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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에서/꼴새와 예수

외양간마저 없었다면 아기 예수는 어떻게 됐을까

조현 2013. 12. 18
조회수 362추천수 0
 

 

휴심정에서/꼴새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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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 탄생을 보여주는 전시물. 사진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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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에 서 있는 남자. 사진 신소영

 

 

 

아홉살 겨울이었을 겁니다. 귀가 떨어질 듯 찬바람이 불어오던 날 아침 ‘꼴새’가 논두렁 아래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꼴새는 밤새 안녕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에고 불쌍해서 어쩔거나. 이리 추운 날 우째 거길 갔을꼬?” 하며 혀를 찼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꼴새’라고 부르는 이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머슴살이도 못해 거처 없이 떠도는 처지였습니다.

 

꼴새의 동사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은 건 죄책감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인숙이나 여관 같은 게 없는 시골에서 저희 집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는 이유로 사랑채엔 온갖 나그네와 장사꾼들이 유숙하곤 했습니다. 아침이면 아버지 어머니는 그 식객들을 안방으로 불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위가 약해 밥상을 두고도 먼 산 보듯 해 어머니 속깨나 끓게 하던 제게 식객들과 함께한 식탁은 고역이었습니다. 가끔은 장사꾼인지 걸인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빠지거나 검고 누렇게 변색된 치아들 사이로 누런 찌꺼기들이 가득한 입으로 쪽 빤 수저를 찌개냄비에 쑥 집어넣는 것을 보면 욕지기가 나와 더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늘 식객들을 한 밥상에 앉히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불만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평생 한번도 안 씻은 듯이 새집 같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꼴새를 제가 곱게 대했을 리 만무한 일입니다. 다른 식객들 틈에 섞여 사랑채에 몸도 누이지 못하는 꼴새는 잔불이 남은 외양간 부뚜막 옆에서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식객들이나 어린 소년의 눈치에 주눅이 들어 그날 밤엔 외양간에서마저 머물지 못하고 찬서리 내리는 들판으로 나갔는지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도 그 외양간입니다. 평범한 사람들 틈에도 끼어들 수 없을 때, 짐승들 곁에서라도 체온을 녹이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그 외양간마저 없었다면 그날 밤 ‘아기 예수’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 추운 겨울 따뜻한 방은 커녕 외양간조차 머물지못하고 눈보라치는 황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나는 오늘도 나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일조하고 있지나 않은지 두렵지않을 수 없습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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