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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13
    부모님 마음
    한울타리
  2. 2004/08/27
    사노라면
    한울타리

부모님 마음


매년 5월 5일이면 시골집에서는 고추를 심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이나 아이가 크기 전에는 어린이날 고추 심는 것에 대해 단 한번도 '해마다 왜 오늘 심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주(5월 1일)에 시골에 갔을 때 올해 역시 어린이날에 고추를 심는다고 하길래, 새삼 엄마에게 왜 해마다 어린이날 고추를 심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냥 단순히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린이날 고추를 심으면 놀러가지 못하니까 다른 날 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였습니다.

아무튼 엄마는 제 질문에 의외로 간단히 대답하셨습니다.

"그냥 심다보니까 그렇다. 농사일이가는 게 다 그렇지. 모도 심는 날이 매년 같잖여."
"다른 날 심으면 안 되나? 일요일(8일) 날 심으면 안돼?"

그렇게 말해 놓고 '아차' 싶었습니다. 어버이 날이라는 것을 깜빡 했던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어버이날 일하시게 한다는 게 죄송했던 겁니다.

"아니, 일요일날 말고 토요일 날 심으면 되겠네."

제가 자꾸 말하자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사실 속으로는 엄마가 조금 센스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이날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엄마가 그 뜻을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아서… '아하! 이놈들 어린이날이라고 어디 놀러갈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그냥 척~허니 알아들으시고 토요일에 심자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아무 말도 안하자 엄마가 그날 무슨 일 있냐고, 회사 출근하냐고 묻더군요. 참 난감했습니다. 어린이날이라 어디 가야 한다고 말하자니 엄마가 서운해 하실 것 같고, 그렇다고 유치원에서 자연학교 간다고 들떠있는 딸한테 못 간다고 하자니 말이 안 떨어질 것 같고….

결국 엄마 앞에서는 어린이날 시골에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오면서 아내한테 그냥 고추 심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도 안하더군요. 아내도 제 마음과 같았기 때문일 겁니다.

시골에 갔다 온 날부터 우리 집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계속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엄마 내일이면 자연학교 가지요?" 하고 묻는데 아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군요.

저는 결국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저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사실은 내일 어린이날이라 유치원에서 자연학교 간대."

그 말을 하고 저는 차마 다음 말을 하지 못한 채 수화기만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엄마는 지난번에 제가 말했던 게 이해가 되시는지 토요일에 고추 심자고 하시더군요. 진작 알아듣게 말하지 그랬냐고 하시면서….

큰 짐을 벗은 듯 홀가분했습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활기찬 모습으로 시장 가서 김밥 재료 사고, 음료수 사고, 방울토마토 사고, 필름 사고…. 그래서 결국 어린이날 시골 안가고 자연학교 가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저녁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더군요. 잘 갔다 왔냐고…. 저는 그 때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고추는 토요일에 심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잘 갔다 왔다고, 재미있었다고 말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먼저 일하지 말고 나가면 같이 하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요. 고추 다 심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어린이날에….

막 화를 냈습니다. 왜 심었냐고, 토요일 심으면 되지 왜 심었냐고 화를 냈습니다. 눈에 선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기신 두 분이 그 긴 밭에서 쓸쓸히, 힘들게 고추 심었을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그냥 전화를 끊었습니다. 마음이 아파 죽겠습니다. 제 자식을 생각하는 것만큼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그만한 효가 없을 것이라는 말, 자식 키워놔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 그 말이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더군요. 제가 그렇게 전화를 끊은 것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야, 네 일거리는 남겨놨어. 그러니까 와서 다 해놓고 가라. 그리고 고추는 비 온다고 그래서 심은 거여. 비 오면 땅 질퍽해서 못 심으니께. 그리고 오면서 니 아버지 반찬거리나 사 와라"

저는 압니다. 일거리 남겨 놓았다는 말도, 반찬거리 사오라는 말도 다 저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괜히 죄책감 가지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자식의 맘이 상했을까봐 위로하는 말이겠지요.

지금쯤 엄마, 아버지는 뭐하고 계실까요?

아마 집 앞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두 분이서 마늘 까면서 저희들 얘기를 하고 계실 겁니다. 아버지는 물으시겠죠. "뭐라고 그려?" 엄마는 대답하시겠지요. "고추 다 심었다고 하니까 속이 상했나, 왜 심었냐고 그러면서 전화 끊데. 지들 딴에는 마음에 걸리나 보지" 하고 말이죠. 그럼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실 겁니다. "이따 애들 오면, 아무 소리 말어. 지들도 이젠 지 자식이 먼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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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정말 말 그대로 무더운 여름입니다.

 

여름방학이다 휴가다 해서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 ...

이번 여름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오셨나요.

날씨는 더워도 마음만은 시원한 여름휴가가 되었음 좋겠네요.

이제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 하군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사노라면 노래가 나오는 곳이랍니다.

한번 들려 보시지요.

http://blog.naver.com/kindness23/100005277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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