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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언니, 안 그래도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잘 지내요? 한국은 긴긴 여름이 계속 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새 겨울이 오나봐요. 짧은 가을이라 더 애틋했겠네요^^ 작년 이맘 때 어느 밤, 자전거를 타고 은행잎이 바람에 막 휘날리던 거리를 달릴 때의 그 느낌이 떠올라요. 그날 밤 그 바람이 너무 좋아 내가 바라는 삶은 이 거리를 걷고 있는 거 그 자체야 라며 혼자 황홀해했던 것 같아요..ㅋ 여긴 도무지 계절에 대해 뭐라 말 할 수가 없어요. 어느 날은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주근깨가 무럭무럭 자라고, 어느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어느 날은 엄청 추워서 꽁꽁 동여매고 다녀도 뼈가 시리고... 너무 다이나믹해서 지루하지는 않아요^^ 어제는 집 앞 북해바다(^^)를 산책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위의 햇살을 맘 껏 즐겼답니다~(완전 자랑 모드임!) 지난번에 언니한테 이멜 보낼 때는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 때는 적응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새롭고 신기해서 마냥 들떠있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서 큰 덩어리로 보이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참 이질적이고도 낯설고 다른 세상에 내가 놓여져 있더라구요. 유럽에서 아시아인으로 그것도 이 사람들에게는 낯선 한국에서 온,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도 못하는, (나이도 좀 있는^^) 여자로 지낸다는 건 참 새로운 경험이에요. 이들 문화가 어색하고, 어색하니 싫어지기도 하고, 적응은 해야겠는데,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내가 있어 적응하기를 꺼려하고... 거 참 복잡한 심정이에요!!! 요즘 가장 싫어하는 말은 땡큐! 와 쏘리! 아, 뭐 그리 고맙고 미안한지 하루에도 수백번은 듣고 말하는 그 말과 피상적이라 느껴지는 친절함이 슬슬 거슬리고 있지요~ 또 요즘 가장 꺼려지는 사람은 영어로 빨리 말하는 사람! 아니,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도무지 앞에 있는 사람이 알아듣는지 못 알아 듣는지 생각도 안하고 왜 그리 빨리들 말하는지.. 정말! 그들의 일방 통행은 견디기가 쉽지 않네요^^ 그럴 때면 예전에 라주가 안젤라 언니한테 "쏘냐는 말도 천천히 하는데..."라고 했던 얘기가 생각나요...ㅋㅋ 내가 빠른 한국말을 구사하지 못하는게 얼마나 큰 장점이었는지, 새삼 느껴지더라구요~~~ㅎㅎ 여튼 일상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이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 생각 많이 하고 있지요. 그 때의 나, 그리고 친구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깊이 공감하기도 하면서요... 뭐,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건 아니고, 언제나 그랬듯이 사는게 공부고, 내 고민이 공부라고 우기고 있어요~ 아,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깐 주위 친구들 나이도 알게 되는데, 어디서나 최연장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여기 오기전에 울 아빠가 "늦었지만, 열심히 해라!" 라는 말이 뭔지 이제야 알겠더라구요...ㅎㅎ 그건 그렇고, 언니는 어떻게 지내요? 어제는 인도,파키스탄,이란을 여행했던 일본 친구를 만나, 그 친구 얘기할 때 마다 정말? 정말? 와. 좋았겠다!를 연발하며 방방 뛰었어요. 떠나고 싶은 바람은 잘 누그러 뜨리고 있는 건가요? 궁금해요.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정민이 소식도 궁금했는데, 잘 됐음 좋겠네요... 그 녀석 넘 범생이라 가끔 얘기할 때면 에구 답답다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워낙 무던하고 성실한 친구라 좋은 결과 있길 바랬거든요...셤 잘 보라고 이멜이라도 보내주고 싶은데, 제가 멜 주소를 한국에 놓고 왔지 머에요? 언니 혹시 그 친구 주이멜 주소 있음 알려 주세요... 아, 글고 베니따, 버나드 그리고 그 새 어린이가 된 아들내미 사진 잘 봤어요. 반가운 얼굴들!!! 참 좋아 보이네요. 그렇게 소원하던 아이도 낳고, 스리랑카에서 자리도 잡은 거 같아 보이는데... 그렇죠? 참 신기해요.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여전한 얼굴들인데 흘러간 시간 만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으니까요...그렇게 흘러가다 어느 날 다시 만나면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울까??? 보고 싶네요..버나드, 베니따, 가팔, 작은가팔... 참, 겨울이라 단추 없는 옷 찾기도 쉽지 않을 텐데...ㅋ 언니 친구분 잘 지내고 계시죠? 요즘도 중국집에서 데이트??? ㅎㅎ 해방 전후에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 였던 중국집이 복고풍 바람으로 다시 돌아온 건지, 정말 잼나는 커풀입니다!!!^^ 부러워요~~~ 날도 추워지고, 주변에 노골적인 애정 표현의 커풀들도 너무 많고, 집에 전화할 때 마다 엄마는 아직도 못 찾았냐며 빨리 좀 구해 보라고 성화인데다(울 엄마는 왜 날 영국에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슬슬 외로워지고 있는데... 어쩌죠??? 내가 여대에 다니고 있다 싶게 주변엔 모두모두 여자친구들이고, 오며가며 만난 사람들 중엔 그닥 맘에 드는 친구도 없어... 외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ㅎㅎ 예전에 넘 연애를 많이해서 주님께서 이런 시련을 안겨 주시나봐요~~~^^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은총을 주신다면 그 날 만이라도 성당에 갈 의사가 있는데... 아실랑가 모르겠어요~ 와~ 쓰다보니 무지 긴 이메일이...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재미나고 또 슬픈 에피소드도 많지만 다 옮기려면 오늘 하루 꼬박 써도 모자랄 거에요..ㅎㅎ 그럼 언니,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친구분한테 안부도 전해주고, 좋은 시간 많이 보내세요. 글고 또 연락해요~~~ 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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