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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천 년 전 인간의 흔적, 프람바난 사원

프람바난 사원은 족자 근교 프람바난이라는 지역에 있는 사원 유적 군으로, 보르부두르와 비슷한 연대, 그러니까 11세기 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접해 있는 네개의 유적들을 묶어 (일정한 배치 양식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인위적으로 묶었다기 보다 원래 건축 당시 부터 하나의 컴플렉스였을 것 같다.) 공원 비슷하게 조성을 해 놓았는데, 이 중 제법 규모가 있는 힌두 사원 하나와 불교 사원 하나는 각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이 되어있다. 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런 정치적 관계들과 경제적 목적들로 성립되는 것이라 무슨 준거틀이 될 순 없겠지만, 일단은 그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보기에도 그럴듯 하다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 만은 확실하다. 유네스코에서 지정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장점이라면, 입장료가 달라로 책정되며 그만큼 비싸진다는 단점도 있다.
여하간에, 오늘은 그 프람바난 사원을 보는 날이다.

 

지난 밤 모처럼 기분 좋게 맥주를 한 캔 하고 잤더니 숙면을 취한 느낌. 알람 소리에 가뿐하게 눈을 떠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챙겨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메모리카드에 있는 사진들을 노트북으로 옮겼는데, 왠 사진을 이리도 많이 찍었는지, 골라내고 정리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6시에 일어났건만 어버버 하다 보니 숙소를 나선 8시다. 인포센터에서 알아본 대로 숙소 근처에서 족자 메인 터미널인 기왕안 터미널로 가는 4번 버스를 타고, 거기서 솔로행 버스를 타서 중간에서 내린다. 뭐, 쉽다. 어딜 가려고 하던, 고유명사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알려주겠다, 싸겠다, 버스 길 따라 동네 구경도 하겠다,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가이드북에도 써있고 여기 사람들도 누누히 이야기를 하더라만, 버스 안에서 별 위험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가방을 꼭 움켜쥐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차장 아저씨가 내리라는 곳에서 내려 보니 역시 사원 정문 앞에 내려주는 건 아니라서, 순간적으로 멍하다. 삐끼들의 공세도 피할 겸 얼른 근처 슈퍼로 들어간다. 캔 커피 하나를 고른 다음 사원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영어를 못하는 슈퍼 언니들은 꽤나 당황하는 눈치다. 그럴 땐, 그림이라는 만국 공통어가 있지. 볼펜과 종이를 꺼내서 큰 도로와 슈퍼 위치를 그리고 볼펜을 건네드리니 화살표로 방향을 표시하고 숫자로 얼마쯤 걸으면 되는지도 써준다. 그리고 서로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말이 안통해도 언니들이 최고다. 덕분에 역시 애매한 사원 입구를 별 고생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비싼 입장료를 학생 할인(이게 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의 특징이랄까... 국제학생증으로 40% 정도는 할인이 된다. 떠나기 전에 급하게 국제학생증 유효기간을 연장한 게 도움이 되는군... 네가 무슨 학생이냐고, 아니, 나도 어엿한 방통대 학생이다.)으로 조금 싸게 끊고 들어가서 팜플렛도 받아들었다. 이 사원의 역사며 문화적 배경을 올칼라 사진들과 함께 설명해놓아 좋긴 했는데, 각 사원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각 건물에 대한 해설이 없는 점이 좀 아쉬웠다.

그나저나, 내리쬐는 햇볓이 엄청나다. 구름 한점 없는 환한 하늘에서 적도의 태양이 작렬하는데, 내 작고 얇은 양산으로는 그 빛을 가리기에 역부족. 사원 바닥의 모래들도 서로 질세라 빛을 반사하면서 빛나고, 검은 돌로 지어진 사원과 대비되어 엄청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니, 사원 안에서 양산도 대여해준다. 말이 양산이지, 집중호우 때나 쓸만한 거대한 짙은 청색 우산이다.

네 가지 사원 중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힌두 사원은 꽤 볼거리였다. 몇 개의 건물이 장방형의 공간에 우뚝 서 있는데, 각각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3신인 브라흐만, 비슈누, 시바의 사원이다. 조금 규모가 작은 애들은 가루다, 앙가, 그리고 또 하나 뭐더라, 여하튼, 그들이 타고다니는 동물(?)에 대한 사원인 듯 싶다. 짜임새 있는 건물에 꽤나 정교한 부조들이, 힌두교가 잘 나가던 시기 힘써서 만든 사원임을 알게 해준다. 아쉬운 건 각 건물에 가까이 가거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다는 것. 2003년에 일어난 거대한 지진으로 인해 복원해놓았던 사원들이 많이 훼손되어서 아직도 복원이 진행 중이고 안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만 삥 돌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인도네시아의 왠만한 사원들에는 가이드 같은 것이 있어서, 원한다면 개인적으로 고용을 할 수 있다.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은데, 10달러 선에서 협상 가능하고 대체로 6달러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어디 가나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나는 언제나 공공 서비스를 아쉬워하며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윽, 하지만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서 가이드를 대동하고 돌아다니는 웨스턴들 주위를 얼쩡거려 보지만, 아, 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에 많이 오지 않는 것인가. 대부분이 네덜란드 사람들에 가끔 불어도 있긴 하지만, 한마디도 못알아듣고 만다. 아아... 일본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찬찬히 돌아보다 기회를 노려 이 사원 주변에 아주 극소하게 분포한 그늘 아래 벤치를 차지했다. 이 뙤약볓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유일한 자리를 둘러싸고 관광객들 간의 경쟁이 치열했단 말이다. 아까 슈퍼에서 산 캔커피와 함께 싸가지고 온 빵(이번엔 족자로 오는 기차에서 옆자리 아저씨가 남겨준 빵)과 귤로 맛난 점심을 먹었다.

 

첫번째 사원을 나서 박물관에 들렀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근처에서 출토된 각종 힌두 조각들이 있고, 그 조각이 나타내는 것에 대한 설명이 영어로 짤막하게 붙어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힌두교와 관련된 신이며 신의 아바타며 신이 타고다니는 것이며 무기며 하는 것들은 너무 많아 기억하기가 힘들다.
박물관에는 또, 이 유적의 발굴과 복원에 대한 자료들도 좀 있다. 여기 와서 새삼, 내가 대학에서 배웠던 고고학과 미술사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천년 전 인간의 흔적을 문화를 발굴하고 복원하고 해석하고 현재 사람들이 공유하고 각자 무언가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언제나 나는 의미있고 규모도 있는 문화적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작은 역할을 하고싶었던 것 같다. 한참 뮤지컬에 빠져 있었던 때는 무대 스탭이라도 안될까 싶었고, 영화라는 작업 자체도 그렇고, 대학에서 문화제를 기획하던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런 발굴과 복원 작업 만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작업이 또 있겠는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안중에도 없었던, 가끔 강의실이나 답사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잠깐의 희열이, 입학 이후 10년이 지나 먼 인도네시아에서 유적과 박물관들을 보면서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너무 다른 길을 너무 멀리 그리고 후회 없이 왔다. 지금와서 다시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가고 불교와 힌두교에 대해 공부하고 유적이나 미술품들에 몰두한다고 생각해보면 꽤나 재미있달까 신선하긴 해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은 내 속에 분명하다. 여하간에, 여행을 하고 많은 걸 보다 보니 예상치도 않았던 자극들도 다가오는구나 생각이 든다.

 

첫 사원 부터 네 번째 사원 까지는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한 2km 정도 떨어져 있는 듯 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원을 걸어서 찾아가는 길, 정말 덥고 멀었다. 게다가, 두 사원은, 사원이라고 할 수도 없지, 작은 돌무더기들에 지나지 않아 나는 완전 김이 새고 말았다. 그나마 아스팔트 길을 피해서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샛길을 따라 걸었길래 망정이지. 가는 길에는 신기하게 사슴이며 양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기한 것도 아닌 게, 유적들에 양치는 사람들이 와서 풀을 먹이곤 하는 것 같다. 어느 곳 보다 잘 관리 된 넓은 풀밭이 있으니 말이다. 여하간에 덥고 지친 나는, 마지막 유적 바로 앞, 지붕이 덮힌, 마치 들마루 같이 생긴 구조물을 발견하곤 주저앉아버렸다. 앉아 보니 시멘트로 되어 있는 바닥이 시원하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니 이렇게 후련할수가! 내친 김에 아주 배를 깔고 누워서 다이어리도 끄적거리고 사탕도 우물우물 하며 한참을 쉬었다.

 

조금 체력을 회복해서 바로 앞에 있는 사원으로 진출해보니,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꽤 규모있는 건물군이 보인다. 이건 앞의 두 폐허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 지쳐서 안와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유네스코에서 지정받았다고 육백몇번이라고 번호 까지 커다랗게 써있다. 역시 불교 사원이다 보니 첫 사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둥글둥글한 상부 처리가 인상적이다. 여긴 통제가 되어 있지 않아서 꽤 가까이 가서 탑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벽 부조들이 상당히 훼손되어있고, 복원이 끝나지 않은 것도 많고, 무엇 보다 중심 탑이 지진의 후유증인지 아시바에 둘러쌓여 있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약간 흐려지기 시작한 하늘을 배경으로 탑 사이사이 둘러보고 있자니, 인적이 드문 오래된 유적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이 밀려왔다.

불교 사원 전경. 으으... 대낮에 역광

 

돌아가는 길도 어렵진 않았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내렸던 곳 반대쪽에서 한참 차를 기다리니 솔로에서 족자로 가던 버스가 와서 세워서 탔다. 족자에 내려서는 가까운 쇼핑몰에 있는 꽤 슈퍼에 들러 가방을 맞기고 휴지 등의 생필품과 내일 사원에 가서 먹을 빵과 과일을 좀 샀다. 이것이 내가 족자에서 즐기는 나름의 도시 놀이랄까. 그리고 오랫만에 쇼핑몰 푸드센터를 이용해보았다. 길거리에서 먹는, 싸지만 위생을 장담할 수 없는 한정된 음식들에 조금 질렸달까...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싸고 세금도 붙는 음식은 그저 그랬다. 하루 치 관광을 제대로 끝낸 하루를 기념하여 슈퍼에서 사온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취침. 내일은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고 디엥 플라토라는 유적을 보러 간다. 화이팅!

 

 

프람바난 기념 셀카. 쏟아지는 태양볓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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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족자, 크라톤 골목의 기억

연주와 노래 소리로 밖이 아주 씨끄럽다. 덕분에 알람도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 잘 들어 보니 이 노래소리 속에 "예수"라던지 "할렐루야" 같은 말들이 섞여있다. 무슬림 국가에서 교회 예배보는 소리라... 특이했지만, 씨끄러우니 빨리 방을 빠져나가는 수 밖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니, 위층으로 올라가란다. 알고고니 이 숙소엔 옥상정원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아침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내가 주문했지만 후회스러운 나시고랭(볶음밥)을 먹고 커피를 두 잔 얻어마셨다. 얼른 방에 가서 선크림을 최대한 바른 후 편한 T셔츠와 무릎 까지 오는 얇은 치마 차림으로 나선다.

 

크라톤 가는 길. 인도네시아의 오랜 중심도시의 느낌이라기 보단 왠 서양 도시에 왔나 싶었다.

 

오늘은 족자 시내에 있는 크라톤 구경. 크라톤은 술탄 팰리스를 중심으로 한 이 도시의 오랜 도시 구역인 것 같은데, 낮엔 무료로 전통 무용 공연도 하고 타만 사리(워터캐슬)이라 불리는 곳의 유적과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노점상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한참 걸어 도착하긴 했는데, 입구가 어딘지 한참 헷갈린다. 횡한 벌판 같은 곳을 뚫고 갈 때만 해도 정면에 입구가 있겠거니 했는데, 아니고, 주변에 있는 각종 탈것 기사들이 서로 자기꺼 타라고 우기는 가운데 겨우 제대로 입구를 찾아서 들어갔다. 한숨 돌리고 입장권 사고 내부 구경. 단체로 온 서양 여행객들이 꽤 많다. 궁전은, 언제 지었는지 잘 모르겠고 지금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호화로워 보이긴 했으나 사실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곳곳에 실내 전시장들이 있었는데, 역시 역대 술탄들이 쓰던 바틱, 물건, 각종 공예품 등을 전시해서 여전히 별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도자기 몇 점을 보면서 역시 느낀 건, 이번 여행 초기 대만에서 궁정박물관에 다녀온 뒤로 눈을 버렸다는 것이다. 중국의 긴 역사에서 태어난 수준급의 도자기들을 다 보고 와버렸으니, 이제 무슨 도자기를 봐도 시시해 보이는 것. 게다가, 한국 역시 한 도자기 하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어릴 때 부터 재미 없는 수학여행 등으로 방문했던 박물관들에서도 많은 도자기를 봐왔다. 게다가 전공이 전공인지라, 조는 와중에라도 강의실에서 한중일의 유수한 도자기는 한번 쯤 곁눈질을 할 수 있으니 (그러고 보니, '동양도자사'라는 수업도 들었었는데... 뭐가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쩝), 동남아에 있는 도자기가 눈에 차겠는가 말이다.

 

술탄 팰리스 구역 작은 박물관들 중 하나. 바틱 박물관이었던 것 같다.

 

그저 그런 궁전 구경과 달리, 한 시간 쯤 진행된 무용 공연은 무척 흥미로웠다. 연주는 베테랑 할아버지들이, 춤은 새ㅏ란 무용학교 학생들이 추는 듯 했는데, 세 가지 종류의 공연을 보여주어 자바 공연예술의 맛배기로는 충분했달까. 담배피고 차마시면서 여유 작작 악기를 두드리고 노래하고 추임새도 넣으시는 할아버지들의 연주도 인상적이었고, 무용수들이 두르고 나온 전통적인 소품, 가면, 가발, 분장, 의상 등도 볼만했다.

 

첫 번쨰 공연은 가면을 쓰고 추는 독무. 풀쩍풀쩍 날아다니기도 하고, 역동적이었다.

두 번째는 여성 2인조.

이 공연에는 해설이랄까, 대사같은 게 있었는데, 뒤에서 연주하시는 할아버지 중 한분이 바로 해설자다.

마지막 공연은 남성 2인조. 두 사람의 대결이 이 무용의 줄거리인 듯. 아주 묵직하고 강한 동작들.

이번엔 해설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있었다.

 

이제 그만 술탄팰리스 구역에서 나가볼까 하는데 어떤 사람이 따라와 가죽 꼭두각시 인형 만드는 데는 가봤나고 한다. 나는 또 내가 놓친 박물관이 있나 하고 얼른 따라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곳 직원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걸어 나를 데려다 준 곳은, 영 수상한 가게 같은 곳. 아, 또다! 이전 바틱 전시들과 같은 상황이 재연된다. 이런 식으로 관광객을 꼬셔서 데려와서 판매하는 것이 이 동네 관습(?)임이 분명하다. 이 집의경우 조상대대로 가죽 인형을 만들어왔다고, 만드는 법 등도 설명을 해준다. 과연 하나 만드는 데 3주씩 걸리는 정교한 예술 맞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인형극도 보고싶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를 위해 이걸 제작하지만 원하면 파리도 한다."는 말이 나온 순간, 나는 대충 인사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역시나, "왜, 관심 없냐?"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지역 문화, 전통 예술 같은 이야기들에 껌뻑 죽는 여행자들을 향해 날리는 이들의 마지막 승부수임이 분명하다. 관심이 없긴 왜 없나, 그러니까 삐끼한테 낚여서 여기까지 왔지. 물론, 그 바틱 페인팅이나 이 가죽 인형이나 예술 맞다. 아름답고 가치있다. 게다가 이번 가죽 인형은 길거리에 널린 바틱 페인팅과 비교하기 좀 미안할 만큼 진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 건, 게다가 좀 솔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팔아먹는 건 정말 별로다. 이들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성적인 특수 시장이 형성되는 것 보다는 시장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공공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반둥의 사웅 앙쿨룽 우조 처럼 어느 정도의 자부심과 체계와 재생산 시스템 정도는 갖추어지면 좋겠다.

 

여하간에 고맙다고 하고 그 공간을 나섰다. 이런 경우 내가 화가 나는 건 장사하시는 분들이 아니라 삐끼들이다. 순간이나마 그들이 보여준 호의에 대해 신뢰를 보낸 것이 이런 식으로 배신당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이다. 하지만, 지금 쯤은 익숙해져 버려서, 별 말 없이 타만 사리 가는 길을 물어보고 더 이상의 친절을 사뿐히 거절해주는 정도. 가는 길에 배가 고파지길래 길가 작은 식당 구역(?)에 들러서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한 잔 시켜 기차에서 받았던 빵과 함께 먹었다. 이걸로 점심은 끝!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모르지만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잘 해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정겨운 모습들이 좋았다.

몇 개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작은 노점상들이 모여있는 크라톤 내부의 와룽 구역.

 

골목을 구비구비 들어가자 타만 사리라고 생각되는 유적들이 나왔는데, 인상적인 건 딱히 복원의 흔적도 없이, 18세기 중엽'술탄의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 어떤 포르투갈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그 건물과 수로와 목욕탕의 잔해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장 큰 건물의 잔해는 거대하게 남아있었다. 오래 되었든 몇백년 안되었든, 종교 관련이던 아니던, 제대로 복원과 관리가 안되어 있는 유적들에서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이 공간에도 맴돈다. 그 사이에서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고 가끔 단체관광객들도 몰려왔다 짧은 설명을 듣고 가버린다.

 

크라톤 유적,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 붙어있다.

 

크라톤 타만 사리 유적에서...

 

이만하면 이제 나가도 되겠다 생각하고 대충 방향을 잡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간 것 까진 좋았는데, 크라톤에서 나가는 방향은 확실치 않다. 대충 물어가며 찾아가는데, 어째 골목으로 골목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 같다. 역시 내 방향감각은 정말이지... 하지만, 그 골목들, 오랜 도시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랜 집들과 편안하고 느긋해 보이는 사람들, 가도 가도 이어지는 일상의 냄새들이 무척 좋았다. 뙤약볓 아래를 양산을 쓰고 걸으며, 중간에 맘에 드는 가게에선 망고 쉐이크도 사먹고 그랬다. 그래,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가장 값진 법,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나만의 멋진 공간과 공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적당히 힘들 만큼 걷다가 물어물어 큰 도로로 빠져나와서 지도를 보며 방향과 거리를 가늠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무리. 그냥 지나가던 베챠를 협상해서 크라톤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이제 슬슬,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인정하고 적당히 편한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일까. 몇 번 다녔다고 이제는 익숙한 길을 따라 숙소로 간다. 거리에 펼쳐진 풍성한 기념품 거리들을 구경하며, 만일 여기가 마지막 여행지였다면 이것저것 살텐데 생각해보기도 하며... 그치만 막상 산 건 인도네시아어-영어 사전. 조금이라도 이곳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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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요,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관한 맛있는 수다"

드디어, 한다고 한다.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관한 포럼, 혹은 이야기하는 자리.
고생들 한다는 생각, 미안한 생각, 그 자리에 있고 싶은 생각, ...
무슨 이야기가 나올른지, 기대된다.


□ 포럼 기획 배경 :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들어 점점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미디어 활동 및 실천들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이 활동들에 대한 공유나 의미화 작업은 그리 폭넓게 진행되어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나온 이야기들은 주로 영상 및 웹이라는 매체에 한정되거나 개별 집단의 사례를 살펴보는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계 연구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성주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직접 자신의 활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적극적으로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리는 드물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자신의 활동을 뛰어넘어 전체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의 그림을 함께 그려나가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이 소수의 이론이나 담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살아있는 운동과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투박하더라도 현장에 발 딛고 있는 사람들이 그 고민과 내용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이에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활성화시키고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대한 고민은 여성 운동의 미디어 활용 전략 뿐 아니라 미디어운동의 방식을 여성주의적으로 구성해내는 작업을 포함해야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 포럼은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미디어 단체 및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미디어 및 사회 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아직 본격적인 활동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여성주의와 미디어운동의 만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별에 관계없이! 환영합니다. 
   
  이번 포럼이 자유롭게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관한 고민들을 소통하고 앞으로의 활동에 자극을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관한 공통의 인식기반을 마련하고 앞으로 함께 공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기회가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 예상참여자 :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미디어 단체 및 활동가
                        미디어 및 사회 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활동가들 
                        아직 본격적인 활동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여성주의와 미디어운동의 만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별에 관계없이!           


□ 프로그램           
           
“내가 말하는 여성주의 미디어/운동” 
       
전체 주제: 자신의 실천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던지고 싶은 말들 

1부 :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에 대한 정의 내리기 워크숍 (3~40분 정도)         
● 사회 / 김수경 (미디액트 창작지원실)

=>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을 정의내리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은 무엇일까?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이 어떤 목표와 내용 및 활동방식, 그리고 개인 및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지금까지 각자의 실천 및 시각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의 의의를 찾아보고 정의 내려 보자. 

=> 모둠별로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을 정의 내려 보고 논의한 내용 발표하는 방식 
     
2부 :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의 과제와 나아가야할 방향 (1시간 30분 정도)
● 사회 / 김지현 (미디액트 정책연구실) 

=> 현재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의 공백 및 앞으로의 숙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또는 앞으로 중요하게 가져가야 할 공동의 문제의식이나 의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얘기해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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