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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얄>, ‘Requiem'-&quot;인생은 게임이다. 끊임없이 싸워서 생존하라!”

<배틀로얄>, ‘Requiem'

-"인생은 게임이다. 끊임없이 싸워서 생존하라!”

 


실업자 1천만 명에 등교거부 학생 80만 명, 교내 폭력에 의한 순직교사가 1,200만 명에 달하게 된 미래의 혼란스러운 일본. 급기야 일본정부는 일 년에 한 번씩 무작위로 한 학급을 선발하여 무인도에서 3일 간 단 한 명만 생존하도록 ‘진짜’ 서바이벌 게임을 시키는 이른 바 ‘BR'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전투 규칙.
첫째, 처음 각자에게 주어진 무기만을 가지고 출발하여 상대방을 죽이고 새로운 무기를 획득해 나가야 한다.
둘째, 목에 장착된 목걸이를 통해 중앙 통제실에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며, 목걸이를 빼려 하거나 함부로 수상한 짓을 하면 목걸이는 자동 폭파될 것이다.
셋째, 매일 정해진 시간에 새로운 제한구역을 발표할 것이며 그 시간 이후에 제한구역에 남아있는 사람의 목걸이 역시 자동으로 폭발하게 될 것이다.
넷째, 제한시간은 3일. 3일 후에는 반드시 한 명만 남아야 하며 한 명 이상이 남게 되면 모두 죽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 당황하여 웅성거리던 아이들 사이로 규칙을 설명하던 선생이 던진 칼 한 자루가 날아들고 정수리에 칼을 맞은 학생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더 이상 선생과 이성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냉엄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무엇이든 겨눠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것이 바로 ‘진짜’ 세상이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실업자가 1천만 명에 이른 시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는 인간의 노동이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모으는 세상, 돈의 가치가 인간의 생존보다 우위에 서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업자 1천만 시대에 이른 상상속의 미래 일본 사회에서 학교 폭력으로 1,200만의 교사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현실성 있는 가정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이것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쟁과 탐욕으로 인한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고 그 현실은 <배틀로얄>의 학생들에게 던져진 극단적인 상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 슈야의 아버지는 ‘슈야, 힘내라’는 유언 한 마디만을 남겨 놓고 목을 매어 자살한다. 서로를 끊임없이 밟고 죽여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그는 더 이상 극복해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미처 극복하지 못한 세상 속에서 혼자 살아갈 아들에게 그는 ‘힘내라’는 한 마디밖에 남길 것이 없었다.
전쟁과도 같은 잔혹한 현실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어떤 말로도 소통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 아이들은 어차피 소통조차 되지 않는 무능력하고 보수적이기만 한 기성세대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단절하며,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잣대에서 자꾸만 벗어나는 아이들을 버릇없다 여기고 자신들의 뜻대로 길들여 복종시키려고만 한다.
버릇없고 철없는 아이들에게 기성세대가 택한 방법은 단 한 가지.
냉혹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이리하여 배틀은 시작되고, 서로를 믿자던 아이들은 일순간에 상대방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던 두 친구는 서로를 의심하다 함께 죽음을 맞이하며, 서로의 힘을 모아 본부를 해킹하고 탈출을 감행하려던 아이들은 결국 날아드는 총탄에 모두 목숨을 잃고 만다.


한편, 중앙 본부에 서서 아이들의 전쟁을 지켜보는 선생(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의 칼에 찔리고, 자신의 딸에게는 멸시를 당하며 도무지 소통할 수 없는 10대들에게 자신이 받은 깊은 상처를 배틀로얄을 통해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서로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이고 마는 것은 그렇게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 가장 절박해 지는 마음이란 모순적이게도 ‘진정한 사랑’, ‘진정한 믿음’,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감독 후카사쿠 긴지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영화속의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인 15세에 미군의 사격으로 죽은 30여명의 친구들의 시체를 처리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쟁 후 모든 어른들을 불신하게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배틀로얄>에는 이러한 감독의 경험이 그대로 투사된 셈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죽으면서 “이제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중얼거린다.


불신의 세상, 탐욕의 세상, 경쟁의 세상을 만들어 놓은 무책임하고 잔혹한 어른들은 이제 영문도 모른 채 어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서로를 죽이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그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배틀로얄>은 질문하고 있다.

‘Requiem', 잔혹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바치는.

각종 종류의 총기는 물론 낫과 도끼를 비롯한 동원 가능한 모든 무기가 등장하는 피 튀기는 전쟁의 현장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음악은 당황스럽게도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거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다.
때때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웅장한 오케스트라풍의 아마노 마사미치의 음악이 관객을 영화의 긴장감과 잔혹한 분위기에 잔뜩 몰입시키지만 사실 소통 부재의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어딘지 모르는 곳을 향해 일단 손을 잡고 달려가는 마지막 두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여주듯, 결국 '살아남고', '달려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영화의 진짜 메세지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나 ‘G 선상의 아리아’가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아이의 달려가는 뒷모습 뒤로 남겨진 주검으로 가득찬 황폐한 섬과 그 섬의 밖에서도 똑같이 서로를 죽이며 살아가야 하는 모두를 위해, 베르디의 ‘Requiem' 이 울려퍼진다.

* <배틀로얄> OST 들으러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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