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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 습격'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더이상 출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석궁 습격'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수학 교수는 '음해꾼'이었나, '내부 고발자'였나
텍스트만보기   김종배(kjbyy) 기자   
 
 
[기사 보강 : 16일 오전 11시 40분]

 
▲ 판결에 앙심을 품고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를 피습한 전직 교수 김모씨(사진뒤편 오른쪽)와 범행에 사용한 석궁을 15일 밤 경찰이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전직 교수가 현직 판사를 향해 석궁을 발사했다. 사회는 경악하는데 당사자는 담담하다 못해 당당하다. '국민저항권'을 운위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거창하다. '국민저항권'을 법치주의에 맞세운다. 하지만 '저항권'을 공유하는 국민이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저항의 방법(폭력)과 저항의 목적(처단)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미 난 것이나 진배없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사람이다. 단죄는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모든 심리가 끝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짚을 문제가 있다.

전직 교수는 "합법 수단을 거부당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합법 수단'이란 물론 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직 교수의 주장은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전직 교수가 법정에 선 이유는 교수 재임용 탈락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에 시험문제 출제 오류 시비가 있었다.

1995년,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성균관대 본고사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잘못된 전제를 제시해 결론이 날 수 없는 문제를 출제했다는 것이었다. 동료 교수와 학교가 발끈했고 그는 해교행위와 학사질서 문란, 다른 교수 비방 등의 이유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대단히 예민한 문제였다. 잘못된 출제로 억울하게 불합격된 입시생을 구제할 수도 있고, 거꾸로 동료 교수들의 학문적 권위와 학교의 위신에 심대한 손상을 입힐 수도 있는 게 그가 제기한 문제였다. 음해꾼에 대한 정당한 징계일 수도 있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부당한 보복일 수도 있는 게 그에 대한 징계였다.

이 자리에서 진위를 가릴 수는 없다. 설령 몇몇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 진위를 가린다 해도 그것이 공인될 것도 아니다. 문제가 불거진 후 수학계에서 출제 오류가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중요한 것은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는가 여부다.

법원은 얼마나 면밀하게 진위를 가렸을까

점검할 점은 법원의 심리다. 얼마나 면밀하게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했는가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전직 교수의 출제 오류 주장이 '오판'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그 같은 점을 심리를 통해 충분히 입증하고 자각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점을 가려야 한다.

또 하나. 재임용 탈락이 시험문제 출제 시비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작용했던 것인지, 복합적인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작용한 것인지를 냉철하게 가려냈는지도 점검대상이다.

"교수 임용은 학교법인의 자유재량"이라는 판결, "대학교원으로서 갖춰야 할 품성과 자질을 지니지 못한 이상 재임용 거부처분은 정당하다"는 판결 취지만으로는 알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법원의 심리과정을 되짚자는 주장을 사법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사법부는 법치주의의 최종 보루이므로 그들이 내리는 판결에 절대 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대전제는 옳다. 하지만 그 대전제는 하나의 단서가 실현됐을 때에 비로소 진리가 된다. 판결 이전의 심리과정이 객관적이고 충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굴복과 승복, 불복과 승복을 가르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그렇게 강조했다.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추궁식 심문이 아니라 토론식 심리를 통해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조정하거나 승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법원의 심리과정을 살핌으로써 법원 판결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정보 접근이 제한돼 있다. 대다수 국민은 언론을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다.

법원 심리과정, 역시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 지난 2004년 재임용 탈락에 항의하며 서울대 본관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던 김민수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그는 합법적 방식으로 재임용 탈락 철회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래서 언론 보도를 뒤지지만 흔적을 찾기 힘들다. 전직 교수의 폭력 행위가 태반이고, 전직 교수의 이력, 그리고 그가 제기한 출제오류 시비가 나머지 절반이다. 법원 심리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없다. 과거에 간헐적인 보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세월이 한 번 바뀔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하다 못해 과거 버전의 주장이라도 되새겨 줄 법 하지만 어제 오늘의 보도에선 그런 게 없다.

여기서 법조 저널리즘의 문제를 확인한다. 한국 언론처럼 법원의 결정을 무턱대고 존중하는 곳은 거의 없다. 법원의 판결에도 오류 가능성이 있음을, 그래서 3심제에 재심제도까지 있다는 점을 모를 리 없건만 법원 판결에 대한 검증기사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언론계 내에선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다. 법원의 판결을 검증과 감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섹시한' 뉴스거리 조달 통로로 삼는 관행에 대한 지적이었다.

전직 교수를 변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단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또 출현하는 건 막아야 한다.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직 교수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서울대 김민수 교수다. '친일'과 '수학'이란 대중성의 차이가 있었지만 동료 교수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점, 그 때문에 기나긴 법정 투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두 교수는 닮아있다.

하지만 한 교수는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승리를 일궈냈고, 또 한 교수는 "아무도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의 나락에 빠져들고 말았다.

궁금하다. 두 교수의 서로 다른 결과가 사필귀정의 법칙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모른다. 단죄를 하더라도 정상 참작의 여지를 헤아려 하는 법인데도 국민은 모른다. 참작할 '정상'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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