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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8/14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2)
    ninita
  2. 2005/08/06
    고래 / 천명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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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6/01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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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4/09
    등뼈 / 천운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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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3/30
    기형도 전집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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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3/18
    바늘 / 천운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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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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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07/31
    qu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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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07/18
    신탁의 밤 / 폴 오스터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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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노여움이 애정이란 걸 내게 가르쳐준 건 기억입니다. 그리고 시간입니다. p.151

('이' 관계에서 노여움이 애정이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기억과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줄 것은 무엇?)

 

빌어먹을 놈의 시대.

아무도 편지를 쓰지 않는다.

 

손글씨와 종이편지가 그리워.



맘에 드는 에피소드도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단편영화 같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3년 동안 같이 살던 남자를 놔두고,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을 떠난 여자, 리사가 의뢰한 편지. 그 여자가 그래..

 

"마음에는 경계라는 게 있어서 사람들은 그곳을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고 생각해. 난 마음의 국경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고 아직도 여행을 하고 있어."

p.175

 


i miss those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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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1.

천명관, 이라는 작가는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았다. <금서를 만나다>, 이런 꼭지를 진행했던 것 같은데.. 데카메론이나 캔터베리 이야기, 열하일기 같은 고전을, 그다지 멋지지 않은 목소리로 찬찬히 소개해 나가는 그가 참 기이해 보였다. 그리고, 전혀 재미있게 소개하지 않음에도 그 모든 고전들이 궁금해졌던 건 왜일까.

 



2.

천명관, 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건, 그의 소설 <고래>를 읽어보라는 내 오랜 친구의 문자 덕분이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땐,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지?, 라고 평론가들이 혼비백산 했더라는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물론 꼭 이같이 표현한 건 아니지만...

 

3.

총 3부 중 방금 2부의 마지막을 읽었다. 하룻밤 사이 300페이지를 읽었으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덮을 수 없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과연, 과장은 아니었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4.

어차피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설화 같기도 하고 민담 같기도 하며 어느 선술집 구석에서 별볼일 없는 사내들이 불콰한 얼굴로 킥킥거리며 주고받을 법한 음담패설 같기도 한 일장춘몽의 대서사시를 그저 읽어보라고 할 밖에... 아무튼 상당히 잡스러운 장르의 혼합에, 이태 전 독립영화제에서 봤던 <제목 없는 이야기> 같은... 구라의 향연이되 가볍게 치부할 수만은 없는...

 

5.

현대문학의 지형도에서는 불쑥 튀어나온 괴물일 지 몰라도, 어쩐지 그가 소개하는 오래된 금서가 그의 스승이자 참고문헌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데카메론이 읽고 싶어졌다. 하핫. 이쯤에서 내가 캔터베리로 떠나기 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문을 읽어주던 친구의 안부도 궁금해 지고, 캔터베리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며, 영국이라고 하면 런던 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캔터베리라는 어쩐지 촌스러운 지명을 얘기할 때마다 느꼈던 약간의 부끄러움도 떠오르고, <기사 윌리엄>에서 만담가로 묘사되는 초서의 입담에 한참 웃었던 기억도 난다. 

 

6.

- 이쯤 해두자. 진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계속된다.

 

7.

고래, 거대함, 힘... 그러나 이것들은 하나 같이 스러져간다. 또하나의 변주된 남근신화인가 하다가도 그 생각을 접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소멸에서 느껴지는 비애감.. 젠더로 바라보기엔 뭔가가 어긋나는 원시성과 근대성의 혼란이 있어서다..

 

8.

하루만에 두터운 소설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오랜만이다. 좋다.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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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발전이란 언제나, 소비에 의존하지 않고, 환경을 이용하여 생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by 이반 일리히 p.25

 

법률을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일정한 의견과 특수한 이해 관계를 갖는 인간이다. 그들은 법률을 만들어 강요하고 그것이 바이블인 것처럼 휘둘러 댄다. 따라서 법을 어기는 것은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역사에서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사람들보다 더, 인간의 생명에 대해 더없이 잔혹한 짓을 했다. 인류에 대한 최대의 파괴 행위는 법에 따라서, 포고령이나 정부 명령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최대의 폭력은 권력의 폭력이며, 일반 시민의 폭력이 아니다. by 하워드 진 p.33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일단 '불법파업'이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부당해고 한 노동자들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도 복직시키지 않는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결코 합리적이나 공정한 말일 수 없다.

 

경찰을 권력자의 개라고 본다면, 이미 비폭력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by 페트라 켈리 p.43

 

생산자인 우리 농민이 인간적으로는 군인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각을 굳게 갖고, 파괴자인 군대를 가르치고 이끌어 가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by 아와곤 쇼코 p.52

 

집회현장에서 전경들을 볼 때면 궁금해진다. 시위대가 펼쳐놓는 처절한 이야기들의 반만 귀담아 들어도 방패나 진압봉을 들어서 그들을 칠 생각은 안 할텐데. 시위대가 폭력을 휘두를 땐,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 그러나 공권력의 그것은 명령에 의한 즉각적이며 훈련된 폭력일 뿐, 정당한 분노가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공권력의 폭력과 민중의 폭력을 같은 결로 보지 않는다. 집단으로서의 경찰이나 군대에도 희망을 가져야 할까. 개개인에게는 희망을 가진다 해도 체제로서의 그들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

 

나는 원자폭탄 피해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인류의 삶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by 이시다니 스스무 p.54

 

혁명이란 인민 기관이 권력을 장악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해 가는 것이다. 인민 기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권위주의, 지도부의 횡포, 민중에 대한 무시 등은 계속될 것이며, 이것을 끊임없이 변혁해 나가야 한다. by  조지 레이키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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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뼈 / 천운영

사실 남자에게 여자는 지긋지긋한 날벌레에 불과했다. 138

 

불거진 뼈를 가진 신체는 비애감마저 느끼게 한다. 비극적인 육체. 육체의 중심에 우뚝 선 등뼈. 그 마디마디가 처참히 드러난 여윈 등.

   그 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다.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다. 여자가 남자의 발길질을 견뎌낸 것은 남자에게 그 등이 주는 처참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등을 감싸주기를 원했는지도. 148

 

남자는 문득 여자를 떠올렸다. 아무리 거부해도 무작정 다가오는 법만 알던 여자. 여자가 남자에게 맹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향해 강한 인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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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을 사다

무진기행을 제대로 읽어보고도 싶었다.

지금 나에겐 안개가 전부이므로.

 

.

.

 

대신 기형도를 집어들었다.

(기형도는 안개다.)

지금쯤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게,

몇 해 전 이른 봄이었다.

 

세상이 흔들리듯 바람이 불었고,

드러난 목 언저리가 많이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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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 천운영

1.

천운영은, 내게는 낯선 작가다.

 

그녀가 등장한 새천년 즈음부터 소설 읽기에 게을러진 탓이려니 한다.

어디선가 스치듯 들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밤샘 끝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갈을 견디지 못해 서점에 갔을 때, 도둑질 하듯 그녀의 첫 단편집을 집어들었다.

 

천운영의 소설이 새로운 것은, 두 가지 지점에서였다.


 



2.

하나는, 육식성과 폭력성을 갖춘 '추한' 여자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였다.

그러나 육식성도 추함도 '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야생성.. 여자들은 야생의 초원이거나 동물, 그 양자다.

월경 越境..하는 여자들..

 

3.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건만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좀체 일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일상에 대한, 역시, 세밀한 묘사.

문신은 어떻게 하는지, 소 머리는 어떻게 가르는지, 곰장어 껍질은 어떻게 벗겨내는지, 박제는 어떻게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일반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는 일이건만, 치밀한 묘사 자체가 아름다움이 되어버린다.

 

4.

여기에 덧대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랑, 성애, 가족의 이야기는 잔혹하고 처연하다.

어느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단편이 없다.

동물적인 자극이나 피비린내 나는 충격 따위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그런데 어쩐지 천운영의 소설들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월경>, <등뼈>는 베스트, <포옹>은 시점을 바꿔가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야기의 종횡무진이 마음에 드는 작품.

 

그러나 명확한 것은, 소설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다.

영화라면, 몸서리치게 싫어했을 것 같다.

 

5.

소재에 강하게 기대는 그녀의 작품들이 과연 어디까지 변주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소설이고 영화고 간에 동어반복이라고 생각한다.

주제에 있어서건 형식에 있어서건 반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면, 그를 작가라 칭할 수 있을 거다. 천운영이 독특하고 강한 소재에 천착한다 해도, 세상으로부터 그 소재를 선택하고 이끌어낼 줄 아는 시각은 이미 그녀만의 스타일이다.

 

조만간 두 번째 소설집인 <명랑>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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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도도, 저는 지독한 슬픔과 그리움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답니다!



나는 엉엉 울었다.

"걱정 마세요. 죽여 버릴 거니까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네 아빠를 죽이겠다고?"

"예. 죽일 거예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마음 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

"난 널 무척 사랑한단다, 꼬마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니까 자, 이젠 웃어봐야지."

...

망가라치바에 치여서 죽겠다던 녀석은 제제였는데, 슬프게도 사랑하는 뽀르뚜가가 죽어버렸다. 제제는 뭘 먹어도 다 토하고 야위어만 갔다. 다섯 살, 노랗고 억센 머리털의 악동 녀석이 견디기엔 너무 큰 슬픔. 제제는, 모든 걸 아는 듯 영리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어린애였다.

- 뽀르뚜가를 살아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제는 그렇게 기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슬픔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에게도, 마음 속으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고, 내가 죽어 없어질 때까지 죽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제가 겪은 아픔 같은 거, 나는 견뎌낼 자신이 없다. 내가 죽는 건 차라리 쉬울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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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s


(도리스 되리, "나 이뻐?" 중 <금붕어>, 405)

 

그치만 난 땀나는 건 질색이다.

난 걸을랜다, 그녀처럼.

 

"그녀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날마다 그녀는 조금씩 더 걸었다.
처음에는 1마일을 갔다 집에 돌아오고,
그 다음에는 2마일을 갔다 집에 돌아오는 식으로.
그러다 어느 날 그녀는 그냥 계속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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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 폴 오스터 / 열린책들






폴 오스터는 시드니 오어의 이야기를,
시드니 오어는 닉 보언의 이야기를,
닉 보언은 실비아 맥스웰의 <신탁의 밤>을 이야기 하고,
<신탁의 밤>에는 르뮈엘 플래그의 이야기가 있다.

시드니 오어에게는 존 트로즈라는 친구가 있고,
존 트로즈는 플리트크래프트 일화를 얘기해 준다.
시드니 오어는 돈벌이를 위해 보비 헌터가 영화화하고자 하는
타임머신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시드니 오어가 파란 공책에 써내려가는
존 트로즈와 그레이스, 자신과의 삼각관계에 대한,
실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들이 제멋대로 살아났다 사라지는 통에 정신이 없다. 이 소설은.

내가 궁금했던 건, 바르샤바의 전화번호부를 보면서 독방에 갇혀 버린 닉 보언이 어떻게 되는가, 였는데..
어느 순간 오스터는 시드로 하여금 닉에 대한 얘기는 더이상 하지 않게 만들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제이콥의 이야기로 성급하게 끝을 냈다.

그래, 나는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시드와 존이 나눈 대화를 떠올려 보니..

결국 폴 오스터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언제나처럼 우연과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고,

글쓰기가 현실을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파란 공책의 망령이
정말 '정말'일거라고 믿어버리게 하는 게,
이 소설의 맡은 바 임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말을 해 놓고 믿어버리고,
글을 써 놓고 믿어버리는 거.

사실 오스터가 이렇게 정신사나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역설하지 않았어도,
늘 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난 말이지.

 

p.s. <달의 궁전> 이후 한 5, 6년 만에 다시 집어든 폴 오스터다.
한 때 오스터가 유행일 때 그의 모든 소설을 섭렵한 선배들은,

이제 더이상 오스터를 거들떠 보지 않는 듯한데 - 비슷해서 지루하다 -

그런 중간 과정 없이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은 난,

그저 신나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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