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83, June 15, 2010

세계공황 속에서 이뤄지는 가망 없는 선택들
("Impossible Choices in a World Depression")

 

 

 




현존 세계의 지도자들과 고명한 석학들께서 세계적 규모의 공황이 엄연한 현실임을 계속 부인하고 심지어 공황이란 말조차 쓰지 않을 참인 가운데, 각국 행정부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가망 없는 선택지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은 나날이 또렷해지는 중이다. 당장 지난 한 달 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에서는 꽤나 상당 기간에 걸쳐 최악의 실업률을 보였다. 맞다, 신규 일자리가 상당수 창출되긴 했지만 그 중 95%는 설문조사 관련 임시직이었다. 사적 영역의 고용주들이 늘린 일자리 숫자는 고작 기대치의 10%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회의 의결을 거쳐 경기 진작에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푸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연방준비위원회에서는 재무성 채권과 담보부 사채 매입을 중단했다. 이들 방법은 예전까지 일자리를 늘리는 두 가지 주된 전략이었다. 그런데, 왜? 재정적자 감축 요구가 너무나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들 조치가 즉각 초래하는 결과는 개별 주 정부의 예산 수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메디케이드(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이 대상인 공공 의료지원 제도) 시행에 따르는 비용은 경제 위기 탓으로 치솟은 상태다. 이 비용은 개별 주 정부에서 부담한다. 예년까지는 메디케이드 관련 지출에 대한 보조금 증액이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왔다. 국회에선 관련 예산안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에드워드 랜델은 그리 될 경우 주 예산의 3분 2가 급격히 줄게 되며, 2만 명에 이르는 교사와 경찰관, 그외 정부소속 노동자들의 실직이 불가피해질 거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한테 필요한 각종 의료서비스가 이와 더불어 끊기는 건 물론이다.

영국에서, 신임 수상 데이비드 카메론은 부채 탕감이 “오늘날 영국 앞에 가로놓인 가장 긴급한 현안”이라고 말한다.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는 그가 내건 제안을 “카메론, 긴축의 시대를 열다”라는 표제로 요약했다. 그의 긴축 정책에 대해 이 주간지가 내린 평가는 이렇다ㅡ“현 정부가 그토록 터무니없는 지출 삭감에 나선다면, 당면한 (사회정책)서비스들은 현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삭감 조치가 불러올 효과는 심지어 대처 정부가 진지하게 다룬 그 어떤 조치보다도 더 잔혹할 것이다.”

독일 수상 메르켈은 제 나름의 긴축책을 공표했다. 공공지출을 당장 크게 줄이되, 향후 4년 동안 그 감축 규모를 매년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항공사들에 대한 신규 과세 방침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세계 항공업계에선 그같은 방침이 적자를 줄이고 파산을 막으려는 항공사들의 역량에 매우 해로울 거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독일의 실업률은 높아지겠지만, 실업에 따른 여러 수당은 줄어들 것이다. 세계 수요의 복원을 이유로,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다른 정부들은 독일더러 지출을 늘리고 수출을 줄이라는 압박을 가해왔다. 채무 감축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이유로, 메르켈은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의 신임 총리 칸 나오토는 정부 채무가 그리스에 비견할 만큼 아주 나쁜 상황이라고 공식으로 경고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그가 제안한 건, 상당 규모의 증세와 금융 영역에 대한 더 많은 규제, 새로운 유형의 공공지출이었다.

북반구 권역(=대체로 부유한 핵심부 국가권역)에서 이같은 초긴축 움직임이 벌어지는 사이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는 이목을 거의 벗어나 있었던 듯싶다. 주지하고 있다시피, 스페인은 아주 높은 국가채무율로 경제적 곤경에 처한 많은 유럽 국가들 중 하나다. 지난 5월 30일, (런던소재 신용등급평가회사) 피치 레이팅즈 사는 다른 신용등급평가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국채의 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중요한 건 그 이유다. 등급 하락이 있기 전날, 스페인 국회에서는 30년만에 가장 큰 규모로 삭감된 예산안이 가결됐다.

정부예산 삭감조치는 아마도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를 위시한 여타 국가들처럼 과도한 채무 압박에 시달리는 정부한테다 독일과 여타 국가들이 요구해온 바일 게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피치 레이팅즈 사에선 스페인 신용등급을 낮췄다. 스페인 신용등급 담당인 브라이언 코울튼은 “사적 영역의 상대적 열위와 대외 채무에 따른 조정 과정은 중기적으로 스페인의 성장률을 크게 잠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무언가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을 먹어야 하는 셈이다. 금융투기 세력은 세계경제를 가히 재앙 수준으로 몰락시키는 데 창의적으로 기여해왔다. 이럴 때면 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국가들한테로 넘어갔다. 국가들한텐 그럴 만한 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들 국가한테다 지우는 요구들은 그 이상이다. 국가로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돈을 꿔올 수가 있다. 꿔주는 쪽에서 더 이상은 꿔주지 않거나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기 전까지 말이다. 징세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기업계에선 징세가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감퇴시킬 거라고 한다. 재정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같은 조치로 인해 모든 이들, 허나 그 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 시장의 폭력적 자기조정 기제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사람들한테 끼칠 끔찍한 고통이 빚어지는 건 물론이고, 코울튼이 스페인에 대해 지적했다시피 성장 가능성의 싹수 또한 꺽일 것이다.

물론, 지출을 줄일 만한 커다란 구석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군사 부문이다. 군사비 지출 덕에 아닌 게 아니라 일자리가 창출되긴 하지만, 그 돈이 달리 쓰이는 경우에 비하면 그 규모는 크게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이는 미합중국 같이 세계최대 군사비지출 국가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스 정부가 진 채무에 대해 제대로 언급이 안 된 측면이 있는데, 막대한 군사비 지출이었다. 그러나 각국 정부들이 군사비 지출을 의미심장하게 줄일 채비가 돼 있을까? 퍽이나 그럴까 싶다.

그럼, 국가는 뭘 할 수 있는 걸까? 오늘 무언가 했다가, 내일은 다른 무언가를 하려 애쓸 게다. 작년에 한 게 경기 진작이라면, 올해는 부채 탕감, 그 다음 해에는 세금 징수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경우든, 상황 전반은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다.

중국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모건 스탠리의 매우 명민한 애널리스트 스티븐 로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 정부가 “사적 영역의 성장을 고무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이 경우, 임금상승(이 불러올 축적 압박)은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이 상쇄해줄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선 그같은 정책과는 이제껏 선을 그어왔는데,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정치적 안정을 지속하려는 중국 정부의 기조는 지금까지 독보적 우위를 누려왔다. 더군다나, 스티븐 로치 같은 이마저 품고 있는 커다란 모종의 두려움, 이를테면 대중 무역제재 조치로 나아갈 수도 있는 워싱턴의 중국 때리기 정서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미국의 경제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일로로 치닫게 될 경우 대중 무역제재 조치는 현실화될 개연성이 아주 높다.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올 길은 여기 아니면 저기에서 이뤄지는 어떤 약소한 조정 조치가 아니다. 통화주의적 처방이 됐든, 케인즈주의적 처방이 됐든 간에 말이다.

지구적으로 일게 될 경제적 타격의 해일 속에서 분명해지는 건, 근대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근본적 해부(또는 앞질러 실천하기)가 필요하겠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가 확실히 오기야 하겠지만, 이 때를 우린 얼마나 앞당길 수 있을까?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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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06:19 2010/06/1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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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애편지 2010/08/11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언가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을 먹어야 하는 셈이다. 이 구절을 보니 레디앙의 대필작가에 관련된 글에 달린 악플(?)이 떠오르네요. 그 글을 쓰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대필이 비윤리적이라고 단순히 비난하는 작자들은 도대체 뭔지-_-;; 차라리 그냥 욕을 하면 좋을텐데 그런 악플러를 보면 월옹이 비판하는 창의적인 금융투기세력이 떠오르네요.

    가끔씩 레디앙에 상주하는 댓글러를 보면 어떤 사람들이 궁금해지네요. 요새는 댓글 보는게 무서워 기사 읽는것조차 조심스러워지네요. (댓글 안보려고 해도 봐지게 되는게 사람 습성이라 ㅋㅋ)

    ps. 드디어 진보넷 가입했어요. 방명록쓰려는데 막상쓰려하니 익숙치 않아서 그냥 댓글에다~^^

    • 들사람 2010/08/11 0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럼 이제 불로그질도 시작하시는 건가요?ㅎ 그 글을 읽진 않았지만, 전녀오크 언냐처럼 쓰지도 않은 걸 썼다며 엽기적인 사기질알을 까왔던 것도 아니고, 대리집필이란 서비스업 노동자로 밥벌이한다는 이유로 비윤리적이라 비난하는 건 참 안이한 짓이지 싶네요(물론, 소위 "서비스업종" 중 상당수(아니, 대다수?)가, 단기적으로야 어려워도 중장기적으론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긴 하지만요.).

      그러기로 치면, 김대중 자서전 대필한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같은 분도 어찌됐든 비윤리적 행위에 공모하고 직접 가담한 셈이 되는 건가요.ㅎ 중요한 행적이나 기억을 가졌지만, 이유야 뭐가 됐든 글쓰기 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분들에게 대필작가는 서말인 구슬을 보배로 꿰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 텐데요. 물론 자서전 내용이 구술자의 자의적인 선택과 배제에서 자유롭진 못하겠지만, 이건 대필의 미덕과는 별개 차원에서 다룰 문제겠죠. 아무튼 대필의 미덕 내지 잠재력이 어떻게 하면 온전히 평가받고 폭넓은 저변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는 중요성에 비해 과소했던 게 사실이지 싶어요.

      아마, 그런 비윤리적이네 뭐네 하는 식으로 피 나도록 헛다리 긁어대는 분들은 짐작컨대 대필작가 개념 자체에 무지하거나, 대필이란 걸 경영대학원이나 각종 특수대학원에서 이뤄지는 학위논문 대필쯤으로 잘못 여기고 있잖으까 싶네요.ㅎ (좀 딴 얘기지만, 후자의 경우, 대필 작업이 이뤄졌더라도 제안한 쪽이 제안받은 쪽보다 가중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예요. 특수대학원 등록금 낼만한 유한한 부자들(갑)한테 경제적 소수자로 돈푼 꽤나 아쉬운 대필자(을)로선 그만큼 낚이기가 쉬울 테니까요. 저도 언젠가 학위논문 대필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거 완전 날로 먹으려 드는구나 하는 불쾌하고 괘씸한 맘에 거절했지만, 그때 돈푼 꽤나 궁했으면 어찌됐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ㅎ;)

      아무튼 가만 보면, 자기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할 것(맘에 들든 안 들든 상대방 논지를 이해하는 일)은 정작 개무시한 채, 격렬한 만큼이나 무척 헛된 도덕적 훈계질에 탐닉하는 분들이 있지요. 대체로 나이 드신 분들인 듯한데, 나이를 떠나 딱딱하게 굳은 몸뚱아리로 그저 보이는 것만, 아님 보려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강하시더라구요. 정작 보이거나 봐야 할 중요한 대목들은 맛 간 무우 마냥 숭숭 빵구가 나 있는데도요. 나름 읽었는데, 도통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 있으니 보충설명 바란다고만 피드백을 해도 논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텐데 싶을 때가 많죠(자기가 모르거나 알 수 없음 일단 쓰레기란 놀라운 전제하에 자기 논지를 들이미는 분들도 얼마나 많나요ㅠ). 그러면 가오마저 망가진다는 판단 탓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 따윈 애당초 있을 수 없다는 가공할 과대망상급 자기애 탓인지.. 헌데 이런 분들 보면 아무리 웹서핑 하다 걔중 만만하고 솔깃한 주제에 꽂혔대도 그렇지, 막상 주제를 다룰 텍스트 장악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재미도 감동도 없는 도덕적 훈계질로만 본의 아니게 과시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어찌나 당당들 하신지..ㅎ

      '화쟁'이란 말도 있지만, '모든' 논쟁을 마치 사생결단해야 할 서바이벌 게임처럼 다루려 드는 건 사실 좌우파가 따로 있을까 싶을 정도지 싶던데.. 글쎄요, 우파들이야 초월적 확실성(이라는 미학적 로망ㅎ)에 대한 갈망을 엘리트의 '기본'처럼 여기니 그렇다 치고, '모범답안' 위주의 근대 엘리트교육 과정이 초래한 나쁜 습속은 아직 그대로인 탓일까요. 아무리 좋은 답이라 한들, 그 답이 나오기까지 이런 습속은 유지, 강화될 뿐이라면 전체적으로 봤을 땐 확실히 좋다고 할 수 없겠죠.

  2. 연애편지 2010/08/11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들사람님의 답변+_+ 감사합니다.
    블로그는 아직 열지는 않았어요. 그냥 사적으로도 힘든일이 있고 아직 무엇을 쓸까 생각을 정하지 않아서 '언젠가'로 잠시 보류~ ^^ 댓글은 달지 않았지만 들사람님의 글도 자주 살펴봅니다. 바쁘시지 않으면 좋은글 많이 남겨주세요. 댓글에서만 보기는 쬐금 아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