, 달라진 교육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보수 진영의 교육감들이 안티 전교조를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교육계 내에서 이미 전교조의 위상은 급전직하했는데, 안티테제로서 가지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떨어진 위상이 대중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육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2026년 현재의 학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했던 몇 십 년 전의 학교를 상정하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본다. 굳이 냉전의 해체나 AI(인공지능)시대의 도래 등 거대 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세상이 매우 빠르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그중에서도 훨씬 더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이다. 20세기에 경험한 학교의 모습을 갖고 현재의 교육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20세기에 한국의 교육을 비판하면서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님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의 학교는 최첨단 21세기의 시설로 변모하였고, 21세기에 태어난 선생님들이 이미 교단에 서고 있으며, 21세기 벽두에 개최되었던 2002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드라마 <참교육>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만 왜곡하는 것도 있다. 학교에서 정치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도 학폭 시비가 붙으면 사실 여부에 앞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세상이다. 재선 국회의원의 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어찌어찌 연줄이 닿아 나에게 전화가 왔을 때, 그 국회의원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악에 받쳐서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과연 절대적 악의 표상으로 나오는 권력자들일까? 과연 인터넷과 유튜브의 시대에 진정한 갑은 누구일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학교를 직시해야 한다. 사실을 직시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거대악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려 하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학교에서 법과 제도의 힘을 빌려 일상의 부조리가 관철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1989년 전교조의 '참교육' 이념이 빛바랜 자리에 드라마 <참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자체가 아니라, 달라진 참교육이란 언어의 의미가 상징하고 있다.

#참교육#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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