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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 기술의 가능성에 도전하기 (따뜻한 디지털세상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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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와 함께한 제주 여행기

예정보다 늦게, 아주 한밤중에서야 비행기가 나를 제주 국제공항에 토해 놓았다. 내리자마자 RFID 꼬리표가 붙어있어 위치추적이 가능한 내 수하물 꾸러미를 찾으러 향했다. 수하물 스크린에 내 좌석번호가 뜨면서 내 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간에 여행 짐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속옷을 들고 집에 들고와 어찌할까하던 곤혹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짐 주인의 신원 확인이 RFID 칩에 의해 실시간으로 대조되어 이루어지니 전혀 그럴 걱정은 없고, 통관을 위해 세관카드를 작성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가면서 꼬리표를 통관대에 장착된 리더기에 갖다대니 저절로 가방 속 내용물들에 뭐가 있는 지가 죽죽 입력되고, 신원이 일치되자 ‘통과’ 사인이 떨어진다. 해외에서 국내 이동통신 전화요금으로 로밍서비스를 받던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죽어가 공항내 잡화점에서 재충전하여 밖으로 나섰다.
공항 입구를 나오자마자 정체불명의 여러 곳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요샌 공간 위치추적을 통한 표적마케팅 업체들이 서로들 밀고당기는 경쟁이라, 도대체가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지 주위 저렴한 호텔 가격 정보를 안내하는 메시지가 쉼없이 휴대전화 액정으로 넘쳐난다. 다들 살피려니 피곤이 밀려들어, 간단히 가격과 거리를 비교해 근처에 묵을 호텔 예약을 해놓았다.
비행기 이륙 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AT&T 무선 인터넷 이용권을 사서 랩탑을 이용해 예약했던 자동차 대여 서비스 차량 조회 내역도 휴대전화로 같이 날아 들어온다. 앞으로 며칠 제주도 해변 여러 곳을 다닐 참이라 아예 차를 공항에서 대여하기로 했다. 공항 렌터카 서비스에 도착했더니, 차량 인수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한밤중이라 직원도 없었다. 달랑 RFID 리더기 하나 매달려 있다. 거기다 내 휴대폰을 갖다대보니 신용카드 결제부터 예약 확인, 그리고 차량 상태를 알리는 출고 증명 내역을 기록한 영수증이 빠져나오고 자동차 키가 슬롯 박스 안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차를 몰고 호텔에 들기 전 와인 한 병과 면도기를 사기로 했다.
요 사이 이탈리아 와인에 입맛을 들이면서 잠들기 전 꼭 와인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RFID 칩에 저장된 상품 정보 덕분에 특정한 와인의 숙성도나 가격, 원산지, 전문가의 평가 등을 꼼꼼히 읽고 익히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고 떠나려는 차에,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어제 그 편의점 직원이었다. 그 이는 무척 낯익은 내 서류가방을 들고 서 있다. 그 직원은 내가 위치한 곳을 찾기 위해 편의점 실내 감시 카메라로 얼굴을 확인하고, 그리고 이와 연동되어 있는 RFID 칩이 들어있는 면도기 케이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손쉽게 알아냈다고 말한다. 어제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집으려다 몇 번이고 망설이던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하나는 쓰다 버려도 추적과는 상관없던 목욕탕 전용 일회용 면도기 한 다발, 다른 하나는 한 유럽 가전업체의 RFID 칩이 들어있던 면도기 사이에서 무엇을 살까 엄청난 갈등을 겪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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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아니 우리 주위에서 이미 볼 수도 있는 RFID 기술 사례들을 마치 실화인양 살펴봤다. 분명 일부는 현실이 되어 우리 주위에 성큼 다가서 있다. 제주 국제공항의 수하물 처리 시스템 사례는 이미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RFID 칩으로 가방 내용물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이는 또한 여러 복잡한 사생활 문제가 걸려 있기에, 실현 여부에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휴대폰과 연결된 자동차 대여 서비스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고, 언젠가 실현될 수 있을 법한 얘기다. 면도기 칩으로 가방을 찾는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필립스가 물류관리 목적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질 않은가? 예서 가방 주인을 찾는 설정은 선행으로 끝났지만, 물론 면도기 상품에 내장한 RFID 칩은 소비자의 위치 추적 등 프라이버시 논란을 낳기도 한다. 아무튼 이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 우리가 이동하는 공간 어디든 등장하고 삽입될 확률이 높다. 분명한 것은 이 새로운 기술이 삶의 편리를 높이고 인간과 사물, 사물들 스스로를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 경제, 사회 각 영역에서 크게 이바지한다면, 우리의 정보환경에 제 2의 혁신을 일으킬 충분한 힘이 되리란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긍정의 기술적 가능성을 살펴보는데 집중해보고자 한다.         
우선 용어 정리를 시도하자면, 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는 한국말로 무선주파수 식별 혹은 인증으로 옮길 수 있다. 아직은 통일된 용어 없이 그저 영어의 이니셜을 쓰니 여기서도 그리 쓰도록 하자. RFID의 기본 원리는 특정 전파를 쏘면 대상물에 부착된 꼬리표(태그)로부터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하여 이의 정보를 식별해내고 판독하는 것이다. 이 고유 전자 식별과 안테나 혹은 코일이란 것이 달려있는 요 꼬리표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추적하고 식별하고 그 안에 담겨진 정보 내용을 수집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RFID 기술의 응용 범위와 가용 능력이 무한하다.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RFID 기술들


미국과 유럽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주로 물류, 유통업무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도입한 RFID 기술은 이제 유비쿼터스 사회를 위한 기초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교통카드와 고속도로 통행료 결제에 사용하는 하이패스 카드 등에는 RFID 스마트 칩들이 삽입되어 범용으로 쓰인다.
어디 구간에서 들어오고 나며,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고 어떻게 구간 이동을 하고 있는 지를 집적하는데 이 기술만큼 편한 것이 없다. 최근 한 전시회에서, 한 국내 통신사는 휴대폰을 통해 양주와 식품의 상태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거의 모든 상거래 제품으로 확대될 수 있다. 대형 할인매장의 쇼핑 카트에 RFID 리더기를 각기 장착해, 쇼핑 물목의 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개인 카트에 담음과 동시에 결제가 이뤄지는 때가 멀지 않았다.
또한 늦은 밤 귀가하는 시민들이 택시 정보를 확인하거나, 버스 정류장에 부착된 태그로부터 버스 정보를 제공받는 RFID 대중교통 서비스도 이미 속속 나오고 있다. 횡단보도와 도로변 장애물 발견시 위험을 알리는 장애인 전용 태그 서비스는 이미 일본에선 실용 단계에 있다. 우리도 이에 대한 응용이 필요하다. 최근 영국에선 축구 등 스포츠 시즌 티켓 구입시 RFID 칩이 들어있는 스마트카드를 판매한다고 한다. 관객 팬의 성향들과 주로 몰리는 구단의 주요 매치 등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우리에겐 몇 년 전부터 시작된 RFID 국가 시범사업도 주목할 만한 분야이다. 예컨대, 조달청의 물품관리 프로그램, 한국공항 공사의 항공수하물 추적통제 시스템, 산업자원부의 수출입 국가물류 인프라 지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광우병 등의 RFID 관리프로그램, 그리고 국방부의 탄약관리 프로그램은 이미 이 기술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IT분야의 신성장 동력이자 중요한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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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으로 RFID가 대접받고, 거기서 더 나아가 ‘U-라이프’ 실현으로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물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야심찬 국가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정부와 정보통신부의 유비쿼터스 코리아 (U-Korea) 계획안과 U센서 네트워크(USN)라는 대규모 지능형 네트워크 공간 모델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해서 RFID 기술의 영역이 커지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 공기관들의 효율성 도모와 함께, 경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RFID 기술 영역의 시장 가능성을 크게 점친다. 세계 시장규모가 2010년에 1백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 하니 잠재력이 큰 영역이다. 이미 해외 거대 글로벌기업이 점차 인프라 솔루션 분야, 센서, 칩, 태그, 리더 등 분야별로 진출해가는 상황이지만, 그 틈새를 찾아 미들웨어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이 기술을 어느 나라보다 경제/사회 전반으로 확대할 때 물류비용 절감 효과가 막대하리라 본다. 초고속 통신망 사업에 연이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15년전쯤 국내 최초로 한국마사회가 마필 관리를 위해 경주용 말들에 RFID 꼬리표를 달면서 이의 기술적 효율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니, 지금의 기대치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젠 낙농이나 야생 동물 등에 확대되고, 말없는 상품들과 대상물들에 적용되는 형국이니 RFID의 적용 범위는 끝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기술 능력의 확대로 RFID 칩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가격은 떨어지고 지능화하는 추세다. RFID기술의 발전 추이를 보면, 단순히 이 기술을 이용한 물품 인식에서, 현재의 감지 및 이동경로 추적 단계, 그리고 향후 사물들간에 이뤄지는 자율적인 인공지능 통신 단계로 점차 발전해 나갈 전망이다.  


선결되어야 할 문제들


RFID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RFID의 전파가 미치는 인체 위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없다. 전파가 미치는 국민 건강 위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충분히 평가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바코드를 대신해 사물들이 각자 고유의 변별력이 생기고, 정보가 작은 칩 속에 저장되고, 그 칩의 위치가 상시적으로 관찰 가능해지면 사회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최근 국내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들이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지능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RFID 칩이 그 잠재적 복병이 될 확률이 크다. 누군가 RFID 칩을 내장한 대상물을 이동 중에도 소지한다면 그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예를 들어 최근 발급되는 미국 여권에 RFID 칩이 장착되고 있다. 그 안에 들어갈 정보의 축적도 문제지만, 개인은 고유의 식별자에 의해 이동 중에도 정보가 채집될 수 있다. 더 심한 경우 칩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몸속에 들어가 숨기도 한다. 몇 년 전 멕시코 정부가 법무장관을 비롯한 법무부 직원 수백여 명에게 신원확인용 RFID 칩을 이식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병원 환자들의 RFID 칩 이식은 아직도 미국에서 논란거리다.
기술적으로 일본의 히타치가 개발한 0.03 밀리미터의 초소형 RFID 칩인 일명 뮤-칩(μ-chip)은 128비트의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다 한다. 거의 눈에서 숨고 사라지는 기술의 수준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정보 저장능력을 고려해보면, 이는 지구상 거의 모든 대상물에 고유 아이디를 부여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위험성을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소형 칩은 연성 또한 강해 지폐에 내장할 수도 있다. 이미 유럽은 RFID 칩 내장형 지폐의 실제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다. 뮤-칩을 장착한 지폐가 리더 즉 인식기를 통해 스치기만 해도 지폐의 진위 여부를 정확히 판독할 수 있고, 더불어 지폐의 유통경로까지 추적해 음성 자금도 손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하니, 그의 순기능이 돋보인다.
뮤-칩에서 보듯, 하나의 기술에도 그 순기능과 역기능의 가능성이 항상 공존한다. 지난해 과기부의 RFID 기술영향평가 심의에서도 드러난 바이지만, 이 기술이 지닌 생산성과 국민 복지 향상과 기여와 함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가 항시 상존한다. 이의 쓰임새에 따라 개인 프라이버시의 크나큰 멍에가 되기도 하고, 유통과 물류 효율을 높이고 사회의 비용을 절감하는 우리에게 필수의 성장 기술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의 생체 칩 사례나 미국의 RFID 칩 여권은 분명히 옳은 방향에서 진행되는 국가 사업들의 사례들은 아니다. 오히려 인권 침해의 오해와 결과들을 낳을 공산이 크다. 우리는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 과기부의 권고에서처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각 부처의 RFID 시범사업에 프라이버시 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결과제는 RFID 기술로 다치는 시민들 개개인 신상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고, 이 새로운 미래 기술의 순기능을 부각시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투자 등의 국가 공공사업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버려진 칩들과 리더기 등 전자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과 환경 친화적인 재료를 개발해야 한다는 과기부의 제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물의 정보화’를 위한 RFID 기술 


정통부는 ‘전자태그의 보급이 ‘사물의 정보화’를 위한 첫걸음’이라 제안한다. 매력적인 문구다. RFID 칩과 U센서 기술을 통해 인간이 사물들에게 말을 걸고, 사물들끼리 서로 연결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지난 10여년간 정부 주도의 정보초고속망 사업이 정보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정보화 위상을 키우는데 공헌했다면, U-코리아 사업의 일환으로 벌이는 RFID 주요 사업은 사물들을 상호 연결하고 멍청한 사물들을 똑똑하게 바꾸는데 또 한번 크게 이바지하리라 보인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그랬듯이 U-라이프를 위한 ‘사물의 정보화’는 우리에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 공간 경험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기왕에 제대로 사물의 정보화 혁명을 일으키려면, 민간 유통, 물류 시장에서 RFID 기술의 성장을 독려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공공 부문에서 바람직한 RFID 적용 사례들이 많이 발굴돼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강서구청 등촌로의 가로수 5백여 그루에 지리정보시스템(GIS)과 RFID를 이용해 이의 위치, 수종, 병력 등을 모바일로 관리하는 첨단 가로수관리시스템 시범사업은 그 좋은 경우이다. 앞서 소개되었던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거리 공간에서의 위험 감지 반응 시스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야할 사안이다. 사물의 정보화가 시민 영역의 발전과 편의성을 도모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RFID 기술 영역에서도 성장과 복지가 같이 가야 한다. 그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최소화하는 노력이 경주돼야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사물의 정보화란 매력적 문구의 의미가 우리 모두에게 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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