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인가에 이건희씨가

선거비자금인가, 뭐 암튼 검은돈 만들어논 것 갖고 수사가 이뤄질 거라 하니

삭신이 쑤신다며 바다 건너로 내빼버린 상황에 대해 썼던 글.

 

근데 참 씁쓸한 게,

몇 년 전에 한 얘기건만 어째 몇 년 전 얘기 같지가 않냐 별루.

지금은 그래도 외유는 민망한지,

적당히 국내에서 칩거했다 말았다 하는 차이가 있다지만..

 

솔직히 지겹다, 증말.- -;

 

 

***

 

 

1.

또 아프다신다. 원, 뼁끼두 한 두 번이라야 재밌지. 한마디로 짜증 입빠이다. 먼 소린지 감 잡히시나? 그렇다. 삼성그룹 캡짱 이건희 씨께서 지병정밀진단차 미국으로 내뺐다는 소식 있자나. 물론 이 씨만 갖구 머라 그럴 일, 아니다.

공부만 하라면 멀쩡하던 아랫도리가 돌연 부산해지질 않나, 굳이 없어도 그만이던 학용품을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문방구서 사와야만 했던 옛시절. 그때를 상기해보믄, 이 씨께서 보여주신 출국타이밍의 절묘함(인지 교묘함인지), 머 결코 이해 못할일은 아니란 거다.

근데 분명한 건, 이 씨의 초조함 내지 피해의식적 불안을 이해하는 일과, 그런 심리적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느냔 별개란 거다. 쪽팔린 나머지 내빼불고 싶은 심정, 충분히 이해간다구 담넘은 구렁이 흉내내면, 행여 측은지심이 발동할 줄 아나본데, 쌩뚱맞고, 졸라 어이없다 아니할 수 없다.

출근하다 빤스에 응가묻혔을 때의 난감한 맘 십분 수긍한다 쳐도, 이걸 출근성돌발응가증후군의 대중적 확산을 외치는 걸루다 착각하믄 이해심 발휘해준 쪽은 얼마나 황당하겠냔 말이다, 씨발. 글치 않나?



2.

익히 봐왔듯, 언론/방송서는 대충 “이렇다고는 하는데, 사실상 저런 게 아닌가 의심이 가고… 근데 저쪽선 또 이런 게 아니냐고도 하니, 머 섣불리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렇다 해도 진실이 먼지는 밝혀야 할 일이기나 한지 솔직히 알다가도 잘 몰겠고…” 하믄서 신중함을 가장한 태업성 제스쳐질루다 물을 흐려왔자나?

사슴을 사슴이라 하긴커녕 천연덕스레 “저거 사슴 맞아?”라며 상상력 낭비를 조장하질 않나, 심지어 암말인지 숫말인질 파헤치고 말겠노라는 결연한 엄정중립의 기백이라니.. 졸라 안쓰럽다, 씨바.

이따우 사기성공정보도정신 나부랭이들 다 걷어내고 나면, 이건희 같은 로얄패밀리 그룹의 해외체류 유형은 딱 두 가지다. 정말 두 개냐, 뭘 믿고 글케 자신하냘 수 있겠다만, 음, 분명한 건 경우의 수가 더 있다 쳐도 그건 내가 말할 두 가지 유형의 변주란 거다. 자, 그럼 머냐, 그 두 가지란 게?

하나는, 말그대로 공사다망형 외유다. 이를테면 “한국경제의 앞날에 노심초사하고 대한국민들 먹여살려야 한단 일념으로 동분서주하다보니 일각이 여삼추네, 씨발?”이라 졸라 뻥발 날리며, 돈벌이하기에 최적인 곳만 찾아 온델 싸돌아다니는 경우 되겠다.

세계가 넓어도 이제 콩밥 먹는 거 외엔 할 일이 없어진 김우중이 전형적이었다지만, 이건희라고 다를 거 있나? 이 경우 두드러진 특징이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매체의 과도한 화장발인데, 보고 있노라면 기법 면에서 저 북녘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이 받았던 화장발과 거의 용호상박 수준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대선자금용 구린돈의 쓰임새를 총지휘한 걸루다 스타일 구길까 내뺀 바람에 없던 스타일 더욱 구겨져버린 이건희 씨 같은 경우로, 병중한(病中閑)형 외유 되겠다. 그렇다고 이네들이 없던 병 있다고 야부리치거나, 꾀병부리는 건 결코 아닌 듯싶다. 아무리 뻔뻔하기로, 그 정도로 낯짝이 두껍기야 하겠냔 생각이다만.

어쨌든, 그런데도 이들의 병중한이 얍실한 꼼수로밖에 읽히지 않는 건 왜일까? 짜고치는 자문자답에다 중복되는 이야기라 미안하지만, 그 절묘한 타이밍 때문이라니까.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가, 꼭 대형사건의 당사자만 되믄 왜 하필, 하필 그 때 골골해지냐는 거지. 상황이 불리해지면 나름의 육감이 발동하는 건지, 체내에 병세강화호르몬 분비가 활성화하는 건지.. 머여튼, 이런 유형이다.

이런 식의 내빼기식 외유, 난감함을 넘어 비열한 수작인 게, 뻔히 내빼긴 줄 알믄서도 그렇다고 하기 곤란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서 엄하게 계속 이건희 씨 조지려 들다간, "가뜩이나 아픈 사람 갖구 그렇까지 해야겠어? 그래 영광을 본들, 먼저 사람이 돼야지.. 쯧쯧." 하는 식의 힐난 듣기 딱 십상이다. 아무리 정당하대도 그러는 게 아니란 얘기, 바로 가슴을 후빌거고.

이러는 와중에 사태의 본질은 '인지상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도도한 온정의 물결 속에서 쓸려가버리고, 외려 온 국민이 한국경제의 견인차 이건희 씨의 '쾌차'(!)를 일단이나마 비는, 실로 서글픈 지경에 이를 공산, 어느 정도라 보시는가? 졸라 크지 않겠냔 거지.

근데, 뭐가 그리 서글프냐고? 자본과 국가가 맺어온 은밀하고도 공공연했던 내연관계는 또다시 불문에 부쳐진 채, 우리는 다시 '선진한국, 앞으로'란 구호 아래 일렬종대로 헤쳐모여야 할테니까. 아무리 파이를 키운들 이게 사람 사는 거냐고, 그렇게 군사주의 정권에 맞서 반체제 운동이니 민주화 투쟁이니 했던 건데, 이대로 가면 삼성그룹 같은 데서 내세우는 글로벌 비전이란 거, 글로벌이면 노동자들 패대길 쳐도 만사형통란 식일 거 아니겠냐고요. 왜? 글로벌이니까.

행여 그런데도 우리, 그저 "웬지 익숙하니 거참, 희한하네?" 라며 건망의 심연에서 허우적 댈 참이냔 말이다. <웃찾사>에서야 즐거웠을지 몰라도, 무대를 벗어나면 그것은, 우스꽝스런 비극이 된다. 병중한형 외유가 고도로 비열한 협잡인 까닭이자, 그로 인해 둘러쳐지곤 하는 '온정주의'의 장막을 이제라도 잘게 찢어버려야 하는 까닭이다, 졸라.



3.

사실 스케일 여하를 떠나 이른바 '대형사고'를 치거나 사고를 쳤던 게 뽀록이 나면, 아무리 간 큰 년넘이라도 의연하긴 좀처럼 쉽지가 않다. 설사 그게 아무리 '옳은 일'이었대도 그럴진대 하물며 걷으론 고상한 척 뒷꾸녕으로 대형 호박씨를 까댔던 경우라면, 제 아무리 한국경제의 대들보를 이리 들었다 저리 놨다 하는 삼성그룹 캡짱 이건희라 한들 별 수 있을까?

이건희 씨의 속내를 온전히 까발리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씨가 아픈 건 지병 때문은 아닐 공산이 크다. 현 상황이 이 씨의 지병에 일정한 영향을 주기야 했겠지만, 이 씨가 아픈 이윤 정작 딴 데 있을 거란 얘기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중첩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도둑질 하다 들킨 데 대한 심리적 치욕감 내지 불안과, 한국경제의 좌장이자 삼성그룹 총수라는 과잉된 자의식과는 커다란 괴리를 보이는 세간의 평판 및 비판적 압박에 대한 울화증 내지 분노가 그것이다.

이리 보면 이 참에 한국의 '엘리트그룹' 내지 기득계급으로 분류될 이들의 '집단적 심성'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분석이 가열차게 이뤄져야 할지 모른다. 걔네들은 정말, 아마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고와 판단의 회로가 우리랑은 판이하게 다르리란 얘기 되겠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제대로 다루기로 하고.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다. 이건희 씨, 좀더 아프게 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머 이런 식으로 반응하기 일쑤던 우리의 익숙한 습속, 뜯어고쳐야 한다는 거다 이제. 이런 어설픈 인지상정으로 곯는 건 우리 몸이요, 우리의 심성이므로. 이건희 씨 건강 걱정하다, 정작 우리의 몸과 심성이 피폐해져서야 되겠냔 거지. 이미 이건희 씨 때메 그렇게 된 이들이 한그득인 마당에, 더구나 그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엄연한 현재진행형인 마당에, 졸라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고 보는거다, 나는.

이건희 씨를 좀더 아프게 하고 좀더 자괴감에 빠지게 할 대화와 공격의 기술 및 장기적인 전략전술을 차차 연마·구상해 가자. 이는, 이 씨가 앞으로 '치유의 기간'을 통해 거듭나기까진 바라지 않는다 해도(굳이 바랄 필요도 없다 사실), 적어도 그로 인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리고 영혼이, 나아가 우리의 삶이 좀더 풍요로워질 수 있길 바라는 이들 모두에게 주어진 몫이자 권리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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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00:13 2008/03/1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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