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에서 와일드하게 팔을 뻗어!

물밑에서 와일드하게 팔을 뻗어!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한겨레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Q 마흔살 독신 직장여성입니다, 혼자 노는 게 너무 싫어요

마흔살 독신 직장여성입니다.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책읽기와 여행이 취미입니다. 그런데 큰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취미생활을 할 마음 맞는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어울릴 직장동료·선후배·학교동창은 많지만 그냥 술친구거나 가정생활에 매여 외출을 못 나오죠. 운동도 함께하고, 산에도 같이 가고, 여행도 함께 떠날,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어 너무 심심하고 답답합니다. 동호회 같은 데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쑥스럽고, 굳이 그래야 되나 싶고요. 한편, 저와 처지가 비슷한 직장동료이자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문제는 저와 성격이 딴판이라는 겁니다. 휴일에는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타입이라 억지로 함께 여행도 가고 이런저런 계획도 세워 봤지만, 어쩔 수 없이 좇아오는 친구도 불만이고, 저 역시 편치 않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함께 재미나는 일을 계획하고 나눌 마음에 맞는 친구를 구할 수는 없을까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어요. 혼자 노는 것은 너무나 싫어요.

 

 

A 서점에 가면 오지여행이니 테마여행이니 하며 이런저런 잡다한 여행책이 많이 보입디다. 붐인가 봅니다. 나는 저런 책들이 갑자기 많아진 틈새적 이유가 실은 당신처럼 ‘여행갈 상황은 되는데, 같이 갈 인간이 마땅찮아서’가 아닐까 슬쩍 의심해 봅니다. ‘에라, 책이나 뚝딱 한 권 쓰자!’ 식의 이유있는 여행이면 혼자 용기내 들어간 식당에서도 밥 기다릴 동안 메모 끄적대는 흉내내면 왠지 좀 있어 보이고 외로움도 글빨로 승화되잖아요. 인세도 벌어 심지어 막 생산적이야. 어쨌든 나이 좀 잡수신 싱글녀 치고 만만한 여행친구 찾는 거 그거 누구에게나 보통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당신 같은 에너자이저 커리어우먼, 듣자하니 쉴 때도 만만치 않겠는데요? 일 좀 한다는 여자분들, 대략 두 타입이시죠. 평소에 ‘달리니까’ 여가에는 시체놀이하시는 분(그 직장동료처럼), 아니면 당신처럼 ‘이 아깝고 소중한 시간’을 최고로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일’처럼 뽕을 빼시는 분. 후자들이 오버하면 잰걸음으로 여기저기 ‘찍고’ 돌아다니는 건 기본이요, 시간별 동선 짜고 될수록 사이사이 셀카는 부지런히 찍으시지요. 여행계획 짜기 위해 기본 여행서 세 권은 비교분석해 줘야 직성도 풀리시죠. 퇴근 후, 재즈댄스 중급반 같은 곳에서 만났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 맨앞 중간 자리 사수하며 땀 뻘뻘 팔 훠이훠이 휘두르며 추실 그 분들이시죠. 팔 닿을까봐 옆 사람 더 저리 비키라고 눈치주고 …. 본인들은 그저 열심일 따름이지만 옆사람 좀 피곤하겠죠?

그렇다고, 보아하니 당신 좀 피곤한 스타일 같은데, 대충 그 나이면 혼자 알아서 좀 놀아, 이 말을 “현대의 성숙한 여성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 스타일리시하다”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싶진 않습니다. 동반자 없이도 너끈히 활개치며 잘 살 것 같은 이런 분들이 실은 타인을, 혹은 관객을 더더욱 필요로 하니깐요. 다만 그 진심을 보이는 것에 인색할 뿐 - 잘난 내가 초라해 보이는 게 싫거든요.

사실 ‘여가친구 찾기’의 가능성은 널려 있지만 일일이 가능성 타진하는 게 치사하고 번거로워서 못해먹는 겁니다. 절박하게 정을 구걸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거절당할까봐 두려운 거지요. 꼭 올드미스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우리 모두의 딜레마. 평소엔 혼자서도 멀쩡하다가 꼭 무슨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이브나 휴가 같은 특별할 때만 사람 찾는 공황발작을 일으키지요. 당신이 처음부터 가능성을 배제한 그 직장동료·동창·선후배들에게도 엇비슷한 경우가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종종 묻지 않고 지나가기에 그냥 늘 나 빼고 남들은 즐겁게, 바쁘게 보낸다고 착각하며 지레 토라지곤 합니다. 그간 당신을 동반해 준 그 직장동료도 조금만 그녀의 취향을 반영해 본다면 창의적인 절충안 나올 수 있습니다. 동호회요? 오프라인에서 잘 자리잡으신 분들, 굳이 수평적 관계를 가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태생도 모르는 연하 것들에게 ‘님’자 붙여가며 맞춰주는 거 솔직히 짜증나죠. 그렇다면 아예 직접 동호회나 클럽을 만들어서 본인 위주로 하우스룰을 설정해서 이기적으로 운영해 볼 수 있잖아요! 당신과 유사한 에너자이저 골드미스 언니들(더불어 운 좋으면 골드미스터들), 오프라인으로 서로 접점 찾기가 힘들어 곳곳에 안쓰럽게 센 척 서식하고 있으니 평소의 업무 추진력으로 단결시켜 볼 만합니다.





번거로워 보이나요? 인간관계, 그거 원래 좀 번거롭습니다. 혹시나 해서 주변의 마흔 전후 싱글 언니들에게 휴가여행에 대해 물어보니 죄다 번거로워서 ‘걍 혼자 갔다’고 토로하더군요. 다만 덜 초라해 보이려고 이 언니들 꾀 써서 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 ‘출장’으로 둔갑시켜 휴가갔다 합디다. 저에겐 이런 꼼수가 훨씬 더 번거로워 보입니다.

현대인들의 특징은 내가 남들을 먼저 소외시켜 놓고서는 내가 외롭다고 징징대는 거지요. 외롭다는 그 말도 대부분 직접 못하고 기껏해야 엄한 개인홈피에서나 불특정 다수에게 어리광을 부려보며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에게 맞춰주길 바라지요. 원스톱 효율성(이거 순전 당신의 직업병)으로 운동·등산·여행의 팔방미인 짝궁이 돼 주면서도 내 입맞에 맞는 사람이라니! 당신이 예의 적극성을 발휘해 먼저 팔을 뻗어본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죠? ‘사람찾기’도 ‘노는 것’처럼 해 보시길. 겉으로 우아해 보이려면 물밑에선 더 와일드하게 들이대야 하는 겁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26 23:53 2009/04/26 23:53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xfiles/trackback/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