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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눈 온대..."
"진짜? 미루한테 보여주면 좋겠다"
정말 눈이 왔습니다.
저한테는 올해 첫눈이었고
미루한테는 난생 첫눈이었습니다.
눈 오는 데 심장이 벌렁거린 건
10대때 이후로 처음입니다.
전공이 집회와 시위가 되고 나서는
눈 오면 그것 땜에 불편한 사람들 생각부터 났었는데
참 오랜만입니다.
"현숙아~나와봐~~"
"왜?...우와~~~!!"
한밤 중인데
눈이 얼마난 내리는 지
밖이 죄다 하얗습니다.
중학교때 도서관 칸막이 책상에 앉아서
비듬 털어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
그때 쏟아지던 것 보다 더 많이 내립니다.
어느새 동네 애들이 공원 운동장 바닥에
도널드 덕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이랑 뭔 상관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쏟아지는 눈을 미루한테 보여줘야 하는데
미루는 잡니다.
"내일 꼭 보여주자..."
밤이 지나고 오늘 아침.
"좀 있다가 외출할까?"
"그러자~!!"
뭔가 자질구레한 일들로 오전을 다 보내고
1시가 넘어서 겨우 나갈 준비를 합니다.
주선생님은 밖이 얼마나 추운 지 보려고 나갔고
미루는 두꺼운 옷을 안 입을려고 필사적으로 버팁니다.
"안되겠다...춥다..바람도 많이 불어...."
혹시 미루한테 안 좋을까봐
아주 쉽게 외출을 포기하고 비디오를 빌리러
저 혼자 나갔습니다.
앞에 아이 둘이 큰 눈 뭉치를 안고 갑니다.
"병철아~밑에 좀 잘 보고 다녀...철퍽철퍽 그게 뭐야..."
"응?"
"밑에 좀 잘 보고 다니라고..."
"왜?"
"옷 다 버렸잖아...엄마가 꼭 이렇게 잡고 가야 돼?"
"근데 엄마...눈이 왜 이렇게 무거워?"
"니가 많이 뭉쳤으니까 그렇지.."
"작게 뭉치면 안 무거워?"
"아, 눈 좀 버려~집 앞에도 많이 있어..."
미루도 빨리 커서 저렇게 눈을 좋아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오전에 잠깐 베란다 쪽으로 가서 바깥을 보여줬는데
세상이 왜 하얀 색인지 통 관심이 없이 자꾸 몸만 뒤로 젖혀댔었습니다.
비디오를 빌려서 돌아오는 길.
공원에는 눈사람이 10명도 넘게 와서 쉬고 있습니다.
집 앞에서 나무가지 위에 있는 깨끗한 눈을 세 주먹 뭉쳐왔습니다.
옛날에는 맨손으로 눈싸움도 했었구만
이 짓도 손시려워서 못하겠습니다.
뭉친 눈은 락앤락에 넣어서
냉동실에 보관했습니다.
미루한테 보여주려고 한 건 데
잊어먹고 결국 오늘도 못 보여줬습니다.
내일 꼭 보여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냉동실에서 몇 달 갈 겁니다.
댓글 목록
오징어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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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도서관 칸막이 책상에 앉아서비듬 털어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헉! 이런취미를 가진사람이 한사람은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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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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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화같은 글인데...비듬 얘기가 '옥의 티'아닌감유?ㅋㅋ부가 정보
벼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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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똥과의 힘겨루기로 힘든 하루였던 연우를 재우고 둘이서 컴퓨터로 '환상의 커플'을 보며 쉬는데 밖에서 번개가 두번 치더라구요. 비오나? 11시쯤 나가 보니까 글쎄~ 운동장엔 도란 도란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면서도 굉장히 고요한 흰 밤이 펼쳐져있었어요. 미루네 집에 전화해줄까? 14층이라 잘 모를지도 몰라, 했었는데 기다리고 계셨군요.부가 정보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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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보여주려고 눈을 내동실에? 와~ 대단하다.근데, 그 눈 디따 더러울텐데... 서울 눈이 그렇지 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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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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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땅콩/ 음...같은 취미를 같고 계셨군요...3년 내내 모아서 꽤 많이 모았었지요...보관은 못 했지만..행복한 준호/ 너무 행복한 이야기는 제가 닭살돋아해서 비듬 얘기를 넣으니까 좀 낫던데요..ㅎㅎ
벼루집/ 번개도 쳤었어요? 그건 몰랐네...^^
말걸기/ 음....오늘 손으로 만지게 했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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