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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9/01
    고전문학 7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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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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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한 마디

#1. 술을 마셨다.

오랜만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요즘 계속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알콜 중독 초기 증상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 어떤가라는 생각에 염려도 걱정도 그저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인생에 대한 자포자기는 절대 아니다. 그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저 그 뿐이다.

 

노래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소리를 지르면서. 이것도 무슨 스트레스가 쌓여서 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노래가 부르고 싶고, 소리가 지르고 싶다. 그저 그 뿐.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다.

 

So so, 그래, 그저 그렇다.

 

 

 

#2.

옛날 이야기를 했다. 잊지 않는 것들, 잊혀지지 않은 것들, 잊어버린 것들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의 모습은 내 기억과 다른사람의 기억으로 입을 통해 되새겨진다.

옛날 일이다.

옛날 일들을 공유하고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가히 축복받을 만한 일이다.

 

현재 이야기도 한다. 근황을 묻고 사견을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로 이야기는 지속된다.

즐겁다. 아니다. 사실 즐겁지는 않다.

그저 이야기가 흘러나왔기에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지속시킨다.

그냥 머리가 아파진다.

 

 

 

#3.

블로그를 한바탕 휘갈겨 쓰다가 지워버렸다.

맘에 들지 않아서, 부들거린 손으로 쓴 한바닥의 글자들을 드래그 한번과 Delete 하나로

없애버렸다.

 

지금 내 마음속엔 과연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한 시간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도 시원하지 않다.

 

 

 

그냥 한 가지.

미안하다, 사랑하는데, 보고 싶다.

 

 

그냥,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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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1.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다. 대학교 1학년때, 내가 쫓아다녔던 친구, 그나마 단짝처럼 붙어다녔던 친구, 내가 참 좋아한다고 말하는 친구들.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모습에 세월의 무상감을 느끼기도 하고 청년실업에 대해 한바탕 몸으로 느끼기도 하고. 결혼하는 친구도, 사업을 하는 친구들의 근황도 묻고 듣고, 미래의 어느 땐가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새롭게 만나는 맛을 이미 잃어버려도, 편안함이라는 그 이름 하나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떠들수 있는.

고맙다. 정말.

여전히 그대로여줘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 그대로.

 

 

#2.

아, 미안해.

오늘이 네 생일인 줄 몰랐구나^^;;;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였던가...내 생일에 대부분 니가 있었는데 정작 나는 챙겨주지를 못했다.

이거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하나.

그냥 언제 술이나 한잔 하자.

 

미안하다.

 

 

 

#3.

요즘 친구 복에 겨웠나보다.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주다니

이렇게 감격할 일이!!!ㅋㅋㅋ

역시...공부하려고 맘을 먹으면 무언가 이렇게 반가운 일들이 생긴다니까..

그래도 좋다.

너와 잃어버렸던 시간들이 채워질 수만 있다면,

 

그동안 머릿속 어딘가 묵혀있던 인연의 실타래를 이제야 풀어가는 느낌이네.

보고 싶다. 정말.

 

네 웃음소리가 참 그립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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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동막골

단풍노이(丹風露離)님의 [웰컴투 동막골] 에 관련된 글. 

  날씨마저 좋은 광복절날, 예정에 없던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웰컴투 동막골.

정말 충동적으로 영화표 한 장을 사들고, 논픽션을 주장하며 정말 오랜만에 박수를 받아봤다는 광고 카피와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로 광고를 믿지 않는데, 한편으로는 말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얼마나 잘 만들었나보자란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딴짓하다가 영화 시작시간을 놓치고 한 십분 쯤 늦게 들어가서야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초반 3분의 2는 정신없이 웃기다가, 마지막 3분의 1은 슬프다는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증명이나 하듯, 내 옆자리 남자는 꺅꺅 거리며 웃더니만 나중에는 훌쩍훌쩍 울고 있는게 아닌가.

이렇게 경쾌한 사람이 있을수가!

 

  영화의 내용과 결말은 충분히 상상한 그대로였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동막골은 아이들처럼 막살라는 이유로 붙여졌을 뿐 그것이 언제부터 누가 그렇게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수 없다. 애초부터 그렇게 불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인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은 누구도 들어오고 나갈 수 없는 폐쇄적 의미로서의 자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을 사람도 도시가 궁금해서 나가기도 하고, 외지 사람이 들어와 살기도 하는 개방적 공간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순수 그 자체로 만들어 버리는 신비한 힘이 작용한다.

 

  그 곳에 북쪽군인과 남쪽군인 그리고 연합군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군대라는 곳을 벗어난 순간부터 개인으로 동막골에 동화되어 간다. 물론 그렇게 동화되기까지 과정은 한국분단의 오랜된 역사처럼 금방 치유될 수 있는 골은 아니다. 인민군과 한국군이라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양편으로 무기를 겨누며 대치하는 몇 일을, 감독은 확연한 대립구조로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이념의 골은 혹독한 낮 열기와 비바람, 그리고 결국엔 졸음이라는 자연 생리현상을 통해 꺽이고, 감독은 이 과정에서 그들의 행동을 희화화하고 동막골 주민들의 순수성이 돋보이는 것으로 장면을 처리했다.

 

  그리고는 이들이 단합하게 되는 최대의 계기. 그것은 마을 사람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멧돼지의 처지로 설정한다. 이 거대한 멧돼지가 공격하는 장면을 느리게 처리함으로써 자칫 별 의미없이 지나갈 수 있을 장면을 상당히 의미있게 진행시켰고, 이는 결국 동막골을 생존의 위협인 전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외지인들이 단합해서 지켜내리라는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을 부여한다.

 

  전통적 소재 역시 적절히 활용했는데, 스미스를 구하고 동막골을 전략 요충지를 활용하기 위해 파견된 군대를 공격한 나비가 바로 그 것이다. 나비는 예로부터 죽은 사람의 혼이 부활한 것으로 사용되는 소재이다. 이는 윤흥길의 <장마>라는 소설에서 한국전쟁 당시 죽은 인민군인 삼촌의 현신으로 구렁이가 나타난다는 것과 유사한 설정이다. 나비는 민족의 혼을 상징하고, 이 혼이 모여 떼를 이루어 동막골을 지켜내기 위해 군대를 공격한다. 약한 날개이지만 부딪히고 깨져서 지켜내리라는 민족 정서가 보여지는데, 이 나비떼가 부대를 모두 죽이지 못한 것으로 나머지는 산자들의 몫이기도 한 것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요인은 이런 것들이었다.

때묻지 않고 순수성으로 대변되는 동막골 주민들의 말과 행동.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  여기에 동막골 주민의 강원도 사투리와 인민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북쪽 지방의 사투리가 자아내는 언어의 묘미들. 중간중간 "머리에 꽃 꽂았습네다~"라는 말 한마디에 광년이로 판명된 강혜정이 언덕을 뛰어가다 넘어져 장면에서 사라져버리는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주는 것들.

 동막골 주민들 하나하나가 각기 개성을 지닌 인물들로 나오는데, 모두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을 웃음짓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아,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소자, 어마마마를 지켜드릴 것이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하던 어린 세자가 어느새 커서 강원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도 묘사해가는 아역 탤런트의 모습도 꽤 인상깊었던 것 같다. "성은 스, 이름은 미스래요~"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칭찬해 주고 싶었던 것은 까무러치게 웃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울음을 자아내지도 않는 진행방식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자칫하면 심각해질 수 있는 장면들을 감독은 특유의 상상력과 영상으로 표현해냈다. 그것은 실로 그 순간 영화관 모두를 영화에 몰입할 수 밖에 없도록 관객을 사로잡았으며, 난 일순간 적막해진 순간에야 비로소 이 영화의 묘미를 깨달았다. 이때까지 훌쩍거리던 사람조차도 코를 들이쉬지 못하도록 숨 죽이며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 그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게 만드는 장면이 백퍼센트 개뻥은 아니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별로 머리를 굴리지 않고도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기억되면서도,

뻔한 내용과 결말에도 가슴 찡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았다.

웰컴투 동막골, 머리식힐 때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덧글) 음악을 하사이시 조가 맡았다니,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을 좋아하는 편이긴 한가보다. 역시, 애니매이션의 세계는 대. 단.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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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의 시를 다시 보고 있다.

늘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부끄러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시대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아마, 이런 것들 때문에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읽는 이 역시 작가와 마찬가지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묘한 매력이다.

 

윤동주는 자신의 삶을 내일이나 모레, 가까이 올 그 어느 즐거운 날을 생각하며

지금을 되돌이켜본다.

많지도 않은 이십사년 일개월의 삶.

어찌보면 참회록을 쓰기에는 너무 젊다고 생각되던 때,

 

시인은 식민지 치하라는 현실을 너무나도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서 고민했고, 또 행동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과 현실의 자기를 이어주는 거울을 시인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로 보았다.

 

많지도 않은 이십사년 일개월을 살고 있는 나.

나는 내 거울을 생각했다.

스물 넷의 수줍은 청년 윤동주가 살았던 그 시대만큼 폭압적일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대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야하는 시대에는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청년만큼 민감하지도 않은 것 같다.

내 거울은 어떤 거울일까?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손바닥 발바닥으로 열심히 닦고 나면

내 거울은 무엇이 보일까.

 

스물 넷의 동갑내기 동주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그의 시에서 보이는 온화한 이미지대로 웃으면서 말해줄 것도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게 화를 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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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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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포스팅

이라고 제목을 붙여놓고 시계를 보니, 낮 12시다.

제길...난 지금 일어났는데, 내 아침은 도대체 어디 간거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부족한 술에 물을 마시고 정신없는 가운데 집에 왔다.

제길...지금 보니 내 물통을 학교에 두고 왔다. 지난 삼개월을 그 물통과 함께 하고,

몇 시간 전 선배가 담배를 들고 물통을 집은 그 순간에도 한낱 재떨이로 전락하지 않도록

소리까지 지르며 애지중지하던 물통인데...

아마 몇 시간후면 빈 물통을 버리겠지, 혹은 이미 버려졌을수도.

 

술이 덜 깨서 무조건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 이 가공할만한 상황.

몸은 사람이 만든 시계의 숫자 간격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계산하는가보다.

늘 여섯시간 정도의 잠을 자니까, 그 시간을 채워서 자고 나니 더 이상 졸립지 않다.

신기하다.

 

예전에 잠이 정말 많은 나를 보고 어머니가 해주신  큰 이모 이야기가 생각난다.

큰 이모도 정말 잠이 많았는데, 하루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깨우지도 않고 얼마나 자나 실험을

해봤더니 나흘 밤낮을 자더라고.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말이 이제야 공감이 되기도한다.

그 때 큰 이모의 몸은 도저히 사람의 몸이 아닌 이상 설명될 수 없다고.

어쨌든 잠이 많던 내가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아서 일어나있는건

지난 7개월간의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습관의 결과이거나,

혹은 술이 덜 깬것이겠지

 

 

아...난 왜 항상 술을 마시면 끝장을 봐야지만 그만 둘 수 있을까?

어제도 시작은 가벼웠지만 끝은 심히 주체할 수 없음을 새벽에 해가 뜨고서야 알아차렸으니.

술을 마시고난 후 내 위가 우는 것 같아 이제는 더 이상 너를 혹사시키지 않으마 약속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자리에 껴서 술잔을 비우는 내 모습에

 

세상엔 잠이 부족해도 잠을 자지 못하는 이상하면서도 초극적인 힘이 존재하는걸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간과 합작하여 몸을 정화시켜라라고 말해버린다.

 

학교에 다닐때는 술자리에 꼭 껴있는 나에게 사람들이 묻곤했다.

술이 좋으세요? 그 때 나는 술보다는 술자리가 좋아서 자주 마셔요.

그러나 지금은 개뿔~ 술자리보다는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신다.

아...이게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어쨌든 그 순간순간 좋은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기에 다음날의 고통과 밀린 일의 벅참을 느끼며

매번 후회하면서도 또 마시고 또 마시고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말글장을 내가 만드면서 (제길...) 쓰고 온 말 중에 이것 하나만 기억이 난다.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이제 나갈 시간이다.

블로깅는 뭔가 시간을 흘려보는데 참 적절한 운동인 듯 ㅋ

 

 

-흐린날 오후의 포스팅 0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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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놀고싶을까?

금방도 할일을 산더미처럼 들고 집에 왔는데,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면 모든게 다 뒤로 미뤄져버린다.

 

젠장젠장.

 

꺄악! 벌써 화요일이잖아.

아...이번 주 열라 빡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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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 광 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요즘엔 현대시를 공부하다보니 옛날에 봤던 시들을 하나하나 훑게된다.

그 때는 잘 몰랐던 것들인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또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

나는 이제야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된 것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을 따라 자와 날카로운 펜으로 시를 조각조각 나누고

시상전개가 어떻고, 시어의 함축적 의미는 어떻고, 제재는 어떻고, 주제는 어떻더라는

단편의 지식들로 시를 봐왔다.

내가 전공을 국어를 선택한 이후부터는 더더욱 보다 좋은 분석을 하기 위해

좀 더 체계적으로 시를 해부해나갔다.

시인이 시를 세상에 내놓기 까지의 삶과 고민들은 충분히 무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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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가방

오래된 여행가방   -김수영

 

스물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를 낳고 먼 섬에 있는 친구나, 소풍날 빈방에 홀로 남겨진 내 짝 홍도, 애인도 아니면서 삼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은 남자,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삼촌...

 

추억이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잊고 있다가 문든 가슴 저려지는 것이다.

 

이따끔 다락 구석에서 먼지만 풀썩이는 낡은 가방을 꺼낼 때마다 나를 태운 기차는 자그락거리며 침목을 밟고 간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주워온 돌들은 어느 강에서 온 것인지, 곱게 말린 꽃들은 어느 들판에서 왔는지.

 

 어느 외딴 간이역에서 빈자릴를 남긴 채 내려버린 세월들. 저길이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외길로 뻗어있는 레일을 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혼자이고 어디로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읽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던 시다.

꽤 오랜시간을 버스에 쭈구리고 앉아있다가 문득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도 그냥 곰곰 생각해본다.

스물 넷. 난 갖고 싶고 하고 싶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혹여 세월이 훌쩍 흘러 되돌이켜볼 때 세월의 무게에 가벼워지고 문득 가슴이 저려질 추억조차 만들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춘천행 기차를 타고 가다 지나던 조그마한 간이역이 생각났다.

언제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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