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전세사기 ‘선 구제 후 회수’에 ‘혈세 수조원 든다’는 거짓말

피해자대책위·시민사회대책위,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선구제 후회수 방안’ 기자설명회 개최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대한 기자설명회 ⓒ뉴스1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담긴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두고 정부여당이 각종 왜곡과 폄훼를 쏟아낸 데 대해 전문가들이 이를 하나하나 반박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선구제 후회수’ 조항이 시행되면 수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될 것이라고 했다. 또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세금으로 갚는 것은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우려된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체 조사결과를 토대로 정부여당의 이 같은 주장을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은 전체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보증금 전액을 지원하는 것도 아닌 만큼 수조원이 든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전세사기가 법과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재난임을 강조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선구제 후회수 방안’ 기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선구제 후회수’에 수조원 혈세 투입 된다는 정부여당...
전문가들 “‘수조원’은 터무니없는 숫자, 최대 5,850억원 소요”


이날 첫 발표자로 나선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네트워크가 진행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된다’는 국토교통부와 국민의힘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실태조사는 지난해 8월24일부터 9월17일까지 총 28일간 1,579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온라인조사와 전화조사, 대면면접조사 등의 방식을 병행해 진행됐으며, 설문조사를 통해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날짜, 선순위 권리관계 등에 대한 정보는 등기부등본(1,490가구)을 통해 파악했다.

최 소장은 “정부는 저희가 진행한 실태조사보다 더 상세한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제대로 계산조차 하지 않고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수조원의 혈세가 들어간다고 왜곡하고 있다”며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모든 피해자에게, 보증금 전액을 지원해 달라는 게 아니다. 후순위이면서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닌 일부 가구에 최우선변제금만큼만 지원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의 재정 소요 추정 관려 피해가구 실태조사 결과 발표 ⓒ뉴스1


세입자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최우선변제금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현재 전세보증금이 근저당 설정 시점의 소액보증금 기준 이하여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계약 당시 전세보증금이 기준보다 낮았더라도, 계약갱신으로 소액보증금 범위를 넘어가면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없다. 통상 최우선변제금은 소액보증금 기준의 30% 수준으로 책정된다.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는 소액보증금 기준은 2~3년마다 상향된다. 2023년 2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다수 발생한 인천의 경우 소액보증금 기준은 1억3천만원에서 1억4,500만원으로 상향됐다. 이때 최우선변제금 상한도 4,3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올랐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1,579가구) 가운데 후순위이면서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닌 임차가구는 48.6%(767명)이다. 나머지는 후순위이면서 최우선변제 대상인 임차가구 20.0%(316명), 선순위 임차가구 31.4%(496명)다. 즉 ‘선구제’가 필요한 전세사기 피해자 비율은 전체 피해자의 절반 정도인 48.6%라는 것이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 피해 규모는 1억 미만이 45.7%, 1억원 이상~1억5천만원 미만(27.6%), 2억원 이상 16.8%, 1억5천만원 이상~2억원 미만 9.9%로 집계됐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2,711만원이라는 게 최 소장의 설명이다.

최 소장은 “현재까지 1만5천가구 정도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올해 말까지 최대 3만가구가 피해자로 인정받는다고 했을 때 정부 재정 투입이 필요한 건 절반(48.6%) 수준인 1만5천 가구 정도”라며 “이들에게 전세보증금의 30% 수준인 최우선변제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정부가 말하는 수조원의 혈세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최 소장에 이어 발표자로 나선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태조사를 토대로 실제 피해자 지원에 투입될 예산을 직접 산출하기도 했다. 계산에 필요한 수치는 오차를 감안해 통계치보다 소폭 높게 책정했다. 세부적으로는 ▲전세사기 피해자 최대 3만명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닌 후순위 피해자 비율(통계상 48.6%) 50% ▲평균 피해보증금(통계상 1억2,711만원) 1억3천만원 ▲최우선 변제금 비율 30% 등이다. 그 결과 ‘선구제 후회수’에 필요한 정부 재정은 최대 5,850억원으로 산출됐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대체 어떻게 수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다고 봤는지 모르겠다. 수조원이라는 금액은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 모두에게 전세보증금 전액을 보장해 준다고 했을 때나 나올법한 숫자”라며 “대체 어느 피해자가, 어느 시민사회가 모든 피해자에게, 전세 보증금 전액을 회수해달라고 했느냐”고 지적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대한 기자설명회 ⓒ뉴스1

다른 사기 사건과 형평성 문제?...“전세사기는 예견된 사회적 재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두고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 달리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라는 게 임 교수의 주장이다.

임 교수는 “전세보증금으로 집을 사는 방식으로 한 사람이 수백 채씩 집을 살 수 있었던 건 정부가 민간임대사업자를 양산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임대사업자들이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됐을 때 그 보증금을 다 돌려줄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이들은 그만한 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 이건 예견된 사회적 재난”이라고 짚었다.

잘못된 금융시스템을 지적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사실상 집값의 100%까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해주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제도도 큰 원인 중 하나”라며 “여기에 신탁사기나 다가구 주택 같이 애초부터 매우 위험한 전세거래가 가능한 것도 이런 제도들을 정부가 수십 년 동안 방치해온 탓”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에 ‘혈세가 쓰인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피해자 지원에 사용되는 주택도시기금의 경우 조성재원의 상당 부분이 정부전입금·복권기금전입금 등 자체 조달과 융자금회수, 이자수입 등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볼 수 있는 국민주택채권이나 청약저축 등을 통한 차입금 조달은 전체 재원의 30% 수준이다.

임 교수는 “주택도시기금은 전기이월자금의 규모도 매우 크고 기금 운용에서 차입금 상환 비율은 약 40~50% 정도다. 특히 여유자금도 20조원이 넘는 상황으로, 2024년 예산의 여유자금운용 규모는 28조8천억원에 이른다”며 “지난해 기준 여유자금운용 금액인 29조6,630억원을 ‘선구제 후회수’에 소요되는 재정으로 활용해도 충분한 금액이 주택도시기금에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7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안전조정위원회에서 상임위에서 의결됐다. 하지만 여당의 반대로 60일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절차를 받지 못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마무리하기 전에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거나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주요 민생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가맹사업 공정화법 등과 함께 전세사기 특별법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 윤정헌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