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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공유의 새로운 구상

지식 공유의 새로운 구상 [한겨레]2002-05-17 02판 10면 128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그레이트풀 데드'라는 전설적인 미국의 록밴드가 있다. 전설이 된 것은 음악성을 근간으로 한 기막힌 라이브 공연에 힘입은 바 컸지만, 그 근저엔 음악 팬에게 자신의 곡을 자유롭게 복제하고 공유할 수 있게 독려한 자유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음반 판매량에 얽매이지 않는 그룹 맴버의 적극적인 팬 서비스가 오히려 수요층을 넓히고 라이브 등 가외 수익을 늘리는 활력소로 작용했다. 여럿이 함께 나눌수록 커진다는 공유의 정신을 자생적으로 체득한 경우다.최근 이 록밴드의 경영 방식과 비슷한 철학을 갖고 인터넷 공간에 개업 예정인 비영리 기업이 있다. 저작권의 기술적 통제를 지칭하는 '코드'란 개념으로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법대 교수 로렌스 레식이 직접 사업에 나섰다. 그가 뜻있는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이 벤처기업의 명칭은 '창작공유터'(Creative Commons)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회사는 사업 철학을 "좀더 건강한 첨단기술 경제"의 건설에 두고 있다. 시장과 맞선 정보의 완전한 해방이 비현실적 해법이라면, 저작권의 남용 또한 시장을 경직시켜 이를 좀먹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는 견해에 서 있다. 둘을 절충한, 시장에 친화적이고 공유의 가치를 도모할 수 있는 지적 재산의 좀더 유연하고 새로운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창작공유터는 창작자와 사용자의 권리 회복을 강조한다. 우선 이들은 기업과의 강제 계약관계에 의해 송두리째 빼앗긴 저작물 통제권을 원창작자에게 되돌려주려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기존 저작권을 대신해, 저자들이 창작물의 사용 방식을 자신과 이용자의 권리에 맞춰 폭넓게 정의하는 라이선스 개발도 그 일환이다. 방법은 원저자가 자신의 권리와 사용자의 창작물 이용 범위를 직접 콘텐츠에 명시하는 것이다. 이 라이선스로 보호받는 저작은 상업적 목적을 제외하곤 누구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더욱 흥미를 끄는 이들의 사업 기획으로 '공유자원보호회'라는 것도 있다. 기업으로부터 오래되고 사라질 프로그램의 소스코드(원본)를 기부받아 공유재로 바꾸는 사업을 담당할 모양이다. 기업의 프로그램 기부를 유도하려면 당연히 세금 감면 등 정부의 보조가 필요하다. 이들의 구상은 정보공유에 기초해 저작권의 폭력에 현실적인 방안을 갖고 대응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이제까지 산발적으로만 움직였던 인터넷의 공유 정신을 조직화한 사업으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아무쪼록 이 신생 기업이 시장에 불어대는 '저작권의 외풍'에도 흔들림없이 지식 공유의 터를 개척하는 실험 집단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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