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강성학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가 강의를 하던 중

 

"취업하고 싶은데 못하는 심정은

성폭행을 당하고 싶은데 못 당하는 늙어 가는 여자의 심정과 같다." 고 발언한 데 대해

 

학부시절 학회 커뮤니티에서 후배하고 주고받았던 얘기.

 

듣자니, 이 강 교수란 사람,

강의중에 이런 성적 비유를 뻔질나게 드는 걸로 악명이 높은 사람였던 모양이다.

 

성적 비유가 마당놀이나 판소리 같은 데서 나오는 것마냥

'걸쭉하고 찰지면' 외려 활력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분은 삑사리의 달인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위의 발언도 딱 그런 경우였던 셈. 이른바 꼰대 유머.

 

당시 오마이뉴스 기자였던 후배넘이 저래도 되는 거냐고 한 데 대해 나는

확실히 왕삑사리이긴 한데 발언의도만 보자면 일종의 반어법 같은 게 아녔냐고 했는데..

 

(물론 "착취당하는 것보다도 더 비극적인 건

착취당하고 싶어도 착취당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따위의 말을 인용해가며

IMF의 권고조치 시행 이후 두드러진 구조적 취업난을 설명하려 한 강 교수 시각이

엄청 구리타분하다는 거야 두말함 잔소리다.)

 

그랬더니 후배넘은

성폭행과 잉여발생 계기로서의 성매매는 엄연히 다른 거 아니냐고,

잉여발생은 대가를 전제로 한 '교환'을 통해 이뤄지는 거 아니냐고 반론을 펴는 거다.

 

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답변을 했다는.

 

 

***

 

 

듣고 보니, 글쿠만..^^;

 

난 성폭행을 넓은 의미의 '성적 착취' 중 하나로 보고 얘길 풀어갔던 건데,

기유 얘길 듣고 보니 성폭행은 착취와는 구분이 필요한 사회적 폭력 형태의 하나래줘야겠네 증말...^^a

(나 역시 "일단은" 이란 조건을 다는 거지만 말야..^^;)

 

아무래도 "취업=좋은 것(혹은 잘된 것)"이란 등식이

해명돼야 할 '통념'에 가깝단 생각이 은연중 넘치다 보니,

 

창녀가 남근적 욕망에 종속돼 몸을 파는 거나

자본가들에 의해 노동자로 고용된 이들이 자본의 축적욕망에 종속돼 주어진 시간 동안 몸(정확히 말하잠 몸을 통해 화폐화한 노동력)을 파는 거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단 얘기를 부각하고 싶었나보이

(물론 이리 말한다고 성폭행=강간과 착췬 다르단 지적서 자유롭긴 힘들 것 같지만).

 

 

더욱이, 내가 머 강성학 교수 조교 출신두 아니구(조교였대도 그렇지^^),

강교술 변호할 생각은 털끝의 반푼어치만큼도 없어요.

다만 나는, 강교수가 한 얘길 잘못된 빗댐 때메 싸그리 폐기하기엔 좀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

어떻함 좀 살을 발라내 볼까 했던 건데..

굳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에이, 증말 왜그러셨어여.."라고 하지 않았을까나..^^

빗대도 꼭 그렇게 빗댔어야 했는지도 꼭 묻고 싶고. 빗댈려면 좀 제대로 빗대든지.. 쯧쯧,

하고 핀잔도 주고 싶고말야.

 

보아하니 강교수란 양반, 성적 유비를 디게 즐기는 사람인가 본데,

너두 알다시피 그거, 남자들끼리 얘기하는 거래도

맥락과두 무관할 뿐더러 절라 짜증나구 열받게 하는 사람들 많차너.

 

강의실 문 열린 건 섹스할 때 문 열린 거와 어쩌구, 하는 얘긴 정말 졸라 어이가 없더라.

쌩뚱맞음의 극치던데말야...건 논의할 가치도 없는 거고.

 

여튼, 재치가 절절한 육담이 활성화되길 바라는 맘에^^*

강교수의 경우는 그 자신 남근중심적 문화에 길들여진 데 비롯된 것으로,

성적 유비 자체가 잘못됐단 얘긴 하고 싶지 않았던 것두 너의 지적을 초래한 이유다 싶구만그래.

 

아무리 글타지만, 성폭행을 화폐교환을 전제로 한 성구매 노동과 똑같은 걸로

간주한 건 좀, 내가 바도 좀 마니 아니구먼.. 헐^^;;

내 논지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해야겠군..

성폭행을 성매매와 "곧바로" 동일시한 것두 잘못이고.

 

니말마따나, 성폭행 대신 '매춘'(성구매를 통해 이뤄지는)

에 빗대는 거였을 때 내 주장의 아다리^^가 잘 맞겠네..

됐지 이제?^^

 

 

 

근데말야, 

 

억지부리거나 논점을 흐리려는 건 절대 아니구^^;;

좀더 진전된 논의를 위해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착취란 말에 대한 너의 정의방식인데말야.

왜냐면 니가 정의한 대룸

착취란 화폐교환이 전제된 (상품)생산활동에서만 발생하는 셈인 게 되는데,

그게 정말루 그렇냔 생각을 하거든, 난.

 

니말마따나, 착취란 "대가의 저평가", 내 식으로라면,

노동력에 대한 항상적 저평가를 통해 이뤄지는

자본주의적 잉여발생 과정이지.

"등가교환", 달리 말해 "일한만큼 임금을 받는다"고 알고 있는

그 과정에 항상-이미 잉여발생의 계기가 내재돼 있다는 건데..

 

그렇지 않다면, 달리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에 참여하는 모두가

다 "자기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몫"을 챙기고들 있다면

(이른바 "등가교환"이 이뤄지고 있다면),

잉여(내지 화폐 형태로서의 이윤)은 대체

어서 발생하는 거냔 의문에서 나온 개념이자너,

이 착취란 말말야.

 

물론, 주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에서는 이윤발생의 메커니즘을

착취란 개념으로 해명하는 대신 "창의적 아이디어"나,

"기업가적 프런티어정신"이란 개념 및 이의 변종들로 설명한다고들 있지만,

"각자 일한만큼의 정당한 몫을 모두가 받는다면, 이윤은 대체 어서 생기는 거냐니깐?"이란

물음에 대한 답변으론, 함량미달도 한참 함량미달이지 이건.

만약 이게 해명이 안됨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이윤은 그저 증발된 화폐총액에 불과할테니.

근데, 그것두 아니자너 분명. 이윤이 화폐증발 따윌 통해서가 아니라

생산과정을 통해 발생한다는 건 아무리 자본진리교도라 해도

부인할래야 할 수가 없다고요.

 

 

여튼 내가 우려하는 건말야, 착취를 대가를 전제한 것으로 규정해버리면,

"대가 없이 발생하는" 잉여발생 과정을 착취 아닌 것으로 취급할 가능성인지라서말야..

니가 말하는 대가는 현실적으로 대개 "임금"의 형탤 띠게 되는데,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를 봄 임금 형태를 취하지 않은 착취는

아주 좁은 의미의 생산과정서조차 곧잘 일어났었고, 짐도 일나고 있단 말이지.

일종의 대농장으로, "근대적 노예제"의 하나라고도 불리는

남미 지역의 엔꼬미엔다는 임노동형태를 취하진 않지만

자본주의적 잉여발생의 핵심원천이었고..

 

게다가 이런 류의 생산형태는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자너, 지금도말야.

이걸 "봉건적, 전근대적" 생산형태라고들 했지만, 아니지.

건 명백히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적인 것들인 거고.

 

 

무엇보다도, 너처럼 착췰 정의함 경제주의, 혹은 임노동자중심주의의 함정에서 못벗어난 채

엄연한 자본주의적 착취의 일부라 할 (좁은 의미에서의) "비경제적 활동들"을

임금인상 투쟁에 비해 "부차적인"(!) 것들이거나

(일테면 공장 임노동자가 자본과의 투쟁에서 승리함 도미노식으로 다 해결될 그런 것들)

심지어는 자본주의 투쟁관 무관한 것(이른바 전근대적, 봉건적 유제라는 식의)으로

치부할 소지가 크다고요. 이게 얼마나 커다란 오류였는진

기왕의 역사적 반체제운동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자너. 

 

그래서 내가 단순폭력으로서의 성폭행과

가치교환 활동으로서의 성매매를 동일시하는 건 문제란 니 지적을 인정하는 것관 별개로,

그런 교환활동에 따른 대가가 사실상 제로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너처럼 착취를 대가(또는 화폐 형태의 교환)가

가시적으로 발생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역사적으로 벌어졌고,

또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착취의 다양한 형태를

잉여발생관 무관한 것으로 배제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해 두고 싶네이..

 

 

..이상, 내 얘긴 여기서 끄으~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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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2 13:08 2008/03/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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