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동동이

17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31
    고민해보기
    동동이
  2. 2005/01/31
    성서(3)
    동동이
  3. 2005/01/25
    물건이
    동동이
  4. 2005/01/21
    꺄울(1)
    동동이
  5. 2005/01/20
    오늘은(5)
    동동이
  6. 2005/01/19
    야아~(2)
    동동이
  7. 2005/01/19
    중얼중얼
    동동이
  8. 2004/12/27
    다양함과 편리함(3)
    동동이
  9. 2004/12/27
    꺄아 귀여워라(1)
    동동이
  10. 2004/12/08
    슬픈 연대(3)
    동동이
2005/01/31 14:14

고민해보기

* 이 글은 씨앗님의 [마지막 과외]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개인의 올바른 선택만으로 논의를 몰아가는 것이 가지는 위험성" 고민해보기 그림이 없어 그림이 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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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13:57

성서

0. 관리해야 할 페이지가 여러 개인 것은 점점 더 귀찮아진다. 진보넷에만 해도 꼬마게시판에 블로그까지 있구, 뉴저네트워크에 사진 안 올린다고 용욱이오빠에게 맨날 구박받고, 사실은 다른 곳에도 다니는 커뮤니티도 있고 블로그도 있다. >.< 닉도 달라서 헷갈린다. >.< 점점 다중인격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 진보블로그를 다니다가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성서와 동성애얘기를 한 것을 읽고 나두 예전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꼬마게시판에서 퍼왔는데, 문제 두개. 1. 공동체에 있던 것 여기에 또 퍼와도 되나. 온라인 쓰레기가 아닐까. 2. 트랙백주소를 까먹었다. otz 나중에 다시 찾으면 트랙백걸께요. ^^* 찾았습니다. => 이 글이 생각난 원래 글입니다. =) 1. 얼마전에 성서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책은 읽지 않고 듣기만 한다. =ㅅ= )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 성서에서 동성애를 직접 죄악으로 언급한 것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기독교도로 20여년을 살았지만 아직 성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역시 듣기만 했다. =ㅅ= ) 띄엄띄엄 읽다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돼지고기와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지 말라는 금령이다. (뭐 이외에도 기억도 나지 않는 숱한 금령이 있지만) 이슬람교도 돼지고기를 먹지말라는 율법이 있는데, 사막에서 사는 유목민족에게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역시 들었다. =ㅅ=) 뭐 기후나 이런 등등의 문제로 체질에도 맞지 않고, 완전히 익혀먹어야 기생충이 없어지는 돼지고기는 유목생활에 적당하지 않는다는 분석이었는데. 성서라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나 사회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은, 사회학적으로는 당연한 분석이겠지만 기독교도로서는 좀 슬픈 대목이다. 아마도 동성애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동성애나 여성의 성욕 등,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 위험이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겠지. 같은 금령이라도 돼지고기를 먹지말라는 금령은 그저 책속의 금령으로만 남아있지만, (성서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사회를 위협할)동성애는 생생한 금령이 되는 것이다. 신약 이후 2000년 동안 예수님은 '창녀'를 용서했지만 사회는 '창녀'를 용서하지 않았다. 2. 신약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 베드로였다. (신약은 읽었다.) 아마도 베드로를 상당히 인간적인 인물로 해석해준 어느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서였던 것 같다. 사실 신약에서 베드로는, 신앙고백을 정말 열정적으로 하는가하면,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루 사이에 결국 세번이나 뒤집고, 그러면서도 잡혀간 예수님 근처를 (멀리 도망도 못 가고)빙빙 돌면서 비슬비슬 따라다니고, 결국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도로 가서 어부생활을 하다가, 교회의 수장이 되고 순교하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신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간문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바오로다. 학자들은 바오로가 당시 상당히 공부를 하고 학식을 쌓은 사람이고, 베드로는 그저 어부였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같이 성령을 받고 교회일을 하지만 맡은 영역이 다르고 하는 역할이 달랐던 것이다. 신부님 강론대로 해석하자면 다른 역할을 맡으려고 다른 사람을 선택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을 받았지만 같은 능력을 지니지는 못한것이다. 그리고 신약의 대부분은 기독교의 정신을 절대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정리한 바오로의 서간을 담고 있다. (베드로의 서간도 둘 있지만 바오로의 서간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ㅅ= ) 베드로가 그 시절 어떻게 교회를 지도했는지, 사람들을 조직하고 격려하고 다독였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아주 아주 옛날의 어쩌면 잊혀진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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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5 00:53

물건이

1. 책상뒤로 립글로스가 떨어졌다. 그럼 당연히 책상아래에 떨어져있을 줄 알고 책상밑에 기어들어갔는데 없었다. =ㅂ= 책상아래 쌓여있던 상자도 다 빼고, 책상도 조금 앞으로 빼보고, 책상뒤로 늘어진 전선들도 다 흔들어봤는데 안 나왔다. 책상뒤에 4차원의 신세계로 가는 구멍이라도 있나부다. 2. 오늘은 주말내내 충전한 전화기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전화가 오면 다 받았다. 근데 오늘따라 전화가 미친듯이 오더니, 저녁에 선배랑 통화하고 있는데 꺼져버렸다. =ㅂ= 그냥 난 전화기랑 상성이 나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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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15:00

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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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0 19:17

오늘은

1.

나는 원칙적인 인간은 아니고 그저 정치적인 인간일뿐이다. 인권운동에는 정말 맞지 않아. ㅠ_ㅠ

 

 

2. 여섯시반에 헤어져 다들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정말 우울한 인생들이라고 낄낄거렸다.

 

3.

그림

 

 

4. 까먹고 있었던 좋은 일 하나.

바닷바람은, 차갑고 날카롭고 달았다. 나 고소공포증이 있었나봐, 라고 중얼거리는 레이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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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9 13:35

야아~

vader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예뻐라. 예전에 희진이언니에게 아이포드가 너무 예뻐서 사고 싶어요 ㅠ_ㅠ 했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아이포드 험담을 많이 해서 안 이쁘게 보이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디자인이 아이포드보다 못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예쁘게 생겼군요. ;ㅁ; * 이런 것도 나왔다고 합니다. 예뻐라!! >ㅁ< * ipod shuffle 광고카피도 죽입니다. life is landom 아이 깜찍해라. ㅠ_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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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9 13:11

중얼중얼

병원이 병을 만든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병원비가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사람들 '부실도시락' 부실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결식어린이들이 10만여명 새로운 영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 양심에 위배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일자리 날로 치솟는 실업률 취향은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취향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활동가와 맥도널드(푸핫)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면서 폭력적인 폭력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여성과 남성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냐는 말에 사람과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차이는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까 여성과 남성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까 이 민족과 저 민족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까 하지만 태생적인 차이와 사회적인 차이를 같이 놓을 수는 없잖아 근본적인 차이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차이는 있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일일 뿐이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소수자는 개인일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개인일 수 있나 내가 어차피 이쪽에 있으니까 카테고리는 그림일기인데 그림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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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7 19:57

다양함과 편리함

다양함과 편리함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일까?

 



우유, 야채, 고기에서 양주나 라면까지.

그릇에서 가전제품까지.

화장품에서 옷가지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동네 초거대한 할인마트에 다녀오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초거대 할인마트가 생긴지 5년, 우리 동네의 고만고만한 할인마트들은 다 없어졌다. (아니 꼭 할인마트의 다양함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양하다는 것은 하나로 줄세우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나하나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같아보여도 조금 뜯어보면 다른 구석들이 속속들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일이 '한큐에' 끝나버리는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 터이다.

 

물론 '나의 편리함'과 '너의 편리함'은 다를 것이다. 어쩌면 편리함이란, 흔히 말하는 편리함이란,, 사람들은 편리함앞에 줄세워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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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7 19:49

꺄아 귀여워라

* 이 글은 moodaeng님의 [취향의 계보를 나누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나두나두 이런 것 해보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어서, 트랙백합니다. (트랙백도 안 해두면 잊어버릴까봐;;) 근데 언제?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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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13:23

슬픈 연대

레 미자라블에 나오는 ABC의 벗에는, 사람에 하나의 사람에 매료되어 소속되어 있는 회의주의자가 있었다. 위고는 어떻게 혁명조직에 회의주의자가 있을 수 있었나, 라는 어조로 그랑떼르를 소개했다. 사실 그랑떼르는 내가 보기에는 회의주의자라기보다는 날라리같았는데 ;; 그랑떼르는 이념이나 전망보다는 하나의 사람에 매료되어 있었다. 변혁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념이나 전망이 있었어야 할 터인데. 하지만 사실 나도 그랑떼르가 아니었나. 불확실한 미래, 나아질 것인지 회의적인 사회, 과연 내 활동이 변혁에 어떤 도움이라도 되고 있는지, 불안. 아니 그 이전에 나는 활동을 하고 있나. 잘 하고 있나. 모든 것이 회의적이다. 그런 나를 (미래는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다 해도) 여기까지 비실비실 오게 한 것은 한명의 앙졸라는 아니라도 열의에 넘치고 위기감이 있고 결의가 있는 다른 활동가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힘을 주었다. 나도 실은, 자신이 없더라도 사람좋은 미소를 띠며 잘 될거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어설픈 웃음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정말??) 그래서 그 열의가 어떤 한계가 있더라도, 그렇게 어떻게어떻게 서로 보완해주는 그리하여 그런 슬픈 연대. + 아무래도 나는 좌파로서는 함량미달인것 같다. 여의도 농성을 보고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단지 미안한 마음. ㅠ.ㅠ 게다가 감상적. 온정적. 그림은 단지 뮤지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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