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겸일기

분류없음 2015/12/08 01:58

 

1. 새 일터와 감흥 

 

지난 주 금요일,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첫 시프트 근무를 했다. 파트너는 매니저의 업무를 거의 대행하다시피하는 중년 백인 여성. 정신병원에서 커리어를 쌓고 보다 커뮤니티에 근접해 일하는 그곳으로 옮긴 지 십 년. 말이 아주 많고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역시... 대단히 부지런하고 우리 매니저는 이러저러하게 일하는 걸 좋아해. 몇몇 팁도 주신다. 그녀의 인도에 따라 클라이언트 병원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얻어걸린 클라이언트 파일을 열자마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살인미수와 강간 및 공무집행방해가 그(녀)의 죄목. 아직 대면하지 못한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고 다만 인종과 문화, 성장배경, 교육, 고용 등등 그(녀)를 가늠할 수 있는 스토리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안타깝다. 

 

나도 누군가에겐 살인범 이상의 공포와 분노와 미움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흉기로 사람을 직접 위협하고 찌르거나 총을 쏴야만 상처를 주거나 목숨을 앗는 게 아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어쩌면 직접적인 살해위협과 폭력 이상의, 그 무엇의 함의를 지닐 수 있다. 나의 인종, 문화, 자라온 배경, 나의 교육과 고용, 나는 왜 이 먼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가. 그런 것들을 곱씹어봤다. 이른바 "이상한"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간혹 선천적인 사이코패스, 공감능력을 절대적으로 결여한 문제적 인간이 아주 낮은 확률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만들어진다. 그(녀)들의 환경이 그의 행동을 낳는다. "유적 (類的) 존재로서 인간" 을 회고하건대 - 인간을 개별 개체로 파악하지 말고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만 그 주체적 인간 (대안) 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접근이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는다. 사실이 이럴진대 뛰어난 효능을 지닌 약물을 투여하면 (Medical approach) 그 인간은 참인간이 될 수 있을까? 가령, 나도 약을 잘 먹고 혼자 도를 잘 닦으면 마침내 참꽃개가 될 수 있을까? 글쎄. 부정적이다.  

 

 

2. 1에서 언급한 "말의 상처"를 더 언급하기 위해 

 

말은 정말이지 조심해야 한다. 일기장에 쓰는 게 아니라면 정말 정말 두세 번 생각하고 뱉어야 한다. 어제 도시 북쪽에 있는 샵에 중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가 인근에 위치한 한국인 식당을 발견했다. 꽤 오래된, 유명한 것 같기는한데 실물로 보는 것 (?) 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허기를 해결할 심산에 중국음식점에 들렀는데 나와 파트너가 먹을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저기 한국식당에 한 번 가볼까요? 들어가니 어느 한 켠에 가라오케 룸이 있는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가족룸처럼 꾸며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노래도 부르도록, 한국인 문화와 정서에 최적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다. 음식이 꽤 괜찮았고 드문드문 백인들, 남아시안들도 있었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들러 용변을 본 뒤 손을 씻는데 어떤 사람이 접근한다. "Do you know, this is [a] women's washroom?" 전형적인 한국인 액센트다. 주저하지 않고 "Yes, I do. I know it very well."이라고 답한 뒤 페이퍼타월에 손을 닦고 나왔다. 고개를 갸웃갸웃 오버액션을 하고 나를 몇 번 쳐다보고는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너 여기 여자화장실인 거 알아?" 라고 직역할 수 있겠다. 맥락은 "이봐, 너 화장실 잘못 찾아왔어. 너 여자야, 남자야?" 가 될 수 있겠다. 딴에는 교양있게 묻고 싶어 "Are you boy or girl?" 이라고 묻지 않았겠지만 사실 그게 그거다. 그런데 그 양반은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보기엔 그냥 아줌마처럼 보이지만 내 눈엔 그리 여성스럽게 생기지도 않았고 (예쁜 것은 둘째치고) 오히려 아저씨에 가깝다. 언뜻 보면 트랜즈젠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섣불리 젠더를 짐작할 순 없다. 다만 여자화장실에 들어왔으니 저 양반에게는 여자화장실이 더 편하구나, 라고 짐작할 순 있겠다. 

 

화장실에서 남성용 라면 (신라면?) 을 끓여먹는 것도 아닌데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대놓고 저렇게 묻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물론 안다. 하도 "이상한" 남자들이 많고, 심지어 그들이 화장실에 몰카도 설치하니까 남자 (로 보이는 사람이 혹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람이) 가 여자화장실에 있는 게 몹시 신경쓰일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마음은, 염려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과 태도가 대단히 틀렸다. 이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고 명백히 틀렸다. 적어도 "I was wondering, this is for women?" 라고 물었다면, 혹은 "Yes" 라는 대답을 얻은 뒤 그 사람을 일단 믿었다면, 혹은 그래도 영 못 미더우면 밖에서 기다리거나 시큐리티/식당 스탭/사태를 핸들링할 수 있는 적당한 사람에게 리포트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아량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객관적 인지능력도, 불편한 그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도, 그 어느 것 하나 깜냥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조건 일단 "들이박는" 혹은 "뱉는" 사람들의 태도에 질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양반만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을 예의없고 뻔뻔하게 키워내는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교육과 문화가, 혹은 헤테로노마티버티 (heteronormativity) 를 추앙하는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말리즘"을 부르짖는 그들 자체가 "애브노말"하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른다.

 

화장실 사건은 비단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이 도시에 온 첫 해 여자화장실에서 "This is a women's washroom, W-O-M-E-N. You know English?" 라는 말에 손도 못 닦고 쫓겨난 적이 있다. 컬리지에 다닐 때에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층을 피해 학장과 교수들 연구실이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코리아타운에서 담배를 태우고 바닥에 꽁초를 던져 비벼 끄는 중인데 건너편에서 한국인 아줌마가 "학새--엥"하며 크게 불렀다. 뽄새를 보아하니 담배피지 말라고, 혹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말라고 훈계를 하려는 것 같아서 "Excuse me?"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니야, 됐어. 외국인이네. 담배를 왜 거기에 버려" 라며 혼잣말을 하고 사라졌다. 어맛, 외국인? 대체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학생이라고 단정하는 그 무식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담배꽁초를 비벼끄는 것만으로도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린다는 섣부른 예단은 대체 어느 뇌구조에서 튀어나오는 걸까? 한국인이면 훈계를 해도 되고 외국인 (비한국인) 이면 훈계를 단념하는 그 이중잣대는 또 무엇인가? 왜 몇몇 사람들은 이다지도 저열한 식민지적 근성을 갖고 여전히 살아가는 걸까? 영어를 안해도 좋으니 그냥 한국어로 비한국인에게 훈계하면 안 되나? 대체 이 심리는 무엇일까?

 

 

3.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지 

 

언젠가 한국인 클라이언트를 인테이크해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중등과정의 전반부를 마치고 이 나라에 온 그 친구는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말하는 태도, 습관, 제스처, 사고방식 등은 캐나디언도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보통의 캐나디언에게도, 정신질환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보수적인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말할 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거나, 쓸데없이 자주 웃는다거나 (특히 쑥쓰러울 때), 미안하다/고맙다/실례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거나, 퍼스널스페이스에 대한 개념히 희박한 점 등은 명백히 "한국인" 같았다. 그것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그러는 건데 그럴 의도가 없는데 왜 사람들은 저를 오해하죠,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한국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여기선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잘 아시잖아요... 사실 그이는 그 행동 때문에 오해를 받아 (?)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고 또 그 행동 때문에 폭력 행위로 입건/체포/조건부석방 처분을 받았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극히 정상이었을 사람이 이 나라에 와 어떤 이유로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나는 아마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대로 한국사회에서 살았다면. 그러나 그게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전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렇게 자랐고, 문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에 대한 연민이 깊었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다. 찬찬히 관찰하고 사색하기보다 나불나불 떠드는 일을, 뱉는 일을 더 잘했다.  

 

 

4. 각오 

 

이번 주에 두번째 시프트가 있다. 이번엔 아마도 그 다음 번 클라이언트 파일을 읽게 될 것이다.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약간의 용기와 자신감이 든다. 

 

 

2015/12/08 01:58 2015/12/08 01:58
Trackback 0 : Comment 0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ys1917/trackback/1138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