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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총리 지명한 날 장준하 재심서 ‘무죄’

 

박근혜 총리 지명한 날 장준하 재심서 ‘무죄’
 
[보도비평] 재판부의 감동적 사죄문으로 법정에 박수소리 가득 차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1-24 15:41:31 | 최종:2013-01-25 01:12:19

 

 

“인권의 암흑기에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 회복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뒤늦게나마 지난날의 과오를 사법부가 공적으로 사죄하는 이번 재심 판결이 고인의 평안과 안식에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피고인의 범죄는 범죄가 되지 않아서 무죄를 선고합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자 법정은 일순간 감탄과 환영의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재판부가 이런 판결문을 밝힌 경우는 흔치 않다. 이로써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옥고를 치른 고 장준하 선생은 유죄선고를 받은 지 39년 만에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장 선생은 박정희 정권 최대의 정적이자 '재야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재야 대통령'으로 불린 장준하 선생이 3선 개헌 반대투쟁 연설을 하고 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는 재심결정을 내린 뒤 열린 첫 공판에서 “재심 대상 판결에서 유죄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위헌·무효임이 확인됐다”며 “형사소송법 325조에 의해 장 선생에게도 무죄를 선고해야 마땅하다”며 무죄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이례적으로 장 선생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또 유족에게도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는 과거 재판부가 잘못 판결한데 대한 사법부 차원의 공식 사과인 셈이다. 별도로 선고 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첫 공판 당일로 판결을 내린 것도 그런 차원으로 읽힌다.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지난날의 과오에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는 매우 엄숙한 자리에서 국민의 한 사람이자 사법부의 일원으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진다”면서 “국민주권과 헌법정신이 유린당한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장 선생에게 유죄를 선고한 뼈아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짐한다”며 “재심 청구 이후 3년이 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날 검찰도 장 선생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과거 ‘시국사건’ 재판 때 검찰이 취한 태도를 감안하면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검찰은 “장 선생의 유죄선고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가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됐다”며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구형했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후 장 선생의 장남 호권(64)씨는 “재심을 열어주신 재판부와 무죄를 구형해준 검찰에 대단히 고맙다”고 재판부와 검찰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또 “이로써 선친의 명예가 회복됐고, 가족들도 이제 그 멍에를 지지 않고 떳떳하게 생활하게 된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오늘의 무죄 선고는)우리 국민이 대통합의 미래로 나가는 시발점이 될 역사적인 재판이라 생각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 이준영 장준하기념사업회 상임운영위원은 판결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재판부의 진술한 사과를 두고 “만시지탄에 대한 사죄,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도 했다. 참으로 명문이었고 눈물겨운 글이었다”며 “이제 제대로 암상의혹을 규명하는 일에 매진해야겠다. 감동깊은 재판을 이끌어 준 담당 재판부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도 장 선생의 무죄판결을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당연한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무려 39년이 걸렸다”면서도 “늦게나마 사법부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킨 것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허 부대변인은 이어 “재판부의 판결대로 장준하 선생은 격변과 혼돈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에서 조국광복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 사상계몽운동 등을 통해 나라의 근본과 민주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일생을 헌신하셨던 우리 민족의 큰 어른이자 스승이셨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하지만 장준하 선생의 사인은 아직도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의혹에 싸여있다”면서 “고인에 대한 긴급조치 1호 위반 무죄선고를 넘어, 명확한 사인규명도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37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두부에 타살로 추정되는 원형 함몰이 선연하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일제말기 학병으로 강제징집 됐던 장 선생은 일본군을 탈출, 중경 임시정부로 가서 광복군이 돼 항일투쟁을 벌였다. 1974년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던 장 선생은 ‘유신반대’ 이유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공소제기부터 확정 판결까지 불과 6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절차가 진행됐고, 장 선생은 병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석방돼서도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장 선생은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을 죽음을 당했는데 사망 원인을 두고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선생의 유골이 37년만에 세상에 공개됐는데 두개골에 둥근 함몰 구멍이 나타나 타살 의혹이 더욱 강하게 제기됐다. 이후 암살의혹 규명을 위해 기념사업회와 일반시민들이 참가해 ‘국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규명 작업에 나서고 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 차원의 재조사는 좌절됐다.

한편, 박근혜 당선인은 이날 차기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지명자는 지난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했다. 김 총리 지명자의 발탁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박 당선인의 정치이념을 구현할 적임자로 판단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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