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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잘 누워 있던 미루가
방금 먹은 젖을 토했는데
짙은 노랑색에 당근색이 섞여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토해놓은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전화도 했고 책도 찾아봤지만
대체 뭘 토한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미루가
신나하면서 팔다리를 흔들어 대는게 위안이었는데
이 때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체온 재볼까?"
저는 최첨단 고막 체온기를 귀에 댔습니다.
'37.5도'
평소 미루는 36.9도 쯤 나갔고
37.5도는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예전에 페구균 접종한 다음에
그 온도 넘으면 해열제 먹이라고 했던 바로 그 체온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난 밤에 밤새도록 덥더니
어디가 아픈 모양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려고 주변 소아과에 전화를 돌렸지만
일요일 아침에 하는 곳은 응급실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응급실에 대해 두 가지 안 좋은 추억이 있습니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쓰러진 친구를 업고 응급실을 찾아갔었는데
의사가 허둥지둥하더니 구석에 가서 책을 찾아보는 걸 봤던 게 첫번째 기억입니다.
두 번째 기억은 체한 주선생님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의사가 자꾸 맹장일지 모르니까 엑스레이 찍자고 해서 찍었던 일인데
나중에, 그 당시에 뱃속에 미루가 있었다는 걸 알고 기절초풍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응급실에 가는 건 조금만 미루고 일단
우리가 직접 체온을 내려보기로 했습니다.
옷을 모두 벗기고 몸을 식혀줬습니다.
미지근한 물로 목욕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체온을 잽니다.
37.3도, 37.4도, 37.2도....
체온을 여러번 재는 건 평균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주선생님은 열심히 미루의 귀밥을 파냈습니다.
애가 아픈 데 귀밥 파고 있는 심정,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예전에 미루 왼쪽 귀 온도를 재고 열 나는 줄 모르고 있다가
큰 일 날뻔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왼쪽 귀 36.9도, 오른쪽 귀 37.5도.
왼쪽 귀에 귀밥이 꽉 차서 온도가 낮게 나왔던 겁니다. 참 별일이 다 있습니다.
어쨌든 계속된 노력으로 우리는 겨우 미루의 체온을 36.9도로 낮췄습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주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거실 한 쪽으로 가서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좀 더 확실한 위안을 위해 이내 누워서 잡니다.
...
사실, 이렇게 해서 다 잡은 줄 알았던 미루의 체온은
두세번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습니다.
두번 째 열이 오른 건 주선생님의 초대형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에어컨을 틀면서 바람이 미루에게 정통으로 가게 해놓은 겁니다.
제가 그걸 뒤늦게 발견하고 바람 방향을 바꿨지만
미루 체온은 다시 37.5도가 돼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앉아 있는 주선생님께
저는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해야 하는 말은
"너도 많이 놀랬지~? 인제 괜찮을 거야~"라는 멋진 말입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조그만 게 아프니까 큰 사람 둘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아픈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만 합니다.
댓글 목록
보라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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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도에서 오르락거리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쓴말이지만...때로 아니는 39도나 40도...사람 온도가 이렇게도 올라가는 구나...혹시 뇌가 익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지경까지 가지요. 물론 놀라지 말고 온 몸을 미지근한 수건으로 살살 닦아주고 온도를 내려줘야죠. 겨자를 물에 개서 수건에 싼 후, 온도를 내려주는 방법도 있는데...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거려요. 인터넷에 찾아보세요. 아마 앞으로 쓸 일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늘 해열제 정도는 갖춰 놓으시구요...부가 정보
sanggo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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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겠습니다~~^^ 근데, 겨자를 물에 개서 수건에 싸는 건 무슨 방법인지 잘 모르겠어요~자세히 알려주심 좋을텐데...^^부가 정보
진경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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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많이 놀라셨겠네요. 주선생님께도 위로를 전해주세요.아구... 아기가 어째서 열이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아기들은 종종 열이 난대요. 몸안의 병균과 싸우기 위해서라나...
해열제를 상비해두셨나요? 6개월 이전 아기에겐 '타이레놀'을 6개월 이후엔 '부루펜'을...(약국에 물어보니까 안전성은 타이레놀이, 염증에는 부르펜이 더잘 듣는다더군요)
해열제 먹이고 4시간 이내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응급실에 가시고... 열이 떨어지면 일단은 안심하시고(?) 미지근한 물로 계속 몸을 닦아주시거나 또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다시 먹이는 정도로 응급처방하세요. 병원 문이 열면 당근 병원에 가시구요.
(그런데 응급실에 가본 친구 말로는 응급실 가도 미지근한 물주면서 계속 몸을 닦으라고만 했답니다... 그러니 응급실 안가시고 조치를 잘 하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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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go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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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열제는..타이레놀, 부루펜 다 있어요...타이레놀 시럽은 며칠전 주선생님 아팠을 때 두컵 마셨더니 어른한테도 효과 있더라구요...^^부가 정보
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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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그런일이.. 이런일 있을 때 쓸 수 있는 작은 Tip을 이멜로 보냈으니 참고하세요~~ sanggoo100@jinbo.net으로 보냈심다.부가 정보
sanggo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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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이런, 고마워서 어쩌죠..?^^ 보내주신 전화번호 덕에 마음이 참 든든해졌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아프니까 너무 답답하고 막막하더라구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