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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집

 
 
 
 흔한 얘기 하나 “시는 이해하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이라고 ”
한 편의 시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공간과 시간들 그리고 이야기가……
너의 삶도 이해되는 것보다는 느낌을 전해줄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한 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시는 각 개인들의 내면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이해되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이 어느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곳 교사들의 제안에 따라 교과서에 나오는 자신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 관한 문제들을 푼 적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10개의 객관식 문제 중에서 시인은 겨우 세 개만 정답을 맞췄다는 것이다.

문학을 이른바 도식화하고 어떤 특정한 해석만이 유일한 정답이 되는 우리의 문학교육에 대한 개탄이라지 않을 수 없다. 시는 그냥 자신이 느끼는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굳이 이해를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처럼 우리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마음 속에 다가와 있는 시를 느끼게 될 뿐이다.

황지우의 시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시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된다. 특히나 그의 시들은 실험시와 불교의 선(禪)에 바탕을 둔 시들이 많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시들은 정말로 재밌게 읽힌다. 간간이 박혀있는 한자가 많아 옥편을 찾는 수고로움이야 있겠으나 한자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별 어려움은 아닐 것 같다.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槍)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 황지우, <비 그친 새벽산에서> 전문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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