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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0
    혁명적 항거의 권리(2)
    ninita
  2. 2008/06/25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 닉 혼비(3)
    ninita
  3. 2008/05/11
    굽이치는 강가에서 / 온다 리쿠(4)
    ninita
  4. 2008/05/02
    유랑가족 /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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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4/06
    소금꽃 나무 / 김진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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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4/05
    와세다 1.5평 청춘기 / 다카노 히데유키(2)
    ninita
  7. 2008/04/03
    재미난 집 :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 / 앨리슨 벡델(2)
    ninita
  8. 2008/03/08
    바람의 도시 / 쓰네카와 고타로(4)
    ninita
  9. 2008/02/01
    2008/02/01(2)
    ninita
  10. 2007/06/21
    the left hand of darkness / ursula leguin(1)
    ninita

혁명적 항거의 권리

원래 저항권을 하나의 독립된 권리조항으로 명시하자는 의견과 그럴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저항권에 반대한 입장은 ‘저항권을 인정하게 되면 정부에 반대하는 봉기를 장려하는 꼴이 된다’, ‘남용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압제에 저항할 권리는 오직 기본적 인권과 자유가 체계적으로 박탈될 때인데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는가를 결정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결과적으로 ‘저항권을 규범 속에 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저항권을 옹호한 입장은 "그 누구도 저항권이 불안정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불합리가 너무 커서 대다수가 그것을 느낄 때까지는, 또한 그것이 수정돼야 할 필요성을 발견할 때까지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저항권에 대한 우려를 반박했다. 나아가 "저항권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표현한 것이다. 전제와 폭압에 맞선 저항의 권리를 언급하지 않고서 인권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바로 최근의 역사(나치로 인한 고통)가 저항의 필요성을 말해주지 않느냐, 파시즘에 대한 반대로서 정부에 반대할 권리가 규정돼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적극적 반대의견을 개진한 미국과 영국의 기권 속에 ‘혁명적 저항의 권리’는 결과적으로 별도 조항이 아닌 전문 속에 언급되게 됐다.

 

[인권연구_창] 지금, 세계인권선언을 묻다 (2) 전문과 1조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하며,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를 결과하였으며, 인류가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세계의 도래가 일반인의 지고한 열망으로 천명되었으며, 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에 의한 지배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함이 필수적이며, 국가간의 친선관계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긴요하며, 국제연합의 여러 국민들은 그 헌장에서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였으며, 더욱 폭넓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개선을 촉진할 것을 다짐하였으며, 회원국들은 국제연합과 협력하여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준수의 증진을 달성할 것을 서약하였으며, 이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이러한 서약의 이행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므로, 따라서 이제 국제연합 총회는 모든 개인과 사회의 각 기관은 세계인권선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한 채, 교육과 학업을 통하여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점진적인 국내적 및 국제적 조치를 통하여 회원국 국민 및 회원국 관할하의 영토의 국민들 양자 모두에게 권리와 자유의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인정과 준수를 보장하기 위하여 힘쓰도록, 모든 국민들과 국가에 대한 공통의 기준으로서 본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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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 닉 혼비

그 남자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나도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자살은 언제나 한 가지 선택이자 탈출구였고, 어려운 때를 위해 저축해 둔 여유자금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돈이 사라졌다. 아니 애초에 우리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돈은 뛰어내린 그 남자와 그 남자 같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낭떠러지 끝에서 다리를 대롱거리며 앉아 있는 것은, 몇 센티미터를 더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고, 우리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275)

 

나에게도 여유자금 같은 건 없다.

원제는 a long way down.

시시한 소설.

 

종종 궁금해하는 건데, 책날개나 뒷표지 아니면 신문에 실리는 광고문구들.

그거 쓰는 사람들,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말일까?

 

아, 쓰다보니 생각나는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시시할 거다.

그 다음날의 나는 어제의 나에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오늘의 나는 정말이지 시시할 것이기 때문에.



덧1.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중 일부를 적어 보냈던 건, 아마도 고 2 여름쯤. 동우에게.

아.. 모르겠다. 파트릭 모디아노 아니면 미셸 투르니에였을지도.

작가당 겨우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것두 한 10년 지나는 바람에 죄다 잊어버렸다.  

읽는 것두, 보는 것두, 이렇게 깨끗하게 허망하다.

동우의 옛날 아이디가 2007년까지 검색된다.

이것도 맘에 안 들어.

꿈같이 샤방했다가 순식간에 블랙홀로 되는 꼴이라니.

 

덧2.

시완레코드에 들어가면 뉴 트롤스의 걸작이 26년 만에 발매됐다는 팝업이 뜬다.

뉴 트롤스라면 아다지오 밖에 좋아하는 곡이 없지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함께 중 2 때쯤 꽤나 열광하며

앨범 전체를 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던 그룹이기도 하다.

내 기억에 앨범 전체를 듣는 일은 결국 실패했던 것 같다.

알란 파슨스는 그에 비하면 이지리스닝이라 앨범 여러 개를 다 사서 들었다.

노량진 자취방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살 때도 아다지오만 죽어라 들었다.

그놈의 골방은 빛도 잘 안 들어와 1층인데도 무슨 반지하 같이 우울한 굴이었다.

지금 방은 그 때만큼 우울하진 않지만, 낮에도 불을 켜야 책 읽을 정도가 된다.

말하고자 하는 건 그건 아니고...

시완레코드 홈페이지의 아스트랄함과

뉴트롤스, 알란 파슨스의 아스트랄함은 통하는 데가 있다는 거다.

아이리쉬 휘슬로 아다지오의 도입부를 불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일단은 내가 갖고 있는 리코더와 안따라로 시도를 해 봐야겠군.

안드레아 코어가 쓴다는 리틀블랙휘슬은 굉장히 저렴하지만 계속 품절이다.

유럽악기에서는 휘슬 종류 뿐만 아니라 안데스 지방의 목관악기인 께나와 삼뽀냐도 살 수 있다.

일본의 사쿠하치는 물론이다.

인디언 플룻이라고 불리는, 앙증맞은 새가 달린 듯한 그 나무피리는 북미 인디언들로부터 유래한 걸까?

내가 주인이라면 가게 이름을 바꾸겠다.

세상의 모든 소리, 이런 걸로.

구리긴 하지만 유럽악기보단 낫다.

 

문득 토토도 아스트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팅의 파니스 안젤리쿠스까지.

이 노랜 특히 하늘에서 무슨 계시라도 내릴 것만 같은데,

파바로티랑 같이 안 불렀으면 더더욱 그랬을듯.

몇 해 전에 파니스 안젤리쿠스를 페니스 안젤리쿠스라며 키득거리는 귀여운 여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브랜든과 누구더라. 트루디. 무려 2001년에!! 개봉했다.

 

이런 식이다. 새벽에 머릿 속에 떠도는 생각들이란.

가뜩이나 잡다한데 심하게 잡다해진다. 이게 참 싫다.

그래서 잡다해지지 않도록, 밤에는 잠 좀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형편없는 '우주적 토니'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12시 땡 하면 잠들고 8시 땡 하면 일어나게 해 달라고 할 거다.

멱살 잡고 흔들어야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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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강가에서 / 온다 리쿠

'짧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

 지금은 없는, 굽이쳐 흐르는 저 강가에서 보낸 소녀들의 나날.

 아무도 모르는 그 이야기를,

 지금 너한테만.'

 

지금 너한테만. 이라는 문구로부터 휩쓸려 들어간다.

 

무기력한 오후. 그나마 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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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 공선옥

작가의 말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가난한 작가일 뿐.

가난하여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작가'일 뿐.

 

.....

 

가난을 알고, 사람살이를 아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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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나무 / 김진숙

 

매일 조금씩 읽었다.

매일 조금씩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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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 다카노 히데유키

밤 9시 취침, 아침 6시 기상.

그리고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그저께 서점에 들러보니 마침 '하류지향'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노노무라 시절의 다카노가 그랬던 걸까?

하지만 모두가 떠난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던 그를, 너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해, 하고 주변 사람들이 바라봐 주어도, 그 역시 막막증을 앓고 있었다는 거..

막막증이 깊어지다 못해, 배로 치자면 정박해 있는 배가 되고도 몇 해 후..

결국은 그도 노노무라를 떠나버렸다는 거...

이후에도 그가 '참인간'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야시>의 작가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결국은 그 자신의 독특한 경험으로 글을 쓰고 어떻든 먹고 산다.

 

하지만.... 다시 그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본여관의 장기투숙객들을 떠올리자면..

거기서 살사와 탱고를 추고 시내로는 잘 나가지도 않고 만화와 드라마를 보며

근처 볼리비아 시장에서 장 봐와 밥해 먹고 사는 사람들...

헐값에 파는 깨진 계란을 꼭 챙기는..

막내가 서른인.... 그들은....

그들도 막막증을 겪을까?

하긴 그들에게도 그건 잠시 뿐일까.

길고 짧고의 문제지, 다카노가 11년 만에 노노무라를 떠났듯이... 인생을 두고 보면...

 

겐조 씨도 수전노도 모피남도 막막증을 겪었을까?

다카노야 그렇다 쳐도, 노노무라의 중년 남성들의 결말은 모두 우울하잖아.

 

+ 아무튼 아빠 온단다. 집청소나 하자. 밥 사주러 온다는 데도 왤케 구찮냐.... ㅡ.ㅡ

 

+ 날씨가 너무 좋아서 푸시시한 머리를 어케 좀 정리해 보려고 미용실 갔다가... 가출한 10대 소녀 머리가 됐다.. 이건 뭐..... 내가 봐도 웃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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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집 :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 / 앨리슨 벡델

 

원제는 fun home : a family tragicomic... 제목 번역이 별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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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도시 / 쓰네카와 고타로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일단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같은 환상의 공간.

그 세계와 연결된 자들의 슬픈 운명이 당신을 기다린다.'

 

쓰네카와 고타로라는 자의 <바람의 도시>를 읽었다. 어군한테 배운 바로는, 이런 걸 병행세계라고 한단다. 그리고 <스노우 크래쉬>라는 소설에 나왔던 메타버스(meta+universe=metaverse)라는 게 가상현실 그러니까 virtual reality를 대체하는 좀더 진화된 개념인 모양인데, 세컨드 라이프니 뭐니 요즘 실제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이런, 정말 시대에 뒤떨어져 있구나. 쩝. 근데 꼭 이것저것 다 해야 하나? 훔. 이러다 곤조만 부리는 늙다리가 되는 걸까?

 

<바람의 도시>에는 '고도'라 불리는 신의 영역에 속한 세계가 현실세계와 병존한다. 12살 짜리 소년 하나가 일곱 살 때 우연히 들어갔던 고도의 기억을 떠올리곤 친구와 함께 들어갔다가 겪는 일들이 대강의 줄거리인데, 오...... 재미있다.

 

가상세계가 됐건 로봇이 됐건 뭐가 됐건, 그 세계를 작동하는 원리들, 금기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게 참 재밌단 말이야. <고도>의 소유물은 인간세계로 나갈 수 없다거나..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거나.. 아시모프의 로봇 제3원칙 같은 거. 매트릭스의 전화기 같은 거?

 

일단 든 생각은, 일본 아이들은 참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재주가 있다는 것과 그게 가능한 역사/문화적인 배경이 있을텐데 그게 뭘까 궁금하다는 거. 난 일본 호러 소설이나 만화를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영화만 봐도 <링>이니 <검은 물 밑에서>, <기묘한 이야기> 같은 거 보면 참 그렇잖아? 뭐, <바람의 도시>의 병행세계와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그리고 저자 소개를 보니, 대학 졸업하고 프리터로 살다가 호주 오토바이 여행 좀 하고 알바 좀 해서 국내 오토바이 여행하고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 소설을 썼다 하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본 여관에 장기투숙하면서 살사나 탱고 배우러 다니는 일본 아이들이 생각났다. 봉봉 언니가 일본의 '하류인생'은 우리나라에서 쓰듯 막장인생 같은 개념이 아니고, 부에노스의 아이들이나 사회에 편입되길 거부하고 프리터처럼 그런 삶을 선택하는 부류를 말하는 거라고 했다. 훔. 드는 생각은 많은데, 그냥 여기까지.

 

아, 하나만 더. 병행세계라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 계급에 따라서든 국적(보다는 사는 곳)에 따라서든, 사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상 그 외의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 자체가 병행세계의 합이라는 말이다. 내 삶의 거죽을 들어내면, 모든 것이 고도의 삶일 터.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 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이마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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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1

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문학동네

 

소설집인 줄 몰랐다. 그냥 '소설'이라고만 되어 있길래 장편인 줄 알았지.

게다가 흥미로운 제목하며 표지까지, 난 <고래>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건 데뷔작 <프랭크와 나>부터 실린 소설집이다.

그리고 한 편 같은 십여 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를 되뇌인다.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눈 깜빡할 사이'였다는 것 뿐.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문학과지성사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말을 빠짐없이 읽는 편이다. 그것도 소설집이라 치면 첫 한두 편을 볼 때쯤, 본격적으로 맛을 보기 적에 읽는다. 작가도 사람이라 나는 그가 궁금하다. 31년생 할머니 작가는 자신을 웃기려 소소하게 써내려간 것들이라지만, 읽는 내내 나는 감탄한다. 느물느물 막힘없이 흘러가는 문장들 어딘가에 반전도 있고 감동도 있고, 한 30년 쯤 글을 쓰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작중화자는 거개가 노년층이다. 살만큼 산 사람들의 지난 삶으로부터 현재의 욕망까지를 잇고 뒤섞는 재주가 참 놀랍다. 사람살이 빤하다는 듯, 인간사 치졸함을 죄다 끄집어내기도 한다. 세상에서 이해받기 어려운 삶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힘을 싣기도 하고. 뭐, 거슬리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난 이 할머니 글솜씨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내가 구닥다리인가, 한유주 김애란 같은 이들보다 박완서에 마음이 간다. 쩝. 그나저나 천운영 신간도 보고 싶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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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ft hand of darkness / ursula leguin

The unknown, the unforetold, the unproven, that is what life is based on.

- Tell me, Genry. What is known? what is sure, predictable, inevitable - the one certain thing you know concerning your future, and mine?

- That we shall die.

- Yes. There´s really only one question that can be answered, Genry. And we already know the answer... The only thing that makes life possible is permanant, intolerable uncertainty : not knowing what comes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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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lerable uncertainty.....

really intolerable....

even when i´m free like this...

(i couldn´t understand most part of this book. ^^

when i go back to korea, i´ll read it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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