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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 극장의 배우들
인터넷은 현실의 반영물이다.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사업을 꾸리던 사람들은 인터넷
에도 역시 가게를 열거나,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기 위해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
하거나,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뜻이 맞는 단체간의 연대에 이용하거나, 언론
매체들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이나 인쇄매체와 함께 인터넷 방송국을 열거나,
현실에서 사기로 돈을 모은 사람은 인터넷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네티즌들을 우롱하거나, 선
거철에 정치가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이용해 득표를 유도하려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실의 것들이 네트에 고스란히 자리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들
은 역시나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의 연장인 셈이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는 무조건적인 현실의 반영만은 아니다. 분명 현실에서 볼 수 없
는 새로운 것들도 관찰할 수 있다. 이전에 전혀 볼 수 없던 새로운 언어 표현과 문법이 등
장한다든지, 컴퓨터 문법에 적응하여 글을 읽는 습관에 변화가 생긴다든지, 현실과 다른 이
중의 인격으로 네트에서 행동한다든지, 대규모 방송설비를 갖고서만이 행할 수 있는 방송국
을 단지 한 사람의 힘으로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다든지, 하루에도
전자 메일을 확인 못하면 마음이 초조해진다든지 등등, 이전에 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가
없었을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문화의 생성을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인
터넷은 한편으로 새로운 문화의 발원지다.
인터넷은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전혀 새롭고 또 다른 현실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런
새로운 가상의 공간에 도대체 어떤 인간형들이 있을까? 인터넷 문화처럼 인터넷에 접속하는
인간들 또한 각양각색이다. 인터넷의 모양새와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더불어 사는 인간형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현실의 문제를 여전히 계속 붙들고 있는 자들도 있고, 인터넷의 새로
운 문화와 관련된 논의를 이끌어가는 자들도 있다. 분명 그들 중에는 주연급도 있을 것이고,
인터넷 문화의 입맛을 느끼게 하는 단역 배우인 까메오들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이
런 인간형들에 대한 인터뷰다. 인간이란 대체로 삶이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위
해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동물인지라, 대체로 인간형의 구분은 그들이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차에 근거한다. 물론 인터뷰 대상과 내용은 내 자신의 상상물이다. 여러 부류
들의 동시다발적인 인터뷰 형식은 그들의 입장 각각이 서로 옳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보
다 객관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비교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이들 인간형들을 분류하고 그
중 누가 옳은 관점에 서있다고 얘기한다면, 그 또한 독자에 대한 심리적 억압일 것이다.
이제 그들 각각이 주장하는 인터넷의 효과와 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기록한다. 그들이 볼
때 이런 것이 인터넷의 영향이고, 각각이 보는 인터넷의 문화와 미래관은 이러저러해야 한
다는 주장들이다. 독자들은 일부는 편견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각 인간형들의 얘기를 들어
보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기 바란다. 인터넷 극장의 주역과 단역은 이미 구분되어 있다.
그것은 얘기된대로 인터넷은 현실의 반영물이기에 스타는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장차 단역
이 주역을 밀어내는 일도 생길 수 있음을 감안하길 바란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새
로운 가능성을 지니기에 새로운 스타 출현의 예감을 배제하지 않는다.
1. 디지털 엘리트
우리들은 인터넷의 가장 큰 배역을 맡고 있다. 항상 그래왔듯이 산업시대 이후로 줄곧 엘
리트는 이 사회의 핵심적인 의사 결정권자들이다. 디지털 사회의 엘리트, 우리는 통칭 '디제
라티'(digerati)로 불린다. 가상 공간의 지배계급이라 하여 '가상계급'(virtual class)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갖는다. 과학 기술자에서부터 경영자, 정치가, 미래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미 상원의원 뉴 깅리치, 미래학자의 거두들 앨빈 토플러, 조지 길더, 피터 드러커, 21세기 디지털 문화를 선도하는 [와이어드(Wired)] 잡지에 모이는 열성 논객들 등이 우리 모임의 정회원이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고, 기술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에서부터 인터넷 미래의 예측까지 도맡아서 해왔다. 전세계 대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그 큰 흐름의 주도자이다. 우리의 공통점은 이 세상이 손끝의 클릭으로 이루어지는 때를 기원한다는데 있다.
인터넷의 미래는 모든 것이 풍요로워지는 세상이다. 빈부 격차없이 모든 것을 나눠가질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 시대의 무임승차자다. 우리는 비용만 지불하면 무
한대의 정보를 최고의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하며, 자본주의의 새질서를 깨뜨
리려는 일부 몰지각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악성 불법 절도자들이나 철없는 해커들이 설
치지않는 세상을 원한다. 그들은 디지털 사회의 골치덩이들이다. 인터넷의 명랑 사회 건설은
이들 상습 건달들의 배격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정당한 화폐의 지불 없이 우리가 만들
어내고 재산권을 행사하는 정보들을 절취하는 행위는 절도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신뢰하는 집단은 무릇 미래의 '프로쥬머'(prosumer)들이다. 이제 대중들은 단지 소
비(consumer)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producer)에 관여하는 프로쥬머로 자리매김되고 있
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한다. 우리는 소비하고 생산에 관여하는 이 모든 대중을 최상의 손님
으로 모신다. 이들의 자료들은 확실히 챙겨서 우리의 전략적 데이터 베이스에 보관된다. 혹
자는 디지털 시대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정보 접근권을 우려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그에 대비하고 있다. 빌 게이츠의 업적을 보라. 학교나 가정에 저렴한 가격으로 컴퓨터 등이
보급되고 있다. 사회 안정을 위해 인터넷 엑세스의 보장은 우리의 절대 과제다. 누구나 인터
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은 가열차게 이루어져 왔다. 정보격차는
우리가 가장 배격하는 것이다. 일부 엉터리 비판론자들이 우리의 이런 노력을 매도하는 주
장을 펼 때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세계의 리더들이자 힘을 지닌 사람들이다. 모든
중요하고 돈되는 일을 선도한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정보 사회의 복지를 등한시하며, 자신
만의 영리를 취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믿고, 미래를 확실히 우리 디지털 엘리트들에게 맡
겨라.
2. 네트 자유주의자
인터넷은 혁명이다. 디지털 엘리트들이 찬양하는 인터넷 혁명과 우리의 시각과는 질적으
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애초부터 인간의 자유와 발언권을 막는 어떠한 시도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특히, 인간이 지닌 자유를, 사업을 한답시고 자유의 공간에 금을 이리저리 쳐서
장사를 벌이는 인간들을 미워한다. 그렇다고 우리는 네트를 무법천지로 만들거나, 아예 장사
자체를 못하게 막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이득 추구로 좌우되는 것을 최소화하
고,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표현을 할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하며 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원한다. 우리는 종종 네트 엘리트들과도 공조를 한다. 디지털 정책과 경
제를 쥐어흔드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생각들을 관철시키려 애쓴다. 물론 가끔
씩 디지털 엘리트들에게 휘말려 배신의 쓴맛을 보기도 한다. 한편, 해커들과 사이버 히피들
과도 친분을 유지한다. 그 친구들이 당할 때는 우리가 나서서 돕는다. 비록 이 친구들이 과
격하거나 철모르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가 적극 옹호하는 표현의 자유를 이 친구
들이 침해당했다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다.
인터넷은 새로운 프런티어다. 그러나, 그 신천지도 이제 거의 사라질 지경에 처했다. 예전
에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디지털 엘리트들이 절교를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에 대
한 신조가 살아 숨쉬던 사이버공간은 시장의 논리가 도배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우리가 주연급 배우였다. 우리의 주장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장사치들이 판치던 작금에
비하면 그 때가 좋았다. 왕년에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배우를 꼽으라면, 존 페리 발로우, 미
첼 케이포, 하워드 레인골드 등이 있다.
곧 죽어도 우리는 인터넷의 미래를 믿는다. 아무리 장사치가 판쳐도 인터넷의 무한한 기
술적 속성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마지막 보루다. 인터넷만은 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자율적인 공동체를 실현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3. 사이버히피
우리는 세상의 시간을 삼등분으로 나눠 살아간다. 자고, 일하거나 먹고, 인터넷에서 사람
을 만나는 것. 사실 그 중 일하는 것도 어차피 네트에서 처리한다. 육신의 부자유스러움이
거추장스럽다. 훨훨 살덩이를 벗어 던지고 네트에 점프해 들어가 그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
다. 우리의 태생이 워낙 자유 정신을 신봉하던 터라, 가상의 공간은 새로운 우리의 실험대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형님들은 70년대 히피들이다. 그들이 자연을 벗삼아 마약의 엑스타시를
꿈꿨다면, 우리는 네트를 벗삼아 몽환(hallucination)의 기쁨을 누린다.
애초부터 우리는 권위와 위선을 증오했다. 권력이 부재한 세상, 즉 아나키적 미래가 우리
의 목표다. 권력은 상하를 가르고 억압을 키운다. 위선은 권력의 외부에 흐르는 독이다. 네
트의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평등 관계는 위선과 억압의 힘들을 무너뜨린다. 네트 자유주의자
들은 우리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르다. 그들은 권력의 힘에 거주한다. 디지털 엘리트와 일
을 꾸미거나, 제도화된 틀 속에서 움직이길 좋아한다. 우리의 히피 형님들은 이처럼 두 부류
의 인간형들을 만들어냈다. 우리같이 구제하기 힘든 사이버히피들과 제도권에 타협하는 자
유주의자들을 말이다. 우리는 네트 자유주의자들처럼 디지털 엘리트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
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이미 권력에 비타협적이기 때문이다.
기술에 의한 권력의 전복, 이것이 우리의 전술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미래의 건설은 네
트를 벗어나서 맨주먹으로 일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트의 힘을 통해 키우는 것이다. 러다
이트(Luddite)들이 맨주먹으로 기계를 부수면서 기계를 증오해 했다면, 우리는 기계를 활용
해 기계를 증오한다. 우리는 그래서, '네오-러다이트'라고도 불린다. 우리의 행동 방식은 다
소 개별적이고 영웅주의적이기도 하다. '해커'라고 악의적으로 통칭되는 집단도 우리의 일부
다. 언젠가 우리도 공동 관심사가 생기면, 무서운 태풍의 힘으로 돌변할 지도 모른다. 그 두
려운 징후들이 이미 각국의 연구소나 기업, 언론사들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우리
가 단역이긴 하나, 디지털 시대에 무시 못할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4. 네트의 신좌파
우리는 네트의 기술적 가능성을 믿는다. 하지만, 현실의 억압적인 족쇄는 그 가능성을 부
정한다. 인터넷의 미래가 감싸안기에는 현실의 골이 너무 깊다. 사이버히피나 네트 증오자들
은 아나키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우리는 연대와 단결을 중요시한다. 네트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억압받고 힘없는 소수의 목소리를 서로 연결해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
렸다. 일례로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빠띠스따의 투쟁은 인터넷을 타고 전세
계에 후원자들을 만들어냈다.
우리 스스로가 네트 극장에서 거의 얼굴도 찾기 힘든 단역 배우인 것을 안다. 아직은 외
소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장 큰 적인 디지털 엘리트를 향해 감히 도전한다. 그들은 산업
자본주의 이래로 끊임없이 모든 것을 독식하고 미래를 독단적으로 결정했던 집단이다. 이제
사이버공간도 그들의 점령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폭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
다. 외소한 힘들의 결집은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억압받는 자들이 모이면, 그 힘은 거대 권
력을 압도한다.
우리의 비전은 인터넷을 통해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사이버히피의 방
종은 어처구니없다. 이들을 경계하면서, 우리는 질서 잡힌 평등한 세상을 원한다. 바로 인터
넷은 이를 위한 도구이다. 만국의 네티즌들이여! 네트를 통해 총궐기하라!
5. 네트 증오자
한마디로 기술은 아니올시다다. 인간이 말들어낸 모든 문명은 인간을 타락시켰다. 사이버
히피들이 기술을 통해 문명을 전환한다지만, 이는 결국 기술의 꼬임에 넘어가는 일이다. 우
리는 맨손으로 기술 문명을 파괴하는 과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일명 '유나바머'라는 사
람은 우리의 우두머리다. 폭탄 제조를 통해 우리는 기술과학 문명의 위험을 지적해왔다. 인
간에 의한 현실 문명의 비극은 폭력의 정당성을 수긍하게 한다.
우리를 네트 극장의 악역으로만 몰고가는 분위기는 권력의 계획된 음모다. 게다가 인터넷
시대는 기술을 신봉하는 분위기를 만연시키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인간의 본연은 자연이
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우
리의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것이다!(이후 논의는 지나치게 과격해 생략했슴.)
<웹디자인> 2000.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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