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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배은망덕’과 모순된 역사관

 

 
박근혜의 ‘배은망덕’과 모순된 역사관
 
[23년 전 박근혜 일기] 자기 아버지 억울한 것은 바로잡자고 외치면서
 
김욱 | 2012-09-15 11:09: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박근혜 수필집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표지

 

 

 

 

 

 

 

 

 

 

박근혜의 책 중에 자주 인용되는 책이 하나 있다. 1993년에 출간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책으로, 박근혜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일기를 모아 펴낸 수필집이다. 중반과 후반은 개인적인 감상이고 앞부분은 박정희 10주기 추도식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내용인데 언론에서 주로 인용하는 부분은 바로 앞부분이다. 이 책에 실린 1989년 10월 27일자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제 10주기 행사는 온화하고 청명한 날씨 속에 무사히 끝났음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묘소까지 가는 도중 마음의 울렁임을 참기 힘들었다. 10년만의 추도식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추모사에서 '아 아버지!' 하고 부르고 나서 감정이 폭발하면 자제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어머니께 기도 드렸다. 감정을 억제하게 해주십사하고."

87년 이전까지 박근혜 남매는 아버지의 추도식을 할 수 없었다. 전두환 정권이 추도식을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이날 박근혜가 감정 폭발을 자제키 어려울 정도로 격한 감정에 휩싸였던 건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10주기 추도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같은 해 12월 30일 일기에서 1989년은 "수년 간 맺혔던 한을 풀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한 해"라고 말하며 감격에 겨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가 그렇게 바랬던 추도식은 박정희가 탄압한 민주화 덕분에 가능했다. 박근혜는 책에서 추도식을 가질 수 있었던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민주화'가 아니었다. 89년 11월 19일 일기에서 박근혜는 "한을 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가져온 오늘이 있도록 해주신 하늘에 감사를 올리는 마음이다"라고 쓰고 있다. 박근혜에게 민주주의는 인간의 투쟁에 의해 쟁취된 게 아니라 하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썼다.

박근혜는 지난 9월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 '인혁당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다며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여기엔 인혁당 사건이 독재정권에 의한 '사법살인'이 아니라 유신정권 시절 사법부의 판결대로 피해자들에게 죄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인혁당 피해자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20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심지어 피해자들의 시신은 강제로 화장되었는데 시신 부검으로 고문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한 조치가 아니고선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인혁당 피해자들이 사형된 날을 세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까지했다. 인혁당 사건은 32년 뒤인 2007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인혁당 희생자들은 민주화의 뿌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투쟁이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그리고 6.10 항쟁까지 이어졌고 그리하여 오늘의 민주화를 이루었다. 박근혜가 인혁당 피해자들을 모욕한 것은 민주화의 뿌리를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 원하던 아버지의 추도식을 가능하게 해줬던 '민주화의 뿌리'에 대해 박근혜는 배은망덕한 짓을 한 것이다. 인혁당 피해자들은 그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도 그 딸에게 은혜를 베풀었건만 또 다시 모욕을 받았다.
 

▲ 박정희 대통령 10주기 추도식 관련 기사(동아일보, 1989.10.26)

▲ 1989년에 열린 박정희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인파

박근혜의 10월 25일과 11월 9일 일기를 보면 역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때 그의 역사관은 우리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것은 그의 아버지 부분이다.

"아! 10주기! 이날을 잘 맞기 위해 나는 지난 1년 여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노력이 없었을 때 과연 아버지는, 역사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다만 아찔한 생각이 들 뿐이다." (10월 25일)

"아버지에 대한 그 시절 역사에 대한 왜곡이 85% 정도 벗겨졌다고들 말한다... 역사가 바로 잡혀야 사회질서가 바로 잡히게 되는 이치를 생각해볼 때 하늘이 우리나라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12월 30일)

바로잡혀야 할 역사가 자신의 아버지 부분이라고 한 건 문제 삼지 않겠다. 우리가 궁금한 건 박근혜가 왜 이 때의 역사관과 지금의 역사관이 달라졌나 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박정희 독재'의 과오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항상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답했다.

그런데 23년 전 박근혜는 아버지의 일을 역사에 맡기지 않고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왜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는 바로 잡겠다고 하면서 남의 아버지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할까. 다같이 역사의 판단에 맡기던가 아니면 다같이 바로잡던가 해야할 거 아닌가?

박근혜는 89년 12월 30일자 일기에서 80년대를 두고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두번 다시 돌아다 보기도 싫은 소름 끼치는 연대"라고 쓰고 있다. 80년대 박근혜에게 아픈 상처를 준 건 전두환 정권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아픔을 끝낸 건 바로 민주주의다. 지금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하고 유신정권은 불가피했다고 하는 박근혜는 민주주의와 싸우고 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2010년대는 소름끼치는 연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박근혜 후보가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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