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15/11/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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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지병과 노환으로 별세. 이제 삼김 가운데 몽니만 남았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는가 싶지만 여전히 현 대통령은 70년대, 유신에서 사신다. 나의 청춘을 밝게 (?) 비춰준 YS 대통령. 과만큼 공을 세운 대통령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분 상 지금 대통령보다는 나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문득 박통 시절이 좋았다고 회고하는 어르신들이 떠올라서 저도 그만 이제 꼰대가 되어버린 걸까요. 했더니 잠시 그런 기분은 들 수 있다고, 그 때가 나았지, 라는 생각이 들 순 있다고, 왜냐하면 그 시기를 어쨌든 거쳐왔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신 나의 영민한 짝. 그러나 잠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역시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때 다시 얘기해보자고 하셨다.
어쨌든 돌아가신 분의 평안과 영면을. 유족과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현실 세계의 건강과 안녕을. 아무리 그래도 그 때의 지랄발광하던 최루탄과 백골단, 혹은 1001이 지금의 차벽과 물대포, 캡사이신보다는 나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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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포비아가 도를 넘어 역시나 우려했던대로 약자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살고 있는 도시에서 히잡을 쓴 여성 한 명이 하교길에 아이를 맞으러 갔다가 린치를 당했다 (이 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부모나 캐어기버가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데리고와야 한다). 또 다른 히잡을 한 여성 한 명은 지하철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같은 일을 겪었다. 주로 백인들이 모여사는 피터보로라는 동네에 있던 모스크는 방화를 겪었다...
사람들은 간혹 허상과 실상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종교는 허상이다. 종교를 타격하고 종교를 비난하고 종교를 억압해봤자 허수아비를 두드려패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종교의 탈을 쓴 헤게모니를 건들지 않고 백날 허수아비만 때려댄다. 이것은 정치다. 매우 정치적인 행위여야만 한다. 이슬람극단주의자들, 기독교극단주의자들이 지향하는 그들이 드러내고 작동하는 그 정치를 건드려야 한다. 그들은 이미 반혁명적인, 역사의 진전을 방훼하는 그 노선에 서 있다. 제발 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영 헤겔리안들의 글, 맑스의 헤겔법철학비판을 다시 읽고 싶어 구글링을 했는데 한글판은 구할 수가 없다. 엄마 집에 두고 온 책들이 다시 떠오르지만 구할 도리가 없다.
꽃개
2015/11/26 00:14
2015/11/26 00:14
분류없음 2015/11/20 09:20
어제 새로 일하게 될 직장에 들러 퇴근하는 길. 미팅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정신없이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소변이 마려웠다. 길이 낯설고 맥도날드 따위도 그 동네에 없어서 어쩌지... 도시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 역까지만 가면 공중화장실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참아보자, 는 결심을 가는 도중에 바꿨다. 소라넷에 업로드된 (여성) 화장실몰카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점, 한국 말고도 젊은 한국인 남성들이 유학을 하는 세계 곳곳 도시의 화장실몰카도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아니 그보다는 얼마전 목격한 어떤 일 때문이었다.
할로윈데이에 이브닝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길. 지하철 보수 공사로 평소에 다니던 루트를 바꿔 서쪽에 더 치우친 한 지하철 역으로 갔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파티에 가려는 온갖 복장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옆에 서 있던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거쳐 할로윈 복장을 한 무리를 거쳐 다시 내 옆으로 왔다가 멈췄다가 부스럭부스럭 뭘 한다. 뭘 하나 힐끔 봤더니 그 할로윈 코스튬을 한 무리들을 아주 몰래, 마치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매우 자연스럽게 찍는 거다. 사실 할로윈 데이에는 "야 너네들 진짜 짱이다. 사진 찍어도 돼?"라면서 접근하면 대부분 백프로 신나하며 오브코올스, 포즈도 잡아준다. 물어보고 대놓고 찍고 서로 웃으며 얘기해도 되는데 그렇게는 안하는 거다. 못하는 건가. 그게 뭐 대수라고.
그 젊은 남성은 지하철이 올 때까지 그 짓을 계속했지만 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끝끝내 의식하지 못했다. 아마도 할로윈데이가 아니었다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그 젊은 남성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젊은 남성의 행동과 표정, 그 잔상이 며칠간 강하게 머물렀다.
그리고 어제 이 도시에서 가장 번잡한 지하철 역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그 젊은 남성이 떠오른 거다. 그리곤 곧 집까지 더 참자, 는 불편하지만 그게 낫겠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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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시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어르신 세대로 가면 구별이 쉽지 않다. 거의 다 중국인 같다. 특히 남자 어르신들은 백프로 중국인 같지만 간혹 아내를 동반하고 다니는 분 가운데 아, 한국인이시구나 알 것 같은 분들이 있다. 여성들의 경우 나이드신 세대는 절반가량 한국인임이 분명합니다! 절반가량은 중국인인 것 같기도하고... 삼사십대 여성 가운데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초중고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거의 식별이 가능하다. 이십대 여성은 정말 일본인-중국인과 헷갈린다. 화장, 의복, 가방, 지갑처럼 생긴 스마트폰 커버부터 폰 사용 습관, 시선처리 모두 모두 비슷하다. 삼국연합이라도 맺은 건가. 비한국인-유러피안 백그라운드의 친구들이 너는 한국인-중국인-일본인 여자들을 어떻게 구별해? 라고 물으면 나도 구별못해, 라고 답한다. 요즘엔 타이완, 타일란드 여자들까지 합세해서 더더욱 구별하기 힘들다. 하지만 일상에서 딱히 구별해야 할 일도 구별할 이유도 없으니 큰 불편없이 산다.
남성은,
한국인 이십대는 정말 딱 그 전형이 있다. 롤업바지, 메신저백 혹은 특유의 백팩, MLB 모자, 후드티, 알이 큰 시계, 성시경 안경 따위의 아이템들을 한 개씩이라도 하고 있거나 다 갖춘 사람도 있다. 공동구매라도 하는 건가. 특히 이 세대 친구들은 유학생인지, 이 도시에서 장기간 머문 사람인지 그런 것까지 외모와 태도에서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주뼛주뼛, 시선처리가 불안하고 셋 이상 함께 다니면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서도 둥그런 원대형으로 모여 서서 수다를 떤다. 욕을 많이 한다. 이 도시의 지하철에서는 모바일 리셉션-신호가 잡히지 않으므로 더더욱 할 일이 없어 더 티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친구들은 혼자 있을 때 더더욱 티가 난다. 쳐진 눈, 위축된 어깨,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시선이 마주쳐서 살짝 웃어줘도 반응이 없다. 아, 유학온 지 얼마 안되셨구나. 편안하게 앉아 까닥따닥 다리를 떨며 다운로드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는데 복장이나 옆에 누가 앉을 때 반응을 보면 또 역시 이 도시에 머문 연식이 바로 나온다.
이들 역시 일상에서 딱히 구별해야 할 일도 구별할 이유도 없었지만 -- 지금까지는 없었지만, 몰카를 일삼는 주세대가 이들인만큼 앞으로는 주의를 해야겠다. 다행히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분들이라 고맙다면 고맙다.
일반화의 오류를 담고 있으나 나만의 나름대로 패러노이드를 극복하려는 보호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꽃개
2015/11/20 09:20
2015/11/20 09:20
분류없음 2015/11/1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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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바그다드, 말리, 그리고 파리. 폭력의 난무. 민간인 희생. 사람의 목숨이란 게 너무나 형편없이 다뤄진다. 쾅. 폭탄 한 방이면 원하는만큼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세상. 아무렇지도 않게 군중을 향해 총을 난사할 수 있는 그 신념은 어디서 나오나.
꽉찬 드럼통 하나도, 똑바로 서있는 장정 하나도 저만치 날려버릴 수 있는 워터캐논. 대한민국 경찰이 이걸 사람을 향해 직사했다. 세월호를 겪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안전 문제에 있어 불감. 사람 죽이는 거, 이렇게 쉽다. 부디 쾌유를. 아...
또 한 명의 성소수자 청소년이 자살했다는 한국발 소식을 접하고 절망한다. 내가 바란 21세기는 정말이지 최소한 이런 건 아니었다.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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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에 어플라이를 했고 지난 월요일, 2시간 동안 잡인터뷰를 했다. 그 전날 밤에 오버나이트 근무를 했기 때문에 한 시간이 넘어가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고 긴장이 좀체 풀어지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마쳤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너를 고용하겠다, 는 답을 듣자 긴장과 어지럼증, 갈증이 다 사라졌다. 허탈했다. 썩 좋은 - 안정적인, 그리고 나의 체류신분에 당장 도움되는 - 일자리는 아니지만 하나의 모멘텀은 될 수 있겠다. 수입원이 늘었다. 하이리스크 클라이언트, 포렌식 시스템이 더욱 강화된 프로그램이어서 짝꿍의 걱정이 더 커졌다.
불안.
*
사람은 생명체다. 생명체는 모두 죽는다. 고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유와 과정과 갖은 배경을 사상하고 이 명제만 놓고보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사람이 죽는 일이 뭐 대수랴. 하기에 사람의 일에 논리를 들이미는 일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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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Daesh 는 그리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일반인 (혹은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 을 타격의 대상으로 삼는가이다. 일 국가를 선포할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집단이라면 적어도 상대 타격 국가의 군부대나 군사적 요충 시설, 최소한 대사관이나 정부시설 정도를 타겟으로 삼지 않을까. 마치 사회 불평등과 실업, 불합리한 군대를 겪어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만만해 보이는" 여성과 이주민을 골라 못살게 굴고 harassing 하는 모습 같다. 성소수자들을 타겟으로 삼는 기독교 극단주의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들 권력 반등의 지렛대로 삼은 성수자들은 기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다.
꽃개
2015/11/19 22:28
2015/11/1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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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15/11/18 10:41
김치가 똑 떨어졌다. 이미 진작 떨어졌고 스키야키를 해먹을 때 샀던 남은 배추로 급히 만든 비상김치마저 다 먹어치웠다. 원래부터 식성이 이랬나 싶게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이러다가 진정한 K-저씨의 식성으로 귀환하는 건가... 라는 착잡함과 아련함과 아무래도 이건 향수병의 한 조짐이겠지. 뭐 그런 식으로 위안하기엔 그 갈망 craving 이 너무 크다.
그리스-남/동유럽 출신 사람들이 주로 사는 우리 동네에 조선은커녕 중국 배추도 있을 리 없고 구할 수도 없다. 버스를 타고 차이나타운을 가야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조금 더 시간을 들여 한국인마트에 가는 게 낫다. 어쩌지.
잠깐 궁리.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일전에 먹었던 사우어크라우트를 사올까 싶었지만 별로였다. 덴마크 사람들이 먹는다는 그 노오란 것을 먹을까 했지만 정체를 모르겠는 것을 이 상황에 먹기엔 좀... 그냥 오이피클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집 앞 컨비니언스에 갔는데 뙇... 오늘의 발견.

그리스 바로 위에 있는 나라, 마케도니아에서 온 "페페로니 고추 피클" 되시겠다. 할리피뇨 고추 절임 맛을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한국산 청양고추에 가까운 맛이 난다. 식감도 비슷하다. 이럴 수가.
가끔 그리스 사람들, 남/동유럽 사람들과 그들의 섭생과 생활 같은 걸 관찰해보면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를 필요 이상으로 챙기거나 간섭하는 모습 (어쩌면 오지랍), 먹는 것을 나누고 먹는 것 자체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모습, 매운 음식/돼지 고기를 즐기는 모습, 누구도 못 말릴 것 같은 허세, 타인을 의식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의식을 안하는 것 같은 모습... 이젠 먹는 식재료에서까지 비슷한 점을 찾아내다니, 이 정도 간절한 집착이면 거의 "발가락이 닮았다" 수준이다.
어쨌든 아주 맛나게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마케도니아 나라를 다시 한번 검색해봤다. 슬픈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축구 제법하는 나라. 고추절임도 우리와 아주 비슷하게 먹는 나라.
꽃개
2015/11/18 10:41
2015/11/18 10:41
분류없음 2015/11/11 07:23
간장게장, 간장새우장을 담갔다. 살아있는 서해 꽃개가 이 나라에 있을 리 만무하므로 블루크랩 (청게?) 2.24파운드를 $8.04에 샀다. 1킬로그램이 약간 넘지만 서해 꽃개에 비하면 덩치가 하염없이 작아 열두 마리. 타이산 꽁꽁 얼어있는 블랙타이거는 18두에 $9.99. 블루크랩은 대서양에서 온 국내산이고 블랙타이거는 수입산인 셈이다. 그저께 일요일 오후에 차이나타운에 나가 장을 본 뒤 바로 냉동실에 넣어 기절하시도록 기다렸다가 꺼내 씻는데 여전히 살아계시다. 질긴 생명력. 경외감. 새로 꺼낸 치솔로 박박 닦는데 미안함+무서움+귀찮음. 새우는 찬물을 틀어 삼십 분 정도 방치했더니 생물새우처럼 되살아났다. 이 분들은 이미 돌아가신 탓에 덜 미안. 이틀이 지난 오늘 간장을 새로 끓여 넣어야 하는 작업을 하면서 한 번 먹어봤다. 작은 청게께서 알을 소중히 꼭꼭 간직하고 계셔서 맛이 아주 그만. 각종 채소와 양념거리는 파트너가 담당했었는데 역시나 이 분의 손길이 닿아야 마지막 2%가 살아나는구나. 나 혼자 만들었다면 이런 맛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간장게장은 참으로 익숙한 음식이다. 어릴 때엔 꽃게철에 거의 매일 먹었다. 외가쪽은 조기, 굴비, 꽃게, 조개, 새우(젓), 김, 굴과 같은 서해에서 주로 나는 해산물을 넉넉히 소비하던 집안이라 어머니께서도 어릴 때부터 종종 잡수셨고 그 취향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아주 어린 꼬마시절엔 외할머니 명의의 논에서 서식하던 작은 게로 민물게장을 담그셨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박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셨고 따라서 음식에 관해 ‘취향’이란 게 없거나 무척 제한적이었다. 가령 죽을 너무 많이 드셔서 밥이 진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든지, 수제비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은 음식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다든지. 반면 어머니는 국수를 좋아하셨고 밥도 질척질척한 느낌을 선호하셨다. 나중에야 아버지도 어머니 음식에 딴지를 거시는 일이 없어졌지만 아버지가 왜 저런 음식에 종종 거의 광기어린 반응을 보이는지 – 가령 상을 엎는다든지 - 어머니께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언젠가 밥상에 집게다리만 잔뜩 있는 간장게장 사발이 올라왔다.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는데 이번에 게살이 빨리 물러서 몸통은 다 먹었고 집게다리만 남았다고 하셨다. 지금이야 사과, 배, 양파, 레몬, 매실, 마늘, 고추 등의 갖은 채소와 과일로 간장의 풍미를 더하지만 옛날에는 그냥 막간장과 신선한 약수만 넣고 끓였던 것 같다. 먹기 진전에 청양고추만 송송 썰어 넣는다. 아무래도 간장맛이 – 혹은 간장의 주원료인 메주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집게다리도 나름대로 훌륭했고 맛있었다. 상 옆에 앉으셔서 혹여나 치아가 나가지 않을까 걱정하시기도 했지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돌을 씹어도 상관없는 나이였다. 두그릇, 세그릇 뚝딱 밥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쓸쓸하고 허전했다.
나이가 들어 식당에서 간장꽃게장을 먹으려면 기만 원 이상을 치러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꽃게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올랐고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질좋은 메주로 담그는 간장도 이젠 없는지 장독대의 독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진작 배워뒀어야 했는데. 혹여나 꽃게를 구해도 어떻게 담그는지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기억 뒤편으로 사라진 어머니의 추억의 간장게장.
담근 지 이틀만에 꺼내어 먹으며 집게다리가 몸통에 비해 상당히 튼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트너에게 말해 집게다리만 뜯어서 간장에 넣어둘까요.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어머니는 아마도 몸통만 따로 아버지 밥상에 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친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다 지난 일이다. 집게다리를 씹었던 이가 아플 뿐이다.
꽃개
2015/11/11 07:23
2015/11/11 07:23
분류없음 2015/11/04 09:40
제목: 번뇌의 출처
보름 전에 셀폰을 바꿨다. 전에 쓰던 것은 윈도우즈폰인데 오래 전에 단종됐다. 새로 장만한 것은 안드로이드 구글폰이다. 직원이 전화번호부를 새로운 폰에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서 구글이메일에 저장된 사람들을 폰에서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옛날 폰에 있는 전화번호들이 새로운 폰에는 없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다. 작은 키패드를 붙잡고 작은 글씨를 입력하느라 쩔쩔매다가 아! 구글이메일로 입력하면 편하겠구나! (깨달음의 순간) 랩탑으로 구글이메일의 컨택트 리스트에 접속했다. 어머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구나. 구글플러스라는 것을 비롯해서 거의 페이스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구글이 일상생활을 통제할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아티클은 가끔 봤지만 이 정도였는지 차마 몰랐던 것이다.
기능을 하나하나 살피며 한사람 한사람을 리뷰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교회에서 자원활동 팀장을 할 때에 팀원들 연락처를 모두 저장했었고 대부분 LGBT 그라운드로 레퓨지를 신청한 사람들이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류신분을 획득한 뒤로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나를 블럭한 것을 알게 됐다. 마우스를 여기저기 움직이는 도중 갑자기 "You are restricted from following Abc Defg" 라는 메세지가 뜬 것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나는 그 사람을 팔로잉한 적이 없다. 그런 기능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 다른 사람도 나를 블럭했을까 찾아봤다. 하지만 그 기능으로 나를 차단한 사람은 Abc Defg 라는 그 사람이 유일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불쾌하게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다. 그럴 수도 있겠다.
소셜미디어를 하다보면 온라인에서 친구가 되었음에도 소통하고 싶지 않은 특정 개인이 있기 마련이다. 일 년 내내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도 있고 어제는 괜찮았다가 오늘은 괜찮은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언프렌드 (unfriending) 를 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친구신청 (friending) 을 하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산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우 평범한 일들이다. 그런 일들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정작 마음을 많이 쏟아 정성을 다해 고민해야 할 일이 닥칠 때 번아웃 (burn-out) 하기 쉽다. 그래서일까. 일찍이 퍼거슨 경은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with your life other than that. Go to a library and read a book. 인생에는 (소셜미디어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라" 라고 일갈하셨다.
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나. 하지만 Abc Defg 라는 사람이 설정한 "You are restricted from following Abc Defg" 라는 메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이것 또한 그가 그의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나를 그냥 싫어할 수도 있겠다. 부딪힐 일이 별로 없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저 귀찮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시안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미래에 부딪힐 일이 있을 때 보다 넓은 거리를 유지해달라는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다. 어쩌면 페이스북에서 언프렌드를 하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수많은 가정과 추측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일 같으면 시간을 두고 생각한 뒤에 당사자와 소통할 방법을 찾겠지만 이번엔 그런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아마 평소에 그 사람을 높게, 훌륭하게 평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중에 늙어서라도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옆집에 살면 정말 좋은 이웃일 사람인데, 기회가 되면 함께 일하고 싶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가령 나는 100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상대는 3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다. 100 이라는 나의 마음이 닿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면 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모든 상처와 번뇌는 나에게서 나온다. 잊어버리면 될 일이다.
꽃개
2015/11/04 09:40
2015/11/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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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15/11/03 03:06
감정. 가장 어려운 노동.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어제의 것인지 오늘의 것인지
지나칠 수 있는 것인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인지
모서리마다 각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수평선 같은 것인지
부질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꽃개
2015/11/03 03:06
2015/11/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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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15/10/22 02:00
캐나다 총선이 끝났다. 장장 십년동안 (2006-2015) 군림했던 보수당 정부가 자유당 정부로 대체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부 사람들은 보수당이 아닌 정당 그룹이나 진영을 "좌파" 혹은 "사회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나마 대놓고 중도를 표방하는 자유당 (Liberal) 이 있지만 역시 중도보수나 보수 입장에선 자유당도 마찬가지로 좌파 (Lefts) 가운데 하나로 취급된다. 어쨌든 그 리버럴이 다수당이 되어 차기 집권 정당이 되었다.
몇 주간 지켜보며 한국과 비슷한 경향들을 발견했다.
- 여당 (보수당) 의 물량공세. 11주라는 어마어마한 선거운동 기간.
- 여당 (보수당) 의 공포정치 프레임. 역시 안티테제로는 이길 수 없다.
- 중도보수 및 사민당 지지자들의 투표전술. 사표는 싫다. 투표라는 기제가 갖는 허위의식.
- 보통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 사람들은 며칠이나마 '희망'을 품어본다. 그 힘으로 사는 건가?
여당 프리미엄을 갖고 있던 보수당은 애초에 선거운동 기간을 11주로 정했다. 대개 한 달 안팎이던 선거캠페인이 두 배가량 늘어난 거다. 왜 그랬을까. 다 이유가 있다. "돈"
선거전술을 안티테제에서 진테제로 옮아가도록 (자유당의 당수는 어리고 정치경험이 짧고 준비가 안됐다 -> 십년의 집권경험이 있는 보수당이 여전히 대안이다) 짰던 보수당은 선거운동 후반 좀처럼 여론이 변하지 않자 극도의 신경질적인, 공포를 가하는 전술을 쓴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이 전술은 일정 도를 넘어섰는데 투표일 바로 전날 주말, 전국 방방골골 신문 1면에 아래와 같은 정치광고가 실렸다.

"자유당 찍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혜택도 사라져. 보통 가구는 일 년 $4, 028, 시니어 부부는 일 년 $4,086 을 더 내야 돼. 살 수 있겠냐. 이래도 찍을래?"
일요일,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광고를 통해 계속 현직 총리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이전엔 미처 몰랐다. 보수당이 이토록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은지. 그러니까 진작에 좀 잘하지.
새누리당이 툭하면 공포전술을 들고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고정 지지자를 제외한 유동층이 이번엔 안 속았다는 점이다. 안 속았다기보다는 그간 십년에 넌덜머리가 났다고 해야 하나.
한편 주변의 사민주의 정당 (NDP) 지지자들 가운데 투표전술로 자유당을 지지하자고 호소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마치 반한나라당/반새누리당 전술로 민주당이나 새정연을 지지하자고 하는 것처럼. 실제 많은 신민주당 (NDP) 지지자들이 이탈해 자유당을 찍었고 그 결과, 제1야당이었던 신민주당이 현격히 쪼그라들었다 (103석, 30.63%->44석, 19.71%). 개인적으로 사민주의 정당 실험을 관찰하고픈 욕심이 있어서 NDP의 약진, 적어도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것을 바랐지만...
어쨌든 자유당이 됐다. 자유당->보수당->자유당->보수당->자유당의 무한루프를 밟는 캐나디언들의 중도적 성향이 다시 재현됐다고 해냐 하나.

matthewbrett
꽃개
2015/10/22 02:00
2015/10/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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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15/10/15 01:33
내성 (tolerance) 을 네이버 창에 치면 친절하게 심리학사전 내용을 소개해준다. 맞는 말이다. "tolerance" 는 참으로 넓은 영역에서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맥락을 봐야 한다. 컬리지에서 약물 (마약) 에 대해 배울 때 "tolerance" 에 대해 내린 정의 가운데 "people become less sensitive to the substance (adaptation)" 가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떨어진다는 것, 즉 그 자극에 이미 적응했다는 말이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동네 도서관 앞 횡단보도엔 이른바 반감음 보행자 신호 (pedestrian semi-actuated signal)가 설치되어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보편화된 이 신호장치는 보행량이 일정치 않거나 드물 때 차량통행을 돕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차량 신호기에 "정지" 신호가 뜬다. 차량은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멈춰야 한다. 어제도 도서관 앞 횡단보도에서 버튼을 누르고 양 옆을 살핀 뒤 건너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승용차가 거의 무릎 앞까지 와서 끼익- 멈췄다. "fucking Chinese, go back to China!" 애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끄집어내어놓고 소리를 지른다. 이미 나는 반쯤 건넜고 돌아볼 이유도, 관심도 없다. 더구나 "Chinese"는 나를 올바르게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며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 China에 갈 일도 가야할 필요도 없다. "I'm not a Chinese." 듣든 말든 상관않고 대꾸를 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을 마저 건넜다.
놀랐겠지.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났으니 놀랐겠지. 어디서 감히 보행자가 나타나, 그것도 냄새나는 차이니스가 나타나 앞길을 막는 것이냐. 힐끗 본 바로는 운전자, 조수석에 앉은 이의 외관과 영어 억양에서 남아시아에서 온 티가 난다. 아마도 그 쪽 문화에서는 차량에 우선권을 주는 모양이다. 옛날 한국사회처럼 말이다. 차가 오면 사람이 알아서 피해야 하는 문화. 놀라서 식겁해서 소리를 질렀겠지. 암, 내가 그 맘 이해한다. --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처음에는 "fucking Chinese, go back to China!" 따위의 말을 들으면 화가 많이 났다. 한 번은 전차에서 백인 운전자가 늙은 중국인을 저런 식으로 모욕하는 것을 보고 차량 번호를 적어 회사에 리포트한 적도 있었다. 차차 띄엄띄엄 화를 내다가 이제는 뭐랄까, 화도 안난다. 일종의 "내성"이 생긴 셈이다. 민감도가 많이 떨어진 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긍정적인 방향의 내성은 아니다.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마치 이명박귾혜 정부가 괴상망측한 정책들을 마구 입안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함을 토하고 분노하게 하다가 세월호라는 현실에 맞닥뜨린 뒤 절망하고 "적응하여" 사는 것처럼, 따라서 이제는 그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게 (혹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박귾혜정부는 내성을 빠르게 돋구면서 강력한 의존성을 일궈 결국엔 사람을 사람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 후과가 가장 지저분한 "헤로인" 같은 정부다. Heroin not Heroine.
꽃개
2015/10/15 01:33
2015/10/15 01:33
분류없음 2015/10/08 12:28
점심 무렵. 한국인 마을에 있는 미용실, 단골 미용실에 예약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받는다. 일단 나가기로 했다. 지하철역 부근에 있는 올가닉 샵에 들러 비누를 사고 나오는 길에 이발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 스타벅스에 커피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시부터 하는데요. 괜찮아요, 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한 시에 들를께요. 한국어 책을 구비한 도서관에 들러 책장을 둘러봤다.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 들어왔다. 지난해 봄부터 기다리던 책이다.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첫째 단편을 다 읽고 둘째로 넘어가려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친다. 이런 곳에서 말없이 내 몸을 만질 사람은 적어도 내 상식엔 없다. 뭐라고 대답할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사람 냄새를 맡았는데 일단... 음 나쁘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니 미용사 선생님이 도서관까지 오셨다. 한 시경에 예약한 손님이 있는 걸 깜빡했어요. 먼저 해드리려고요. 여기까지 오시다니. 하루키 책을 체크아웃하고 발빠른 선생님을 허둥지둥 따라갔다.
이 도시에 온 뒤로 같은 미용실에 들르고 있다. 중간에 문을 닫았을 때 (주일엔 쉰다) 다른 미용실에 갔었는데 결과가 안 좋아 많이 오래두고 후회했다. 바리깡도 샀었는데 두어 번인가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그냥 머리카락을 길렀다가 나중에 몽창 잘랐다. 장발을 관리하는 데엔 영 재주가 없고 아버지 쪽 유전자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라면 곱슬곱슬 제 멋대로다. 처음엔 사장님이 이발해주셨다가 나중엔 어떤 오빠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만나는 언니 선생님이 이발해주신다. 두어 달,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들르는데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잘라주신다. 편하다.
나에겐 미용실-미용사를 바꾸는 것에 관한 두려움이 있다. 누가 들으면 대단한 머리손질을 하는 줄 알겠지만 그냥 단순한 커트인데도 이 두려움이 가시질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한 달에 한 번 잘랐다. 대학에 가서는 학교구내 미용실에서 시작했다가 그 미용실이 없어지자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미용실을 거의 3년 동안 다녔다. 그 미용실 언니가 말도 없이 폐업을 했을 때 마치 나라 잃은 백성처럼 좌절했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실연당했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또 학교 앞에 있는 미용실을 어찌어찌해서 다녔고 그럭저럭 미용사 언니들을 사귀는 솜씨가 느는가 싶다가 그놈의 두려움이 또 도져서 고생하다가 또 어쩌다가 그렇게 사는가 싶을 찰나에 고향 땅을 떠났다.
이발을 잘 마치고 한국 음식을 조금 사고 오래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떡국을 먹기 위해 아주 작은 한국 식당에 들렀다. 나보다 먼저 와서 두리번거리던 라티노 한 분이 바싹 내 곁에 붙어앉았다. 김치볶음밥을 시켜서 먹던 그 분이 이 근처에 한국인 학교가 있냐고,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영어를 못하는 척하고 이어폰을 다시 꽂은 채 혼자 떡국을 마저 먹었다. 벽면을 마주보는 일렬 횡대의 식당 좌석에 앉아 떡국을 먹으며 하루키 책을 읽자니 마치 고등학생이 된 것만 같다. 국물이 다소 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소주나 사케가 있으면 딱 알맞겠구나 그런 불가능한 바람을 품어봤다. 계산하는데 사장님이 왜 이렇게 갈수록 말라가요, 하셔서 그냥 끙, 하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하루키의 책을 읽고 이발을 하고 그로서리 쇼핑도 하고 떡국도 먹고 그렇게 보낸 그렇고 그런 - 평화로운 날이었다.
꽃개
2015/10/08 12:28
2015/10/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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