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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학교 괴담
미국의 학교 당국자들은 요즘 학생들을 때려잡기에 여념이 없다. 미시간의 한 학교에서는
경찰까지 동원해 20여명의 남녀 학생들의 속옷까지 벗기고 잃어버린 돈을 찾는 해프닝이 벌
어졌다. 그러나, 돈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혐의를 받았던 학생들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미시건주의 이 지역 교육청은 미 수정헌법이 보장한 비상식적인 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 근거로 곧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의해 기소되었다.
올해 들어 지방 교육청이 학생들의 강제 정학을 명령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고딩 시
절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다가, 혹은 운동권 대학생 형의 이상한 책을 학교에 갖고와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읽다가 정학을 먹기도 하던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무슨 그게
대수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학의 근거라는 것이 자신의 컴퓨터를 집에서 가지고 논
죄밖에 없다면 어떨까? 워싱턴주의 한 공립학교의 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감을 패
러디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다, 강제 정학을 당했다. 이것이 신종 정학의 근거다.
같은 주의 다른 학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비공
식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학교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논의들을 수렴하는 장으
로 활용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닉 엠멧이란 학생의 불행은, 한 친구가 재미로 자신의
가짜 사망 기사를 써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연이은 가짜 부고들이 게시판
에 올라오면서, 이 사이트는 인기가 절정에 올랐다. 곧바로 이 사이트가 '히트 리스트'에 올
랐다는 한 텔레비전의 뉴스 오보로, 그 파장을 염려한 엠멧과 친구들은 서둘러 사이트를 폐
쇄해버렸다. 그러나, 이 지역 학교 당국은 학생들에게 5일 정학을 명령했고, 이들의 부모들
이 연방법원에 정학 명령 정지를 요청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법원은 다행히도 엠멧의 사건에 대해 학생들의 편에 섰다. 법원 판결문에서는, 이처럼 학
생들이 학교 밖에서 자신의 시간대에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행위는 명백히 학교 당국의
권한이나 통제 밖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 패러디 부고들이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명백히
폭력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그에게 내린 정학은 거
둬졌다. 대체로 이런 부류의 사건들은 공립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자신의 제작물을
만들거나 배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다시 엠멧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까지
학교 당국으로부터 입은 정신적이고 시간적 피해를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권위는 학교다. 학교측에 대한 학생들의 승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이같은 권위에 대한
패러디 사이트들의 운영이 사실상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법정 투쟁을 감내하면
서 패러디 사이트를 운영하기에는 이들은 너무 여리기에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판례에도 이 사건들이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본질적으로 학교 당
국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진보넷 200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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