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경험을 했던 학교가 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몇 년 지나서는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소소하게, 그리고 또 어떤 학교에서는 매우 전면적으로 나타났다.
1989년 '참교육'이란 단어를 들으며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이소룡이 인기를 끌던 1970년대를 묘사한 <말죽거리 잔혹사>였지만, 성룡을 흉내내던 1980년대 고등학생에게도 공감이 백배였다. 그래서 '참교육'에 희망을 걸었고, 전교조의 출범을 반겼다.
그런 시대정신을 안고 출범하였던 전교조의 위상은 지금 어떨까? 현재 교사를 조합원으로 하는 노조 중에서 제1 노조는 전교조가 아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아래 교사노조)이다. 민주당에서 교사 출신으로 직능대표 몫을 할당받아 국회의원이 된 백승아 의원도 교사노조 출신이다.
교사노조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안은 전교조의 '참교육'과 같은 순수 교육 사안이 아니다. '교사 노조'로서 정체성을 갖고, 교사의 권익 보호를 중점으로 둔다. 제1 노조의 변화는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을 걱정하던 교사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노동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눈을 뜬 것이다. 이제 노조의 외피를 쓴 교육운동이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조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렇게 제1 노조의 변화는 학교와 교사의 변화를 상징하고, 달라진 교육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보수 진영의 교육감들이 안티 전교조를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교육계 내에서 이미 전교조의 위상은 급전직하했는데, 안티테제로서 가지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떨어진 위상이 대중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육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2026년 현재의 학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했던 몇 십 년 전의 학교를 상정하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본다. 굳이 냉전의 해체나 AI(인공지능)시대의 도래 등 거대 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세상이 매우 빠르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그중에서도 훨씬 더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이다. 20세기에 경험한 학교의 모습을 갖고 현재의 교육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20세기에 한국의 교육을 비판하면서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님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의 학교는 최첨단 21세기의 시설로 변모하였고, 21세기에 태어난 선생님들이 이미 교단에 서고 있으며, 21세기 벽두에 개최되었던 2002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드라마 <참교육>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만 왜곡하는 것도 있다. 학교에서 정치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도 학폭 시비가 붙으면 사실 여부에 앞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세상이다. 재선 국회의원의 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어찌어찌 연줄이 닿아 나에게 전화가 왔을 때, 그 국회의원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악에 받쳐서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과연 절대적 악의 표상으로 나오는 권력자들일까? 과연 인터넷과 유튜브의 시대에 진정한 갑은 누구일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학교를 직시해야 한다. 사실을 직시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거대악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려 하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학교에서 법과 제도의 힘을 빌려 일상의 부조리가 관철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1989년 전교조의 '참교육' 이념이 빛바랜 자리에 드라마 <참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자체가 아니라, 달라진 참교육이란 언어의 의미가 상징하고 있다.
#참교육#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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