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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0 태국이다!

kl에서 국경 넘는 기차를 타고 태국 국경도시 핫야이로 들어왔다.

 

발리에서 솔로 까지 14시간, 솔로에서 하루 자고 솔로에서 kl까지 비행기, kl에서 여기 핫야이 까지 또 16시간. 이동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것 같다. 피로가 쌓였는지, 자도 자도 졸린 상황.

 

그래도, 반가운 태국이다. 저렴한 물가, 합리적 가격, 풍성한 여행 인프라. 그리고 팍치의 향!!

 

아침 일찍 끄라비를 거쳐 꼬피피로 들어가려 했건만, pc방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미 10시가 다 되어간다. 뭐, 그럼 어떠랴. 느긋하게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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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르부두르에 들어가기까지...

단일 조형물로는 최대 규모의 불교 유적.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미얀마의 바간과 더불어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종교 유적이라고들 한다. 기원후 800년 경에 지어졌다고 주정되지만, 누가, 왜, 얼마나 오랫 동안 이 거대한 탑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자바 섬의 다양한 정치적, 지리적 소용돌이 속에서 천 년이 넘도록 잊혀져 있던 이 유적은 19세기 초에서야 폐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 정부를 필두로 오랫 세월에 걸쳐 복원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많은 고고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 건축가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매달렸을까. 지금의 보루두부르는 상당 부분 복원되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자바 섬의 중심부, 거대한 화산 두 개를  병풍처럼 둘러두고, 넓은 평지 중심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돌연 산이 하나 솟은 꼴이다.

 

언젠간 꼭 봐야지 생각했었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휴가를 내서 갈 수 있는 짧은 여행들을 꿈꾸다 보면 언제나 후보지 리스트에 들어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인도네시아 땅덩이는 너무 넓고 다른 매력이 별로 없어 보였으며 항공료는 너무 비쌌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도네시아에 있지 않은가. 당연히 며칠 간의 시간을 할애한다. 족자의 여행자 거리에서 상인들이 파는 일일투어상품에 솔깃할 이유도 없다. 좀 비싸더라도 유적 공원 내부에 있다는 호텔에 묵으며 보르부두르를 낟낟히 보고 오리라.

 

뭐, 이렇게 생각했지만, 가는 날 부터 별로 상황이 좋진 않았다.

 

 



일단 떠나기 전 날 밤에 생리가 시작되었다. 나의 생리통과 생리혈의 양, 그리고 기분이 정말 다운되는 생리 증후군을 어찌한단 말인가... 결국 떠나는 날 오전 시간은 생리통과 함께 허비했다. 어차피 지난 이틀 다른 유적들을 본다고 고생을 좀 한데다 보르두부르로 가는 길은 멀지도 않고 간단하니 숙소 체크아웃 시간 까진 여유있게 보내자고 생각했던 차였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좋지도 않은 숙소 침대에서 배 깔고 조금 누워있다가 화장실도 들락거리길 한참. 하긴, 생리한다고 이렇게 빈둥거린다는 것도 매일 할 일이 있어 학교에 가야 하거나 출근을 해야 했던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사치다. 그러다 여길 떠나면 언제 또 인터넷을 할 수 있을까 싶어 피씨방에 들러서 겨우 써놓은 여행기 하나를 업데이트 하고 (결국 사진 업로드는 실패) 부모님과 채팅을 잠깐 하고는 라운더리도 찾아왔다. 후딱 짐을 싸서 숙소에 맞기고, 물가가 비쌀 보르두부르에서 이틀을 버틸 수 있는 먹거리를 좀 사고 돈을 뽑고 밥을 먹고는 출발. 어랏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보르부두르 가는 길에 탄 버스. 대충 4시간 이내의 시외버스들은 다 이렇게 생겼다.


디엥 플라토에 비하면 보르두부르는 식은죽 먹기.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로 갈아탔다. 무거운 가방이 있어 걱정했지만, 차장아저씨들이 친절하게 옮겨주신다. 역시 시외버스는 들고 나는 승객들 덕분에 멀지도 않은 보르두부르 까지 가는 데 한참 걸리지만, 학교 마치고 먼 집으로 돌아가는 여학생들,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절대 입에서 떼지 않는 아저씨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힘들게 다니는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버스길이 그리 나쁘진 않다. 와우! 나는 이제 곧 비싸지만 그 만큼 안락할 호텔에 갈테고, 염원하던 보르두부르도 볼 수 있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려 수많은 삐끼들을 거절하고 걷고 있는데, 계속 따라오던 아저씨가 내가 가려는 호텔은 멀다며 2,000만 내라는 통에 탔다. 뭐 별로 멀진 않지만 더운데 걸으며 찾아가는 수고를 덜긴 했다. 가격이 과연 얼마나 올랐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훨신 비싼(이 예상은 불과 6개월 전 여기 왔던 친구로부터 들은 정보였다.), 351,000루피아. 새벽 해뜨는 걸 보기 위해선 투숙객이라도 102,500 루피아를 더 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묵으면 입장료가 없는데다 몇번이고 사원에 들어갈 수 있는데다, 선라이징이 그렇게 멋지다고 하는데, 여기서 묵지 않으면 두 배도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이런이런... 그런데, 문제는 가격 보다, 방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어쩔 수 있나, 타고 왔던 베챠를 타고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아저씨가 다른 숙소에 데려다주긴 했지만, 100,000루피아나 한단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가격이 다 엉터리인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 곳은 두 배가 오른 수준이다. 정말 무서운 곳이었다. 결국 좀 먼 곳에 있는 더 싼 숙소로 찾아가느라 고생한 베챠 아저씨께도 꽤 많은 돈을 드려야 했다. 한 푼이라도 저렴한 곳으로 와서 최대한 깎긴 깎았는데도 750,000루피아. 자카르타에 맘먹고 쉬려고 잡았던 숙소를 제외하곤 가장 비싼 곳이다. 하지만, 아침이 포함되어있지 않고 푸세식 화장실에 세면대는 커녁 샤워기도 안달린 곳이다. 장점이라면 깨끗하다는 것. 사실 있을 건 대충 있는데 잘 관리 안되어서 먼지 펄펄 날리고 하수구 냄새가 나는 곳 보다 이런 곳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침이야 아주머니에게 사정해서 커피를 주는 것으로 해서 마침 족자에서 사간 빵으로 때우기로 하고, 쌀쌀해지기 전에 씻어나 두자는 생각에 오랫만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물을 끼얹으며 사워를 했다. 이미 사원은 문을 닫았을 시간. 해질녁 하는 기도 소리가 별 볼 것도 없는 마을에 울려퍼지고 있다. 식욕은 없어서 빵을 조금씩 뜯어먹다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어디 인터넷 쓸 수 있는 곳이라도 있나 나가보니 해가 거의 져서 깜깜하고 인터넷은 무슨. 아아... 생리증후군 까지 겹쳐 최대로 우울한 저녁 시간이었다. 콘센트는 있으니 노트북으로 여행기나 정리하면 좋겠지만, 이럴 땐 또 미뤄둔 일들이 하기 싫어지는 법. 동생이 갔다준 '시효경찰'이나 몇 편 보다가 뭔가 조금 끄적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잠이 드는 순간 방에는 씨끄러운 모기 몇 마리와 그 보다 더 씨끄러운 똥파리가 한마리, 그리고 게코가 두 마리 이상 함께 있었다. 아아, 게코도 이미 익숙한데다 벌레 잡아먹는다고 좋아하는 것도 어느 정도지, 벌레들이 이미 많은데다 방 안에까지 여러마리 들와와서 울어대면 참... 이거야 원, 두꺼비가 방안에 난입했던 말레이시아 타만네가라 정글 숙소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달까.

 

첫 숙소가 있던 조용한 골목

 

친절한 아주머니, 새벽 6시에 문을 두드려 깨우시며 커피를 가져다 주신다. 기껏 얻어먹은 커피가 식을까 조금 남은 빵을 함께 해치우곤 또 침대에 붙었다. 어제 저녁엔 그냥 호텔에 들어가지 말고 돈 다 내고 선라이징 보러 입장해서 구경하고는 그냥 이동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다간 그 호텔에 못가본 걸 계속 후회할지도 모르고 (전에 루앙프라방에서 라마8세 호텔인가에 못묵어본 걸 아직도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입장료 등도 아까우니 그냥 하루를 더 머물기로 결심한 차였다. 이렇게 되니 호텔 체크인 시간 까진 어차피 보르두부르에도 못들어가는 게 아닌가. 또 한번 생리기간 아침 침대에 붙은 몸을 그냥 붙여두는 사치를 부려본다. 겨우 체크아웃 시간 쯤 되어 기어나가선 호텔에 들어가기 전 가게에 들러 점심을 사먹는다. 박소 가게 외에는 노점상 식당이 보이지 않는데 박소는 먹기 싫고,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도 거의 굶은데다 오늘 저녁도 사발면으로 떼울 예정이니 점심은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다. 게다가, 어제 아침에 왼팔 전체에 뭔가 두드러기가 난 것을 발견했다. 지저분한 노점상 음식을 너무 먹었나 약간의 노파심마저 생겨 수도시설이 있는 가게를 찾게 된 것도 있었다. 음... 추천해주는 고추 요리와 나물, 그리고 작은 쭈꾸미 삷은 것 같은 것과 매운 양념이 되어있는 새우 몇 쪼가리를 골라서 밥 위에 엊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밥 먹고 있는 손님의 통역을 거쳐 8,000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뭐... 하지만 다 먹고 나서 계산하려고 보니 12,000이란다. 괜히 속은 것 같은 느낌. 노점에서 나시캄루프를 먹으면 4,000이면 먹을 수 있단 말이다. 그렇게 비쌀 줄 알았으면 뻑뻑한 쭈꾸미나 맛없는 나물 안먹었다구! 조금 항변을 해보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다 주고 나온다. 지붕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은 내가 잘못이지 사실 가게 아줌마가 무슨 잘못일까. 괜히 어제 저녁에 쌓인 우울을 그 쪽에 쏟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하지만 뭔가 서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가는 길, 베챠를 몰고 있는 어떤 아저씨가 마침 꼬마를 그 쪽 까지 태워주는 길이라며 같이 태워주겠단다. 기문도 안좋은데, 대낮의 거리를 걷기 보다 훨 나을 것 같아서 염치불구하고 탔다. 아저씨, 그 이후론 계속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신다. 계속되는 질문에 영어로 대답하다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일어로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여기서 영어보다 일본어를 더 많이 들은 것 같다. 상인들이던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던, 일단 일본어로 말을 걸고 보니 말이다. 아무리 일본인 아니라고 해도 꾿꾿이 아는 일본어를 다 동원해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 아저씨는 금방 미안하다며 다시 영어를 하신다. 정확하진 않지만 영어도 일본어도 수준급이시네. 여하튼, 호텔에 도착했고, 무료였고, 고마웠다.

어제 예약해 둔 덕에 방이 있었다. 체크인 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 쯤 남았는데도,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와 보니 우와! 정말 호텔이었던 것이다!! TV, 에어컨, 가방 올리는 장, 옷장, 책상 등이 다 있고 물도 두 병 공짜이다. 화장실엔 뜨거운 물이 나오고, 비누, 샴푸, 칫솔 등도 포장되어있다. 아아, 무엇보다 감동적인건, 개인 테라스에 의자와 탁자, 그리고 전등이 달려있었다는 것. 드디어 마음에 빛이 들어오고있다. 우우...

보드부두르 경내 마노하라 호텔. 인도네시아에서 묵은 숙소 중 가장 좋은 곳이었다.

 

지금 나가면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일단 방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오랫만에 제대로 된 침대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커피라도 타먹을까 뜨거운 물을 받아오는 길, 옆 방 테라스에서 놀고 있던 여자분이 일본어로 일본인이냐고 물어본다. 아뇨 한국인입니다라고 대답하곤 바로 영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 아, 오랫만에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니 좋네. 내일 선라이징 볼 때는 동료가 있을 것 같아 신난다.

 

아, 이리하여 보르두부르는 아직도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다. 태양이 조금 주춤할 대 쯤, 드디어 거대한 탑을 영접할 시간인가.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서보자!

 

호텔 부지에서 보이는 보르부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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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대중교통의 즐거움과 괴로움 - 디엥 플라토 유적군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것의 힘든 점은 그것의 불편함도 위험함도 아니다. 바로 기다림과 불안. 그것이 문제다.

 

디엥 플라토에 대중교통수단을 타고 가는 건 하나의 모험이었다. 족자 여행자 거리에 널린 상품을 이용하기엔 최소 인원인 2명을 채우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지만, 그럴 생각도 없었던 게 이곳 여행사들이 정말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태국이나 베트남 처럼 합리적인, 아니 그 편이 더 저렴한 경우도 많은 1일 관광이란 여기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 여하간에 나는 비상식적인 요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고 버스를 네 번 갈아타야 한다는 모험길에 나섰다.

숙소 앞에서 족자 북부 터미널로, 거기서 망글란이란 도시로, 또 거기서 우노소보란 도시로 가는 데 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요금인 인포센터에서 알려준 것 보다 조금씩 더 싸기까지 했고, 중간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만 예상시간 보다 조금씩 빠르게 도착했다. 오히려 버스가 너무 빨리 이어져 밥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 굶어야 할거라고 예상은 하고 먹을 것을 좀 준비해서 가긴 했지만,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과 내릴 지점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좀 피곤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오랫만에 보는 산들, 정겨운 농촌 풍경들, 사심 없는 어린애들의 미소 덕에 즐거운 길이기도 했다. 버스는 끊임없이 위쪽으로 위쪽으로 올라가서, 거대한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을 넘나 했더니, 근처의 다른 산 기슭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차장 밖으로 보이던 거대한 산.

사실 인도네시아는 활화산을 비롯한 멋진 산들로도 유명하지만, 산에 별 관심 없는 나는 그냥 배경으로 구경하는 정도...

 

가는 길 만난 산골 동네의 아낙들. 이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뭔가를 이렇게 널어 말리고 있었다.

 

로컬버스 일등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디엥으로 가는 길.

 

문제는 움노소보라는 마을에서 부터 발생했다. 목적지의 고유명사 밖에 소통할 길이 없어도 여기까진 잘 왔건만, 움노소보 터미널에 내려 최종 목적지인 '디엥'을 외치자 작은 앙콕으로 갈아타란다. 역시나 좁아 터진 앙콕을 타고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좀 달리다 어떤 미니버스로 다시 갈아타라고들 한다. 역시 요금이 1,000밖에 안할 때,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미니버스. 출발할 생각을 안한다. 더운 버스 안에서 한참 기다리지만 떠날 기미는 없고 차에 이미 타고 있던 수상한 남자들이 자꾸 말만 걸 뿐이다. 내려서 노점상 아저씨에게 다시 물어보지만 이 버스 타란 말만. 이미 시간이 꽤 가고 있다. 해 지기 전에 족자로 돌아가야 할텐데... 조금 더 기다리니 차장이 와서 앞문을 열어주며 타란다. 뭔가,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하나의 서비스 같은 것. 버스가 출발했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 이 버스는 정말정말 느리다. 온 동네 사람들을 다 태우고 내리는 건 시골 버스 특성 상 어쩔 수 없으니. 하지만, 차장과 운전사가 합심해서, 말도 안통하는데, 이걸 타고 사원 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걸 15,000에 하자고 계속 꼬드긴다. 사실 편도가 7,000이니 절대 물한 가격은 아닌데, 공공 교통수단을 가지고 자기들 장사를 해먹으려는 심산이 용납이 안된다. 그럼 이 동네 사람들은 어쩌라는 건데? 나는 그냥 터미널에서 내리겠다고, 그 요금은 얼마냐고 아무리 물어도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가자는데, 정말 질렸다. 움노소보에서 디엥까지 가는 길, 넓은 산기슭에 펼쳐진 논밭과 마을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기분은 점점 바닥을 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해 질 때 까지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초조하고 배도 고프단 말이다. 결국 "터미널"을 외쳐서 겨우 내렸다. 그런데, 내려 보니 정말 썰렁한 곳이었다. 아, 가이드북에 지도도 안나온 곳을 어떻게 찾아간다... 밥도 먹고 정보도 얻을 겸 바로 앞에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는데, 밥값은 터무니 없이 비싸 길만 묻고 나왔다. 일견 친철하게 설명해주던 아저씨도 300미터랬다가 600미터랬다가 계속 말을 돌리더니, 걸어가긴 힘드니 오토바이 타고 자기랑 가면 싸게 해주겠다더니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붙이길래 나는 그냥 걸을거라고 쌩하니 나와버렸다. 아, 나는 왜 나에게 뭔가를 팔려 드는 사람들이 다 싫을까.

 

길가에 파는 구운 옥수수를 하나 사서 산 아래 마을의 땡볓을 뚫고 걷는다. 외국 사람 자체가 드문지, 몇 몇 안되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한다. 도저히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대충 물어 가며 걸으니 금방 도착하는 걸. 썰렁한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출발한 지 거의 여섯시간이 지나 드디어! 디엥 플라토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아아... 이걸 보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눈 앞엔 정말 폐허가 있을 뿐이다.

 

 

다행히, 눈을 돌려 보니 그나마 사원이라는 게 보인다. 가장 큰 건물이 아르주나 사원. 나머지 세 개는 뭐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사원들은 비슷한 연대에 지어진 프람바난이나 보르부두르 보다 백여년은 먼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산골에다 사원을 이렇게 여러 개 지었었는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작은 정원 처럼 조성된 사원 주변엔 인도네시아 커플 한 팀이 그나마 있는 그늘을 차지하고 뒹굴거리고 있고, 양 치는 아저씨도 등장하시고 그런다. 나도 사원을 마주보고 적당한 자리를 골라서 남은 옥수수와 사원 앞에서 산 차와 빵 쪼가리 (어제 족자에서 산 빵인데, 맛 없다... 윽...)를 우걱우걱 먹었다. 뭐, 사원이 별로여도 오는 길이 그렇게 아름다웠으니, 그리고 여기서 보이는 이 동네 풍경 또한 괜찮으니, 만족할 만 하다.

 

 

 

아까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원래 보려고 했던 이곳 아르주나 컴플렉스와 더 위쪽에 있는 불교 사원 말고도, 온천수가 나오는 곳도 있고, 다른 뭔가도 있는 것 같던데, 너무 멀어서 포기. 사실 불교 사원도 1k 쯤 된다길래 포기할까 하다가, 이것만 보고 가긴 너무 아쉬워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서두르자.

가는 길에 박물관이 있다던데, 기껏 찾아갔더니 공사판이 한창이고 정말 초라해 보이는 박물관은 운영을 안한다. 그 앞에도 무슨 장방형의 사원 흔적이 있던데, 아무래도 이 곳은 곧 큰 사원공원으로 재탄생하려는 듣 싶다. 할 수 없이 불교 사원 까지 가는 길, 산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아, 오토바이를 운전할 줄 알았다면, 그리고 대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나가는 중엔 작은 마을이 있어 집들도 보이고 소규모 학교도 있다. 소녀 두 명이 신기한 듯 뒤에서 조르르 뛰어와서 수줍게 "헬로"라고 말을 걸고 또 뛰어 사라진다. 겨우 도착한 불교 사원은, 정말 뻘쭘하게 잔디밭 한가운데 우뚝 서있다. 그래도, 꽤 큰 탑이 이제 한참 기운 햇볓을 받아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게 볼만했다. 저 위의 불상 얼굴들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사진을 좀 찍고, 대견한 나를 위해 셀카도 좀 찍어주고, 얼른 발걸음을 돌린다.

 

 

 

아아, 이제 정말 맘이 급하다. 더이상 돈을 아낄 생각 보다는 얼른 돌아갈 일이 더 중요하다. 사원 앞에 있던 오토바이들에게 터미널 까지만 데려다달라고, 거리에 비해 꽤 큰 돈을 주고 협상을 해야 했다. 내려가는 버스에는 또 앞좌석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이번엔 가격도 제대로 붙어있고 좀 빠른가. 하지만 움노소보에서 터미널이 아닌 어떤 곳에서 다른 미니버스를 타라고 내려주고는 가버렸다. 이 미니버스, 역시 앞문을 열어 태워주는 건 고마웠으나, 정말정말 거북이다. 젊은 사람이 운전을 하면서, 이리도 속도 욕심이 없을까 싶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왜이리 많은지... 결국 해는 졌다. 그리고 버스는 어느 번화한 마을에선가 시간이 늦어 더는 못간다고 내리란다. 다행히 다른 버스에 나를 태워주고 요금도 내주고 목적지도 말해준다. 그 차도 내가 족자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망글란이란 도시 까지는 가지 못했다. 또 남은 요금과 함께 다른 차로 옮겨지고, 그렇게 해서 망글란에 도착했을 땐 이미 8시. 해는 커녕 주변에 문 연 가게도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애가 타고 불안하던지. 버스는 해가 있을 때 까지만 운행한다던데, 족자엔 어떻게 가나, 숙소를 근처에 잡아야 하나 등등, 이번 여행에 있어서 최대 위기라고 느껴지는 몇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마치 기적 처럼 망글란 터미널에 족자 가는 마지막 버스가 있었다. 휴우... 버스는 사람이 꽉꽉 찰 때 까지 기다리고, 힘겹게 막차에 오른 이곳 사람들과 마지막 수입을 노리는 장사치들과 노래 부르며 구걸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지만 그럼 어떠랴, 족자까지 데려다 준다는 데. 족자 터미널에선 당연히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다. 또 협상 끝에 예상을 훨신 웃도는 돈을 주고야 오토바이에 실려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가는옇 길 역시 좋은 풍경과 함께였다.

디엥에서 내려가는 길.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져있는 수많은 논밭들.

 

험난했던 하루의 마무리는 숙소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의 수레에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쌀국수로. 아아, 대중교통에 제대로 시달린 하루였다. 어쩌면, 벌써 더 이상 어딜 찾아가 무슨 유적을 본다는 것에 힘이 좀 딸리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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