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너덜너덜

아침 부터 열린채널 박재영 PD와의 통화.

너무 분하고 짜증나서 전화를 끊고 혼자 난방도 안되는 사무실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 메일 쓰고 출력 하고...

요즘 몸도 마음도 너무 너덜너덜.

이럴 때 마다, 내가 왜 열린채널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건지,

왜 퍼블릭액세스 운동을 하고 있는건지

왜 미디어운동을 하는지

머리가 하얘진다.

위경련이 일어난 날도, 다음날도, 다음날도,

담배도 줄이고 커피도 못먹지만 미친듯이 일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담배도 커피도 술도, 자극적인 음식들도 아니고,

계속 명치끝을 아리게 만드는 이 일들과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필이면 이 순간, 더럽고 치사한 열린채널 문제가 더 크게 터진 상황이지만, 그건 그거 대로 명확한 점이 있지. 오랫동안 꼬이고 꼬여 더이상 외면할 수도 없는 많은 문제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영화, 자본에 경고하다 : 제9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제9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The 9th Seoul International Labor Film and Video Festival

 


주최 : 노동자뉴스제작단
후원 :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슬로건 : 노동영화, 자본에 경고하다 / Shame on you, Mr. Capitalist!
상영작 : 9개국 총 23편
일정 : 2005.11.15 - 11.20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웹사이트 : http://www.lnp89.org/9th


** 프로그램 : 총 9개국 23편

1, 해외 (12편)

(( 1섹션 : 해외 신작 ))
* 철로는 경고한다 : 아마가사끼 사고와 JR동일본 / Rail Warns (일본)
* 재생계획 / Plan of regeneration (대만)
* 노동의 빈곤화 / Waging a living (미국)
* 콘크리트 혁명 / Concrete revolution (중국)
*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 Enron (미국)
* 계약 / El Contrato (캐나다)
* 교실에서 거리로 : 멕시코 교원 민주 노조 / Granito de Arena (미국)
* 올드맨과 헤수스 : 반란의 예언자들
/ The Old Man and Jesus: Preludes of Rebellion (베네주엘라)
* 그들 역시 투쟁한다 / Asi es el Subte... (아르헨티나)
* 벽을 무너뜨리며 / Breaking walls (이스라엘)
(( 2섹션 - 노동영화의 회고 / Retrospective ))
* 배신자들 / Traitors (아르헨티나)
* 아이들의 외침 / Cry of the children (미국)

2, 국내 (11편)


* 열열 프로젝트
* 우리들의 장미빛 인생
* 유언 - 박일수 열사가 남긴 56일간의 이야기
* 더 넓게, 더 강하게, 더 높게 - 공공산별, 또다른 미래의 시작
* 문화 - 우리가 아는 몇가지, 우리가 모르는 수십가지 (이상 노뉴단)
*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
* 노가다 (김미례)
* 경찰청고용직노조, 1년의 투쟁(가제) (최은정)
* 우리 앞에 놓인 길- 집단산재승인 쟁취를 위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가제) (혜리)
* 여름, 404, 승리 - 2005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총파업 투쟁 (태준식)
*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투쟁보고서 - 76일간의 파업 (울산건설플랜트노조영상담당 박원규)

** 노동영화, 자본에 경고하다

다시 노동영화제가 시작된다.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맞서 투쟁해온 노동자 민중과 함께 연대해온 노동영화제가 벌써 9회째를 맞이한다.
자본의 세계화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변혁의 과정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상황이 만만치는 않아보인다. 민주노총은 휘청거리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화의 바람은 아직 미풍에 불과하며, 노동미디어 운동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암중모색중이다.
여전히 힘겨운, 하지만 다시 전열을 정비해야 할 시점에서 진행되는 올해 노동영화제의 슬로건은 <노동영화, 자본에 경고하다>로 잡혀졌다. 섣부르게 낙관을 펼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시스템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과 충돌되는가,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의해 노동자들이 어떻게 파괴당하고 있고 어떻게 파괴의 과정을 투쟁의 과정으로 전환시켜내는가를 드러내는 노동영화의 핵심 역할을 다시 환기하고자 함이다. 이 슬로건하에 준비된 작품은 총 9개국에서 출품된 23편이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각 지역에서 노동자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동시에 가져온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계적 수준에서 점차 부각되는 지역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이다. 하지만 막상 이 지역의 연대운동의 발전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미래를 예비하는 의미에서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작품들을 배치해보았다. 자본주의적 발전에 집착하는 두 번째 혁명에 의해 고통받는 중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린 <콘크리트 혁명>, 일본 노동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철로는 경고한다 : 아마가사끼 사고와 JR동일본>, 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조선 노동자와 국가와 관료화된 노조간의 삼각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재생계획> 등 세편의 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변혁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질 프리드버그의 <교실에서 거리로 : 멕시코 교원 민주 노조>가 노동자 투쟁의 현주소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면, 작년 개막작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을 연출한 마르셀로 안드라데 감독의 신작 <올드맨과 헤수스 : 반란의 예언자들>는 노숙인들의 랩과 구술을 반란의 예언자들로 해석해낸다. 그리고 3년 연속 노동영화제를 통해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영상집단 노동자의 눈의 <그들 역시 투쟁한다>는 박진감있게 현장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그려내고 있는 활력넘치는 소품이다. 아울러 캐나다에 온 멕시코 이주 노동자의 삶을 그려낸 <계약>은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섬세하게 재현한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노동자처럼 뚜렷이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두 개의 근본주의의 충돌로만 비춰지는 중동에도 변혁을 고민하는 노동자 계급은 있다. <벽을 무너뜨리며>는 우리에게 한번도 소개된 바 없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사고와 실천을 엿볼 수 있게 비록 거칠지만 의미있는 작품이다. 더욱이 서구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운동에 집중하는 현지 영상단체의 시선을 통해서 그려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나라 미국에도 노동자의 고통은 여전하다. 네명의 노동자들을 추적하는 작품 <노동의 빈곤화>는 전세계를 떠도는 미국 자본이 어떻게 국내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가를 냉정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아마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과 관련하여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 될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은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상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탐욕스러운 공룡이 되어버린 거대 자본의 실상을 꼼꼼하게 그려낸다.
해외 작품 부분의 고정 섹션인, 지나간 노동영화를 발굴하는 회고전 부분에서는 두편의 작품을 발굴해보았다. 하나는 노동영화제 폐막작 <레이문도>를 통해 소개된 이후 그동안 많은 관객들이 자료를 구해보라는 압력(?)을 넣었던 레이문도 글레이져 감독의 대표작인 극영화 <배신자들>이며, 다른 하나는 주류 영화내에서 노동 관련 영화의 점유율이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시기인 무성영화 시대의 작품중 천신만고 끝에 자료가 보존된 <아이들의 외침>이다.
이들 해외 작품 이외에, 국내작으로는 우선 노동자뉴스제작단의 2005년 신작 다섯작품이 상영된다. 우선 세편으로 묶음 상영될 <열열 프로젝트>는 현대자동차의 점심시간을 통해서 방영된 정기적 노동영상물로서 노동영상운동의 또다른 모델을 보여주며, 교대제의 문제를 다룬 <우리들의 장미빛 인생>, 문화를 노동자의 시각에서 분석한 <문화 - 우리가 아는 몇가지, 우리가 모르는 수십가지> 두편은 현대자동차노조와 함께 제작된 교육물이며, 산별의 문제를 제기하는 <더 넓게, 더 강하게, 더 높게 - 공공산별, 또다른 미래의 시작>은 공공연맹과 제작한 교육물이다. 그리고 <유언 - 박일수 열사가 남긴 56일간의 이야기>는 <이중의 적>에 이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에 초점을 맞춘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아울러 올해 영화제에서는 KBS 열린채널을 통해서 미디어 운동 진영과 지역 운동의 조직적 항의를 통해서 우여곡절 끝에 방영이 된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의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 아시아나 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태준식의 <여름, 404, 승리 - 2005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총파업 투쟁>,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건설 노동자의 현실을 그려내는 김미례의 <노가다>,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의 투쟁을 담아낸 최은정의 <경찰청고용직노조, 1년의 투쟁(가제)>, 하이텍 알씨디 노동자의 산재인정쟁취투쟁을 추적한 혜리의 <우리 앞에 놓인 길- 집단산재승인 쟁취를 위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가제)>, 울산 플랜트 노동자의 투쟁에 관한 노동자들의 기록물인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투쟁보고서 - 76일간의 파업> 등이 국내작의 리스트에 올라있다.
올해 노동영화제 기간은 한쪽에서는 노동자의 투쟁이 고조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APEC이 열리는 기간과 겹쳐있기도 하다. 노동영화제가 그동안 주력해온 것은 바로 그러한 구체적인 현장으로부터 세계화의 심장부까지를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서 투쟁과 조직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올해의 영화제 역시 여러분들의 참여를 통해서 숨죽이고 있던 영상물들은 살아 숨쉬는 변혁의 촉매제로 부활할 것이다. 그 논쟁과 연대의 공간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핑크 팰리스', 장애인의 성과 여성의 성...

인디다큐페스티벌 기간인데, 보고서 작업 때문에 토론회와 회의에만 참석하고 말았다. 오늘, 며칠 째 밤을 새고 있는 사무실에서, 휴관일인데도 나와 일을 하고 있는 언니들과 함께, 아 영화 보러 가버릴까.. 수다를 떨다가, 장애인의 성에 대한 다큐라는 "핑크팰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꼭 봐야 해... 문제가 있다니까..."

간단하게 들은 내용만을 가지고 하는 생각이지만, 장애인의 성을 인정하고 성적 쾌락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장애인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 여성들이 필요하다는 것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나는 이것이, 일본군 정신대에 대한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은 어떻게든'성욕'을 '해소' 해야만 하며, 거기서 여성은 언제나 이 해소의 대상일 뿐이다. 억압적 국가권력이 한창때의 청년들 잡아두었으니 어쩌면 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 남성들, 분명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기에는 자신의 동생이나 애인이 끌려 가면 개인적인 분노이겠으나, 그렇게들 그렇게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건 너무 큰 오해인가?

장애인의 성에 대한 담론과 실천적 활동들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장애인'이 곧 '이성애자 남성 장애인'은 아니어야 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이 다른 모순 속의 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이 모순을 확대재생산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여하튼, 아직 못봤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다. 일단 보고 이야기해야겠지. 게다가 비장애인인 내가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니만큼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P.S. 이 작품이 미디액트에서 상영 지원도 하고 '보부상 프로젝트'로 DVD 제작 지원도 했다는 사실이 더 어처구니가 없다. 어찌나 익숙한 제목인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관심도 없었구나.. 하고.

P.S. 잠깐 검색엔진을 돌려보니 아래와 같은 칼럼이 나왔다. 참고.

P.S. 작년 서독제에선가 화제를 모았고 어디선가는 상도 받은 작품 중 '아빠..' 라는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장애 여성의 성과 아빠라... 꽤나 논란이 되었던 것 같은데, 전혀 몰랐다. 챙겨 봐야지. 그리고 더 고민할 것이 있겠지...

 

[한라일보 | NGO 칼럼]핑크팰리스’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입력날짜 : 2005. 10.18

 

 얼마전 제주의 한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이 다큐의 제목은 ‘핑크팰리스’.

 영화 제작의 동기는 아주 간단하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로 여긴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의 당당한 성적 이야기들은 보는 이와 함께 융화되어 저절로 즐거웠다. 그들의 유머와 때로는 뼈가 아릴 정도로 힘겨운 생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갈 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지루해지고 한편 답답함이 몰려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과연 무엇이 내 숨통을 막았던 걸까? 내가 찾은 결론은 ‘영화의 시선’이었다. 앞부분에 몇 명의 여성장애인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남성 중심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인 영화인 동시에 성기 삽입적인 영화에 불과하다. 실제 핑크팰리스에서 여성 장애인의 성 문제는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의 전개 속도에 비한다면 여성 장애인의 성 문제는 수박 겉 핥기식 정도. 또한 장애인 동성애자의 성 문제는 조금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전체 인구 중 동성애자의 수가 10%에 달한다는 통계를 볼 때 450만명에 달하는 장애인 중에서 동성애자의 수도 적지 않을텐데 말이다. 가슴이 답답했던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차마 웃으면서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수 아저씨가 다시 한 번 성매매 업소를 찾게 되는 과정은 감독과 PD의 유도하는 듯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동수 아저씨가 성매매를 이용하는 과정은 상당히 인위적이고 유도성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동수 아저씨의 이야기는 함께 걸음에 났던 기사의 재연에 불과했다.

 이 영화는 성매매특별법의 진상이 어떻든, 장애인이 성기 삽입 차원의 섹스에 소외되어 있으니 성매매가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의도를 이면에 깔고 있다. 드러내놓고 공창제 등을 말하지 않았지만, 장애인 성매매 업소인 ‘핑크팰리스’를 영화제목으로 사용하고, 성매매 업소를 찾는 장애인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 향유가 성기 삽입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성매매 업소를 찾는 장애인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장애인 성매매 업소인 호주의 핑크팰리스가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적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틀렸다. 공창제를 채택하는 호주에서 장애인 성매매 업소는 현실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업소 주인의 선택일 뿐 정부가 제공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 어디에도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에게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성은 단순히 자신들의 ‘욕구해소를 위한 성’일 뿐이다. 그러한 욕구를 해소하는 데, 여성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어떻게 성이라는 주제를 단지 아주 기본적인 욕구로 해소되어져야 할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을 타자화 함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그린단 말인가?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현실을 그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성에 담겨져야 할 최소한의 것이 없다. 그것은 타인의 존중되어야 할 성이다. ‘핑크팰리스’라는 곳 자체도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존중되어야 할 성이 없는 단지 상품으로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닌가? 장애인의 성이 중요한 만큼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성도 중요함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던져주며 이 영화는 끝이 났다.

<위혜연/제주여민회 부설 성매매피해상담소 상담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