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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도시 / 쓰네카와 고타로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일단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같은 환상의 공간.

그 세계와 연결된 자들의 슬픈 운명이 당신을 기다린다.'

 

쓰네카와 고타로라는 자의 <바람의 도시>를 읽었다. 어군한테 배운 바로는, 이런 걸 병행세계라고 한단다. 그리고 <스노우 크래쉬>라는 소설에 나왔던 메타버스(meta+universe=metaverse)라는 게 가상현실 그러니까 virtual reality를 대체하는 좀더 진화된 개념인 모양인데, 세컨드 라이프니 뭐니 요즘 실제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이런, 정말 시대에 뒤떨어져 있구나. 쩝. 근데 꼭 이것저것 다 해야 하나? 훔. 이러다 곤조만 부리는 늙다리가 되는 걸까?

 

<바람의 도시>에는 '고도'라 불리는 신의 영역에 속한 세계가 현실세계와 병존한다. 12살 짜리 소년 하나가 일곱 살 때 우연히 들어갔던 고도의 기억을 떠올리곤 친구와 함께 들어갔다가 겪는 일들이 대강의 줄거리인데, 오...... 재미있다.

 

가상세계가 됐건 로봇이 됐건 뭐가 됐건, 그 세계를 작동하는 원리들, 금기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게 참 재밌단 말이야. <고도>의 소유물은 인간세계로 나갈 수 없다거나..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거나.. 아시모프의 로봇 제3원칙 같은 거. 매트릭스의 전화기 같은 거?

 

일단 든 생각은, 일본 아이들은 참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재주가 있다는 것과 그게 가능한 역사/문화적인 배경이 있을텐데 그게 뭘까 궁금하다는 거. 난 일본 호러 소설이나 만화를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영화만 봐도 <링>이니 <검은 물 밑에서>, <기묘한 이야기> 같은 거 보면 참 그렇잖아? 뭐, <바람의 도시>의 병행세계와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그리고 저자 소개를 보니, 대학 졸업하고 프리터로 살다가 호주 오토바이 여행 좀 하고 알바 좀 해서 국내 오토바이 여행하고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 소설을 썼다 하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본 여관에 장기투숙하면서 살사나 탱고 배우러 다니는 일본 아이들이 생각났다. 봉봉 언니가 일본의 '하류인생'은 우리나라에서 쓰듯 막장인생 같은 개념이 아니고, 부에노스의 아이들이나 사회에 편입되길 거부하고 프리터처럼 그런 삶을 선택하는 부류를 말하는 거라고 했다. 훔. 드는 생각은 많은데, 그냥 여기까지.

 

아, 하나만 더. 병행세계라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 계급에 따라서든 국적(보다는 사는 곳)에 따라서든, 사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상 그 외의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 자체가 병행세계의 합이라는 말이다. 내 삶의 거죽을 들어내면, 모든 것이 고도의 삶일 터.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 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이마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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