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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과 A형

혈액형 판별을 선호하지 않으나, k군을 동행으로 삼은 것은 올 들어 최대의 미스테이크 중 하나였다. 봄을 탄다는 말 또한 즐기지 않으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봄날도 있는 법이기에 화창한 주말 차도 없는 인간이 드라이브를 즐길 심산으로 주변의 차있는 인간을 머리 속에 헤아리면서 하필 k군을 떠올린 것은 그의 나에 대한 무한애정과 철면피에 싸가지까지 없는 나의 율퉁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역시 k군은 "바람쐬고 싶다"는 나의 통보에 아무말 없이 나와주었다. 만나서도 나의 태도는 변함없이 "바람쐬고 싶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녀보자"였다. 그리고 무표정과 침묵, 간간히 들리는 라디오 소리에나 때때로 주목하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강남 모처의 커피숍에서 종종 만나곤 했던 k군이 꽤 과묵했던 기억이 있었던 터였고, 꽤나 친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계 유지는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때되면 문자하고 연락하는 사람은 그였으므로. 물론 우린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만남의 빈도수는 많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그의 모두라도 생각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그는 나의 태도를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잘 맞춰주었다. 그러나 한가지.  

 

"어디로 갈까?", "어디로 바람쐬러 가면 될까?", "가까운 바다나 보러 인천을 갈까?" k군은 약 10여분간 방향 잡는 질문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가 그의 이야기를 떨어놓기를 원하지 않았고, 기대도 안했지만, 나에게 어떤 답을 기대하고 질문을 던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던 탓에, 심지어 "어디로?"라는 질문에는 정말 막막했다.

 

"글쎄", "아무데나"

 

그리곤 방향 표지판이 나타날 때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를 연신 물었다. 그리고 잠시 헷갈렸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걸까? 나름 기분을 맞춰준다고 저러나??라는 생각도 잠시. 식사시간이 다가오면서 어떤 결정에 있어서 나의 의견도 듣고 싶었던 것이 분명해졌다.  

 

"이 근처에서 먹고 갈까? 아님 서울로 방향을 틀까?", "뭐먹지?"

 

오랜만에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 내가 그에게 전화를 해서 "나 바람쐬고 싶다. 드라이브나 시켜주라"라고 제안, 아니 통보를 했을 때 "봄 타냐? 그러자"라고 소위 쿨하게 응해와서 난 내 상황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못느꼈다. 때때로는 그런 설명없이 조용히 나와주고 기분 맞춰줄 이가 필요했고 k군이 적절하게 신경써줄줄 알았다.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처럼 "고기는 미듐으로, 음료는 레몬든 물이면 되고, 샐러드에는 포도씨유드레싱으로"라며 일일이 내 테이스트를 주문할 필요를 못느꼈다.  

 

애초에 내 잘못이었다. 나 역시 결단력이 있는 인간은 아니었고, 누군가 알아서 돌아다녀주길 바랬던 것 같다. 내 기분에 눈치껏 맞춰주면서. 이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난 적어도 그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다.고 봤다. 물론 나는 차가 없고 드라이브는 시켜줄 수 없지만, 여러모로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고 관계였느냐에는 상당한 오해가 있었음은 확실해 보였다.  

 

그쯤되어서는 뜻하지 않게 기분을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가서 먹자.  뭐 먹지? 넌 뭐먹고 싶냐? 고기 먹을까? 아니면 간단하게 먹을까?"

"글쎄. 니가 먹고 싶은거 아무거나 먹자"

 

이런 걸 반전이라고 하나. 낙담하며 '부산도 갔다왔겠다'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밥도 니가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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