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 후기

[펀펀펀]

주말에 1박2일로 부산을 다녀왔다. 여행다운 여행은 아니지만 평소에 몸이 무거운 나로서는 간만에 나들이라 하겠다. 어디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지 않는 탓에 이미지는 오직 머리와 가슴 속에 밖에 없다. 사실 부산은 내가 10대를 보낸 곳이지만 청소년기의 행동반경을 고려한다면, 외지인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외지인 3명을 동반했다. 해안가 코스는 대략 해운대, 광안리, 이기대, 오륙도로 잡았고, 내륙 코스는 남포동 일대와 자갈치 시장, 망양로 산복도로를 택했다. 먹거리로 첫날 점심은 부경대학 뒷편 횟집(연합 횟집), 저녁은 해운대 달맞이 고개 횟집(퍼주는 회집), 둘째날 아점은 해운대 복국(금수복집)으로 해장을 하고 오후에는 국제시장에 붙어있는 부평시장에서 간단히 부산오뎅을 맛보고, 이른 저녁으로 동의대 앞에서 밀면(가야밀면 본점)을 먹었다. 잠자리는 같이 가는 분이 할인을 받아 해운대 바닷가가 보이는 한화리조트에서 아주 편하게, 중상층 다운 숙소에서 지냈다. 1박 2일 코스로는 빡빡하지만, 둘째날은 부산사는 친구의 안내로 차량으로 이동했기에 가능했다. 식사와 풍경은 괜찮은 편이었다. 활어회야 그렇다치고, 밀면(4천 5백원)은 저곳에서 꼭 드셔보시길 바란다. 면 요리 중 베스트에 꼽을 정도였다. 회는 귀찮으시면 자갈치시장에 가면 즉석에서 회를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쇼핑은 남포동 뒷 골목이나 국제시장 등지에서 여전히 짝퉁들이 많으므로 싸게 흥미롭게 구매할 수도 있다. 뭐, 서울로 치면 예전에 남대문, 동대문시장 세운상가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내가 부산을 떠났을 때가 90년대 중반이므로, 그 당시 해운대 일원의 신도시는 막 기초공사를 시작했을 때였다. 당시만해도 부산시내의 중심가는 구도심인 광복동 일원이었고 여기는 명동처럼, 정확히는 요즘 강남처럼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 그런데 불과 15년 남짓이 지났는데 정치와 행정, 사법의 중심지는 부산시내 한 가운데로 옮겨갔고 교육, 소비, 주거, 관광, 엄밀히 말하면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가공자본의 중심지는 해운대로 이동했다. 간단히 말해 상층계급의 생산-재생산 중심지가 신도시(부산의 서쪽)로 이동했고 구도심(부산의 동쪽)은 일종의 부산의 강북이 되었다. 이런 계급도시로의 또다른 경제사회적, 공간문화적 변화가 너무나 극적이고 압축적이어서 놀랐는데, 사실 수도권의 변화도 동일한 패턴을 보였지만 매일 일상을 보내는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니 그것이 새삼스레 다가온 것이다.

 

도시 풍경 측면에서 재미있는 건 이 신도시가 대부분 모방작이란 점이다. 영화 해운대에 등장하는 해안가의 짝퉁 홍콩의 스카이라인은 막개발의 심미감을 여과없이 전달하고, 광안대교는 도쿄의 레인보우 브릿지의 쌍둥이고, 동양최대라는 신세계 몰은 수도권 일원에서 볼 수 있는 메가몰에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용두산 공원에 있는 부산타원는 서울타워처럼 사랑의 열쇠를 전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해안가 도로는 제주도 올레길을 흉내내고 있다. 좋게 말하면 모방이고 나쁘게 말하면 짝퉁인데, 다른 말로 하면 현대적이고 근대적인 마천루의 감각일 것이다. 우리에게 내장된 개발 DNA가 수반하는 감각 말이다.

 

물론, 인천의 송도 신도시가 보여주듯이, 잉여자본이 금융을 매개로 해서 부동산 등의 건조환경으로 나타나게 되고, 특히 재개발의 난제가 산재한 구도심보다는 새로운 택지에 인공도시를 건설하는 한국의 신도시 개발방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역시 인천의 구도심인 하인천이 잘 보여주듯이, 공동화되는 구도심의 문제와 도시 마케팅 차원에서 재개발되는 현상(마찬가지로 사상공단의 공동화와 재개발)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해운대가 원래 개발방향인 영화산업단지가 아니라 주상복합 중심의 난개발로 흐른 것도 한국에서는 전형적인 패턴이고, 광안대교와 부산 시내 터널들을 통해 맥컬리 자본이 수익을 빼먹고 지방토호-정치권과 짬짜미하는 것도 너무나 뻔한 사실이며, 그리고 각종 부동산에 서울 부자들이 혜택을 얻는다는 것도 새삼스런 일이다.

 

대략 이런 모습들을 구경하느라 첫 날을 보냈다. 그런데 동행한 사람들이 모두 공부를 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리고 내가 볼 때 낭만적인 측면이 있는 사람들인지라, 학삐리들의 용어와 감정을 섞어서 막개발을 비난해마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러한 평가에 좀 불편했는데, 가령 유럽처럼 도시 개발에 대한 규제가 강력하고 시민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으면 모를까, 시장을 벗어나 자본을 통제하는 제도가 미비한 현상태로서는 불쑥 고층빌딩이 솟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분들이 이를 모르지는 않겠지만, 부산의 원형을 찾으려는 듯이 보여서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둘째날은 동행자들이 대단히 만족했는데,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광복동의 아기자기한 골목과 국제시장의 풍경은 일종의 여행을 왔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고 산복도로를 달리면서 오래된 달동네의 정취를 보았기 때문이다. 개발되지 않는 곳에서, 다른 식으로 말하면 개발의 수익이 떨어지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층층히 쌓아온 삶의 모습 때문이라. 그런데 나는 솔직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릴 때 익숙하게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동네에 사는 것이 어떤 삶일까를 고려하면 여행객의 뭔가를 발견한 듯한 시선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동네 풍경에 의미를 다른 식으로 부여하게 됬지만, 10대 시절 부산은 항상 교통이 막히고 좁고 높은 동네를 오르내려야 하는 곳, 그냥 불편한 곳이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놀랐던 것이 있는데, 바로 반지하방이다. 사람들이 지하에 살다니! 외지에서 서울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반지하가 없어지는 걸 아쉬워하면 누가 좋아할까? 현대적인 스펙타클을 추구하는 것이 천박한(?) 만큼 오래된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하튼, 이런저런 상념이 드는데 정리는 안되고 있다.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정리가 되는 것은 여행은 3명이상 다니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냥 말없이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특히, 배운(?) 사람들과 다닌 것, 그거 별로 인 것 같다. 무슨 평가가 그렇게 많은지. 그러고 보니, 홍상수의 영화 <하하하>에서, 문화해설가로 등장하는 문소리가 아는 만큼 많이 보인다고 하자, 김상경이 모르는 만큼 보인다고 한 말(아마 문소리는 엄청 삐졌던 걸로 기억하는데)을 좀 이해할 것도 같다. 재미 없는 후기지만 이만 마친다. 흥미진진한 여행정보는 그냥 부산시청이나 구글링을 하면 쏟아지므로 참고하시고, 그냥 부산시내를 이곳저곳 걸으시면 좋을 듯하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9/10 15:28 2012/09/10 15:28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simppo/trackback/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