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학 축제가 한창인 오늘

오늘, 뜻하지 않게,

아주 오랜만에 대학 축제에 갔었다.

옆에 앉아 술을 마시던 라나씨는 학생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대학에 들어간 해 5월.

축제 기간에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축제와 함께 상상했던 화려한 드레스가 없어서 였는지

또 영화에서 봤던 쌍쌍파티 같은 행사에 같이 갈 남자친구가 없어서 였는지

뭔가 내가 꿈꾸던 것과는 다른 현실이 싫어서 학교는 안가고

마침 비도 오고 비오는 날은 학교에 안가던 그 시절의 내 습관을 따라

나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처음 시작은 단순히 바다였다.

바다를 따라 기차를 탈 수 있다는 수인선 꼬마열차를 타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수원역에 도착해보니, 수인선 열차가 바로 며칠전에 없어진 것이었다.

허탈함과 함께 비오는 바다에 대한 바램은 더욱 커졌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인천으로, 월미도로 갔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바다는 거기에 없고, 온통 흙탕물만 출렁이고 있었다.

그래도 간 김에 '바다 그리고 노을'이라는 이름의 까페에 혼자 들어가 '파르페'도 먹고,

바다 그리고 노을 이라는 그 까페 날적이를 앞에 놓고는, 한마디 적고 비오는 월미도 길 한번 보고, 또 한마디 적고 흙탕물 한 번 보고 하다가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오는 차를 탔다. 하지만 집에 가기가 싫었다.

 

친구한테 이만원을 급하게 빌려 청량리에서 밤 12시 반에 떠나는 강릉행 기차를 탔다.

호우주의보,폭풍,바다,밤기차 그리고 혼자가는 여행, 다소의 두려움과 설레임 뭐 이런 기분이었다. 옆에 앉은 조금은 어둡고 껄렁해 보이는 남자가 이것저것 물어봤고, 나는 참 성실히도 대답했다. 1학년에다가 축제기간에 혼자 강릉에 간다니, 무슨일 있냐고 했지만 그냥 베시시 웃었던 것 같다. 깜깜한 제천을 지나 이른 새벽의 물기어린 태백을 지나

강릉에 도착했다. 경포대.

 

앗, 그런데 어제의 호우주의보는 어디로 갔는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경포대의 바다는 고요했고 한적하기만 했다. 옥수수를 사먹고,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는 백사장에 누웠다. 물결같이 밀려오는 꿈. 한참을 자고 주위를 둘러보니 백사장에 나 혼자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조용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오월의 바다 햇살을 한 껏 머금고 튀어나온 주근깨가 얼굴 가득 차 있었다. 내 첫 여행의 기억.

  

대학축제가 한창인 오늘.

오래 전 여행이 떠올랐고, 참으로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때, 그냥 드레스가 없어도 학교 축제에 갔으면 좋았을 걸.

아니면 영화 속에서 본 드레스를 하나 사서 입고 가도 좋았을 걸.

뭐가 그리 우울했을까?

 

내 욕망은 참으로 복잡다단하고

내 몸은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왜 이리 많은가

상상은 현실에 목마르게 하고

움직이지 않는 목마름은 관조와 우울을.

대체로 우울하고 관조적이며 가끔, 아주 가끔 미친 열정이 찾아오는

내 삶의 패턴에 너무나 지치는 하루.

이젠 좀 미치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