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 논쟁을 자주적 사고의 계기로"
  [기고] 역사적 오류와 논쟁의 현실화
 
  2007-02-16 오후 3:16:51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계기로 3주 가까이 트로츠키주의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찬반 공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국내외 트로츠키주의자의 현실 인식과 활동에 대한 평가도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논쟁과 관련해 모스크바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현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의 박사 과정에 있는 정다신 씨가 논평을 보내왔다. 정 씨는 소련 몰락 후 공개된 볼셰비키 당시의 비밀문서 등 사료에 입각해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크론시타트 반란과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의존하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했다.
  
  
특히 정 씨는 이 글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국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며 "과거 혁명가의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이러한 논쟁들을 접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단 몇 마디로 '다함께' 류의 역사 왜곡을 교정해 줄 능력이 있는 역사학자들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여겨서인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함께가 '국제사회주의자(IS)'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절, 그들은 그나마 학계에서는 유일하게 자신들의 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정성진에 대해 IS 그룹에 속해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만 살아있는 지식인 분자'로 취급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이토록 정성진을 옹호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관념론의 소산이자 자신들의 지주 격인 국가자본주의론을 자신의 조직원도 아닌 이가 풍부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 분자의 입은 어느새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그 누구보다도 저들에게 힘을 실어 줄 이데올로그로 전화하여 칭송받게 됐다. 이번에 <프레시안>을 통해 제기된 논쟁에 이들이 이렇게 핏대를 세우게 된 이유도, 그 동안 타 정파나 집단들이 무시해 오던 다른 때와는 달리,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다함께가 신주처럼 모시는 국가자본주의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토니 클리프에 의해 발명된 국가자본주의론은 저들이 항상 자신들이 트로츠키 교조주의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애호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자신들이 비판에 열려 있고 심지어 트로츠키주의 그 자체까지도 비판하는 융통성 있는 활동가들임을 보여 주려고 애용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클리프와 그 계승자들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교과서에 나온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진정 역사를 왜곡하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 그룹, 아니 저들이 암송하는 영국 SWP의 이데올로그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모든 혁명을 국가자본주의 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유일무이한 노동자 혁명이었다는 러시아 혁명을 계속 왜곡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늘 혁명 계급이 노동자 계급인지, 또 '무슨 무슨 주의'에 오염된 이들인지가 강조돼 왔다.
  
  노동자 계급은 거의 예외 없이 볼셰비키를 지지했고 문맹에 가까운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무슨 주의에 물들고 무슨 주의자들인 양 과장, 왜곡하는 나쁜 습관은 이런 왜곡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시기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은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고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반 볼셰비키였다는 특유의 이분법 논리로 역사를 과장, 왜곡하는 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이전 수병들과는 다른 농민 출신 신병들이 주가 되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이정구는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문서 운운까지 하며 이 점을 무슨 엄청난 일인 양 하고 있다. 바로 그 비밀문서에 나와 있는 당시 노동자 계급 주도의 수많은 반 볼셰비키 파업, 반란 등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고 말이다.
  
  페트로그라드에는 푸틸로프 공장 하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수십 배는 더 되는 러시아에 도시가 페트로그라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트로그라드에는 노동자 계급 중에 상대적으로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 많았다. 그럼에도 심지어 최대의 볼셰비키 지지 기반인 푸틸로프 공장마저 잔혹한 전시 공산주의 기간 내내 반 볼셰비키 파업이 진행된 사실을 이정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주로 식량 부족에 있는 것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버릇도 영국 이데올로그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소비에트 선거에 대한 부분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박정희까지 빗댄 부분을 보며 이정구가 진정으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일부 반 볼셰비키 세력에 철저하게 조종된 농민 출신 신출내기들의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당시 전국적으로 줄을 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요구였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되었다. 당시 푸틸로프 공장은 친 볼셰비키 노동자들의 주도 하에 간신히 파업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외 수많은 페트로그라드 공장들에서의 파업은 이정구의 주장과는 달리, 크론시타트 반란 당시에도 이어졌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때 내전은 유럽, 러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종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을 아사 직전으로 몰고 가던 곡물 징발은 계속되었고, 볼셰비키가 주장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비롯한 민주주의 약속은 파괴되었다. 크론시타트 반란을 비롯한 일련의 파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지극히 정당한 노동 대중들의 항의 행동이었다.
  
  지지하기 애매한 집단마저도 '비판적 지지' 운운하는 다함께가 감히 굶어 죽어 가는 생존권과 관련된 항의 행동을 억지로 노동자와 농민으로 나누어 한 쪽을 반동으로 몰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 당시 여타의 공장에서의 파업과 시위에는 볼셰비키 지지 노동자들의 볼셰비키에 대한 항의 행동이 즐비했다는 것만은 꼭 알아 두기를 바란다.
  
  이정구가 정직한 활동가이고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에서만의 일부 농민 출신 수병의 반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 외의 전 러시아에서까지 벌어졌던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크론시타트 수병들의 반란은 정당했다. 진압 이후 볼셰비키가 전적으로 전시 공산주의를 폐지하고 수병들의 주장 중 중요한 부분인 농업과 가내 공업 등의 자유시장경제 요구 등의 맥락에서 시장 요소를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채택한 것은 이정구의 말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요구가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농민뿐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볼셰비키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완전한 흑백 논리로 이 당시부터 소련 붕괴 때까지 지속되었던 크론시타트 반란에 대한 거짓을 그대로 인용하여 크론시타트 반란을 왜곡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이기는커녕 스탈린주의의 교조에서 한 발 자국도 못 벗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크론시타트 반란의 주역들이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다함께 동지들은 또 무슨 이유를 댔을까? 혁명의 대의를 이해하지 못 한 후진 노동자들, 멘셰비키 영향 하 노동자들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제발 현실로 돌아오라!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노동자의 군대화, 노동조합의 국가 기관화 등등 명백한 반사회주의적 조치들을 옹호하려거든 똑같은 맥락에서, 아니 맥락은 그만 두더라도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알고 주장하기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국 SWP와 같은 외국의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가 아닌 사료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며,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초를 갖는 것이다. 영국에서 내려 온 거 그냥 아무거나 무조건 외지 말고 사료를 근거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국 SWP의 이론은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과 거리가 멀다. 트로츠키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고 자평하는 클리프의 주장만 절대적으로 따르는 다함께에 그들이 좋아하는 '~주의'를 갖다 붙이자면, 트로츠키주의자라기보다는 클리프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한 관념론의 극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들을 클리프주의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라고 치장하는 데에도 조금 더 나을 듯 싶다.
  
  이재영이 틀린 건 단 한 가지다. 저들은 마르크스 훈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트로츠키주의와도 별 상관이 없다. 그저 클리프 교과서를 암송하는 관념론 집단일 뿐이다. 이미 오래 전에 파산 선고를 받은 국가자본주의론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이론일지는 몰라도 현실 사회주의의 모습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의 70년은 우리가 그리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자본주의와 닮은 점은 더욱 없었다는 점을 이 땅의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있다. 영국 SWP에서 소련 붕괴 직후 파견한 전문가들조차 소련 땅에 발을 디딘 직후 현실과 맞지 않는 자신들의 관념론을 뼈저리게 깨닫고 자기비판하고 다른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조직원으로 전환하였고, 지금까지도 유독 이들만이 최소한의 뿌리조차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녕 모르겠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는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논쟁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번 논쟁이 더욱 많은 활동가들, 연구자들로 하여금 국가자본주의론과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 왜곡 등에 반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투쟁에 헌신하는 이들은 많다. 문제는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이들이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혁명을 외친다고 해서 운동권적 도덕률에 있어서 우위를 점한다는 착각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소련 체제를 지키고자 했던 트로츠키조차 저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저 오류 정도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들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그의 이름을 빌려서 그나마 '오류'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할 뿐,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날선 용어로 비판했을 것은 자명하다.
  
  다함께가 진정한 변혁 운동가 집단이라면 과거 혁명가들의 사상과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 자신을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주의자로 거듭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다신/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 연구원
 
 
 
 
"낡은 '사민주의' 비행기로는 절대로 날 수 없어" 2007-02-12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하나…훈고학은 이제 그만" 2007-02-06
"지금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2007-02-05
"무조건 '재'부터 뿌려놓고 보자는 심사인가?" 2007-01-31
"트로츠키주의가 죽어야 트로츠키가 산다" 2007-01-29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새책]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눈에 거슬리는 과장들"
 
 
 

책읽기는 즐거워도 책에 대한 글쓰기는 즐겁지 않다. 글쓰기를 작정하고 책을 드는 순간부터 책읽기가 숙제가 되어 버리니, 소란스런 지하철이나 쾌적한 화장실에서 가끔 책 꺼내 보는 소소한 재미는 사라지고, 책상 위에 책 펴두고 밑줄 긋는 고역이 시작된다.

더군다나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 같이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족히 반 년 거리인데, 출판사 영업팀이나 언론 편집자의 시간 관념이 그런 ‘장구한 세월’을 용납할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서평’이 아닌 ‘책소개’다.

경상대 경제학과에 정성진 교수가 내놓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첫째 가는 장점은 그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트로츠키주의를 소개한 이들은 크리스 하먼, 토니 클리프,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이 영국 사람들이었는데, 트로츠키가 영국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아는 ‘교양인’이라 할지라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들의 눈으로 번역된 트로츠키보다는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가 훨씬 손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에게는 나름의 특수성이 있어 마땅하므로 정성진의 책은 공간적 시간적 번역을 해야 하는 독자의 수고로움을 덜어 준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한국 경제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적 해석은 아니다. 부지런한 독자라면, 정성진이 ‘영구군비경제론’이나 ‘장기파동론’이라는 방법틀을 이용해 한국 경제를 분석한 『마르크스와 한국경제(책갈피, 2005)』를 이미 읽어 보았을 것이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여러 가지 주의(主義)를 다루고 있는 이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먼저 읽은 후에 그 책을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1부에서 3부까지는,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 삼아 읽어도 훌륭하다. 정성진은, 리카르도,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가들, 레닌, 포스트모너니즘과 알튀세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네그리의 『제국』, 그리고 신정완, 이병천, 장상환 같은 ‘케인즈주의’ 학자들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19세기 초 이래 정치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됐던 경제이론을 일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대학 학부 수준에서 정치경제학 기초를 이수한 분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쟁점들을 공부하는 ‘고급 정치경제학’ 과정이나, 대학원 수준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과정의 교재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머리말).”

4부는 트로츠키의 사상에 대한 소개인데, 물론 ‘트로츠키주의’의 눈으로 해석된 트로츠키 사상이다. 이를 위해 정성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 2000년에 사망한 토니 클리프의 생애를 되짚으며, 트로츠키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투쟁을 통해 ‘트로츠키주의’를 도출해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5장 ‘21세기 사회주의와 참여계획경제를 위하여’에서는 계산 가능성, 기술 혁신 문제 등을 다루며 사회주의 대안 경제의 원칙을 제시한다.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는 …… 차베스가 제창한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그로 인해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11장)”는 언급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끼리의 유행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진보 진영’에서는 과히 그렇지 않다.

“스탈린주의는 청산되기는커녕 알튀세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민주주의, 시장사회주의, 자율주의 등 ‘포스트스탈린주의’ 경향으로 변이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진보 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머리말)”는 인식도 과장스럽다.

그런 조류들이 스탈린주의 흥망성쇠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내게 24시간쯤의 시간만 주어져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시장사회주의 같은 온갖 조류들과 트로츠키 이론의 연관성도 능히 증명해낼 수 있다. 비판의 대상이 스스로 무슨 주의라거나 무슨 주의가 아니라는 관념에 묶여 있지 않는 한, 무슨 주의라는 낙인은 요즘 시류에서는 비판 논거로 별 쓸모가 없을 듯하다.

여러 진보적 사회운동에 간여하고 있는 진보학자들이 거시적 변혁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비판은 타당하다.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인 장상환 교수(경상대 경제학과, 진보정치연구소장)는 “규모가 크고 복잡한 경제에서는 계획의 한계가 명확하다. 정확한 정보 수집의 불가능과 동기 유발의 어려움, 개인의 개성적 발전의 저해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한국경제의 위기와 민주노동당의 대안」, 2005)”라며, 전통적 시각을 고수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보화의 핵심인 네트워크 경제의 발전에 따라 아래로부터 참여 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20세기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11장)”라거나, “가령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한다면,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을 통해 이를 수집 분석하여 전국적 및 전세계적 규모에서 생산과 투자를 계획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15장)”는 정성진의 주장도 장상환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한 것은 아닌가?

트로츠키뿐 아니라, 혁명적이든 개량적이든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계산 가능성 같은 행정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경제 제도의 지배적 지위에서 나타나는 자연사적 경제운동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권능을 사회주의의 요체라고 보지 않았는가?

스탈린주의가 트로츠키를 곡해한 것처럼, ‘트로츠키주의’ 역시 읽고 싶은 트로츠키만을 읽는다. 정성진은 후기 레닌을 ‘경제주의로의 후퇴’라며,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과 신경제정책을 예로 든다(4장). 그런데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하에서는 - 오로지 그 밑에서만! - 민주적 문제의 사회주의적 문제로의 성장이행이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러시아혁명사」, 1932)”며 긍정한다.

정성진은, 신경제정책이 “진지하게 장기간에 걸쳐 실시될 것”이라는 레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인용한다. 그런데 트로츠키도 “퇴각이되 항복은 아니(「신경제정책과 세계혁명의 전망에 대한 보고」, 1922)”라며 신경제정책을 과도단계로 인정하고, 그 과도기가 “한 세기 또는 반 세기 동안(「코민테른 강령초안 - 기초 비판」, 1928)” 계속되리라는 예측도 제시한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실천적 문제의식에서 신경제정책은 ‘과도단계, 시장요소, 유럽혁명과의 관계’로 동일하게 존재했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주의’와 다르다.

정선진의 책은 그가 비판하는 ‘스탈린주의 교과서’의 문법을 따른다.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배분할 수 있다 ……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신속할 수 있다 ……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귀결될 것이다(15장).” 트로츠키주의 경제이론대로 따르면 다 해결되고, 잘 될 것이다!?

이 인용문의 ‘트로츠키’를 ‘스탈린’으로만 바꾸면 국가사회주의체제론의 자동 해결론과 본원적 우월론에 완벽하게 일치한다. 매사가 그리 잘 풀린다면야 뭔 걱정이 있겠는가?

“트로츠키가 추구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경제학비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방법과 마르크스주의 역사를 복원하고, 이에 기초하여 최근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지배적 경향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머리말).”

그래서인지 정성진은 이 책의 초교지를 ‘다함께’에 보내 조언을 구했다. 나는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이 트로츠키를 잘 알고 자주 인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이 ‘트로츠키주의’의 반스탈린주의 투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가 어떤 식으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크론슈타트 반란과 노동자 파업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또,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트로츠키는 노동조합과 평의회의 자율성에 반하는 결정과 실천을 했다. 내가 굳이 트로츠키의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은 걸출한 혁명가였던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트로츠키주의’ 교과서의 문구들을 신봉하는 것보다는 트로츠키의 실천적 굴절을 연구하는 것이 트로츠키가 꿈꾸었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살려내는 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함께 실립니다.

 
     관련기사
· 필자 노력 전혀 이해 못한 책소개
필자 노력 전혀 이해 못한 책소개"
[이재영 서평 반론] "너스레보다 정독이 중요하다"
 
 
 

정성진 교수의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쓴 이재영 씨의 글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는 그 동안 스탈린주의(NL과 PD)와 각종 포스트스탈린주의(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 등)에 맞서 트로츠키를 지렛대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새로운 대안으로 구체화하려는 정 교수의 노력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정 교수의 문제의식과 논의 과정, 그리고 잠정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 교수의 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정도는 할 수 있을 법한데, 이재영 씨가 찾아낸 이 책의 장점이라곤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에 대한 책”, 혹은 엉뚱하게도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이라는 것뿐이다. 그런 다음 이재영 씨는 “서평이 아닌 책 소개”를 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어기고, 정 교수와 그가 지지하는 ‘다함께’를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라며 비난하는 것으로 지면을 채웠다.

이재영 씨는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며 먼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는 (…)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다함께’나 정 교수와 같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끼리의 유행”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동유럽 붕괴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TINA)이 득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듯했던 ‘마르크스의 유령’이 지난 1997~98년 세계경제 위기와 함께 다시 살아나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지난 세기말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였음은 이재영 씨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운동, 그리고 21세기 들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이 고양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차베스를 비롯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에서 더 나아가 ‘21세기 사회주의’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로 되고 있음은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조금만 서핑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하고 있는 차베스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올 가을 예정된 ‘제5차 국제마르크스대회’(Congress Marx International V)의 대회주제가 ‘대안 세계화/반자본주의’이고, 우리나라 좌파 논객들의 대표적 연합체인 ‘맑스코뮤날레’의 올해 대회주제 역시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 세계화’인 데서 알 수 있다.

게다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2006.12.28)나 <중앙일보>(2007.1.4) 같은 대표적인 국내외 보수 언론들조차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특히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한 데서 알 수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옛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민주노동당이 등장했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의 내용에 대한 이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대안 사회 모델 중의 하나로 사회주의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이재영 씨는 정 교수가 “~주의”라고 낙인을 찍는다고 힐난하지만 정 교수의 책, 특히 제3부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자원들’을 조금만 훑어보아도 정 교수가 자신과 다른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 씨가 계획경제의 불가능성을 반박하는 정 교수의 주장을 1930년대의 사회주의 계산 논쟁과 비교하고 더 나아가 이와는 무관한 1921년의 신경제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재영 씨가 주장하듯이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하고 있지 않다. 정 교수는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한 복잡한 현대 경제에서는 시장 없이는 계산이 불가능하다며 시장 폐지(즉,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을 논박하기 위해 시장의 매개 없이도 참여계획경제 방식으로 계산과 경제의 조절이 가능함을 보였을 뿐이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과 트로츠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신경제정책을 정 교수가 경제주의라고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트로츠키 자신과 정 교수의 트로츠키주의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20년대 소련의 신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정 교수가 문제삼은 것은, 이 책 14장에서 보듯이, 신경제정책의 시장사회주의론적(부하린) 혹은 일국사회주의론적(스탈린) 정당화였으며, 당시 혁명의 고립과 노동자계급의 해체의 조건에서 신경제정책과 같은 전술적 후퇴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의 파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 당시 트로츠키는 우랄산맥 지방에 출타 중이었고, 그곳에서 곧바로 모스크바로 가서 제10차 당대회에 참가했다. 진압 책임자는 서부전선 담당 적군 사령관 미하일 투하체프스키였다.

1917년 10월 혁명 당시 혁명의 최정예 부대였던 크론슈타트 수병과 1921년의 수병은 계급 구성이 달랐다. 페트로그라드의 공업 노동자들과 가장 선진적인 농민들로 이루어진 1917년의 수병들은 내전 동안 혁명을 방어하며 전투를 이끌었기 때문에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했다. 반면 1921년의 수병은 새로 징집된 농민 신병들이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은 반혁명 위협이 사라진 뒤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를 제거하자고 주장하는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요구는 반혁명 세력의 복귀를 부르는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볼셰비키가 이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백군과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계급들은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반란을 반혁명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을 진압한 것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 결정이었고 불가피한 폭력이었다.

이재영 씨의 논법은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사람이 죽은 뒤 앙상한 뼈만 남은 것을 두고 '같은 뼈조각이니 사람과 원숭이가 같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트로츠키에게도 약점과 실수가 있었고 또 1956년 헝가리혁명에 대한 소련의 진압을 옹호하거나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진압한 중국 지배자들을 옹호한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자기해방이라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정수를 보존하고 후대 사회변혁 운동가들에게 전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와 정 교수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한편, 이재영 씨는 ‘다함께’가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 운운하며,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함께’가 북한을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는 사실과 북한 지배자들의 억압에 반대하고 탈북자들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남한의 범자민통 동지들은 대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피착취·피억압 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며 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 운동의 일부다. ‘다함께’가 이들의 전략과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이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다함께’는, 이재영 씨의 주장과 달리, 트로츠키가 말한 공동전선 정신에 부합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재영 씨는 또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 운운하며 ‘다함께’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나 자유게시판이 없는 것이 ‘다함께’만의 “해괴한” 특징인가? 또,자유게시판이 없다는 것이 ‘다함께’와 그 정치적 청중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자유게시판이 있는 그 수많은 단체와 기관들이 과연 ‘다함께’보다 민주적인가?  ‘다함께’ 홈페이지에는 대표 연락처와 메일 주소가 있고, ‘다함께’의 주장과 그 청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맞불>을 발간하고 있다.

오히려,정치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쑥덕공론을 펼치거나 지지하고 연대해야 할 운동을 그 지도 세력의 정치사상을 핑계되며 지지하지 않는 종파주의가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물론 진보진영 내부에도 다양한 차이들, 상충되는 정치적 노선들이 존재하며, 이들 간의 비판과 토론은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는 것으로 존중되고 고무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입장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진보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정말 오랜 만에 나온 역작임은 이재영 씨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영 씨는 자신이 지지하지도 않는 트로츠키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며 너스레를 떨 것이 아니라, 최소한 “24 시간 쯤”은 투자해서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속한 사회민주주의 혹은 케인스주의의 입장에서 '다함께'에 대해서든 정 교수에 대해서든 인식과 대안에서의 차이와 논리적 비판을 분명하게 제기했더라면, 21세기 우리나라 진보의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의 발전에 약간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련기사
·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2007년 02월 02일 (금) 08:56:12 이정구
 
2007년 01월 29일 (월) 14:06:38 이재영 기획위원

누가 역사를 날조하는가?
[트로츠키 논쟁]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니
 
 
 

이재영 씨(이하 존칭 생략)는 내가 “악질적인 역사 날조”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그런지 크론슈타트 반란 문제부터 살펴보자.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과 그 진압은 우익과 자유주의자, 이재영을 비롯한 온갖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물론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애호하는 쟁점이다. 이 사건이 볼셰비키가 자기 자신의 지지자들을 공격한 대표적 사례이자 러시아 혁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레닌, 트로츠키 정치와 스탈린 공포정치의 연속성 명제를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호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내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 대부분이 ‘농민 신병’이라고 말한 것은 실은 크론슈타트 반란 연구의 고전인 <1921년 크론슈타트>의 저자이자 반란군에 호의적인 아나키스트 역사가 폴 아브리치 저작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 문서들은 이 통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또,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 직전인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고 주장하면서 크론슈타트 반란을 마치 ‘제3의 노동자 혁명’처럼 미화하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아브리치에 따르면, 크론슈타트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페트로그라드의 파업은 마무리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반란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란 진압에 동조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들도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이 반란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실, 내전 말기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주로 식량 부족 때문이었는데, 이들이 식량 배급을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한 ‘곡물 징발 중단’을 요구했던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 1921년 크론스타트 반란 당시의 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이재영은 당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다면서, 그 증거로 바로 그 문장 다음에 “총알을 아끼지 말라” 운운한 <크론슈타트에 관한 진실>을 인용한다. 그런데 이재영은 그 인용문을 쓴 것은 ‘노동자 반대파’가 아니라 크론슈타트 반란 지도부인 ‘임시군사혁명위원회’인 것 정도는 알고나 인용했어야 했다.

또, 이재영은 자신이 크론슈타트 반란군과 함께 노동자 민주주의의 구현체로 애지중지하는 ‘노동자 반대파’조차 크론슈타트 반란 사태가 터지자 당시 10차 당대회에 참석했던 ‘좌익공산주의’ 등 다른 반대파들과 함께 투하체프스키의 진압 부대에 자원 입대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이재영은 또,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내 주장도 “거짓”이며 “악질적인 역사 날조”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볼셰비키와 공산당에 호의적일 리 만무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반란군이 “경제 개혁 이외에도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와 … 공산당 독재의 종식 … 등을 요구했다”고 서술한다. 실제로, 반란군은 군대, 공장 등에서 볼셰비키 기구들을 폐지하라고 요구했고, 당시 크론슈타트 함대에 있던 볼셰비키 정치위원 등 수백 명을 체포 구금했다.

물론 반란군이 내건 15개 강령에 “소비에트 선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 반란군들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어떤 초짜 운동가도 어떤 조직이나 운동의 정치적 성격을 그들이 내건 슬로건만을 갖고 판단하지 않는다. 진지한 역사가는 박정희와 공화당이 “한국적 민주주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다름 아닌 그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조차 반대했던 반란이고, 1920년 노동조합 논쟁에서 트로츠키에 맞서 당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했던 ‘노동자 반대파’까지 무력 진압에 동참한 반란이다. 그런데 그 반란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한 ‘제3의 노동자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재영의 주장처럼 크론슈타트 반란군이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요구하고 실현하려 했다면, 도대체 왜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 로마노프 왕조의 복귀를 노리는 러시아 왕당파들, 자본가들의 자유주의 정당인 입헌민주당,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등이 모두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했을까? 그들이 언제부터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된 것일까?

이재영의 주장은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따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발로이다. 예컨대 이재영은 내전 시기 트로츠키가 제기했던 노동자의 군대화나 노동조합의 국가기관화 주장과 관련해 이 주장들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당시 출판된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구절(트로츠키 자신은 곧 자기비판을 하며 이 주장을 철회했다)을 인용하면서 마치 트로츠키가 내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한 사람인 양 암시한다.

비판 대상에 대한 무지

이재영은 트로츠키가 1920년대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서 당내 민주주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투쟁하고 1936년 <배반당한 혁명>에서는 다당제를 주장한 사실(이는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잘 서술되어 있다)은 피해 간다.

‘다함께’는 물론 정성진도 트로츠키 사상의 적잖은 부분에 대해, 또 다양한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입지하고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과 정치에 대해서도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재영은 이 역시 전혀 “보지 않는다”. 이재영의 억측과는 반대로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만큼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먼 것은 없다.

‘다함께’는 이재영이 주장하듯이 우리와 다른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트로츠키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결코 매도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그가 21세기 사회주의의 대안 구상을 위해 중요한 자원으로 고려하는 참여계획경제의 세 가지 모델(‘파레콘’, ‘협상조절’, ‘노동시간 모델’)이 모두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적대적임에도 그들로부터 배울 것은 배운다.

또, 같은 책에서 정성진은 때로 ‘다함께’보다 더 나아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 심지어 알튀세르주의자들로부터도 수용할 것은 수용한다.

정성진과 ‘다함께’는 북한의 사회 체제를 노동자 권력과 혁명으로 타도되어야 할 국가자본주의적 착취․억압 체제로 규정하지만, 남한의 주사파가 북한 체제를 지지한다고 해서 이들을 이재영처럼 하나의 적으로 대하는 종파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들이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반전 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한 이들과도 연대한다.

이재영은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트로츠키 사상의 정수는 1906년에 발표한 영구혁명론에 있는가 하면, “망명객 시절”, 즉 1930년대의 “언행” 중에도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론이나 섣부른 제4인터내셔널 창건과 같은 오류들이 적잖이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반나치 공동전선의 필요성에 대한 글이나 프랑스, 스페인 인민전선 비판에 대한 글은 실로 탁월하다.

이재영은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는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을 반복한다. 그런데 정성진이 각종 자료와 논거를 동원해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와 같은 종류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마르크스-레닌-룩셈부르크-트로츠키)과 스탈린주의 간의 연속성 명제이다.

1989~91년 붕괴된 소련권 사회의 실체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형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임을 논증하는 작업은 정성진의 책이나 ‘다함께’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적 부분인데, 이재영은 이에 대해 완전한 노코멘트이다. 그러고는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실패를 이유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 앉았”다고 주장한다.

정성진이 옛 소련의 국가자본주의적 본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매개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스탈린주의 간의 질적 단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기초로 21세기 조건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창조적 발전과 한국적 착근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인 이재영은 물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왜 어떤 점에서 동의하지 않는지를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며 지적해야지, 이런 시도와 모색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애써 간과하며 논쟁을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우리 진보 진영의 이론과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파주의

한편, 이재영이 ‘다함께’와 범자민통의 “야합” 또는 “연대” 운운하면서, ‘다함께’가 당당하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 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이재영이 인용했듯이, 나는 지난번 글에서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광범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면 자신과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과도 기꺼이 함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야합’이라면 ‘다함께’는 ‘야합’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분파주의에 눈이 멀어 연대와 투쟁의 대의를 종파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선거에서 범PD 계열일지라도 지난해 하반기 이래 최대 쟁점인 북핵과 일심회 사건과 사회연대전략 문제에서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면 그를 지지했고, 민주노총과 현 금속선거에서는 NL계열이 아니라 노힘 등 옛 PD계열 내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이재영이 ‘다함께’의 정치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마르크스 훈고학”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다함께’ 신문이나 홈페이지(www.alltogether.or.kr)를 잠깐 둘러보아도 ‘다함께’가 “마르크스 훈고학”자들이기는커녕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정세 분석과 반전․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에 헌신하는 투사들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재영 자신이 경멸해마지 않는 “마르크스 훈고학”도 이재영처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면서도 역사와 사상을 그 전체 역사적 맥락 및 진화 과정 속에서 판단하지 못하고, 뻔히 보이는 것조차 보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것만 골라 보고, 그것도 멋대로 날조해서 진보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때로 유용하다.

사회민주주의적 본질

이재영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재영의 문제의식을 추적하다 보면 이재영이 타고 있는 ‘비행기’의 이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재영은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이 비행기의 이름은 분명히 사회민주주의다.

이는 이재영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라거나, 국유화 계획을 “앞으로 오랫동안 가질 필요도 없다”는 말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낡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자”며 이재영이 제시한 것은 전혀 새롭지 않은 사회민주주의행 비행기 티켓이다.

그러기에 이재영에게는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지적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파악”처럼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재영은 글 끝 부분에서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하고 자문하고 그 답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이재영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방법을 버리고 계급투쟁과 역사 발전을 지식의 문제로 환원하는 관념론을 채택했음이 분명히 확인된다. 이재영이 이륙을 시도하고 있다는 그 개량주의적 관념론의 비행기는 이미 지난 20세기 동안 무수히 되풀이된 이륙 실험에서 형편없이 실패한 바 있다.

이재영이 글 끝 부분에서 “아직도 멀었다”며 일갈하며 자신의 “무지”를 시인한 것이 진심이라면, 그 이륙은커녕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고 어쭙잖은 말장난과 거짓말로 호객하는 짓은 당장 그만 두고, 먼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부터 깨쳐야 할 것이다.

 
2007년 02월 12일 (월) 09:03:31 이정구 / '다함께' 회원 redian@redian.or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