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생활인으로서의 활동가

생활인으로서의 활동가 | 새벽길의 눈 2005/02/21 15:52
http://blog.naver.com/gimche/140010475499

야화님이 제가 서준식 선생에 대한 글을 보고 엮인글을 달았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글은 아니고, 저의 단상을 몇 가지 얘기하고자 합니다.

 

야화님이 쓰신 글의 기본적인 요지는 이렇습니다.

 

'운동은 기꺼이 가난해야 한다'는 명제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운동은 '수익'이나 '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운동이 진정성이 있다면 운동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가난할 수 밖에 없고, 운동가도 그렇다. 그리고 시혜를 위한 활동이 아닌 이상, 재산축적이나, 부의 추구를 배제하는 것이 소외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가의 윤리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운동가에게 경제적 고난은 당연한 것이고, 명예로운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운동가의 삶은 충분히 자존을 누릴 수 없으며, 운동가가 땅을 파먹고 살지 않는 이상, 생활인으로서 운동가의 삶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이를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운동의 미래는 없다.

 

운동가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는 커뮤니티로부터의 지원과 복지국가의 지원이 있을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개발과 경제성장이 커뮤니티를 파괴시켰고,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한 대중운동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복지국가의 지원은 전무하다. 그렇기에 "이 사회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 한 진보적인 사람, 운동하는 사람은 가난해야 한다. 가난하지 않으면 정당하지 않다. ... 시민들의 의식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시민들을 향해 지금 변혁을 이야기 하거나 혁명을 이야기하거나 자본주의 없애야 한다고 얘기하면 시민들이 좋아하고 후원금 주고 하겠는가. 진보운동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라는 서준식 선생의 주장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현재의 운동가들은 운동 집단 커뮤니티나 부인을 비롯한 가족 등쳐먹기와 같은 '변형된 커뮤니티 지원시스템'으로 살고 있는데, 이는 문제가 있으며, '운동가도 동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인'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저 또한 이러한 야화님의 의견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서준식 선생이 하는 말에 공감한다고 덧글을 달았더니 모님이 "결코 배우지 않아도 늘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듣기엔 가난하고 불편하게 사는 법을 굳이 배워야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것이"라고 덧글을 단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한번 그게 타당한가 하고 되새겨보게 되었지요.

 

가난하고 불편하게 사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다만 적어도 활동가라는 사람들의 경우나 운동조직의 경우에는 그런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말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부유하게 되는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된다는 것이죠. 그 바탕 위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구요.

개별 활동가로 파악하여 얘기한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겠지만, 이를 사람 개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를 의미한다고 보면 유의미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물론 개별 운동가는 생활인으로서의 입지가 있어야겠지요.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운동백수인 상근활동가의 조직이 아니라 정책을 가지고 승부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학생운동만 6-7년 하거나, 청년운동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백수나 진배없이 생활해오면서, 일반대중의 감수성을 잡지 못하고 생활인의 감각이 무뎌진 이들이 대폭 당과 노조 등에 상근활동가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약간의 활동비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열정과 신심을 가지고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야화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가족을 고생시키고, 기이한 집단 문화속에 젖어사는 운동권들이 소외된 노동 속에서 가족과 자신의 부양을 위해서 헌신하는 다른 사람(이른바 대중)들로부터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과 현실은 계속 괴리가 발생할 수 있구요. 이는 조건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당이나 운동단체에서 별다른 전문성도 키우지 못하면서 그대로 나이를 먹다가 조직을 관료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도 걱정됩니다. 저는 상근활동가들이 나름의 전문성과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고, 당에서 상근활동한 것이 유능함(이것은 소위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문성은 아닙니다)을 나타내는 표시로 작용하길 바라며, 생활인으로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보수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운동가들이 열정과 헌신만으로 운동을 꾸려나가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활동해서는 더이상 운동의 전망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단지 남는 건 시간 뿐인 백수들'로 운동판이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활동가들을 비하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하시길) 자리가 났을 때 연줄이 있는 누군가를 집어넣고 이런 사람들이 계속 운동을 말아먹는 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상근활동이라는 것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있고, 그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기를 염원하는 매력을 주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근활동의 결과로 결국에는 정치인(정치백수)이 되는 것으로만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회로 나가더라도 역량을 인정받는 생활인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시스템에 좀더 많은 투자를 하여 관료화의 여지를 줄어나가도록 하고, 상근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열정이 있는 평당원들이 당의 중심으로 나서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상근활동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하지요. 집회에 조직의 깃발을 들고 나가고, 중앙에서 내려오는 유인물을 뿌리며, 회원이나 당원에게 전화돌리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상근활동은 이제 지양되어야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구조에 대해 흥미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상근/비상근의 개념이 없고, 좀더 많이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과 덜 투자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활동과정에서 안식년도 부여하고 있구요. 이러한 문제는 조직의 지배구조와 관련되는 것인데, 진보운동 또한 이런 분석을 엉뚱한 사람에게 맡겨두지 말고 그 메커니즘을 밝히는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내가 해야할 일인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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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2 22:28 2006/01/2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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