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인도네시아] 반둥 시내, 앙쿨릉 공연 보기

춥다. 밤엔 또 춥다. 밤에 추워서인지 매연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야간 감기기운이 있어 약을 아예 먹고 잤더니 몸은 가뿐하지만...
비교적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매일 먹는 토스트와 버터와 잼 그리고 커피에 벌써 질렸는지 별 맛이 없다. 그래도 숙소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건 일찍 일어나는 동기도 되고 좋은 것 같다. 어제 하루를 낭비한 탓에 오늘은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하고 방에 올라와 급한 빨래를 일단 한다. 한 일도 없었던 어제 빨아두었음 좋았겠지만, 컨디션이 완전 꽝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막상 빨아보니 오랫 동안 입고다니던 긴 바지가 너무 더러워서 충격적이었다. 정말 심플한 이번 숙소엔 빨래줄 널 공간도 별로 없구나... 대충 바지는 샤워커튼 있는 곳에, 양말 등은 침대 사이에 널고 방을 나섰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 정도면 성공이다!

 

일단 역 근처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기차 시간도 그렇고, 오후에 있다는 전통음악 시간표도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족자로 가는 기차는 8시간. 시간표는 비교적 다양했는데, 이 동네에선 크게 할 일도 없을 것 같고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밤 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족자에 떨어지는 시간이 새벽 네시. 조금 주저하고 있으려니 인포센터 아저씨가 수소를 예약하면 픽업을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브로셔를 보여주는데, 사진도 좋고 가격도 50,000밖에 안하길래 얼씨구나 예약을 부탁했다. 예약의 댓가로 5,000을 요구하는데, 좀 꺼림직했지만 줄 수 밖에. 시내 가는 길과 공연 시간표와 공연장 가는 길도 상세히 알아두고 나와서 생각해보니 호텔 이름과 연락처라도 적어둘 걸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공공인포메이션센터에서 사기를 칠까 하는 안심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착각. 나는 5000루피아를 버리고 새벽에 족자카르타 기차역에서 해가 뜰 때 까지 혼자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밤 기차를 탄다는 건 오늘 12시 까지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는 것. 시내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재빨리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인포센터에서 볼 것도 있고 안전하다고 추천해준 길을 따라 서둘러 걸어가면서, 참 특색 없는 도시구나 싶었다. 한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중심가. 가이드북에서 이야기한 네덜란드 식 아르데코 건물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표적이라는 호텔 사진을 열심히 찍긴 했다만, 내가 알고있는 아르데코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 뿐.

 

아르데코 건물로 유명하다는 호텔. 더대체 어디가?

 

근처의 다른 건물. 이건 좀 유럽풍이긴 하다.


이번엔 이 거리에 있는 볼거리라고 추천되어있는 박물관에 들렀다.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기념 박물관. 1955년, 바로 이 자리에서 종전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이 모여 평화와 재건에 대한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당연하게도 호치민, 네루 등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은 거의 모두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였고, 이 즈음 해방이 되고 국가를 수립해나가는 과정에서 한번쯤 모여볼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방문한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모두 8월 15일 근처에 독립기념일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처럼 워낙 독립국이다 일본의 직접지배를 받던 나라는 일본 패전 이후 바로 독립이 되었지만,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처럼 원래 다른 국가의 식민지였다 일본으로 넘어간 나라들은 승전국들 끼리의 계산과 협상에 시간이 좀 필요했던 모양으로, 독립기념일이 며칠 늦는다.) 하지만, 아아... 나는 이 회의에 대해 이전에 알고있던 지식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 나름 교과서 열심히 보고, 대학땐 한 학기 동안 한국근현대사 세미나도 대충이나마 했었는데, 잘 모르는 걸 보니 별로 안중요한가보다 생각할 수 밖에. 그나저나, 행사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이런 작은 도시에서 그런 국제적인 행사가 열렸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지, 그 당시 회의장을 고대로 보전하는 한편, 그 회의와 관련된 사전 준비 모임들에 대한 기록, 당시의 사진들에서 부터 최근 회의 까지 모두 잘 전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이 회의엔 별 관심이 없었고, 사실 이 박물관에 오면 인도네시아 독립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좀 시들했다. 하지만, 처음 박물관 문을 열자 마자 환하게 웃더니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지적이고 예쁜 가이드 언니 덕택에 끝까지 다 관람. 나중에 당시 참가국들의 명단을 보니 일본도 들어있어서, 아니 이 회의에 온 거의 모든 나라들을 지배했던 나라가 어찌 여기 껴있냐고 했더니, 글쎄... 아마도 이 때 쯤이면 반성하고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면서 함께 씁쓸한 미소.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던가 하는 공통의 화제에 대해 조금 떠들었다. 아, 오랫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기쁨과 함께, 매연을 벗어나 시원하고 잘 정비된 작은 박물관에서 보낸 산뜻한 짧은 시간이었다.


자, 이제 숙소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시간. 조금 걷다 보니 동네 모스크 말고, 정부에서 지었을법 한, 종합운동장 느낌의 큰 모스크도 볼 수 있고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지리한 협상 끝에 베챠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얼른 샤워하고 짐 싸고 짐을 내다놓고는 숙소 거실에서 노닥거리는 아저씨들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한참 쉰다. 한숨 자면 딱 좋겠구만, 나는 이제 한동안 숙소 없는 신세. 아아... 별 거 아닌데 서글프다.

 

공연 시간을 여유있게 앞두고 공연장을 찾아 나섰다. 인포센터에서 배운 대로 큰 길에 니가서 지명을 대니 사람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태워준다. 시내버스지만 외곽까지 나가서인지 꽤 큰 차다. 했는데, 인포센터에서도 숙소에서도 하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길래 긴장을 많이 했는데 당연히 별 일은 없구만. 차장아저씨가 내가 미리 말한 동네에서 내려주신다. 여기서부터는 오토바이로 조금 가야한다고 하는데, 모여서 쉬고 계시는 베챠 아저씨들하고 협상을 하니 첨엔 10,000을 부르던 가격이 7,000까지 내려간다. 인포센터에서도 5,000에서 10,000이라고 했으니 그냥 탄다. 얼마 안가 도착한 곳은 규모가 꽤 있는 마을 같은 곳이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입장료가 예상보다 비싸다(80,000). 하지만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공연시간이 좀 남아 기다리는 동안 공짜로 주는 음료수를 마시며 이곳 공연과 관련된 각종 나무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공연에도 쓰인 각종 나무인형들

 

 

악기들

탈들

 

 

가장 탐이 났던 건 이 볼펜. 공연을 다 보고 공연이 좋으면 이 여왕님으로 하나 구입할까 했는데,

끝나고 가보니 이미 이 여왕님은 다 팔리고 없었다. 역시, 사람들 눈이 다 비슷하지...

 

 

이 곳은 앙쿨룽이라는 지역 전통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고 교육하는 공간인 듯 싶었다. 앙쿨룽은 대나무로 만들어 진 일종의 타악기인데, 악기 하나가 하나의 음을 낸다. 따라서, 7음계를 내기 위해선 7개의 악기가 필요하다. 원래는 5음계만 내는 악기였는데, 이 곳을 만든 부부의 스승이 7음계 짜리로 계량하면서 현대적인 대중성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이 악기를 계승하고 있는 셈일까. 제작하고 판매하고 교육하면서 공연을 통해 보여주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공연장 뒤에 넓게 펼쳐진 마을에서 놀던 아이들도, 나중에 보니 모두 공연에 투입되고 있었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낸 부부는 정부의 지원도 받아낸 듯 했는데, 지금은 판매와 공연 입장 수입으로만 유지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공연 전, 마을에서

 

공연 시간이 다되어 가자, 여기저기서 단체관광객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온 중장년층 부부들과 현지 관광객들인 듯 싶었다. 공연 자체는 꽤나 볼거리였는데, 사회자들이 사전에 이야기했 듯, 자바 지역의 전통 특히 앙쿨룽이 포함된 목관 연주를 곁들인 무대들을 시연삼아 보여주었다.
첫 무대는 힌두교의 전통적인 서사시인 라마다야단을 기초로 한 나무 인형극. 말레이시아에서 본 그림자 공연 처럼 한 분이 인형을 조정하고 목소리 연기도 직접 하셨다. 마지막에는 장막을 걷어 공연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인형극 공연의 셋팅. 무대 오른 쪽이 선한 편, 왼쪽이 악한 편을 상징하는 인형들이란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다수 출연했는데, 예전 부터 내려오던 할례 의식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연주를 하는 둥 마는 둥,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온 것 자체가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무용 공연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꽤나 기교를 가지고 전통 무용을 재현해주었다.

 

 

음악 자체만 즐기는 공연들도 있었는데, 동네 청소년들이 총출동하여 자바 각 지역의 전통 민요들을 연주하고, 모두에게 친숙한 동요를 연주하여 같이 부르는 시간도 있었고,

청소년들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힘있는 연주도 있었다. 그들은 푸가를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열정과 힘이 느껴지는 무대여서, 관객들 모두 완전히 몰입되었다.

이렇게 앙쿨룽을 연습하고 연주하며 지내는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전체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직접 앙쿨룽을 연주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모든 관객에게 앙쿨룽이 하나씩 돌아갔다. 개인이 낼 수 있는 음은 하나 밖에 안되지만, 이 마을의 계승자의 지휘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니 꽤 긴 노래도 함께 연주할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쉬운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를 가지고 하나의 음악을 표현해보는 즐거움. 죽은 표현이긴 하지만,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앙쿨룽 연주 사범님. 이 업계(?)의 후계자이신 듯.

저 보드에 있는 각 숫자가 하나의 음계를 나타낸다. 내 숫자가 올 때 흔들기만 해도 멋진 음악 완성.

 

다들 열심히 연주에 참여하며 신났다.

 

역시 마지막은 화합의 한마당이랄까. 공연에 투입되었던 동네 사람들과 관객들이 어우러져 무대에서 노는 시간. 약 세 시간의 공연으로 이런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니, 꽤나 괜찮은 공연이 아닌가.

 


돌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버스를 타고 떠날 때 쯤, 나는 큰 길가에 서서 버스 정류장 까지 나를 태워줄 탈 것을 찾아야 했다. 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서서, 3,000밖에 안하는 가격으로 태워주셨다. 역시, 거리를 보아하니, 올 때 지나친 가격을 지불한 듯. 문제는 버스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다. 불안해서 돌아가는 버스도 여기 서는지지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확실하지는 않다. 이미 어두워지는 시간, 배도 고픈데 꾸꾹 참았더니 오긴 했다. 숙소 근처의 거리에서 내려 한참 걸어 무사히 도착! 가방을 챙겨들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시간이 간당간당하여 서둘러 걸었더니, 아직 조금은 시간이 남아 역 앞 가판에서 밥을 먹었다. 쌀밥에 야채 약간과 상추와 삼블 (매운 소스)를 얹어 맛있게 먹고 있으려니, 식당에 밥먹으러 온 분들이 아주 흡족해하며 바라보고 더러 칭찬도 곁들이신다. 가격도 4,000밖에 안하니 행복하여라!

 

이것이 우리 돈 400원 짜리 저녁식사. 왼편의 분홍 그릇은 손 씼는 물이다. 잘못 알고 마시면 바보된다.

 

긴 기차여행을 대비한 물과 군것질 거리를 사서 드디어 입장.

표가 비싼 것이긴 하지만 이 기차 기대보다 좋다. 의자도 넓고, 각각 베게와 담요가 지급되는데데가, 떠날 때 쯤 빵과 물이 든 작은 박스를 나누어 줄 때는 약간 감동하기도 했다. 비행기보다 낫지 않은가. 내가 이용하곤 하던 동남아 저가 항공들은 물 한모금 안주고 비싼 값에 팔기나 하는데...

 

반둥에서 족자로 가는 야간열차, 익스프레스

기차에서 나누어준 빵과 물. 챙겨두니 좋은 식량이 되었었다.

 

하지만, 깔끔한 걸 기대하면 큰 오산. 담요에선 적당히 냄새가 났지만 추운 관계로 다리라도 덮어주었다. 베게는 사양하고 내 목베게를 이용. 옆 자리에 앉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저씨가 적당히 챙겨주시고 적당히 귀찮게 하시며 8시간의 기차길을 함께 했다.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야간 이동은 생각 보다는 힘들다. 그래도, 드디어 족자카르타에 가는구나. 이제부턴 사원들을 많이 볼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앙쿨릉을 들고 있는 내 모습. 셀카 실력의 부족으로 이정도 밖엔 안된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905 족자를 떠나며

어영부영 하다 보니 족자에서 5일이나 지냈다. 오늘은 이 도시를 떠나 보르부두르 사원으로 간다. 오래 있었지만 전혀 정들지 않았던 족자의 소소르자난 거리.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나중에라도 아쉬워질까 싶다.

 

족자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선크림을 바르고 먹을거리를 챙겨들고 구경에 나서서, 점심은 대충 구경거리 근처에서 싸간 빵이나 과일로 때우곤 해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씻고 자는 일상을 보냈다. 음... 그래봤자, 지난 며칠 많은 변형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무지무지 많은 사진들, 기억들을 정리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매일 여행기를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힘든 일인 것 같다. 지금도 며칠 전 내용을 하나 겨우 올렸을 뿐. 게다가, 죽도록 느린 인터넷 덕에, 결국 변변치않은 사진이나마 하나 올리려고 한 건 포기다. 하긴, 텍스트를 쳐넣고, 난사했던 사진들 중 몇 개를 골라내는 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여행지에서 꾸준히 여행기를 업데이트하던 모든 분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다.

 

아, 겨우 한 달 하고 얼마가 더 남았을 뿐이다. 염원하던 보르부두에서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여유롭게 지내고, 이번 주 까지 솔로 근교의 사원들을 다 돈 다음 주말 쯤 발리로 가서 일주일 쯤 지낼 예정. 그 이후의 일정은 나로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 아아... 아쉽다. 지난 여행들이 벌써 그리워지려 한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욕심만 앞서는구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빈둥거리기

일상이 그립다. 조용하고 여유있고 소소한 일상.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 일상이.
오전에 보고르에서 반둥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필리핀 일로일로에서의 두 달이 가장 가까웠을까. 하지만, 일상이 되기엔 너무 짧았던 시간, 너무 열악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그런 일상을 그리워하며 여행을 계획해왔는데, 사실 여행은 일상이 아니다. 이동하고 잘 곳과 먹을 것을 찾고 매일 돈을 세고 남은 돈을 가늠해봐야 하는 것. 하긴, 이 정도 수고도 없이 나의 그 힘들었던 일상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나 있었을까. 어찌 보면, 보라카이에서, 필리핀 북부의 계단식 논을 내려다보며, 또는 말레이시아 랑카의위 해변놀이 중에 충분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밤엔 무척 추웠다. 덥지 않을 것 같아 선풍기는 끄고, 이불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안했는데, 자는 동안 추워서 긴 팔을 껴입고 그래도 추워서 겨우 가방 깊숙히 넣어둔 살롱을 꺼내 덮었다. 낮의 더위를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일어나서도 긴팔 차림으로 아침을. 인도네시아는 숙박비에 거의 아침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저렴한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랄까. 아침은 겨우 로띠 한 장. 먼저 밥을 다 먹은 서양 커플이 설탕 그릇을 살짝 밀어주었다. 항상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커피를 타서 커피콩들이 다 가라앉기를 기다려 함께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 주인은 인도계인 것 같다.

 

나름대로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에서 알려준 대로 앙콕을 타고 터미널에 가서 반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앙콩 안에서는 중국계로 보이는 커플이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항상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는 혼자 여행을 하느냐, 왜 혼자냐 하는 것. 뭐... 그냥 웃을 뿐이다.
버스 터미널에 가니 사람들이 도시 이름을 외치며 달려든다. 나도 "반둥!"하고 외치니, 누군가 얼른 내 가방을 들고 막 떠나려는 버스에 실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상인들과 짐으로 가득찬 그 이코노미 버스는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얼른 가방을 찾아들고 익스프레스 버스는 없냐고 물어보니, 신나게 가방을 옮기던 소년은 실망하며 뒷 차를 가리킨다. 과연 익스프레스 버스는 에어컨과 TV(절대 취향에 맞지 않는 가라오케 비디오만을 틀어주긴 하지만), 그리고 넓은 좌석이 완비된 것이다. 여긴 한 술 더 떠 화장실과 흡연공간까지 있다. 승객들 보다 먼저 상인들이 올라타고 끊임 없이 물, 과자, 잡지 등을 권하는 가운데 꾿꾿이 버텨야 했다. 아니, 하지만 가는 도중 슬슬 배가 고파지는 관계로 이번엔 내가 상인이 올라타기를 바라는 형국이 되었는데, 아주 가끔 타는 사람들 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먹거리만 들고있으니, 참... 결국 배고픔도 거의 잊혀질 무렵 코코넛 떡으로 보이는 것을 사서 잘 먹었다. 인도네시아 버스는 다른 동남아와는 달리 휴게소 같은 곳에 들르지 않고 상인들이 올라타는 것만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긴, 화장실도 있으니, 사람들은 굳이 시원하고 안전한 버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지.) 탈 것을 타기 전엔 꼭 군것질 거리를 준비하자는 팁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계기였다. 그나저나, 에어컨 버스와 이코노미 버스의 가격 차이는 5배가 넘는다. 짧은 거리를 갈 때에는 이코노미를 이용해야지 하고 다짐해보지만, 앞으로 그럴 수 있을진 모르겠다.

 

반둥에 떨어진 건 1시쯤, 또 무더위 속이다. 다시 정신 없는 터미널에서 숙소에 가는 방법 찾기. 항상 문제는, 내가 내린 터미널이 과연 지도상에서 어디냐는 것이다. (전에 말레이시아 테란가누에서 이것 때문에 큰 코 다쳤었지...) 여하간에, 기차역에만 가면 찍어놓은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물어모니 앙콕을 타란다. 베낭을 거의 끌어안고, 더 이상 개미새끼 하나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채울 때 까지 출발하지 않는 앙콕 안에서 인내심이 바닥날 때 쯤, 드디어 출발. 하지만 내린 곳은 기차역은 커녕, 큰 구획으로도 3,4 블럭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먼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데다, 기차역이냐고 물어도 다들 맞다길래 내렸건만, 막상 내려 거리 이름을 확인해보니 정확힌 모르겠지만 가이드북 지도로만 봐도 1k가 넘는 듯. 게다가 무슨 앙콕 요금을 2,500이나 받는담. 그나저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또다시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지도를 연구하고 하여 일단 걷기 시작. 하지만, 덥다 덥다. 두 시가 넘었는데도... 게다가 나는 완전한 길치에 방향치 아닌가. 이러다 큰 코 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결국 절반 쯤 왔나 생각 될 무렵 슬쩍 손을 들어보이는 베챠(자전거 인력거) 아저씨와 협상 시작. 내 생각엔 먼 길을 가는 앙콕도 2,000이니 50m 정도 베챠를 타고 가는 건 2,500이면 될 것 같은데, 아저씨는 10,000을 달라고 하신다. 이런이런... 한참 실갱이 끝에 아저씨의 액수가 3,000까지 내려갔고, 나는 2,500으로 버티면서 결국 낙찰! 하지만, 지도도 보여드리고 확실히 목적지를 말했건만, 아저씨는 길을 잘 못찾으신다. 여기저기 묻다 조금 돌아 도차간 호텔은 어쩐지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게, 지나가던 동네 청년들 이야기로는 역시 문을 닫았단다. 하지만 더 협상하기도  귀찭고 여기서라면 지도에 있는 다른 수소를 걸어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내렸다. 2,500을 드리려는 데, 아저씨 갑자기 지갑에서 10,000짜리 지폐를 꺼내더니 이걸 달라신다. 이런... 돈 걸 생각하면 3,000은 드릴 수 있다고 생가했건만, 순간 성질이 뻗친 나는 영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 이럴 땐 기싸움이다. 무슨 소리냐, 다 이야기 되고 온 게 아니냐 실컫 이야기하고, 2,500 드리고 가방을 들고 내려서 갈 길을 갔다.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2,500은 좀 적은 액수이긴 했다. 하지만 분명 협상을 한 것인데... 일단 태우고 보자는 아저씨 심보가 괘씸할 뿐.
하긴, 나는 이런 작은 사건들에 대해 화를 참 잘 낸다. 어떻게 보면 불필요하게 오버한다 싶을 만큼. 작은 사기들 뿐이 아니라, 지나치게 다가오는 삐끼들이나 구걸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나와 같이 여행을 다닌 사람들은 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씩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무척 자연스런 반응이란 말이다. 무슨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 워낙 성질이 더러워서 일 수도 있고, 아님 나에게 뭔가 부당한 걸 요구하거나 해꼬지를 할 것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해서 해소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

 

결국 찾아간 숙소는 By Moritz라고, 가방을 끌고 걷는 도중 모든 사람이 거기 가는 길이냐고 하길래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었다. 이번인 화장실이 딸린 방으로... 배낭여행에 맞게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좋구만, 론리 필자는 왜 별로인 것 처럼 써놓았는지, 참...
짐을 풀고 나니 허기가 져서 미치겠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부실한 로띠 한 장을 지난 숙소에서 얻어먹은 뒤로 코코넛 떡 몇 점 먹은 게 전부로구나. 더 찾을 것도 없이 숙소 맞은편 작은 나시 캄푸르 집으로 갔다. 삶은 계란 하나와 배추 삶은 요리를 얹어 멋진 칠리소스 (이 집은 젓갈로 만든 것이었다!)와 함께 먹이니 정말 꿀맛이다. 차까지 한잔 주시는데, 가격은 4,000밖에 안되니 얼마나 훌륭한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숙소 찾고 밥 먹고 나니 치져서 잠깐 쉴까 하고 방에 올라갔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니 춥다. 잠깐은 커녕 일어나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음음...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해 지고 나면 저녁도 못먹을 거 같아 저녁이나 먹으로 휘적휘적 다시 몸을 움직여본다. 아아... 내일은 뭘 좀 해야할텐데.

 

숙소 By Moritz의 공용공간.

아침 먹을 떄와 저녁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여기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일한다기 보다 항상 기타를 튕기며 노는 모습. 그래도 연주 실력이 그럴듯 해 귀가 즐거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