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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이 천천히 내려왔고,
달을 비추는 조명 사이로 눈이 내렸다.
거의 유일한 무대장치,
아름답고 아름다운.
집시를 소재로 한 유일한 오페라가 <카르멘>이란다.
고란 브레고비치는 오페라 <카르멘>의 비극적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어 놓는다.
순진할 정도로 해피 엔딩을 꿈꾸는 집시들을 위한, 집시들에 의한 음악극.
뭐랄까, 마구 찬사를 던지지는 못 하겠다. 그러기엔 너무 낯설었으니까.
내러티브도 그렇고, 한 사람이 길게길게 독백하는 방식도 그렇고, 무대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또 뭐랄까, 그러면서도 맘에 드는 점들이 있었는데,
연주자들이 직접 대사를 하고 노래와 연주를 함께 한다는 점이 좋았다.
어느 무대에서나 연주자들은 그저 연주자일 뿐이어서, 마치 그들에게는 목소리도 없는 것 같고 배경 같다는 느낌이 있잖은가.
<해피 엔딩 카르멘>은 그런 관념을 깨버리면서 시작한다.
별 장치 없는 무대와 연주자들에게 특별한 연기를 주문한 것이 아닌, 독백을 소화하는 정도의 역할만 부여한 건,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란다. 무척 멋진 발상.
집시 브라스와 코러스는 참, 대책없는 생경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여전히 고란은 멋진 뮤지션이지만, 마초적인 데가 있다. --;;
알렌 아데모비치, 꺄아~ 올해도 왔고, 올해는 고란이 뒤에서만 조종!하는 역할을 해서, 이냥반이 빛을 더했다. 손목보호대는 여전하고나!~
사실 포주의 이름이 차우셰스쿠라거나 잉글랜드라 적힌 의상을 입었다거나 하는 데에 역사적인 맥락과 고란의 정치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을텐데, 쩝. 무지한 탓에 기표를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부끄.. 역사 공부도 하고는 싶은데 영 게을러서 어렵다. 경성 트로이카부터 열심히 읽어야지.
중간에 고란이 설명해 주는 그림 중 2번 그림이 참 맘에 들었는데, 웹상에서 구할 수가 없다. 하늘 가득 거위가 피눈물을 흘리며 주둥이를 땅으로 향하고 있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쥔 여인이 그려진.
월드 뮤직의 세계는 참 광대하고 오묘~하다. 풍덩풍덩 빠지고 싶어라.
근데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가 적당한 걸까? 세상의 모든 음악을 영미권과 비영미권으로 반땡하는 사고는 비영미권의 다양함을 그저 '비영미권'으로만 묶어두는 문제가 있는 듯.
고란, 내년에도 와줘요~ 알렌 데리고. ㅎㅎ
기왕이면 엘지아트센터나 성남아트센터 같은 공간 말고, 진짜 질펀하게 이 땅의 한없이 낮은 곳에서 낮은 사람들과 무대와 객석의 경계없이 놀아보면 얼마나 좋을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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