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 2007/05/05 18:45

많이 늦었지만

더 잊어버리기 전에

민주노총의 법률학교에서 느꼈던 소감을 정리해봐야겠다.

 

입학식에서 사회를 보는 동지는 참가자들에게

'서로를 동지라 호칭할 것'을 중요한 수칙으로 강조했다.

첫 강의가 끝나고 그 사회자는

"열심히 강의해주신 ㅇㅇㅇ '변호사님'께 큰 박수를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조지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노동자계급이 장악한 도시의 첫 소감을

"그곳에선 모두가 서로를 동지라 불렀다. 

나는 그 도시의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싸워서 지킬 만한 어떤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고 표현했다.

'평등세상 앞당기는 전노협' 시절부터, 아니 노동자가 불평등과 착취에 맞서 투쟁하던 그 어느 시대나 우리는 서로를 동지라 부를 것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동지'란 표현은 남녀노소, 지식과 재산등의 차이를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존칭이라 생각했는데, '변호사님'과 우리는 '동지'일수 없다는 것인지...

 

"파업기간중 쟁의대책위원회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쟁대위 만들면 쟁대위 위원들 명단이 고스란히 사측에 넘어가 징계먹을게 뻔한데..."

"파업수첩에 '목숨을 걸고 싸우자'란 말좀 안쓰면 안되나. 그런 말들이 법적 분쟁에 불리한 증거로 작용하는데.."

이런 말들을 거침없이 주장한 강사도 있었다.

또 "지노위 심문회의 들어갈때 왜 투쟁조끼를 입고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투쟁조끼 입고 들어가면 공익위원들에게 안좋은 인상을 주고, 그로인해서 심문결과도 안좋아질 수 있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강사도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생각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들만이 파업수첩에 목숨걸고 싸우자는 주장을 뺄 수 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투쟁조끼를 늘상 입고 다니던 자들만이 필요할때 한번쯤 벗자고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닌지.

하지만 늘 헷갈린다.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 적의 가랑이 밑이라도 기어야 할 때도 있고, 혁명을 위해서 적의 침실로 들어가 적과도 동침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그것이 과연 투쟁의 전술인지, 현실에의 굴종인지...

 

법률원에서 일하는 어느 동지는 현대자동차의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관련한 재판에 대해

"재판 질거다. 이기면 내가 담당 변호사 술사주기로 했다"고 큰소리쳤다.

물론 그가 법의 한계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민주노총의 법규사업을 담당하는 자로서 가당한 말이었을까?

차라리 "이대로 두면 재판 질거다. 법원상대로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재판을 지더라도 다시 싸울 수 있는 근거라도 만들 수 있다"고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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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5 18:45 2007/05/0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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