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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19
    시 - 천년의 바람
    돌 & 쑨
  2. 2005/01/19
    시 - 장작불
    돌 & 쑨
  3. 2005/01/19
    시 - 돌
    돌 & 쑨
  4. 2005/01/15
    산이야기-3(검단산)(1)
    돌 & 쑨
  5. 2005/01/06
    산이야기-1(북한산)
    돌 & 쑨
  6. 2004/09/23
    학교이야기
    돌 & 쑨
  7. 2004/09/06
    도그빌
    돌 & 쑨
  8. 2004/08/10
    멀홀랜드 드라이브(1)
    돌 & 쑨
  9. 2004/07/31
    디 아워스
    돌 & 쑨
  10. 2004/07/30
    빈 교실 - 도종환
    돌 & 쑨

시 - 천년의 바람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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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장작불

장 작 불

 

 

백 무 산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까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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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돌

 


돌이 되고 싶다
잘 난 구석 하나 없어도,
세월의 강물에 모난 곳 닦고
둥글둥글 묵묵히 제자리 지키는
수많은 돌 중의 하나이고 싶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 그곳에서
지나가는 가을바람 동무 삼아 놀다가
땅위로 기는 것들 쉬어 가는 그늘도 되고
아침마다 이슬에 몸을 씻어
하늘거울에 내 몸 비춰보고 싶다

때론 지나가는 발길에 채여도
그대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 몸 속 길을 내면
어느 날 그대 피곤한 발걸음 내게 얹으며
지친 삶 내려놓고 쉬었다 가게
그대, 나를 밟고
한 세상 건너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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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3(검단산)

검단산은 하남에 있는 산으로 서울 근교라서 비교적 가기 쉬운 곳이다. 산 정상에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도 보이고 물줄기가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다. 검단산에 가을에 올라가다 보면 소나무의 잎사귀들이 흙위에 곱게 쌓여있어서 마치 눈이 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산행 초반에는 넓은 길이 있어서 산책하듯이 올라가지만 정상가까이 가다보면 가파른 돌길이 있어서 조금 힘들다. 어떤 산이든 처음 가게 되면 지도를 보고, 시간을 알더라도 어느 정도 더 가야 정상인지 궁금하게 된다. 그래서 산을 오가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면서 올라가는 사람이 얼만큼 더 가야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내려 오는 사람들은 항상 '조금만 더 가면 되요'라고 한다. 또는 '5분만 가시면 됩니다'라고 한다. 예전에는 그 말을 믿었었다. 그리고 가도 가도 정상이 안나오면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말이 내려오는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나도 내려오면서 힘들게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그냥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어차피 올라가는 거 조금만 참고 더 오르라는 차원에서 해주는 말인 거 같다.

 

검단산은 3월 초에 산불 방지 기간이 있어서 입산이 금지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일요일에 갔었다. 당연히 산지기 아저씨가 올라가면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감시의 눈길을 피해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길을 올라갔다. 나중에는 우리가 산의 옆구리를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겨우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찾았다. 그래서 정상에 가보니 입산 금지된 산이라고 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만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냥 올라왔을 줄이야. 다들 나하나 쯤이야 하면서 등산을 했겠다 싶었다. 입산 금지가 형식적인 거 같기도 하고, 사람들 욕심이 지나쳐서 지킬 것을 안지키는구나 싶기도 했다.

 

올 겨울에 눈이나 비가 안와서 가뭄이라고 하는데, 검단산에 또 입산 금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리 정보를 알아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검단산은 서울역이나 강변역에 있는 하남행 좌석버스를 타고 가도 되고, 강남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된다. 아, 버스 노선이 바뀌어서 확실한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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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1(북한산)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산은 특별히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특히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산에 오르라고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이 오르는 것보다는 산 아래나 중턱에서 술을 마시거나 노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난 우연한 기회로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중3 때 졸업 사진 촬영을 겸해서 소풍으로 북한산에 처음 갔었다. 그전에는 동네 앞산 정도에만 가보아서 산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북한산에 올라가서 본 서울의 풍경을 정말 장관이었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스모그가 낀 서울이 보이는 게 아니었기에 놀라운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산에 가고, 산에서 넓은 마음을 만드는 거구나 싶었다.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작은 곳에서 십여년을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산에 한 번 오르고 다시 산에 자주 가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처음에 등산을 하는 주요한 목표는 어떻게든 더 높은 산에 올라가고, 정상을 정복하여 등산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것이었다. 힘이 들어도 끝까지 참고 올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체력도 밑받침이 되었었다. 정상에 올라가서 땀을 닦아내며 먹던 음식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 중에서 가고 싶은 산들을 손에 꼽으며 여기, 저기 다 가보겠노라고 마음 속에 다짐을 해 놓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부터는 산을 오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산 중의 하나인 북한산으로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자주 올랐다. 두서너명씩 같이 가거나 둘이 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생활나누기였다. 서로가 살아왔던 과정이며, 어떻게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 등에 대해 정말 편하게 이야기나누었었다. 물론 가방에는 점점 술을 챙겨가는 일이 많아졌고, 술의 양도 늘어났다.

 

북한산은 보통 우이동에서 올라갔는데 한 번은 산을 좋아하는 선배가 국민대쪽으로 가면 입장료도 안내고 아주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쫓아갔다.(국민대 출신 선배라 믿었었다) 아니 그런데 올라가기는 잘 가고 내려갈 때 계속해서 "이 길이 아닌갑다"하며 다시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해는 지려고 하는데, 내려가는 길을 찾지를 못하여 참으로 황당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따라갔었지만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냥 아무데로나 내려가면 안되냐고 애원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우기던 선배는 결국 국민대 앞으로 내려와서 잘 알던 가게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동동주와 파전을 사주었다.

 

북한산에 후배랑 둘이서 올라가다가 쉬면서 강냉이를 먹는데,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바람결에 강냉이 냄새가 그렇게 좋다며 말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거의 다 나누어 주었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는 생각보다는 즐겁게 나누어주는 행복이었다. 요즘은 생활하다보면 사심없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언제 북한산에 갔었는 지 이제는 기억이 잘 안난다. 그래도 즐거운 일은 친구 한 명이 이번에 결혼을 하면서 북한산 자락에 집을 얻은 것이다. 나랑 좀 비슷하여 산 밑을 선호하더니 진짜 교통은 포기할 정도의 곳에 정착을 하였다. 그래서 그 친구네 놀러가면서 북한산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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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얼마전 아는 사람이 시사회를 한다고 해서 서울나들이를 했다.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교통체계바뀌어서 돈도 많이 들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었지만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는데

어느 덧 시사회를 한다고 해서 정말 끝내기는 했구나 싶었다.

 

조금 늦게 들어간 시사회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제목은 아주 단순하고, 밋밋하여 영화에 대한 별다른 궁금증을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가기 전에는 영화 제목도 모르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용화여고 투쟁에 대해 자세하고, 차분하게 잘 이해가 되었다.

2-3년이라는 같은 시기를 살면서 가끔 이야기를 듣기도 하면서

참으로 같이 연대를 못하였구나 싶었고, 나의 무관심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용화여고 라는 사립학교의 교장, 교감, 이사장 등은 다 친인척이고,

학교의 비리를 인터넷에 올린 학생을 퇴학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전교조 선생님이 시킨 일이라고 강요, 협박하였다.

 

3여년의 시간 동안 해직되었던 선생님은 복직되셨다고 한다.

졸업한 학생들까지 같이 한 시사회는

의미가 남달렀던 거 같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선생님이 소감을 발표하시면서

이렇게 올바른 것에 대해 말하고, 투쟁하는 것이 재미있노라고 하시는데

저런 모습이 삶이 운동이 되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사립학교 교장단들이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일부 교사단체가 학교를 장악하게 되고,

종교학교의 종교자유를 허용하면 안된다고 하고, 학생, 부모 등의 의견을 다 수용하면 어떻게 학교가 운영되겠느냐며 신문에 광고를 내었다.

 

어쩜 저렇게 초등학교 수준에도 못 미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았을까 싶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말이 안되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부정, 부패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이야기'라는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되기는 어렵겠지만 투쟁하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어서 힘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등학생들의 열기와 기발한 투쟁은 영화의 재미도 느끼게 해준다.

                             

                                                                                                                by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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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인간이 나약해서 죄를 저지르는 것이건

또는 오만하기 때문에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건

인간이, 권력이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간에

 

또는 그 마을 인간들이

내 모습이건

보통 인간들 모습이건 간에

 

내가 느낀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튼 악인들이 처단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인간들이 꿋꿋이 살아남아

약자들을 끝까지 탄압하니까 말이다.

 

만약 영화가 용서니 어쩌니 하고 끝났으면

아마도 열받아 밤잠을 설쳤을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아직은 수양이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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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

 

 

욕망과 꿈과 일그러진 현실

그리고 정체성의 상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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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삶과의 투쟁 없이 평화는 오지 않는다."

 

- 영화 속 버지니아 울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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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실 - 도종환


 

 

빈 교실

 

 

도종환

 


천장이 낡아 떨어져 나간 사이로 건물의 빗장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이던 그 교실이 그래도 나는 좋았다  도서열람실이라고 하지만 잘  닫히지 않는 창 틈으로  명지바람이 다녀간 것말고는 늘 비어 있는 그 교실에서 글 쓰는 걸  배우려는 아이들과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해 시를 쓰기도 하고 강아지똥이나 수우족 추장의 글을 돌려가며 읽기도 하였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나는 그곳에 혼자 앉아 있곤  하였는데 비가 내리다 그친 유월이면 뻐국새는 건너편 숲에서 녹녹한 소리들만  골라 교실 앞에까지 던지고 가고 낙엽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창을 열다가 내가 그리움을 다 못 버리고  있구나 생각하며 산 너머 흘러가는 구름 몇 장을 한참씩 바라보며 서 있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도  내가 그곳에 혼자 있는 걸 아는지 간혹  생글거리며 찾아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다른 반 누구누구가 우리 반 현이를 좋아하고 있는지를 넌지시 알려주며 저희끼리 깔깔거리거나  칠판 가득 열다섯 가슴에 찰랑거리는 소망을 적어놓기도 했다  간혹 누구 글씨인지 알 것 같은 필체로 선생님 바보라고 씌어 있는 걸 보며 혼자 웃을 때도 있었다


날이 추워져도  손가방만한  스토브 그것도 고장이 나 잘 켜지지 않는 것 하나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싸늘한 교탁  옆에서 미사를 위한 아다지오를  듣거나 아직도  뜻을 버리지 않는 옛 친구들의 시집을 읽으며 가슴이 녹아 내릴 때도 있고 시린 등 곱은 손을 다른 한 손으로 비벼가며 시를 쓰기도 했다  달포가 넘도록 운동장 가득  눈은 녹지 않는데 지나온 세월 속에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플 때도 있지만  나는 왜 찬바람 부는 오지의 교실을 혼자 지키고 있는가 묻지 않았다 그저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르는 고적한 시간 시간이 좋았다

 

* KBS 제2FM 전영혁의 음악세계 게시판에 바후림님이 올려주신 글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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