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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죽을 먹다가

점심 때 쯤 근처 식당에서

단팥죽을 한 그릇 사왔습니다.

 

"있다 좀 출출할 때 먹어야지..."

 

좀 있으니까 미루가 깹니다.

젖을 먹였습니다. 잘 먹습니다.

 

표정이 아주 상큼합니다.

배부르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이유식을 좀 되게 했는데

잘 먹더니만, 젖도 잘 먹습니다.

 

이제부터 고난의 놀이시간. 

 

책을 있는대로 읽어주고,

장난감도 이것저것 줘봅니다.

힘듭니다.

 

"아차~단팥죽...!"

 

기저귀 갈아주다가 문득 식탁위의 단팥죽이 생각났습니다.

주선생님이 감춰놓은 만원짜리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히히~"

 

미루 옆에 가서 먹어야

미루가 안 보채고, 저도 편하게 먹을 것 같았습니다.

 

한 입 떴습니다.

달달하니 참 맛있습니다.

 

근데 갑자기 누워서 혼자 놀던 미루가

휙 엎드리더니 팔을 쭉 펴서 상체를 듭니다.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사상 최고의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팔다리를 사정없이 흔듭니다.

 

다시 보니 제 입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입맛을 다십니다.

 

예전에도 뭐 먹을 때

미루가 입맛을 다시긴 했지만

이번 건 차원이 다릅니다.

 

입에 넣어주기만 하면

바로 넘기겠다는 표정입니다.

설명을 해줬습니다.

 

"미루야...이건 이유식이 아냐..."

 

계속 몸을 움직이더니

헉헉거리기까지 합니다.

 

"미루야..세월이 좀 더 흐르면 먹자..."

 

여전히 낑낑거립니다.

설마 정말 먹고 싶어서 그럴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미루 눈 앞에서 먹는 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되겠다."

 

등을 돌리고 먹었습니다.

더 보챕니다.

 

단팥죽을 한번 살짝 보여줘봤습니다.

다시 팔다리를 흔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졌습니다.

 

최대한 빨리 먹고 치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미루가 상처 받을 겁니다.

 

독한 맘 먹고 거실 구석에 가서 벽보고 앉았습니다.

울기 시작한 미루를 뒤로 하고

단팥죽을 마셔버렸습니다.

 

확실히 단팥죽은

맛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야 맛있습니다.

 

한참 있다 주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큰일났다..미루가 입맛을 더 알기 전에

맛있는거 실컷 먹자..."

 

미루한테는 세상에 맛있는 게 참 많다는 걸

최대한 늦게 알려줄 생각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낄려고 별 생각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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