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08/21 07:02

[祭 亡 友 歌]

지구를 거꾸로 돌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슈퍼맨이라도 부르고 싶었던 시간들은 가고
중환자실 복도에서 마음 졸이며 서성이던
우리 모두의 머리를 잇대어 너의 혈관이 돼줄 수 있다면,
간절히 꿈꾸던 그 순간들도 다 가고
우리는 이제 너를 보내야 한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밤샘하느라 부르튼 네 입술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우리의 멍청한 사랑은 시작되었고
우린 십 오년 동안 단 한순간도 미워하지 않았다
갈라져 피가 배인 네 입술에 연고를 발라주던
우리의 마지막 날까지

야근수당까지 쳐서 십 오만원 받던 월급으로
몇몇 방의 월세를 내고 나면 회수권 몇 장뿐이던 시절
호박 하나에 식빵을 풀어 죽을 끓여 먹으면서도
너는 가난하지 않았다
남들의 반도 안되는 민주노총 상근비를 받던 날
이 사람 저 사람 못 사먹여 안달하던
너는 거창한 신념이나 의무감 때문에 씩씩했던 게 아니라
자고 나면 뒤집힐 것 같은 머릿속 혁명 때문에 헌신한 게 아니라
네 영혼의 우물 속 차오르는 사랑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 기우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이
길을 놓아 너를 살게 하였다

비오는 거리를 걷다 나는 울었다
모두들 서고 앉고 웃으며 걷는데
왜 너만 누워 있어야 하는지
슬퍼서가 아니라 서러워서가 아니라
왜 하필 너를 잃어야 하는지
내가 억울해서 혼자 울었다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 있어
목놓아 울어보지도 못한 날들도 다 가고
이제 우리는 슬픔을 그쳐야 한다
너를 우리 속에 묻어야 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제 억울해하지 않기로 한다
아름다운 영혼, 네가 서른 다섯 해 살아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졌고
온 마음과 온몸으로 사른 네 사랑으로
세상은 그만큼 사랑스러워졌으므로
서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머잖아 봄이 오면
언 땅에 숨죽이던 풀들 앞다투어 고개 내밀고
개나리 진달래꽃 무심히 또 피어나도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서럽지 않다
우리 맘 속에 너를 심어
일년 사철 피는 꽃나무로 너는 자라리니
꽃은 피고 지지만 우리가 지상에 살아 있는 한
너는 지지 않는 꽃이어니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피어나리
내 친구 명아,
이제 너를 보낸다
환생해서라도 꼭 다시 보고 싶은 내 사랑 명아,
부디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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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07:02 2006/08/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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