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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어느 곳에 선다는 게 '입장'인데 난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를 고민하게 된 건 오래전일이다. 당활동을 3년정도 하면서 웬지 나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느낌이 들었고 그 이유는 정치적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 활동을 시작한게 문제 였다는 걸 알았다. 사실, 정치적 입장이라는 거창한 단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는게 맞다. 정치적 입장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도 명확하게 어느 줄에 서 있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최근에 돌아가는 정국이 시끄럽기 때문이랄까,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압박이 들었다.

 

진보신당 당원으로 3년 남짓 활동(사실 활동했다기 보다는 그냥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했다.)했는데 당활동 한다는 사람들이 안하는 사람만 못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모임때마다 모이는 사람은 항상 정해져 있고 회기나 회의가 있으면 머릿수 채우는 일이 더 많았고 무엇보다 남성들의 생각이 그닥 진보적이지 않다라는 것. 스스로 마초라고 떠벌리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는것부터 시작해 남의 비판을 제대로 새겨듣지 않는 사람도 허다 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만 있는거 아니니까 하면서 참으면서 지냈다. 결정적으로 큰 갈림길에 섰을때 탈당을 하긴했지만 탈당을 한 지금이 더 고민이다. 나는 왜 통합진보당으로 갔을까? 생각해보니 그 당시엔 탈당한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으로 가는게 대세이기도 했다. 뭔가 더 잘해보려고 대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니까 다시 입당 한건데 입당과정과 창당후 하는 걸 보니까 여기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어느 당원에게 말했더니 그렇다고 또 탈당하는건 안된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자꾸 내고 게시판에 쓰고 바꿔보려고 해야한다. 당은 함께 만들어가는거지 누구 혼자 하는거 아니다. 라고 하길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래서 아직 탈당은 안하고 있는데 스스로 돌이켜보니 지금 내 처지에서 정치적으로 어느 입장에 서는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는 일(동자동사랑방 희망온돌 프로젝트 담당)도 불안(2월말에 끝남)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지도 불투명한데 당활동이나 총선, 대선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있나? 먹고 살기 불안한 건 나만의 일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 너무 절박한 상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로 위로 받을때도 이미 지난것 같다. 삶이 불안하니 무엇을해도 즐겁지 않다. 의지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관계를 맺은지 20여년 된 사람이 있다. 며칠전에 만나서 막걸리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내가 하도 불쌍한 티를 냈는지 갑자기 10만원짜리 상품권을 준다. 큰 건 아니지만 받기가 썩 편하지 않았다. 남에게 무엇을 받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일까, 살짝 부담이 됐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위로 받는 것이라곤 이와 같은 가벼운 사교와 공감을 받는게 다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겠지. 내가 원하는 건 상대방의 심각한 문제를 더 깊이 공감하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인데.

 

동자동사랑방에서 운영하는 마을기업 '밥이 보약 밥집'의 재정난이 심각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됐는지부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신경이 쓰였다. 사실, 밥집은 사랑방과 분리된 조직이고 독립적이다. 그런데 그 열악한 환경을 도맡아 하고 있는 한명의 활동가가 있다. 난 그 활동가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하면 밥집에 먼저 가서 도울 수 있는 한 도와 주었다. 돈이 생기면 기부 하는 형식으로 주고도 싶다(활동가는 당연히 돈 받기를 꺼린다). 오늘은 페이스 북에 홍보자료도 올렸다. 마음이 조금 놓이는 듯 하나, 밥집이 갈길이 멀고도 험한것을 생각하면 썩 편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확신하면서 걷고 있는 그 활동가가 너무 안쓰럽고 또 대단해 보인다. 나는 어디까지 도울 수 있나?

 

입장 얘기를 하다가 글이 섞였는데, 정치적으로 나는 입장을 말할 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것과 하는 일에서의 입장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진심으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받아 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라는 것. 문뜩, 나에게 남은 밑천(물리적, 심리적, 인적관계들)은 얼마나 될까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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