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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불명 야샤르 / 아지즈 네신

형님들, 제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학교에 가려고 할 때는 '넌 죽었어'라고 하더니 군에 입대할 때가 되니 '넌 살아 있어'라고 했어요.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고 할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하더니 유산을 상속받을 때가 되자 '넌 죽었어'라고 하네요. 그리고 정신병원에 처넣을 때는 '넌 살아 있어'라고 하고.

 

감방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합창을 했다.

 

에이, 씨발. p.134

 

"풍자는 세계를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부터 구제해줍니다" - 아지즈 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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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모든 기록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 감독님은 오늘날 칠레에서 영화의 역할은 무엇이며, 칠레가 완전히 사회주의화될 때 영화의 역할은 무엇이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 (전략)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위대한 혁명적 전망을 위한 길을 열고, 혁명이 무엇인가를 해명하고, 동시에 현실의 증인이 되며 - 그러나 미래의 변형을 설계하면서 - 그리고 군중의 선동체가 아니라 모든 사안들의 전위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은 종속된 국가에서 영화의 역할이라는 것은 문화적 식민주의의 모든 흔적을 정확히 깨뜨리고 혁명을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후략)

 



미겔 리틴 감독은 <칠레 전투>의 빠뜨리시오 구스만 감독과 함께 칠레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아옌데 대통령의 선거 참모 역할을 했고, 아옌데 당선 후에는 '칠레 필름'의 대표로 임명되어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영영화사의 비전을 개척하던 그는, 쿠데타 이후 망명길에 오른다.

 

미겔 리틴은 12년의 망명생활 중 피노체트 군부독재의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여 칠레로 밀입국, 6주간 목숨을 건 영화제작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바로 <칠레의 모든 기록 acta general de chile>이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감독의 경험을 기자 출신 대문호 마르께스가 인터뷰 하여 완성한 작품인데,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영화를 보는 듯 재미있게 술술 읽혀 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신분을 위장한 망명 영화감독이라는 사실 자체가 영화 같기만 하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영화인으로서의 사명감, 감독의 역사 의식 같은 건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위에 인용한 인터뷰는, 70년대 초 뉴욕에서 있었던 미겔 리틴과의 대담 내용인데, 뭐랄까, 너무나 정답 같은 그의 답변은 한미FTA가 체결된 지금, 21세기 한국 독자의 눈에 서글퍼 보이기만 한다. 찾아보니 2000년대에도 세 편 정도 제작한 걸로 나오는데, 지금 그가 가진 생각들이 난 너무 궁금하다.

 

-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제국주의와 종속 경제를 고려하거나 보여주지 않고서는 정치 영화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제국주의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민중으로 하여금 개닫게 하는 영상과 대사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제국주의'와 '혁명'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이 사용되어 민중은 이제 두 가지를 구별해내지 못합니다. 저는 현학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민중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의 관심은 항상 이러한 생각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는 답을 좀 찾았을까?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문제..

특히나 요즘 같은 과잉이미지, 과잉감성의.. 기교가 넘쳐나는 시대에...

과하지 않으며 적당한.. 적절하며 효과적인 전달.. 표현.. 이란..

 

조만간 떠나게 될 남미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칠레로 잡았다. 이스터 섬으로부터 돌아와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어설픈 로망이 있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옌데의 고향이자 스팅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발파라이소에도 꼭 한 번 들러야겠고, 가능하면 아옌데가 광산 노동자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았다던 꼰셉시온에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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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 초콜릿 /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다. 특정작품의 제목이라기 보다 관용적인 표현이 되어 버린 이 책의 원제는, 'como agua para chocolate'다. 책에는 '초콜릿 끓일 물'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는데,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상태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고 한다. 그것은 주인공 띠따의 삶이기도 하다.

 

제목은 익숙하지만, 영화는 얼마 전에야 보았다. 성과 사랑과 음식과 환상을 연결지은 몇몇 시퀀스가 인상적이었지만 영화 자체는 굉장히 어설펐는데 아마 고등학생 때 봤다면 아주 좋아했을 법한 영화였다. (호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도 고교 시절에는 어쩔 줄 몰라할 정도로 반했던 영화인데, 대학 때 다시 보니 내러티브가 메우지 못 한 엉성함들이 너무 많아 실망했었다.)

 

피식거리면서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난 후(사실 참 재밌는 아이디어다. 20여년 만에야 아무 거리낌없이 만나게 된 연인이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다가 남자가 죽고, 이윽고 여자는 성냥을 씹어 자신도 불을 내어 환한 터널로 들어간다는.. ㅎㅎㅎ 영화를 보면 더 웃긴데, 소설에서는 아름답다.), 아무래도 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그 생각이 옳았다. 움직이는 이미지로는 표현하기 힘든 세밀한 부분들이 문자가 주는 이미지적 심상으로 꽉 차 있었으니까..

 

저마다 몸안에는 성냥이 있어서 언젠가 그것이 타오를 때를 만나게 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는 일이 이렇게 에로틱한 행위인가 놀라면서도 미소지을 수 있는. 위트 있는 소설이다. 눈물이 섞인 반죽으로 만든 케이크를 먹고 사람들이 슬픔에 겨워하다 단체로 구토를 하거나, 그리움을 담은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아무 데나 들어가 그리운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는.. (그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창조가 이루어진 날이었다. p.254) 물론 최정점은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지만..

 

처음 발표됐을 땐 정말 독특한 소설이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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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여행기

<야간열차> 에릭 파이

 

이찬칼라의 골목골목에서 나는 휴식을 맛보았다. 멀리 있다는 것이 곤히 자는 것보다 편안한 휴식이 되어 줄 때가 있다. 그때 시간은 한없이 유연해져 그 속에서 자아는 저항 없이 녹아들고 정신은 주저 없이 열린다. p. 185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언젠가 우리는 광부들이 노동의 대가를 즐겁게 받아가고 먼지 낀 폐를 웃음으로 씻어낼 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것이 세상 저쪽, 붉은 빛이 퍼져 나오는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렇다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p.101

 

대체로 그는 발랄하지만 가볍지 않은 청년이었다. 여러 문장들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슬프고도 적확해 보이는 문장만을 기록해 두기로 한다.

 

그들은 지친 듯하면서도 한결같은 속도로 한 줄로 늘어서서 라마처럼 걸어갔다. p. 126

 

책을 읽고 나자, 월터 살레스의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DVD 구입 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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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드디어 다 읽었다. 아.. 뭐.. 읽으면서 궁금한 것도 많았고 생각나는 것도 많았지만 일단 손가락 노동만 해두기로.

 

아래 인용구는 일단, 홉스봄의 열여덟살 마지막 일기 내용이고 그 아래는 여든다섯 자서전의 일부다. 열여덟의 홉스봄은, 스우 타운센드가 쓴 '비밀일기'의 사춘기 소년 아드리안을 떠올리게 한다. ㅎㅎ

 

아, 원제는 interesting times.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바움. 호리호리하고 젓가락 같고 구부정하고 못생기고 머리는 금발인 열여덟 살 반 먹은 녀석. 이해력이 빠르고 피상적이지만 일반 상식이 대단히 많고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영역에서 남다른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거드름을 피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문제는 본인도 이것을 믿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위험하고 또 때로는 먹혀들 때가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지는 적은 없고 욕정을 승화하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어 보이는데, 자주 그런 건 아니지만 자연이나 예술을 감상하면서 맛보는 희열로 표현되기도 함. 도덕심은 전혀 없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쳤음. 어떤 사람은 그를 몹시 역겨워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우습게 봄. 혁명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통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음. 작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료를 주무를 수 있는 역량과 끈기가 모자람. 태산을 옮겼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하지 신념은 없음. 허영과 자만에 빠져 있음. 겁이 많음. 자연을 정말로 사랑함. 독일어를 까먹고 있음. p. 168-169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했다. ... 심지어 나는 내가 접해본 나라들 안에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개인으로서는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이었다. p.668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p. 672

 

생지옥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이미 여기 있습니다. 같이 살아 있는 데서 만들어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지옥입니다. 그것을 견디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길을 사람들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을 받아들이고 지옥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지옥이 거기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을 때까지요. 두 번째 길은 위험한데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고 알아보고 그것이 이어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는 것입니다. p.584(이탈로 칼비노 재인용)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p.508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사회주의에서 등을 돌린 것을 세계는 다시금 후회할 것이다. p.459

 

20세기 후반의 역사에서 일어난 정말로 기념비적인 사건은 이념도 아니고 학생들의 대학 점거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의 힘찬 진군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p.432

 

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이런 기준으로 따졌을 때 1968년 5월 혁명은 학생 혁명에 가까웠으나, 당시 파리 길거리에 나붙었던 벽보를 보았던 사람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거기에 적힌 문구로 보자면 혁명치고는 좀 묘한 혁명이었다. p.410

 

1956년의 나라는 사람을 자서전 집필가의 눈이 아니라 역사가의 눈으로 되돌아 보았을 때 물론 당을 떠날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당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잉글랜드에서 영국 젊은이로 공산주의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져갈 때 중유럽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내가 공산당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파시즘하고만 싸운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계 혁명을 위해 싸운다는 뜻이었다. ...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1932년 베를린에서 10대 소년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소련을 비판하고 회의한다 하더라도 세계 혁명과 그 거점이 10월 혁명에 대한 희망과 마치 탯줄처럼 단단히 이어져 있던 세대에 들어갔다.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 ... 역사가가 아니라 자서전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와서 말한다면 개인적 감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 그래서 나는 남았다. p.357

 

파티잔 커피 하우스 ^^;;; p.348

 

작은 위기가 잇따라 닥치다가 소련 군대의 헝가리 재점령이라는 끔찍한 사태로 절정에 이르렀고 다시 몇 달 동안 뜨거웠지만 결말은 뻔했던 논쟁을 거치면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패배로 곤두박질친 그 악몽 같은 해의 분위기도, 기억도 이제 와서는 아련하기만 하다. 영국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가 쓴 <보리 닭고기 수프>는 공산주의 신념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유대인 노동자 집안의 이야기인데 이 희곡을 보면 '이념을 잃어버리는 아픔과 이념에 매달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p.337

 

소련이 점령한 중유럽에서 살았거나 그곳 현실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산주의자로 남는다는 것은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념과 확신도 그대로 있었고 공산주의 이념이 이 세상을 바꾸어놓으리라는 믿음도 여전했지만 우리의 희망, 아니 적어도 나의 희망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파국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진보의 폭풍에 휘말려 날개를 접을 수 없는 '역사의 천사'처럼 불가피한 비극 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역설이라면 역설이었지만 예전의 신념을 그래도 쉽게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어렵사리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 시대에 서방 어디에서나 기승을 떨치던 반공주의였다. p.298

 

1980년대 말, 그러니까 체제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동독의 한 극작가는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희곡을 썼다.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사 랜슬롯은 묻는다. "세상 사람들은 성배와 원탁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우리의 정의와 우리의 꿈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 나는 아직도 성배를 믿는 걸까, 하고 그는 자문한다. "모르겠다" 랜슬롯은 말한다. "그런 물음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 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하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p.254

 

여기서 공과 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p.217

 

자전거야말로 구텐베르크 이후로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가능성을 온전히 구현한 최대의 발명품, 그것도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발명품인지도 모른다. p.153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맞추는 것을 뜻한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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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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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비닐 시트 / 모리 에토

고를 책이 딱히 없을 때 밑질 것 없는 기분으로 대충 골라 보는 나오키상 수상작. 책표지의 권신아 일러스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손이 갔다. 전반적으로 특별한 한 방은 없는데, 둥.. 둥.. 하는 것이..

 

예를 들어, 야요이. 제과학교에서 인정받는 재원이었지만, 히로미의 케익 맛에 반해 그녀의 케익을 많은 사람들이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걸 사명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까탈스런 히로미의 비서 역할을 오랜 세월 수행하는..

예를 들어, 기요시.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가 되고 싶어 공부했고 인정도 받았지만 스스로를 인정할 수는 없었던 탓에 결국 불사가 아닌 복원사가 된..

예를 들어, 이시쓰. 10년에 한 번쯤 친구들과 야구를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잘 설명하지 못 하겠지만, '그런' 인생이면 괜찮은 거지 꼭 '이런' 인생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젯밤에 문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도 '쇠고기덮밥'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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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 성석제

옷에서 냄새가 난다. 이불에서도 냄새가 난다. 방에서도 냄새가 난다. 몸에서도 냄새가 난다. 온 집 안에서 냄새가 난다. 온 세상에서 냄새가 난다. 모든 종말에는 냄새가 따른다.

 

화분이 하나도 남김없이 말라 죽는다.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p.278



.

성석제는 내가 처음 만난 재담꾼이었고, 그 서사의 유쾌함, 문체의 유쾌함은 늘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조동관 약전>이 그랬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반짝하는 황홀한 순간>이 그랬다.

그랬던 성석제가 달라졌다! 물론 그만의 장기들은 곳곳에 숨어있지만..

처절함이나 잔혹함은 성석제의 전공이 아니었는데,

그가 이렇게 돌아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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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백미는 단연코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주인공과 그의 가족이 동반 몰락하는 과정이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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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추락도 추락이다. 오늘따라 서울역 앞에 깨어져 나뒹굴던 소주병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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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 그대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생활과 방편이 바뀌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알 수 없다. 빠른 건 언제나 같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고마운 건 언제나 같다. 소설을 쓰게 해주는 존재들, 실재하는 또 실재하지 않는.

 

작가의 말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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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박준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원래는 ebs 열린 다큐멘터리 기획 공모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가 워낙 호응을 많이 받아서 책까지 나온 거란다.

 

가능하면 여행 모드로의 전환을 자제하고 두 달을 보내려 했지만, 1년 사업계획 논의의 지난함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냉큼 책을 사버렸다. 이런 류의 책이 필요한 시기였다고나 할까. 반나절 만에 다 읽어버렸지만, 읽는 동안 무척 행복해져 버렸다. 여행을 통한 공감이 주는 즐거움, 그건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약 같은 거다.

 

책이 전해주는 무슨 특별함 같은 건 없었지만, 친근해서 좋았고.... 역시, 훈자에는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라다크가 그러했듯, 훈자도 많이 개발되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기 시작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예전엔 없던 사회적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TV 리포트도 기억나네. (고등학교 때 본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 꼬마가 백마를 타고 가고 싶어하던 곳이 '약속의 땅 훈자'였다. 그 이후로 늘 맴도는 이름. 그 땐 훈자가 어디에도 없는 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파키스탄의 산골마을.)

 

처음, 장기여행자들을 만났을 때 60리터 배낭에 질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장기여행이 만드는 특유의 히피스런 아우라도.

 

오랜만에 45리터 짜리 내 배낭을 꺼내봤는데,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3년 부은 적금을 오는 5월이면 찾게 되는데, 그게 고스란히 내 여행자금이 된다.

돌아오면 또 열심히 모아서 어디론가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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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 니콜 크라우스

어느 날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모녀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이건 짠 맛, 이건 단 맛, 근데 짠 맛이 뭐야?

 

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은 짠 맛이 뭐냐고 물었고, 엄마는 뭐라뭐라 설명하다가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 짠 맛 몰라? 짠 맛이 짠 맛이지, 짠 거 있잖아, 아이 짜.

- 짠 거 아는데, 이 맛이 짠 맛인지 모르겠어.

 

...

 

"그는 누구에게 전화 거는 게 너무 당혹스러워서 혼자 죽었다." p.349

 

소녀 알마에게 이입하고는 있었지만, 레오도 괜찮았다. 뭐 굳이 이렇게 주인공들을 만나게 하다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영화화 하고 있다는데 영화는 그저 그럴 듯 싶다. 독창적이란 생각은 안 들던데, 하여간 호사가들이란.

 

내 이름이 알마였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에서 벙어리 소녀의 이름도 알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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