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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

"상구, 있잖아...인제 일주일에 하루를 '상구day'로 정하는 건 어때?"

"그게 뭔데?"

"응...일주일에 하루 미루 안 보고 나가서 실컷 놀다 오는 거야..좋지?"

 

우린 목요일을

'상구day'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제1회 상구day였습니다.

 

오랜만에 이런 공식적인 휴가를 얻으니

날아갈 것 같습니다.

 

가끔 나갈 일이 있어도

항상 집일이 걱정 됐었는데

오늘은 그런 걱정 다 접고 실컷 놀아야겠다 맘먹었습니다.

 

바빠서 어제까지는 오늘 어딜 갈지 생각을 못하다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야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뭘 할까'

막상 고민을 하니

평일 낮에 불쑥 만날 사람도 없고

딱히 어딜 갈만 한 곳도 없습니다.

 

'에이..그냥 서점이나 가든가, 아니면 혼자 극장 가서 영화 봐야지...'

 

어쨌든 오늘은 아주 유쾌하게 시작했습니다.

 

원래 제 자유시간이 새벽 5~8시 사이인데

오늘만큼은 그 시간도 챙겨먹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소풍날엔 꼭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음..오늘 하루는 정말 매우 알차겠군...'

생각하면서 그 새벽부터 책을 읽었습니다.

 

미루는 6시 30분에 일어나더니

안 잡니다.

 

주선생님과 교대로

9시 40분까지 놀아줬습니다.

아침부터 좀 힘듭니다.

 

12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외출입니다.

근데 피곤이 목도리가 되어 뒷목을 감싸고 있습니다.

괜히 미적거렸습니다. 바깥 날씨도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혼자 생각했습니다.

'이런 날은 집에서 하루 푹 쉬고 잠이나 자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상구, 어디 안가~?!"

 

"나? 갈데 많지..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이렇게 멋지게 얘기해야 하는데,

갈 데는 생각 안 나고, 피곤은 더 엄습했습니다.

 

"어디 안가?"

 

계속해서 물어보는 주선생님을 쳐다보면서

저는 겨우 입을 뗐습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될까?"

 

"풋..."

 

"작은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쉬지, 뭐..."

 

마침 미루가 잘 시간이고 해서

옆에서 자장가를 불러줬습니다.

 

"정말 어디 안가? 미루는 내가 알아서 볼테니까 어디가서 영화라도 보고 와..."

 

아, 이젠 피곤이 공습을 합니다.

 

침대에 벌렁 누웠습니다.

 

"나 10분만 누워서 생각하고, 일어나서 나갈께..."

"그래, 그럼..."

 

그 짧은 순간에

정말 많은 꿈을 꿨습니다.

 

뭐하러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설쳤나 하는 생각을

자면서 계속 했습니다. 뒤척였습니다.

 

"상구, 상구~~!! 정말 안 나갈거야?"

"어? 어...나가야지..."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2시간도 훨씬 지났어.."

"장난하지만, 인제 정말 나갈거야.."

 

시계를 봤습니다. 오후 3시가 다 됐습니다.

외출마감 시간은 5시입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생각했지만, 그게 더 비참합니다.

 

"좀 깨우지..."

"너무 곤히 자더라구..."

 

짜증이 밀려 옵니다.

 

어느새 주선생님은 미루 기저귀를 갈다가 저를 부릅니다.

"상구~나 물티슈 좀..."

"왜 나 일 시켜~오늘 상구day인데..."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미안...공갈젖꼭지 좀 갖다줘..."

'오늘 상구 day란 말이야...' 이 말은 그냥 속으로 했습니다.

 

2회 상구day는 화려하게 보내리라 다짐합니다.

 

 

p.s

 

사실, 오늘 하루가 그냥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로리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저의 초췌한 모습을 목격하시고, 또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시더니

기꺼이 피자를 쏘시는 인류애를 발휘하셨습니다.

 

없는 살림에 3~4인분의 거대한 피자를 쾌척하신

로리님의 용단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하루, 그 마지막은 화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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