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오징어3- 최승호
- 2009
-
- 사람 그리기
- 2009
-
- 2009/09/22(4)
- 2009
-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 2009
-
- 나무 - 이형기
- 2009
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오늘은 춘분이란다.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인데,
요즘에는 기상이 점점 변해 오늘은 낮이 16분 더 길다고 했다.
밤보다 더 긴 16분의 시간.
기상캐스터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거냐는 질문에
시간에 대해, 시간을 보낸다는 표에 대해, 낮과 밤에 대해, 태양이라는 존재에 대해
곰곰 생각해본다. (말도 잘 듣지 ㅋ)
계절 |
절기 |
특징 |
---|---|---|
봄 |
|
|
여름 |
|
|
가을 |
|
|
겨울 |
|
우리나라 절기를 나타내는 말들이 참 다양하면서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경문화 때문에 낮과 밤, 기후 변화에 민감한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낮과 밤의 길이를 재고,
1분 1초로 시각을 나누어 생활하는 인간의 심리 또한 요상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ㅋ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은 왠지 서글프고 아련한 날.
그리고,
세상엔 변태들이 정말 많다는 무서운 사실도 새삼 깨닫는 요즘.
음, 쓰고 싶은 글이 있었는데,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까먹었다. (축복받은 기억력 같으니...)
한 이 주전쯤엔가 곰곰 생각하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까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말하기 방식이 달라져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뭐 모르겠으나,
스스로가 평가하기엔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고 생각했다.ㅋ
그건 내가 지향하는 말하기 방식이었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잡은 이후부터는
더욱 더 그렇다.
가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특히 선수들 중에서 많은 수가.
순간의 판단력과 냉철함, 논리정연과 합리성을 두루 갖춘 반면
말 한마디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상처나 ,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며 말하기를 구사할 수 있는 수는 몇 안 된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런 것 같다)
물론 선수들은 배려하기도 부족하지만, 까놓고 말하기는 잘 못하는 습성도 있다.
하지만 까놓는 척 돌려말하는 특수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이런 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게 아니라 혀를 휘두르는 거다.
이 때마다 나 역시 배려하기가 부족한 나를 여러번 반성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람 면전에 대놓고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질문하거나,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봤으나, 답을 잘 모르겠다.
물론, 계기는 있었던 것 같다. ...과학뇬 때문인가....ㅋ
인간관이 확 바뀌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군상이 존재하며,
이전에 내가 맺었던 인간관계는 내가 원했던 비슷한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난 후
좋다, 싫다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예전엔 싫은 사람과 마주쳐도 그냥 그렇게 잘 드러내지 않으며 지냈으나,
요즘엔 면전에 대 놓고 "넌, 이런게 싫어" 라고 내뱉던가, 아님, 처음보는 사람도 "별로다"
이렇게 발설을 해야 속이 풀리니,
도대체 이 심보가 어디에서 나온 건가...
아...이건 내가 지향하는 말하기 방식과 다른건데....
아닌 것에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는 필요하고,
아닌 것을 배려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지만,
이런 말하기 방식을 통해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종종 발생하니...거참...
2주 전에 떠올렸던 생각들을 지금 다시 떠올리는건...
낼 모레 세 번째 만나는 사람에게 "넌, 왜 이렇게 나대니~"를 할 판인지라...후훗
아, 비틀어 땅에 콱 쳐박고 싶은 과학뇬 이후로
싫은 사람들 투성이니,
이건 병이 아닌가 싶다.
도서관을 뒤져뒤져 드디어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한시간 반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니아 건국 부분만 읽고 말다.
읽다보니 이 부분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아....낼도 또 가서 다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어볼까?? 훗...
판타지가 현실도피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그래도 그 성격 때문에 읽는 맛이 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 어떤 것인지,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내재된 인간의 속성들이란...
(사실 대부분의 허구 문학이 그렇겠지만)
확실히 원작을 봐야지, 전후맥락이 연결이 된다.
프롤로그만 읽는데도, 성경의 창세기와 <반지의 제왕>의 모티프, <판의 미로: 오필리아의 열쇠>
영화로 제작된 <나니아 연대기>, <황금나침반>이 연결되기 시작.
아...인간의 상상력이란...
아, 시간이 되면 더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보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 슬픈 현실...흑
바쁘다...바뻐...흑흑
시간 부족으로 미뤄놨던 나니아 연대기를 읽다.
캐스피언의 왕자 중반까지 읽다가 잠깐 멈추었는데,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니
역시 책으로 읽는 것이 더 맛깔난다.
책의 두께가 아니면 진작에 읽어버렸을 내용인데, 그래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접었다.
기독교적 색채가 너무 강한데다가 장자 제일주의가 너무 두드러져 맘 상했다.훗
그래도 역시 판타지가 가지는 매력적인 장점은 존재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을 배경으로 ...
며칠 전 오전에 진보넷 접속에 에러 메시지가 뜨는 순간, 옛기억이 떠올라 뜨악 하고는
블로그와 공동체에 있는 자료들의 '안전'에 덜덜 떨면서
백업 형태로 다른 곳에 '알을 까볼까?' 생각했는데,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그러다 다른 곳에 있는 옛날 일기들을 발견했는데,
역시...재미있군.
2004.10.25 | ||
|
2004.12.23 | ||
|
2005.02.23 | ||
|
정들었던 교정이라니...맙소사. 나도 이런 표현을 쓰는구나. '정들었던'ㅋ
|
|
2005.12.27 00:34 | ||
|
|
|
2007.04.10 13:17 | ![]() |
지금은![]() |
|
2005년 전 일기들은 책상 서랍 깊은 곳 어디엔가...ㅋㅋ
2005년부터 2007년에 쓴 일기.
그런데...아직도 이러고 있으니...쩝
조금 다른 사랑 이야기
얼마 전부터 고전으로 분류되는 소설을 몇 편씩 읽고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소설인데, 지금은 줄거리와 부분적 표현들만 기억에 날 뿐이어서 역시 읽고 난 뒤 그 때의 느낌이나 감동을 기록해 둘 걸이라고 후회를 하면서 읽는 중이다. 그 때는 혹시 문제에 나오면 당황하지 않고 익숙하게 풀기 위해 읽었던 목적이었으므로, 너무 어렵고, 무미건조한 수식의 나열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속에서 사람을 보고, 삶을 본다는 점에 나쁘지 않다.
지금부터 기록해 둘 책은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다.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두 책이지만, 뜻밖에도 한 가지 공통점으로 정리된다.
바로 '사랑'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두 작품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서, 함께 묶어 해석하는게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팅 하는 동안 내 지구력이 계속 작용할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오만과 편견>을 읽는 동안에는 얼마 전 영화로 제작되어 '엘리자베스'역에 캐스팅 된 '키이라 나이들리'가 적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하이틴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내게 그녀의 이미지는 톡톡튀는 말투와 억양 너머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눈빛으로 웃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당당하고 자신의 신념이 강한 것 같은 '엘리자'는 소설 후반부로 가면 갈 수록, 사랑을 깨닫게 되면 될 수록 수동적이고 나약해지는 모습이 하이틴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떨렸던 것도 사실 ㅋ)
반면 <좁은 문>은 알리사의 답답한 태도보다 제롬의 미숙하고 소심한 태도에 읽는 동안 불편하고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아마 이 때문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한데,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신앙과 현실적 사랑 사이에서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절제하고 자신을 속이면서 고독과 열정 사이를 걸어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은 여성화자의 시각으로, <좁은 문>은 남성 화자의 시각으로 서술되어 있어 그 필체부터가 다르다.전자가 좀 더 인물의 심리 묘사에 세심하다고 할 수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그 시각이 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결말을 비교해 볼 때, 전작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결국 결혼으로 귀결되는 결말이지만 <좁은 문>은 알리사가 죽음으로써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비극적 결말이라는 점에서 분위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결말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간혹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특히 사랑 이야기를 보고 난 후면
그래서 그 이후 그녀와 그는 늘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았을까?를 상상하는데, 대답은 거의 '아닐껄'로 귀결된다.
이것은 언젠가 '비포 앤 선셋'이던가, 영화 시작에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서 그 사람이 사랑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일종의 심리테스트를 해 봤다는 장면에서 '허걱'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는 습관같은 것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겪었던 사랑과 <좁은 문>에서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은
그녀 혹은 그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현실적 조건에 맞춰 하는 결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옳다고 믿었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완전무결한 그 무엇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실적 관계에서 만족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그의 사랑이 무언가의 형태로 결정되었을 때,
과연 그녀와 그가 죽을 때까지 행복했을까란 질문에 나의 대답은 부정적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빙리'같은 남자도 없지만, '달시'같은 남자도 없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백마탄 왕자'는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달시'와 '엘리자'의 관계를 꿈꾸는 사람과, '제롬'과 '알리사'의 이상적 관계를 꿈꾸는 사람은 많다.
'샬로트'와 같이 현실적 조건에 맞춰 결혼을 꿈꾸는 친구들도 있다.
'알리사'의 일기를 보면서, 예전 연애시절 내 일기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진 점은
나 역시 '좁은 문'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의 환상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영혼 속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거울 속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상대방의 마음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처럼,
아니,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보다 더 자세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애정은 얼마나 평온해질까!
-좁은 문 中에서
분홍색 뺨 사랑에 물든 얼굴로
그대 앞에 서 있어 나를 감출 수 없어
첫눈에 날 반하게 했던 미소로
그댄 웃고 서 있어 나는 놓칠 수 없어
*
더 늦기 전 그대와 춤을
난 춤을 출까봐 그럴까봐
깊은 밤 하늘 달빛으로 우릴 비춰주네
휘황하게 춤을 추며 그대 손을 잡고
나를 안아주네 황홀하게
떨리는 마음 두근거림
난 그댈 원하고 있어 이젠 멈출 수 없어
빠져들듯 까만 두 눈 그대는
달아오르고 있어 나는 알 수가 있어
그대와 춤을 그대는 춤을 추며
나를 안아주네 황홀하게
바라보네 부드럽게 Kiss
황홀하게 떨리는 마음 두근거림으로
난 그댈 원하고 사랑해
사진, 음악 모두 네이웃~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피다 폐암걸려 죽던 어느 겨울
이소라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울적 하지만 흡족해지던 때가 있었다.
어제 밤 늦게 듣던 라디오에서 선물처럼 들리는 노래에 감사하면서
또 흡족해지는 기분.
흠...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저도 할일이 태산같으면서도 귀차니즘에 빠지는 적이 종종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흔적 남깁니다.^^ 근데 구차나 그림이 참 예쁘네요^^. 조렇게 귀찮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곰탱이/ㅋㅋ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