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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비겁함...

아는 변호사가 그러더군요. 왠만하면 재판같은 거 하지 말라구요. 특히 저같은 사람은 재판하면 안된다구요. 돈 없고 배운 거 없는 놈 재판해봐야 돈만 깨지니까 재판 할 일 있을 거 같으면 그냥 돈 물어주고 말라고 하네요. 그게 재판비용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그러면서 끝에 덧붙이는 말이 "법이니 논리니 하는 건 결국 배우고 가진 놈들 편하게 세상 지배하자는 수작이다."라나요?

예전부터 논리라고 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성이라는 데 대한 회의죠. 저 자신이 느껴봐서 알거든요. 만화도 그려봤고 게임도 만들어봤고 요즘은 소설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다양한 캐릭터의 다양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그려내야 하죠. 그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논리가 필요하구요. 설사 그것이 살인자라 해도 말이죠.

이성으로 변명하고자 하면 변명하지 못할 게 없습니다. 살인도, 강간도, 강도도, 사기도, 부정도, 다 변명이 됩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집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됩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다고 여기면 됩니다. 그 다음에 열심히 머리를 굴리죠. 아는 것 모르는 것 있는대로 끌어모아 그 논거로 삼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논리 완성이죠.

논리와 비슷한 말로 궤변이라는 게 있습니다. 논리인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은 논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궤변이라고 하는 그 상대 입장에서 그것은 논리입니다. 이쪽에서 논리라 하는 것이 저쪽으로 가면 궤변이 되구요. 누가 옳은 것일까요? 누가 논리이고 누가 궤변인 것일까요? 나는 논리이고 저들은 궤변일까요? 아니면 저들은 논리이고 내가 궤변인 것일까요?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논리의 근거가 되는 가치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 의해 부여된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애초부터 가치라고 하는 것이 부여되지 않습니다. 도롱뇽이 더 귀중하고 돌덩이는 더 하찮고 하는 그런 가치라는 것은 원래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었을 뿐이죠.

가치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발명품에 불과합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자갈보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수석이 더 귀중한 것처럼 사람의 생명마저도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계량화하여 측정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생명은 더 귀하고, 누구의 생명은 덜 귀한 것처럼 말이죠. 민주주의도, 인권도, 자유도, 평등도, 권리도, 의무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인간에 의한 것이니까요.

당연히 논리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가치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사람의 생명을 민주주의와 같은 이념보다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면 그러한 전제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국익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 쓸데없이 남의 나라 가서 죽을 짓 자초한 인간에게 잘못이 있다는 논리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전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논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논리라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전제입니다. 이성이니 논리니 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그 본질적인 감성이 느끼고 판단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소중한가에 대한 직관적인 가치부여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논리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한 것은 그러한 전제에 대한 동의여부를 결정하고 따질 문제인 것이죠.

가끔 논리적인 글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신의 논리에 도취되는 사람들도 보죠. 그 논리에 도취되어 어느새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을 봅니다. 전제가 되어야 할 가치가 논리에 종속되어 오로지 논리에 의해 그 옳고 그름이, 그 소중하고 하찮음이 결정되어버리는 모습을 보면 때때로 서글프기도 합니다. 도대체 뭘 위한 논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소중하고 하찮고를 결정하는 것도 논리가 아닙니다. 직관입니다. 감성입니다. 그렇다고 믿는 그 본질적 마음입니다. 논리는 그것을 설명해 풀어낼 뿐입니다. 그러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다른 이를 납득시키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기 위한 논리이지, 논리에 의해 옳고 그름이, 소중하고 하찮음이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그 직관적인 믿음을 배제한 논리란 얼마나 비겁하고 저열한 것일까요? 자신의 진심어린 감성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합리와 논리에 이끌려 판단한다는 것이란 얼마나 비겁하고 저열한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해 그렇게 예민하게 느끼고 고민하는 것인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성이니 논리니 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살아있지 않은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세계 뿐이라는 것을요.

예전에 알고 지내던 방송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연기자가 연기를 잘 할수록 그것은 가식이 되어간다."구요. 무슨 뜻이냐면 원래 현실에서 그렇게 멋드러지고 깔끔하게 감정표현을 하고 대사처리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겁니다. 오히려 더 어색하고 더 서툴죠. 그럼에도 연기자가 멋드러지고 능숙하게 연기해내면 사실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환상이죠. 연기라는 것에 대한.

논리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원래 논리로 정해지지 않은 부정형의 가치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논리라 하는 것은 그것을 정형화해서 끄집어내는 과정일 뿐이죠. 그런데 그것을 전부라 여겨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근거로 세상을 정형화시키려 합니다. 일부 진식인들이 말하는 "일관된 철학을 갖지 못한 어리석은 국민"이라는 말과 같이 말이죠.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런 논리의 환상을 봅니다. 논리에 취해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보려는, 그 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지으려는 사람들을 봅니다. 논리적인 사람들입니다. 저따위보다는 훨씬 많이 배우고, 훨씬 많이 알고, 훨씬 논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죠. 그 믿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결국 사람은 같은 세상을 살 수 없는 법인 모양입니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모두 다르니 결국은 다른 세상인 셈이죠. 그것을 느낍니다. 서로 섞일 수 없는 거대하고도 절대적인 층위를요. 저같은 주제로는 어쩔 수 없는 강고하고도 높은 벽입니다. 한낱 글 몇 줄로 어찌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요즘 그것을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넋두리입니다. 그냥. 논쟁이라도 할까 몇몇 게시판에서 끼어들었다가 끝내 포기하고 다 털고 나와버렸습니다. 왠지 피곤해서요. 게시판 하나 분량의 글로 그 전제까지 모드 설명하고 설득하고 납득시킨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익한 일인가를 느끼게 되니 엄청 피곤해지더군요. 남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넋두리 하나. 역시 나는 그냥 돈이나 벌어야겠습니다. 제게는 무리에요. 이런 건.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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